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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시는 어린양과 (24장로) (16)
말씀: 계 5:1-14.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오전 11시
계시록 4장에 이어 5장 역시 요한이 하늘의 성막에서 본 것들입니다. 4장이 왕좌와 거기에 앉으신 분, 하늘의 성막에 누가 있고 무엇이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면 5장은 성막에서 벌어지는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 그 책을 취하시는 어린양, 네 짐승과 스물 네 장로와 천사들의 노래 등입니다.
4장이 하나님과 창조 사역이라면 5장은 어린양과 구속 사역입니다. 5장에서 스물네 장로는 자신들이 온 세상에서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구속 받은 성도들’이요, 왕과 제사장이 된 은혜를 증언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기록했고, 보다가 울기도 했고,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땅의 성막이나 성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지금 성경을 통해 하늘의 성막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땅의 일들을 말해도 믿지 못하지만 우리는 하늘의 일들을 말해도 마치 본 것처럼 믿습니다(요3:12).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요한계시록은 너무 어렵다, 무섭다,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주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공부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은 학식이나 학력의 부족이 아니라 ‘믿음’의 부족입니다. 세상의 다른 모든 책과 달리 성경은 “믿음을 통해” 깨닫습니다(히11:3).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땅의 것들을 말하였어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것들을 말하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요3:12)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것들은 믿음 외에 달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계시록 4,5장은 하늘의 것들입니다. 또한 계시록의 대부분이 하늘에서 비롯되는 일들인지라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깨닫는 자들에게 계시록은 쉬운 책입니다. [비웃는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발견하지 못하나 지식은 깨닫는 자에게 쉬우니라.](잠 14:6). 주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을 주사 우리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십니다(딤후2:7, 요일5:20).
4장에서 하늘의 성막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성경 곳곳에서 증언한 대로 하늘의 성막은 땅의 성막의 원형입니다. 땅의 성막은 하늘의 성막의 모형입니다.
율법은 실체가 아닌 다가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입니다(히10:1). 우리는 하늘에 있는 참된 성막으로 들어가 그분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조만간 성전을 세우고 거기서 희생물을 드릴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이 성막은 그때 그 당시를 위한 모형이었으므로”(히9:9)라고 말씀합니다. 모형과 실체, 땅의 성막과 하늘의 성막에 대한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해야 하나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것의 모형들인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하늘 그 자체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라.](히9:23-24).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왕가의 제사장으로서 땅에 있는 성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저 하늘의 성막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늘에 있는 스물네 장로가 하는 일이 장차 우리가 하늘에 올라갔을 때 하게 될 우리의 모습이요, 일들입니다.
1절입니다. [또 내가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보았는데 그것은 안과 뒷면에 글이 적혀 있고 일곱 봉인으로 봉인되어 있더라.](계5:1). “또 내가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보았는데”(계5:1). 4장의 기록에 이어 요한이 하늘에서 본 것들입니다. 요한은 왕좌에 앉으신 분(하나님 아버지)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보았습니다. 요즘 책은 사각형의 박스 모양에 표지가 있고 안에 내용물이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표지 색깔이나 제목이나 저자 정도는 볼 수 있지만 안에 있는 내용은 펴지 않고서는 볼 수 없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보면서 안과 뒷면에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두루마리 책이기 때문입니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책은 안과 뒷면에 글이 적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있는 책은 일곱 봉인으로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어린양의 생명책이라면 봉인된 책에는 봉인된 사람들의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 크리스천들은 봉인된 사람들입니다.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봉인하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고후1:22),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은 뒤에 그리스도를 신뢰하였고 너희가 믿은 뒤에 또한 그분 안에서 약속의 저 거룩하신 [영]으로 봉인되었는데](엡1:13). 우리는 모두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고 주께서 오시는 날 우리의 속사람, 새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 이 책이 주의 심판의 책이라면 심판의 날에 봉인이 열릴 것입니다. 요한은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책이 있고 그 책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만 보았고 그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봉인은 풀리기까지 일급비밀(Top Secret)에 해당합니다. 주님은 다니엘에게 환상과 계시를 보여 주시고 기록하게 하셨지만 그 책을 봉인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오 다니엘아, 너는 끝이 오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그 책을 봉인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며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니라.](단12:4).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네 길로 가라. 주께서 끝이 오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봉인하셨느니라.](단12:9).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말씀을 기록한 책을 봉인하셨습니다. 요한이 봤을 때 왕좌에 계신 분의 손에 있는 책은 일곱 봉인으로 봉인되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이제 누군가에 의해 풀리는데 계시록 6장부터 그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 손에”(계5:1). 왕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왕좌 우편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언약궤 안에 돌 판이 몇 개 있습니까? 두 개입니다. 왕좌에 앉으신 분과 그 오른편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은 언약궤 안에 넣고 모세는 주의 모든 율법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율법의 돌 판은 언약궤 안에 넣고 율법 책은 언약궤 옆에 두었습니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들을 책에 기록하기를 마쳐 마침내 그것들이 완성된 뒤에 {주}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들에게 모세가 명령하여 이르되, 이 율법 책을 가져다가 {주} 너희 [하나님]의 언약 궤 옆에 두어 그것이 거기서 너를 대적하는 증거가 되게 하라.](신31:24-26).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모두 이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재앙과 저주를 받게 될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마지막 날들에 해악이 너희에게 닥치리라.”(신31:29)라고 했는데 여기서 모세가 말하는 “마지막 날들”이 큰 환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왕좌에 앉으신 분의 손에 든 책이 바로 그들에게 임할 재앙을 기록한 책입니다.
2절입니다. [또 내가 보매 한 힘센 천사(mighty Angel)가 큰 음성으로 공포하기를, 누가 그 책을 펴고 그것의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였으나](계5:2). “누가 그 책을 펴고 그것의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하냐?”(2) 이런 외침을 봉인된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구속을 이루실 분을 찾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누군가의 땅이나 몸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친족이 도시의 장로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값을 치릅니다. 한 힘센 천사가 외치는 것은 “누가 구속하겠느냐?”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봉인하셨다면 그 봉인을 뗄 분은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구약의 룻을 구속하기 위해 친족인 보아스가 나섰습니다.
인류의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나서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 책은 토지 문서, 노예 문서와 같습니다. 누군가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되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우리의 구속의 몸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계속해서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우리를 대적하는 빚 문서, 종의 문서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것 즉 손으로 규례들을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며 권력들과 권능들을 망하게 하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공개적으로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 2:14-15). 주님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불법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더 이상 우리를 저주하고 정죄하는 판결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책에는 더 이상 성도들의 이름이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이시므로 우리를 대적하는 문서들은 다 치우시고 없애셨습니다. [원수 되게 하는 것 즉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이것은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화평을 이루려 하심이요,](엡2:15).
힘센 천사는 이 책을 취해서 이 책에 있는 것을 행할 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왕좌 주변에 있던 그룹이나 스물 네 장로나 천사들 중에 누가 그 책을 펴며 봉인들을 뗄 자격, 권위가 있는가? 외치는 것입니다.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하냐?”란 말은 자격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봉인된 책을 취하는 순간 그 책에 기록된 내용을 다 행해야 합니다. 빚은 갚고, 원수 되게 하는 것은 없애야 합니다. 친족의 몸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책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다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책을 취하셨습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하시느니라.](히10: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취하셨고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3절입니다. [하늘에나 땅에나 땅 아래에 있는 어떤 사람도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볼 수 없더라.]하늘에나 땅에나 땅 아래에 있는 어떤 사람도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구약 성도들 중에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 든 책을 취할 합당한 자격을 갖춘 이가 없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요 부적합한 자입니다. 땅에 있는 어떤 사람도 능히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교황이든 개신교 지도자이든 신학자이든 누구도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땅 아래에 있는 어떤 사람도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의 내용을 다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 셋,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어느 누구도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들을 알지 못하며 다 행하지 못합니다.
“책을 편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책을 읽고 깨닫고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눅24:45, 행16:14).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적힌 책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그 뜻을 열 수 없고 풀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알기 위해서는 저자이신 성령님의 조명과 계시가 필수입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창40:8).
여러분과 저는 성경을 공부하지만 이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는 것은 이 책의 저자이신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람의 것들을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겠느냐?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우리가 알게 하려 함이라.](고전2:11-12).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 책과 달리 하나님의 책은 아무도 자기 지혜로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비난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자들의 환상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인된 책의 말씀들같이 되었나니 사람들이 학식 있는 자에게 그것을 건네주며 이르기를,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그것이 봉인되었으므로 내가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 또 그들이 그 책을 학식 없는 자에게 건네주며 이르기를,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나는 학식이 없다, 하리라.](사29:11-12).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봉인된 책의 말씀들’ 같이 되었습니다.
학식 있는 자들은 성경이 봉인되어서 읽을 수 없다고 합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비유와 묵시로 가득하고 온갖 상징으로 된 암호문과도 같습니다. 학식 없는 자들은 자신들이 학식이 없어서 읽지 못합니다. 성경 이해는 학문, 학식의 유무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경을 찾아서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에게는 쉽습니다. 누구나 읽는 그대로 믿으면 알기 쉽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의 대언이 그들 안에서 성취되었으니 그 대언은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졌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자기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느니라.](마13:14-15).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마음이 무디어졌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자기 눈을 감아 버린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듣고 보고 배워도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지식이나 학식,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란 것입니다. 저 하늘에서 요한이 본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은 일곱 봉인이 되어 있어서 아무도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4절입니다. [그 책을 펴서 읽거나 들여다보기에 합당한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므로 내가 많이 울었더니](계5:4). 그 책. 요한은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펴서 읽거나 들여다보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책을 보았지만 그 책을 펴지 못하고 읽지 못한다는 사실은 재앙입니다. 주의 책을 펴서 읽을 수 없다는 것보다 더 큰 비극, 슬픔이 없습니다. 성경을 펴서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빛이 없어지는 것, 생명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겪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그분의 책을 펴서 읽거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책을 펴서 읽기 위해서 헐떡이는 이가 극히 적습니다. 주의 법을 묵상하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지켜 행하고자 하는 이는 더 적습니다.
여러분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행복이 커가는 아이들, 늘어나는 수입, 때에 맞는 승진, 화목한 가정에 있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즐거움이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즐거움은 주의 율법 안에 있도다. 그분의 율법 안에서 그는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시1:2, 직역). 했습니다.
오늘날 주의 책을 읽지 않는 성도들을 요한이 본다면 통곡할 것입니다. “제게 그 책을 주소서.”란 기도는 우리 모두의 뜨겁고도 간절한 기도여야 합니다. 이 땅에도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번역한 성경을 주옵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에 기록된 대로 말씀하시며 행하십니다. 주의 책을 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얻는 것입니다.
성경을 빼앗기는 것은 자신의 건강이나 재산이나 가족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요 아픔입니다. 주의 말씀을 펴서 볼 수 없다면 우리는 많이 울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은 성경을 마음대로 읽지 못하여 애통해합니다. 한 권의 성경을 은밀한 곳 땅에 묻어놓고 한 사람씩 몰래가서 읽으며 통곡한다고 합니다.
“내가 많이 울었더니”(4). 배가 고파 우는 사람들이 있고 ‘책’이 고파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가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들이 바로 “영이요, 생명”입니다(요6:63). 인천말씀침례교회가 세워진 이후로 하루도 빼지 않고 성경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단에서 아무리 성경읽기를 강조해도 어디서 개가 짖느냐? 하는 식으로 도무지 읽지 않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회개해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성경을 읽으시기 부탁드립니다.
5절입니다. [장로들 중 한 사람이 내게 이르되, 울지 말라.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곧 다윗의 뿌리께서 이기셨으므로 그 책을 펴시고 그것의 일곱 봉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5:5).
요한이 울고 있자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요한이 많이 울었다는 기사를 통해 우리는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간 요한은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은 눈물을 흘립니다(계7:17, 21:4).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가 행한 일들이 대부분 불타는 것을 볼 때 많이 울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 주님을 위해 살았다고 하지만 모두 거짓이요, 헛것임을 확인할 때 후회로 울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훗날 불신자들이 둘째 사망의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을 볼 때 많이 울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어야 했던 가족이나 이웃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저주를 받을 때 눈물이 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의 가족, 친족,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지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이웃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멸망의 심판을 받을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늘에서도 눈물이 있습니다.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는데, 이 장면은 요한이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그들과 만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땅의 밧모 섬에서 하늘로 공간 이동 뿐 아니라 A.D 96년에 살던 요한이 2,000년 정도의 미래로 시간 이동을 해서 직접 보고 듣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영의 세계는 시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입니다. 하늘에 있는 장로는 사도 요한에게는 미래의 인물입니다. 장로들에게 요한은 먼 과거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시간을 초월하여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울지 말라.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곧 다윗의 뿌리께서 이기셨으므로 그 책을 펴시고 그것의 일곱 봉인을 떼시리라, 하니라.](5).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울지 말라”고 합니다. 해결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다가 와 “울지 말라. 그만 울어라.”고 위로합니다. 그러나 말 뿐이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위로, 위로자 성령, 성경의 위로는 말 뿐인 것이 아니라 소망이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자를 제시해 줍니다.
장로들 중의 하나가 울고 있는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해 줍니다. 왕좌 주변에 있는 그룹들이나 장로들, 밖에 있는 천사들이 아니라 곧 바로 주 예수님을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과 눈물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생명의 소망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문제에서도 예수님이 소망입니다.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 곧 다윗의 뿌리께서 이기셨으므로...”(5).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입니다. 초림 때 예수님은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지만 재림 때 예수님의 모습은 ‘사자’입니다(창49:8-10). 왕이요 심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씨(창3:15, 갈4:4)이시고, 셈의 후손(창9:26)이며, 유다 지파이십니다.
“우리 [주]께서 유다에게서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히7:14). “.... 구원이 유대인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라.”(요4:22) 예수님은 요셉 지파가 아니시고, 레위 지파도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아들이시며 다윗의 뿌리이십니다. 신약 성경에서 다윗의 아들이라고 할 때 그는 솔로몬이 아닙니다. 다윗의 아들(자손)은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로는 다윗의 씨로(롬1:3, 딤후2:8), 자손이지만 다윗의 뿌리시며 주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가르치실 때에 응답하여 이르시되, 어찌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막12:35). 다윗은 자신의 허리에서 나올 자손 중에서 자신의 주(主)가 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시110:1). 다윗의 자손이 다윗의 주(主)요 뿌리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계22:16).
“유다 지파의 사자, 곧 다윗의 뿌리께서 이기셨으므로”(5). 예수님은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를 이기셨습니다(히2:14). 예수님은 정사와 권능들을 이기셨습니다(골2:15).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요16:33).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딤후1:10). 예수님은 다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기신 분, 정복자, 승리자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기게 하시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면 그분에게 속한 자, 그분 안에 있는 자는 이긴 자들이요 승리자입니다(요일5:4-5).
“그 책을 펴시고 그것의 일곱 봉인을 떼시리라, 하니라.”(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펴시고 그것의 일곱 봉인을 떼실 것입니다. 그 책이 펴지고 일곱 봉인을 떼시면 이 세상에는 심판이 집행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재앙들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입니다.
6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왕좌와 네 짐승의 한가운데와 장로들의 한가운데에 전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께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채 서 계시는데 이 눈들은 온 땅 안으로 보내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5:6).
요한이 두 번째 본 인물은 다름 아닌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입니다. 참고로 어린양은 처음에 아담과 이브를 위해 피를 흘려 죽었습니다(창3:21). 다음에는 이삭을 대신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창22:8). 유월절에는 각 가정을 위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출2:3). 이사야 53장에는 이스라엘이란 한 민족(국가)을 위해 죽임을 당합니다(사53).
복음서에서 침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이라고 말합니다(요1:29,36). 하늘에서 예수님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불리십니다. 요한에게 다가 온 장로는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말했는데 요한이 본 것은 ‘사자’(lion)가 아니라 양(Lamb)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27번이나 ‘어린양’이 나옵니다. 사탄이 용, 뱀이라면 예수님은 어린양입니다. 그분은 왕좌와 네 짐승의 한가운데와 장로들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요한은 거기에 어린양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저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 같은 분임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저 하늘에 있는 천사들 뿐 아니라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그분이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던 그 어린양이심을 아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몸에 상처 난 손과 발, 옆구리를 가지고 계셨고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계4:3에서 그분은 앉아 계셨습니다. [참으로 그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들려서 하늘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시니라.](막16:19).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스데반이 순교할 때 일어나셨다가 지금은 여전히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예수님은 하나님 오른쪽에 앉아 계시는데(히1:3, 8:1, 10:12, 12:2) 요한이 볼 때, 그분이 서 계신다고 합니다(계5:6). 지금은 서 계십니다. 이는 그분이 책을 받으시고 봉인을 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요한은 베다니에서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늘로 들림 받으시던 예수님과 지금 하늘에서 본 예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늘로 들어가사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천사들과 권위들과 권능들이 그분께 복종하느니라.](벧전3:22). 하늘의 모든 천사들, 권위들, 권능들이 땅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그분에게 복종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에 있는 모두의 주(主)이십니다.
“어린양께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채 서 계시는데”(6). 어린양께 있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은 다른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이 눈들은 온 땅 안으로 보내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6)고 말씀합니다. 계시록에 반복해서 ‘일곱 영’이 나옵니다(계1:4, 3:1, 4:5, 5:6).
• 온 땅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은 왕좌 앞에 있는 일곱 등불입니다(계4:5). 등불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세상에 주님은 일곱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일곱 금 등잔대가 일곱 교회이고, 일곱별이 교회의 천사들인데 일곱 등불은 교회를 통해 빛을 비추시는 주님의 사역을 보여 줍니다. 등불은 교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 일곱 영은 일곱 뿔입니다. 뿔은 권능과 권세를 드러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복할 때 일곱 명의 제사장은 언약궤 앞에서 숫양의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갔습니다(수6:4,6,8,13). 일곱 개의 뿔은 정복, 승리를 나타냅니다. 일곱 명의 제사장이 궤 앞에서 뿔 나팔 일곱 개를 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일곱 영이 하는 일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뿔은 이 지상의 권세, 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일곱 영은 일곱 눈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세시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다 기록하시는 분이십니다. [군대들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여호수아 앞에 놓은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으리라. 보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그 땅의 불법을 하루에 제거하리라.](슥3:9).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다고 합니다. 한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일곱 눈은 왕좌 앞에 있던 일곱 등불로서 일곱 영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일곱 영, 일곱 등불, 일곱 눈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일곱 영은 모든 것을 살피시며 일곱 등불은 모든 것을 밝히시고 일곱 눈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누가 작은 일들의 날을 멸시하였느냐? 그들이 기뻐하며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과 그 일곱 눈이 함께 있음을 볼 터인데 그 일곱 눈은 두루 온 땅을 이리저리 달리는 {주}의 눈이라, 하시니라.](슥4:10). 일곱 눈은 두루 온 땅을 이리저리 달리는 주의 눈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주님의 눈을 피하여 숨을 수 없고 숨길 수 없습니다. 눈은 땅의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7절입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책을 취하시니라.](계5:7).
어린양께서 나오셔서 왕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책을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을 펴서 기록 된 대로 다 행하실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계시록 4:2-3절은 왕좌에 앉으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왕좌 오른쪽에 앉아 계셨다가 이 책을 취하러 일어나셔서 책을 취하셨습니다. 이제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됩니다. 주님께서 책을 취하심으로 큰 환란의 재앙이 이 땅에 쏟아집니다. 책에 기록된 내용들이 현실에서 벌어집니다.
8절입니다. [그분께서 그 책을 취하시매 네 짐승과 스물네 장로가 저마다 하프들과 향이 가득한 금병들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는데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계5:8). 예수님께서 그 책을 취하시매 네 짐승과 스물 네 장로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서서 박수를 치거나 한 마디씩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하프와 향이 가득한 금병들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프는 찬양 도구입니다. 향이 가득한 금병들은 ‘기도’입니다. 엎드린 것은 경배입니다. 어린양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면 이들은 결코 이런 경배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네 짐승과 스물네 장로가 이렇게 한 것은 어린양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행하시는 심판은 지극히 옳은 것임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9절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는 그 책을 취하여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계5:9).
네 짐승과 스물 네 장로는 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9)고 합니다. 새 노래가 무엇입니까? 성경 시편에는 ‘새 노래’란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새 노래로 그분께 노래하며 큰 소리로 솜씨 있게 연주할지어다. {주}의 말씀은 옳으며 그분의 모든 일은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도다.](시33:3-4).
주의 말씀이 옳고 그분의 일이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새 노래를 부릅니다. [또 그분께서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드릴 찬양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주}를 신뢰하리로다.](시40:3). 이 노래는 주님의 구출로 인해 드리는 찬양입니다.
[오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주}께 노래할지어다.](시96:1). 주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하시고 높으신 분이란 것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오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라. 그분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그분의 오른손과 그분의 거룩하신 팔이 그분을 위해 승리를 얻으셨도다.](시98:1).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 승리를 얻으신 것으로 인해 새 노래를 부릅니다. [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비파와 십현금에 맞추어 노래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144:9).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주 하나님께 대한 노래입니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며 성도들의 회중 안에서 노래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시149:1). 마귀를 결박하고 땅 위에 평화를 가져 오는 것, 시온에 왕으로 통치하시는 주님에 대해 새 노래를 부릅니다.
[바다로 내려가는 자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섬들과 거기 거주민들아, 너희는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고 땅끝에서부터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라.](사42:10). 이들은 큰 환란 때 남은 자들입니다. 페트라에 숨었던 사람들, 양의 민족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새 노래를 부릅니다.
저 하늘에서 스물 네 장로는 어린양 앞에 엎드려서 그 분이 책의 봉인을 떼신 것과 자신들을 구속해 주신 은혜에 대해 새 노래를 부릅니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계5:9) 이렇게 새 노래를 부르는 말씀의 내용은 그들이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모든 족속이란 민족적 구분입니다. 모든 언어는 계통적 구분입니다. 모든 백성은 정치적 구분입니다. 모든 민족(국가)은 사회적 구분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 사람들을 말할 때 이렇게 4가지를 언급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고 주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드려진 살아있는 희생물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본문의 24장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제사장이나 그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열두지파나 유다자손이나 레위지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방인들 가운데 구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과 그 단일민족의 하나님에 대해서 호칭을 살펴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지칭할 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불리십니다. 히브리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밤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으로 인해 내가 너와 함께하며 복을 주어 네 씨를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으므로] (창26:2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을 주신 다음엔 어떻게 불리십니까?
[또, 보라, {주}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주}니 곧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니] (창28:13)
야곱이 열두 아들들을 낳고 그들이 열두 족장이 된 이후의 하나님은 어떻게 불리십니까?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시니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였으므로 자기 얼굴을 숨기니라.] (출3: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므로 구약의 하나님은 항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불리셨습니다(3:15, 4:5, 시47:9). 이를 통해 볼 때 계5:9절의 24장로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열두지파나 열두 제사장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10절입니다.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 하더라.](계5:10). 주님은 구원 받은 성도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은 천년 왕국 때 이 땅을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의 신분입니다. 천년 왕국은 신정 일치 국가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왕과 제사장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겸직입니다. 왕이 제사장을 겸임합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이 종교적 권위와 힘을 갖고 싶어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 힘을 갖고 싶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대 제사장이십니다. 크리스천들은 이 땅을 통치하는 왕과 섬기는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10)란 말은 하늘이 아닌 땅에 세워질 하늘의 왕국을 말합니다(계1:6).
지금 현재 크리스천들은 영적 제사장이며 왕이 아닌 종으로서 섬겨야 합니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2:5). 우리는 성전에서 동물 희생헌물이 아니라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 소유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에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왕가의 제사장. 크리스천은 육신적 혈통, 가문과 상관없이 모두 왕가의 제사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11절입니다. [또 내가 보고 왕좌와 짐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많은 천사들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더라.](계5:11). “또 내가 보고...” 이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39번 나옵니다. “내가 들었는데...” 이 표현은 계시록에서 28번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을 직접 성령 안에서 하늘로 불러올리시고 모든 것들을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 증언이요, 그 사람이 증인입니다. 요한은 보았고 “많은 천사들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를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12절입니다.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계5:12). 천사들은 큰 음성으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다고 말합니다. 천사들은 주님께서 부리시는 영들입니다.
육신을 입고 땅에서 일하시던 주님과 영광을 받으신 주님을 비교해 보십시오. 땅에서 주님은 죽임 당하시기에 합당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주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땅에서 주님이 하시는 일은 ‘바알세붑’을 힘입은 것이란 비난을 받았습니다(마12:24). 하늘에서 주님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땅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후8:9). 하늘에서 주님은 부(riches)를 갖기에 합당합니다. 주님은 땅에서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선포하셨습니다(고전1:18). 하늘에서 주님은 지혜를 갖기에 합당하십니다. 땅에서 주님은 약하심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고후13:4). 하늘에서 주님은 힘을 갖기에 합당하십니다. 땅에서 주님은 수치를 당하셨습니다(요8:49). 하늘에서 주님은 존귀를 받으십니다.
땅에서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요8:50). 하늘에서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땅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습니다(갈3:13). 하늘에서 주님은 찬송(복)을 받으십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죽임을 당하신 주 예수님께서 땅에서 스스로 낮추시고 버리신 것들을 하늘에서 다 취하시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13절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창조물과 바다에 있는 것들과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르되, 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하매](계5:13). 요한은 천사들의 음성 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이 찬양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말입니다. 큰 환란 때 땅에 있는 자들은 결코 주님께 이런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땅 아래에 있는 악한 영들, 지옥에 있는 자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한은 모든 창조물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요한이 이것을 듣는 때는 큰 환란이 지나 심판 후에 사탄이 굴복할 때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0-11).
마귀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다”라고 자신의 입으로 시인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자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주시라고 시인하며 그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 못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지만 불신자들이 심판을 통해 굴복할 때 그의 고백은 자기 자신의 불법과 불순종의 죄를 시인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13). 왕좌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 이 둘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요10:30).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one)이십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 하나님, 한 주이십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해 보려고 이런 저런 예화를 들지만 다 부정확합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하셨습니다.
하늘에는 세 분이 계십니다. 아버지, 말씀, 성령님이십니다. 이 셋은 한 하나님이시고 한 주이십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아버지는 혼에 해당합니다. 말씀은 육(몸)에 해당합니다. 성령은 영에 해당합니다. 우리도 영과 혼과 몸의 셋으로 구성되지만 한 사람입니다.
주의 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이듯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神)]은 미가엘, 가브리엘, 아브라함, 모세처럼 고유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 천사와 같이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정은 하나 확실하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습니다. 문제는 잘못 된 성경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하게 100년 동안 사용한 개역성경이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개역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양과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삼위일체의 “혼”을 만들지 못하신 무능력한 분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거나 훼손시키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면 변개된 성경을 보면 두려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개역성경 창세기2: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흙은 몸이요, 불어 넣으신 생기는 영인데 또다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혼”이 없는 생령, 즉 살아있는 영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성경을 보면 몸과 영과 혼이 분명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창2:7)
“살아 있는 혼”이 없다면 그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혼이 없다면 구원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유는 우리의 혼이 구원 받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접붙여진 말씀 곧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전1:9)
혼의 구원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단들에게 삼위일체에 관한 공격을 받을 때 개역성경으로 반박하며 제시할 성경구절이 없습니다. 정확한 혼에 관한 바른 성경의 변개 때문에 그들에게 당하고 맙니다. 개역성경 고린도전서 15:45절입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15:45) 첫 사람 아담은 “혼”이 없는 산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른 성경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고전15:45)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아니라 살아있는 혼입니다.
개역성경은 철저히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요한일서 5:6-8절에서 삼위일체를 제시하는 말씀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개역,[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개역한글, 요일5:6~8)
바른 성경,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분은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요일5:6~8) 이렇게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성경으로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며 어떻게 영적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주님은 수차례나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이에 네 짐승이 이르기를, 아멘, 하고 스물네 장로가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께 경배하더라.](계5:14). 계시록 4장이 아버지 하나님과 창조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5장은 어린양과 구속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온 우주의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 사역과 아들이신 어린양이 구속 사역에 대해 찬양하고 그분께 경배합니다. 네 짐승은 아멘하고 스물네 장로는 엎드려 어린양께 경배합니다. 요한은 하늘에서 구속 받은 성도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리던 경배는 저 하늘에서 더욱 풍성하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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