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성경묵상 나눔 성경이 말씀하는 피해야 하는 사람들의 유형
장코뱅 추천 4 조회 355 26.03.28 07:53 댓글 36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26.03.28 08:05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포스팅의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26.03.28 15:19

    알겠습니다.

  • 작성자 26.03.28 08:08

    <호크마 주석: 잠언>

    =====3:13
    20절까지는 다양한 비유법을 통해 지혜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있다. 얻은 - 본절에서 전자의 '얻은'( , 마차)은 완료형으로서 영속적인 소유의 개념을, 후자의 '얻은'( , 야피크)은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인 갱신과 획득의 개념을 나타낸다(Lange). 복이 있나니 - 여기서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육적 측면 및 질적, 양적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생의 선물(2,4,8,10,16절 등)을 지칭한다(McKane).

    =====3:14
    지혜를 얻는 것이 ... 낫고 - 여기서 '얻는 것'( , 사흐라)은 문자적으로 거래를 통해 얻는 이익을 가리킨다(merchandise, KJV). 또한 '은'( , 카세프)은 고대 근동에서 화폐로서 통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은 상행위를 통한 금전상의 이익이라는 비유를 통해 지혜의 유익성을 피력하고 있다.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 '이익'( , 테부아타)은 원어상 땅의 소산물을 가리키며(8:19;사 23:3), '정금' 또한 땅에서 파내어지는 보배란 점에서 본문은 상반절보다 더 강하고 근본적인 측면에서 지혜 획득의 유익을 나타낸다.

  • 작성자 26.03.28 08:08

    =====3:15
    진주- 이에 대해 '진주'(Zockler Bochart), '산호'(Delitzsch, Gesenius), '루비'(KJV, NIV) 등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문맥상 귀중하고 가 치있는 것으로 대표되는 '보석'이란 총칭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jewels, LB, RSV).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 , 칼하파체카) - 문자적으로 '네가 바라고 원하며 또 네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모든 아름답고 귀한 것'이란 의미로서 점층법적으로 '진주'보다 상질의 보화를 나타내며 이 또한 '진주'와 마찬가지로 지혜의 탁월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비교 문구로 사용된 것이다.

  • 26.03.28 10:31

    그 옛날에도 역시 금과 은은 잘 통했군요. 나머지 내용도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26.03.28 08:10

    롬16:17
    <호크마 주석>

    권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로'(* )는 전치사 '파라'(* , '곁에서')와 동사 '칼레오'(* , '부르다')의 합성동사로 '곁에서 말을 걸다', '이야기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주의시키다', '경고하다'의 의미를 갖는다.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 사도는 밖으로부터 들어온 거짓 교사들로 인해 위험에 직면해 있는 로마 교회를 위해서, 본 서신을 끝마치기 전에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여기서 '너희 교훈을 거스려'란 말은 헬라어 성경에 '파라 텐 디다켄 헨 휘메이스 에마데테 포이운타스'(* )로 되어 있어 '너희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란 말로 번역된다. 이 말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배운 복음의 진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렇듯 그들이 로마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 행동하게 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로마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는 그들의 성격을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분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코스타시아스'(* )로

  • 작성자 26.03.28 08:10

    '떨어져서 있는 것', '쪼개진 틈', '분열' 등을 의미한다. 거짓 선생들은 거짓 진리로 성도들을 현혹하여 배운 바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여 교회의 분열(分裂)을 조장하고 획책하였음이 분명하다.
    거치게 하는 자들 - 거짓 선지자들의 성격을 묘사해 주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칸달라'(* )는 '덫', '함정', '길에 놓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사람을 잘못 가게 해서 죄에 빠져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의 분열을 조장하여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결국은 저희가 가르치는 교훈을 따르게 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치명적인 죽음의 함정으로 빠지게 한다(Lenski). 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사단의 세력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본절에 나타난 거짓 선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들을 가리키는가 ? 이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자(Dodd). (2) 도덕 폐기론적 자유인(Lightfoot). (3) 유대교적 열심분자들(Godet, Hendriksen). 여기서 (3)번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 작성자 26.03.28 08:11

    왜냐하면 유대교적 열심분자들은 항상 율법과 복음을 혼합하여 사도들을 대적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세력으로서 복음 진리를 곡해(曲解)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초대 교회 안에는 이런 율법주의자들이 늘 문제가 되었다(Lenski).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 이 말은 바울의 지혜로운 훈계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Dunn). 거짓 선생들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태도는 '살피고 떠나는'것이다. '살피고'의 헬라어 '스코페인'(* )은 목표를 계속 응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피하기 위하여 네 눈을 항상 뜨고 있으라'는 뜻이다. 즉 유혹받을 때 요구되는 경계의 태도로서 거짓 선생들에 대한 본질과 본성을 확실히 깨닫고 주의하라는 것이다. '떠나고'로 번역된 헬라어 '여클리네테'(* )로 '단번에 저희에게서 돌아서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성도들이 거짓 선생들의 본질과 본성을 알았으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즉각 돌아서라는 의미이다.

  • 작성자 26.03.28 08:13

    딛3:10
    <호크마 주석>

    이단에 속한 사람 - '이단'(* , 하이레티콘)은 본래 '견해', '학파','종파'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단자들은 자신이 견해를 고집함으로써 '분파'나 '당파'를 만드는 사람으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구별하는 사람'(a divisiveperson, NIV), '당파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a man who is factious, RSV)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본절에서는 당시 그레데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율법에 관한 논쟁과 족보 이야기 등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1:14)를 주장함으로써 교회의 교훈과 전승에 대립하였다.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 '이단에 속한 자'에 대한 교회의 치리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한두 번 훈계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도록 권면하고 책망해야 한다. 그래서 훈계를 받아들인 자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해야 한다. 둘째,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교회에서 내보내야 한다(벧후2장).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에 존속(存續)하면서 교인들 유혹하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 작성자 26.03.28 08:51

    <호크마 주석: 디모데후서>

    =====3:2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바울이 본문의 두 가지 악을 처음에 서술한 이유는 그것들이 다른 죄악의 뿌리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Scott, Guthrie). '자기를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단절된 자이며(눅 14:26) '돈을 사랑함'은 모든악의 근원이 된다(딤전 6:10).
    자긍하며 교만하며 - '자긍하며'의 헬라어 '알라조네스'(* )는 '자랑하는'의 뜻으로 본래 시골에서 효과 없는 약을 선전하며 뽐내는 돌팔이(quackery)를 일컫는 말이었다(Simpson). '교만하며'(* , 휘페레파노이)는 '알라조네스'와 연결된 의미를 갖는 말로 '거만한'의 뜻을 갖는다(롬 1:30;약 4:6;벧전5:5).
    훼방하며 - 이것은 언어생활에서 하나님과 이웃의 권위를 무시하며 모욕한다는 의미이다(딤전 6:4;벧후 2:11).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 '감사'는 모든 덕의 기초이다(눅 6:35). 그러나 말세에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 부모에게도 감사치 아니하며 하나님에게도 감사할 줄 모를 뿐더러(롬 1:21) 의도적으로 거역하며 대적한다.

  • 작성자 26.03.28 08:52

    거룩하지 아니하며 -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생각지 않고 행동함을 말한다(딤전1:9).

    =====3:3
    무정하며 - 혹자는 이 말의 헬라어 '아스토르고이(* )가 동물들의 어미와 새끼 사이의 본능적인 애정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Lenski). 그렇다면 본문은 부모와 자식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애정마저도 결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롬 1:31).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스폰도이(* )는 부정 접두어 '아'(* )와 '스폰데'(* , '헌주'(獻酒))의 합성어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휴전시 화해의 뜻으로 축배를 들 때 그 술을 '스폰데'라고 불렀다.'아스폰도이'는 '스폰데'에 대한 부정으로 '화해할수 없는', '앙심깊은'의 뜻을 갖는다(약 3:14).
    참소하며 - 거짓되고 추악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것으로 '중상하는' 혹은 '욕하는'을 의미한다(slanderous, NIV;딤 3:11;딛 2:3).
    절제하지 못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크라테이스'(* )는'엥크라테스'(* , '자제하는')의 반대어로 '감정이나 생리적 욕망을 다스리지 못함'을 의미한다(Simpson).

  • 작성자 26.03.28 08:52

    사나우며 - 이것은 문명(文名)과는 거리가 먼 야만적이며 동물적인 기질로 '짐승같은'을 의미한다(brutal, NIV;전 8:1).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 선한 것을 경멸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어두운 세상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3:4
    배반하여 팔며 -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저버리는 행위이다(눅 6:16;요 13:21;행 7:52).
    조급하며 - 말과 행동이 경솔하여 분별력 없이 서두르는 행위를 가리킨다(행 19:36) 자고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튀포메노이(* )는 '자기 중심', '자만' 혹은 '허세'를 뜻한다(conceited, NIV;딤전 3:6;6:4).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보다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말론'(* )은 '...보다 오히려'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마음으로 쾌락을 사랑함을 뜻한다(요 3:19;행 4:19).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 '경건의 모양'은 외형적이며 가식적인 것으로서 혹자는 유대인의 율법주의를 뜻한다고 본다(Scott). 한편 '경건의 능력에 대한 부인'은 '복음'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 작성자 26.03.28 08:53

    갖지 못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행위이다(Hendriksen). 따라서 본문은 종교적인 외형은 갖추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돌아서라'의 헬라어 '아포트레푸'(* )는 '등을 돌리다'라는 의미로 '거짓 교사들'과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본 구절은 디모데 개인이 사악한 집단과 멀리 떨어진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디모데가 그러한 자들을 잘 분별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바울의 권고로 볼 수 있다(Guthrie). 즉 디모데는 지도자로서 교회 공동체를 순수하게 유지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 26.03.29 17:18

    좋은 설명입니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6.03.28 08:55

    마 7:6
    <호크마 주석>

    윗말 1-5절에서는 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판단함에 대하여 경계하셨다. 그는 이제 그 듣는자들이 그의 말씀을 오해해서 남을 대하여 분변없는 주의 곧, 맹목적 타협 주의에 흐를까 우려하셔서 여기에 적합한 교훈을 주셨은 곧, 주님의 진리와 거룩한 일의 관게에 있어서는 신중히 분변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거룩한 것. -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이니, 제사 후에 제사장들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여기서 이것이 영적 제물 곧, 복음을 가리킨 듯하다. 복음이 요점은 우리를 대신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로 말미암아 먼저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희생제가 십자가에서 거행되었다. 그 다음엔 그의 백성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행위 곧, 복음을 믿는 일에 참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거룩한 것"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혹은 그것과 관계있는 성직이라고 생각함이 좋다.
    개. - 이것은 배교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것은 배로써 하나님을 삼는 거짓 일군들을 가리킨다. 바울도 거짓 일군을 "개"라고 하였다.(빌3:2), 거짓 일군의 특색은 (1)먹는 것과 대접 받는 것을 탐하여

  • 작성자 26.03.28 08:55

    다님이요(빌3:19) (2) 개가 보화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것인 줄만 알고 물고 찢는 것과 같이 거짓 일군들은 복음이 보화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들의 육체나 치는 길로 삼아 복음을 전한다 하면서 실상은 그 길을 해한다. 진주.- 이것은 진리나 지혜로운 말을 비유하는데 고대의 랍비 문학에도 그렇게 사용되어 말하기를, "미련한 자에게 지혜로운 말은 돼지에게의 진주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여기의 진주는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혹은 교회의 성직을 가리킨다. 이것을 그 윗 문구의 "거룩한 것"과 딴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두말은 동일한 내용의 것을 두 가지 방면으로 관찰하는 것이니 하나는, 그것의 거룩함, 다음 하나는 그것의 귀중성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즈안 박사의 해석이다. 돼지.- 이것 역시 위의 개와 동일한 내용의 인물들을 비유하였을 것이다.

  • 작성자 26.03.28 08:56

    잠9:8

    <호크마 주석>

    지혜 있는 자를...너를 사랑하리라 - 지혜를 수용한 자는 그의 전인격이 항상 지고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던 허물을 지적하고 모든권고를 기꺼워한다(19:25;27:6;시 141:5).

  • 작성자 26.03.28 08:57

    <호크마 주석: 잠언>

    =====22:22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 '약한 자'란 도움받을 데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이런 사람의 소유는 쉽게 빼앗을 수 있다. 그래서 그를 보는 자는 탈취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어떤 역본은 본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 '가난한 자의 도움얻을 때 없는 형편 때문에 그에게 악을 행하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

    =====22:23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 원문 직역은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고소를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여기의 '고소'는 영적인 의미로 볼 때 기도, 간구 등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의지할 데 없는 약자 층을 예컨대 과부나 고아 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줄 것을 명령하신 바 있다(출 22:22;신 24:17;26:12;사 1:17;약 1:27).

    =====22:24
    울분한 자(* , 이쉬 헤모트) - 문자적인 뜻은 '열기의 사람. 쉽게분노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기질의 사람을 뜻한다.

    =====22:25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 이는 분노하기를 배운 자가 파괴적이고 불안한 삶을 살게 될

  • 작성자 26.03.28 08:58

    것을 우려하는 표현이다. 분노에 익숙해져 버린 자는 공동체의 고민거리가 될 뿐 아니라 이웃에게 진정한 신뢰를 주기 못하고 실질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만다. 한편 '올무'를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겠다.

    =====22:26
    손을 잡지 말며 - 고대 개념으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쌍방 중 한편이 반대편 사람의 보증인이 되는 표식을 의미한다(6:1;11:15;17:18;20:16). 결국 본절은 빚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경고를 반복하고 있다.

    =====22:27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 원문 직역을 따르면 '네 침대가 네 아래서 낚아챔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채주가 채무자의 마지막 소유물인 침대마저 신속하게 빼앗아 갈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율법은 이것을 금하고 있다(출 22:25-27;신24:12,13). 그러나 악하고 성미 급한 채주들은 그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느 5:5;겔 18:12).

  • 작성자 26.03.28 08:59

    딤전6:10

    <호크마 주석>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본 구절은 비온(Bion)과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한 말 곧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척도이다'(* , 텐필라르귀리안 에이나이 메트로폴린 판톤 톤 카콘)와 유사하므로 학자들은 바울이 이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추정한다(Guthrie, Robertson). 그러나 이에 반해 렌스키(Lenski)는 본 구절이 바울의 독자적인 말임을 주장한다. 한편 '사랑함'의 헬라어'필라르귀리아'(* )는 '탐욕'(covetousness)을 의미한다.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으나 그것에 탐욕을 품게 될 때 악이 발생한다. 여기서 바울이'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유일한 근원임을 말한다기보다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Guthrie).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 '사모하는'의 헬라어 '오레고메노이'(* )는 '잡으려고 손을 뻗치다', '갈망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오래고'(* )의 현재 분사로 '항상' 돈을 갈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 작성자 26.03.28 09:00

    떠나게 된다. 여기서 '떠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플라네데산'(* )은 별이 자신의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여 유성처럼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Lenski).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근심'의 헬라어 '오뒤나이스'(* )는 '깊은 슬픔'을 의미한다. 또한 '찔렀도다'의 헬라어 '페리에페이란'(* )은 '꿰뚫어 관통하였다'는 뜻으로(pierced, KJV) 주로 고기를 쇠갈고리로 꿸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결국 돈에 지나친 탐욕을 품은 자들은 신앙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신앙을 잃고 방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 작성자 26.03.28 09:02

    고전5:11

    <호크마 주석>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 바울은 앞절에서 나열한 악의 종류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는데 하나는 '로이도로스'(* ,'후욕하는 자')로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이며(마 5:22) 또 하나는 '술 취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형제라는 그리스도인의 명분을 가지고는 있으나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악한 자의 손에 있는 자들임을 강조한다. '사귀지 말라'(* , 토토이우토)는 9절에서 사용된 것과 같이 그들 가운데 어울리지 말라는 뜻을 다시 반복한 것이며(엡 5:11) '메데 쉬네스디에인'(* ,'함께 먹지도 말라')과 함께 '철저하게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한편 본절에서 '쉬네스디에인'은 성만찬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물론 그들은 당연히 성만찬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쉬네스디에인'은 보다 일상적인 생활 속의 자유스런 식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형제라고 일컫는 자 중에 공공연히 범죄를 하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때

  • 작성자 26.03.28 09:02

    그들과의 교제를 단절할 뿐 아니라 그들을 탈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범죄자에게 유익이 될 뿐만 아니라(5절) 교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 26.03.28 11:30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 작성자 26.03.28 09:04

    잠4:27

    <호크마 주석>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 이미 준비된 길(26절)로 흔들림없이 행하라는 권고로서 25절과 유사한 의미이다. 한편 70인역(LXX)은 본절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 우편 길을 아시나니 그 좌편 길은 굽은 길이다. 또한 그가 너의 길을 곧게 하시고 평안으로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란 4개의 행을 덧붙여 첨가했으나, 본절에 있어서 좌편이나 우편은 모두 진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여졌으며 26, 27절의 사역 주체는 사람 자신이다. 따라서 이 삽입절은 26, 27절의 메시지를 하나님이 주체가 된 신적 사역의 형태로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첨가한 것으로 보여진다(Toy).

  • 26.03.28 11:32

    어제 9시 뉴스에서 스포츠 리포터가 경기 승률을 제미나이로 예측하더군요. 묵상 결론부를 사람이 썼지만 제미나이가 저렇게 압축해 삽화를 그린 것은 놀랍습니다.

  • 26.03.28 15:15

    네, 진짜 공감합니다.

  • 26.03.28 11:52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있고, 오늘 묵상의 내용과 같이 악한 자들을 분별하고 그런 자들을 피하고 떠나라는 말씀도 있어서 종합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해주어서 좋습니다.
    지혜롭고 슬기롭게 사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인 것 같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개인이든 교회든 국가든 악한 자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살아남아 각자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는 힘이 있어야 할 텐데요. 그 힘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지혜겠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이런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악한 자들의 귀계도 능히 물리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구약도 신약도 악한 자들을 이기고, 또 최소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주는 주옥같은 말씀이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 백성을 아끼시고 보존하시는데 열성을 다하셨는지가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묵상에 나온 성경구절만 확실히 알아도 큰 지혜를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잘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6.03.28 11:56

    본문에서 더 확장하여 추가적인 분별을 더하여 주시니 공부가 될 정도로 공감을 합니다.

  • 26.03.28 15:42

    @노베 매우 공감합니다!

  • 26.03.28 15:21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돌아보고, 온유한 마음으로 권면해야 한다는 말씀이 큰 울림을 줍니다.

    가르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기억하며, 내 의로움이 아닌 오직 사랑의 마음을 담아 때에 맞는 말을 전하는 지혜를 갖추고 싶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섣부른 훈계가 아니라, 서로를 진정으로 세워주는 성숙한 믿음의 교제가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 26.03.28 15:32

    아멘 🙏 🙏 🙏

  • 26.03.29 16:06

    아멘22

  • 26.03.29 16:07

    성경이 단순히 교리적 지식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살아있는 이정표가 됨을 깊이 공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관계'의 뿌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대인관계'의 열매로 맺힐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참된 지혜가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늘의 분별력을 얻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막힌 담을 허무는 지혜로운 화평의 도구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 26.03.29 17:09

    아멘!

  • 26.03.29 17:20

    아멘22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