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丑冬謫會寧道中次韓昌黎韻
기축년 겨울 회령으로 귀양 가는 길에서 한창려의 운을 차운하다
김우옹(金宇顒, 1540~1603) 조선 중기의 문신(1540∼1603). 본관: 의성(義城). 자: 숙부(肅夫). 호: 동강(東岡)·직봉포의(直峰布衣). 시호: 문정(文貞). 조식의 문인으로, 이조좌랑, 홍문관직제학, 대사성, 전라도관찰사, 안동부사 등을 두루 엮임 하였으며,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정여립과 조식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하였다는 이유로 회령에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사면되었다.
十年經幄九重天 豈識鰲山路數千
십년경악구중천 기식오산로수천
錯擬野芹堪獻御 不知秋菊可延年
착의야근감헌어 부지추국가연년
雲橫鐵嶺家何在 雪擁咸關馬不前
운횡철령가하재 설옹함관마불전
孤臣魂魄何須喚 自有丹心向日邊
고신혼백하수환 자유단심향일변
십 년 동안 구중궁궐 경연에 몸담았거늘,
어찌 오산 향한 수천 리 길을 알았으랴.
들미나리도 임금께 바칠 만하다 잘못 여겼고,
가을 국화가 수명을 늘리는 줄은 몰랐구나.
구름이 철령을 가로막으니 내 집은 어디인가,
눈이 함관을 뒤덮어 말조차 나아가지 못한다.
외로운 신하의 혼백을 무엇 하러 불러들이랴,
내게는 본래 붉은 충심 있어 임금 계신 곳 향하네.
經幄(경악): 임금에게 경서를 강론하는 자리인 경연(經筵)
九重天(구중천): 구중궁궐, 곧 임금이 있는 궁궐.
鰲山(오산): 유배지인 함경도 회령 방면.
野芹(야근): 들미나리.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의견이라도 임금에게 정성껏 바친다는 뜻의 헌근(獻芹) 고사. 獻御(헌어): 임금에게 바치다. 자신의 충언을 임금에게 올린다는 의미.
秋菊(추국): 가을 국화. 은일·절개를 상징, 延年(연년): 수명을 늘리다, 오래 살다.
鐵嶺(철령): 강원도와 함경도를 잇는 고개. 咸關(함관): 함경도 방면의 관문.
孤臣(고신): 임금에게서 멀리 떨어져 외롭게 된 신하.
丹心(단심): 붉은 마음, 변하지 않는 충성심.
日邊(일변): 해가 있는 곳. 임금이 계신 궁궐.
이 작품은 1589년(선조 22, 기축년) 기축옥사 때 김우옹이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되는 길에서 지은 시이다. 기축옥사는 정여립의 모반 혐의에서 시작되어 동인계 인사들이 대거 처벌된 사건으로, 김우옹도 이 과정에서 연루되어 회령으로 유배되었다.
김우옹은 이듬해인 1590년 회령 유배 중 『속자치통감강목』 편찬에도 착수했다.
이 시는 억울한 유배길에서도 임금에 대한 충정을 거두지 않는 김우옹의 심정을 절절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전반부에서는 십 년 동안 임금 곁에서 경연에 참여했던 자신이 하루아침에 수천 리 회령으로 쫓겨나는 처지를 돌아본다.
특히 “野芹(야근)”은 자신이 임금에게 올린 충언을 보잘것없는 들미나리에 비유한 표현이다. 자신은 충성된 마음으로 간언했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유배에 이르렀다는 자조가 담겨 있다.
5·6구의 “雲橫鐵嶺 / 雪擁咸關”은 매우 선명한 대구이다. 구름이 철령을 가로막고 폭설이 함경도의 관문을 뒤덮은 광경을 통해, 고향에서 멀어지는 유배객의 막막한 심정을 자연경관과 하나로 결합했다.
그러나 마지막 두 구에서는 비탄에 머물지 않는다. 孤臣이 된 처지에서도 丹心은 여전히 日邊, 곧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한다고 하여 자신의 충절을 확인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유배의 비애 → 고향에 대한 그리움 → 변함없는 충절로 정서가 전개되는 유배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自有丹心向日邊」은 이 시 전체를 압축하는 핵심 구절로 보아도 좋겠다. 김우옹의 처지를 고려하면, 단순한 충성의 표현을 넘어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비의 자의식이 담긴 결구이다.
<참고>
한창려(韓昌黎)는 당나라의 대문호 한유(韓愈, 768~824)를 가리킨다. 자는 퇴지(退之)이며, 스스로 가문의 군망(郡望)을 창려(昌黎)라 하여 후세에 한창려(韓昌黎) 또는 창려선생(昌黎先生)이라 불렸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며 고문운동을 이끈 대표적 문장가이다.
따라서 김우옹의 시 제목 己丑冬謫會寧道中次韓昌黎韻(기축동 적회령 도중 차한창려운)은 다음처럼 풀이할 수 있다.
“기축년 겨울, 회령으로 귀양 가는 도중에 한창려(한유)의 시에 차운하다.”
김우옹이 차운한 한창려의 시는 한유(韓愈)의 「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남관시질손상)이다. 두 작품은 운자만 같은 것이 아니라, 귀양길의 상황과 시어까지 의도적으로 대응시킨 작품이다.
한유의 원시
左遷至藍關示姪孫湘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 조카손자 한상에게 보이다)
一封朝奏九重天 夕貶潮州路八千(일봉조주구중천 석폄조주로팔천)
欲爲聖明除弊事 肯將衰朽惜殘年(욕위성명제폐사 긍장쇠후석잔년)
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운횡진령가하재 설옹남관마불전)
知汝遠來應有意 好收吾骨瘴江邊(지여원래응유의 호수오골장강변)
아침에 한 통의 상소를 구중궁궐에 올렸더니,
저녁에는 팔천 리 먼 조주로 쫓겨나게 되었네.
성명한 임금을 위하여 폐단을 없애려 했을 뿐인데,
어찌 늙고 쇠한 몸으로 남은 목숨을 아끼겠는가.
구름은 진령을 가로막았으니 내 집은 어디에 있는가,
눈은 남관을 뒤덮어 말조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네.
네가 먼 길을 찾아온 데에는 분명 뜻이 있으리니,
장독 어린 강가에서 죽거든 내 유골이나 잘 거두어다오.
한유는 819년 당 헌종에게 불골(佛骨)을 궁중에 맞아들이는 일을 간하는 「論佛骨表」를 올렸다가, 조주(潮州)로 좌천되었다. 이 귀양길에 남관에서 지은 것이 이 시이다.
이 시의 핵심은 충정과 비장함에 있다. 제1·2구의 「朝奏」와 「夕貶」, 즉 아침에 상소하고 저녁에 쫓겨났다는 극적인 대비가 자신의 처지를 압축한다.
제3·4구에서는 자신이 한 일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임금과 나라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늙은 목숨을 아낄 생각이 없다는 강한 신념을 드러낸다.
특히 유명한 부분이
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입니다. 구름·진령·눈·남관이라는 장대한 겨울 풍경 속에 고향을 돌아보는 유배객의 막막한 심정을 담았다.
김우옹이 바로 이 두 구를
雲橫鐵嶺家何在
구름은 철령을 가로막았으니 집은 어디에 있는가
雪擁咸關馬不前
눈은 함관을 뒤덮어 말이 나아가지 못하네
라고 바꾸어 쓴 것이다.
따라서 김우옹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유의 ‘秦嶺→鐵嶺’, ‘藍關→咸關’이라는 치환 관계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유의 조주 유배길을 자신의 회령 유배길에 겹쳐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