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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의 종횡무진]
(김미옥 문예평론가)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남자
작가 조성기는 내 젊은 날 문학 여정의 한 축이었다.
『야훼의 밤』은 조세희의 『난쏘공』이나 김성동의 『만다라』의 비중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의 작품을 읽어 본 독자들은 그의 행보를 예감했을 것이다.
그는 문예창작과 교수 은퇴 후 현재 교회의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작년에 조 작가의 방에서 유족의 허락을 받은 『문명자 회고록』이 무료 공개되었다.
나는 밤을 새워 읽다가 문득 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명자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공작이라는 보도를 했다가 살해위협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한 MBC 기자 출신의 언론인이다.
조 작가는 광범위하고 철저한 자료조사 중에 유족을 만났을 것이다.
대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결실이 『1980년 5월 24일』이란 작품으로 발간되었다.
5월 24일은 김재규의 사형집행일이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철저하게 조사를 거친 객관적 역사에 가깝다.
소설은 김재규의 처형이 집행되던 날, 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사건에 덧대 사형수의 심리변화를 문학적으로 서술한다.
인간 김재규, 정치가 김재규, 군인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조성기, '1980년 5월 24일', 한길사, 2023)
서점에서는 이 책을 역사소설로 분류했다.
과거의 사실이 역사가를 만남으로 ‘역사적 사실’이 된다는 말은 관점의 문제를 부른다.
또 작가를 만나 소설이 될 때 진영논리에 따라 기울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일반적으로 김재규는 ‘권력투쟁에 밀려 홧김에 대통령을 살해한 독재 정권의 부역자’로 알려졌는데 이는 제5공화국의 기술이다. 이 책을 읽고 김재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다.
인간 김재규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학교 성적은 별로였고 성격은 다혈질이었으며 우직하고 단순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감동하는 글귀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자객열전」의 문장이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아니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인데 나는 늘 이 말이 이상했다.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으로 선조에게 끝없는 연애편지를 보내고, 굴원이 울며불며 나를 불러달라고 왕에게 애걸했던 것은 나의 충심을 ’당신이 알아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뭐라고 포장하든 충성의 방향은 ’권력‘이다.
평범한 사람이 당신을 알아준다면 기분이 좋을 수는 있어도 충성을 바칠 수는 없지 않은가?
박정희와 김재규의 인연은 같은 육사 동기로 출발했다.
박정희는 혁명 후 김재규를 불러들여 그의 불도저 같은 성격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군인인 그에게 비료공장을 세우게 했고 국토개발을 맡게 해서 수많은 장병의 희생으로 한계령 길을 닦게 했고 건설부 장관으로 기용해서 중동 해외건설의 돌파구를 열게 했다.
그가 정보로부터 격리되어있을 때 그의 충성은 우직했다.
교활하고 계산이 빨라야 하는 중앙정보부장에 김재규가 앉은 건 앞에 앉은 김형욱과 신직수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악한 김형욱은 자신이 버려질 기미가 보이자 미국으로 망명해서 미의회의 코리아게이트 증인으로 주군을 배신했고 인혁당 사건의 주범 신직수는 계산은 빨랐으나 주군의 분노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그러니 우직하고 단순하고 충성심 깊은 김재규가 적격이었다.
그때 그가 읽은 주군의 각종 비리가 기재된 미의회의 <프레이저 보고서>는 그의 무의식에 깊이 안착했다고 생각된다. 충성으로 눈이 멀어 의식하지 못해도 무의식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렇게 주군에 대한 불신은 자신도 모르게 쌓이기 시작했다.
SBS ‘김재규, 반역인가 혁명인가’ 편의 한 장면 ⓒ SBS '뉴스토리'
김재규가 존경했던 인물은 ’장준하‘였다.
장준하는 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혁명공약을 읽고 두손을 들어 환영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민정 이양을 하지 않자 군사정부에 등을 돌렸다.
그가 1975년에 의문사하고 1976년말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다.
생전의 장준하가 그에게 한 말은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군인이 있을 거요.”였다.
이 말도 그의 무의식 속에 안착했다.
누적되는 불신은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서 임계점을 향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정보를 유용하게 쓸 줄 아는 교활한 인간은 아니었다.
박정희의 용병술은 적대적인 부하를 서로 대치시키고 충성경쟁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김성곤과 김종필이 그랬고 이후락과 김형욱이 그랬으며 박종규와 윤필용, 김재규와 차지철이 그랬다. 그리고 모두를 소모품처럼 쓰고 제거해 버렸다. 미국에 망명한 김형욱의 말이 김재규에게 전해졌다. “당신도 나처럼 다 쓰고 난 다음 버려질 것이오.”
그도 전임자들처럼 재일교포단 간첩사건을 조작해서 서승, 서준식 형제의 삶을 파괴했다.
수많은 반정부 인사들을 협박하고 고문했으며 그것이 충성이라고 생각했다.
우직한 ’권력의 개‘였던 그의 속에서 인간이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김재규가 홧김에 자신의 주군을 제거하는 유형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가까이서 본 주군은 각종 공사의 커미션을 개인금고에 넣는 부패한 인물이었고 유부녀도 가리지 않는 호색한이었으며 정적을 무참히 제거하는 폭군이었다.
주군은 그가 충심으로 보고한 최태민의 비리도 간신 차지철과 함께 웃어버리는 판단력 부재의 인물이었다.
그가 설득차 만난 반정부 인사들은 그에게 영구집권의 야욕을 가진 주군의 실체를 보라고 조언했고 세상은 군사정권에 비우호적이었다. 거사 열흘 전 부마항쟁의 현장에서 느꼈던 열기도 그에게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의 무의식 속에 주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계속 누적되면서 희미한 그 무엇도 함께 축적되었다. 그가 총을 쏘았을 때 그때 비로소 막연했던 무의식이 의식으로 선명하게 올라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안사에 끌려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문을 받으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왜 죽였느냐는 말에 그는 “유신을 끝내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한때 유신의 수호자였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유신을 처형했다.
김재규의 공식 죄목은 ‘내란 목적 살인죄’다.
내게 책을 읽은 소감을 간단히 말하라고 한다면 이렇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쏜 것이 우발적이 아니듯 김재규의 총격도 우발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같은 10월 26일이었다.
아직도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이유는 분분하다.
권력 탈취를 위한 쿠데타, 미국의 박정희 제거 음모 협조, 권력투쟁에 밀려 홧김에 친 사고, 또는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설 등등 논란이 많다.
원인은 차치하고라도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로 인해 유신은 철폐되었다. 비록 전두환이 다시 군사정권을 계승했을지라도.
(조성기 작가. 사진=채널예스 제공)
『1980년 5월 24일』은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정변을 기점으로 군인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주군을 둘러싼 무신들의 권력투쟁과 배신, 혜성처럼 나타났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인물들과 각종 사건 사고가 마치 역사서를 보는 기분이다.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한 작가의 기민성과 정확성에 여러 번 놀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인간 김재규의 탁월한 심리분석이었다.
남한산성 육군 형무소에서 서울 구치소로 호송되어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단 하룻 동안의 김재규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인간 김재규, 정치인 김재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부하들을 위해 법정에서 외쳤던 말을 들으면 군인 김재규는 성공한 인생이었던 것 같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권력에 충성했던 것은 역사인가?
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김미옥home@munhak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