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기(2016 11.19-27)
조금 먼 나라 같은 스리랑카는 인도 동남부에 위치한, 망고 같기도 하고 금방 뚝 떨어질 눈물방울처럼도 보이는 지형으로, 면적은 한반도 1/3 정도이며 인구는 2200만이라고 하나, 산악 쪽의 인구까지는 아직도 파악을 다 못했다하니, 첨단시대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원 전 5세기부터 왕조가 형성되어 영국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180대 왕조가 2300년을 이어온 세계 최장수 왕국이었다.”는 오랜 역사적 사실에도, 스리랑카하면 얼핏 떠오르는 것이 홍차와 불교이며, 타밀족과 싱할라족간의 민족분쟁이 야기한 26년간의 내전으로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한 근래의 역사뿐이다.
홍콩에서 1시간 연착한 케이세이 퍼시픽 항공으로 반다라 나이케 공항에 내리니 20일 1시. 마중 나온 택시기사가 “콜롬보까지 하이웨이로 달린다.”고 자랑을 한다. 물어보니 고속도로가 둘 있는데 하나는 콜롬보에서 남쪽의 마타라까지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공항에서 콜롬보를 이어주는 것이란다. 이 양반 우리나라의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를 보면 무어라할까? 새벽 2시 45분에 호텔을 들어가니 방이라야 여섯 개의 미니호텔이나 깔끔하고 친절한 부부가 새벽잠을 설치며 맞아주는 정성이 고맙다.
시차가 3시간 반이니 서울에서는 이미 잠을 깬 시간이라 눈 붙이는 시늉만 하다가, 해변으로 바닷바람 쐬러 철길을 건너니 빈민가다. 철도와 해변 사이에 100m 평지에 듬성듬성 들어서있는 판자촌에는 가족이 모여 사는 모습이 보이고 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주름투성이 아주머니의 쑥스러워하는 미소에 나도 “굿모닝” 하며 인사를 건넨다. 한방에 여러 명이 기거하는 모습을 객에게 보여주어 그랬겠지만, 얼굴에 그늘이 없는 순박한 스리랑카 아주머니, ‘부유함이 자랑이 아니듯, 가난은 부끄러워할 것은 아닙니다.’
바닷가를 달리는 완행열차가 내려다보이는 16층의 베란다에서 아침으로 나오는 국수를 카레로 비비니 먹을 만하다. 홈 메이드 야쿠르트와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서 가장 당도가 높은 파파야와 파인에플, 바나나는 배불리 먹었으나, 커피는 영 아니다. 오더를 받고서 15분이 넘어서야 나온 주스는 과일을 갈아 만들어오는 것으로 너무 신선하고 상큼하여, 기꺼이 팁을 주며 “맛있다.”하니 서빙하는 아가씨 얼굴에 함박꽃이 피어나는 좋은 아침이다.
‘스리랑카에서 나오는 상품의 품질이 어떤가?’ 하면서 삼륜차택시인 툭툭이를 타고 시내를 나가는데 기사의 운전솜씨가 거칠기가 이를 때 없다. 툭툭이 꽤나 타보았지만, 숫제 교통법규는 남들에게만 해당되는 모양으로 자기 성질대로 운전대를 휘두르는 친구는 처음이다. 짐작컨대 콜롬보 경찰서장이 형이거나 교통부장관이 처삼촌인 모양이다. 동남아엘 오면 어쩔 수없이 툭툭이를 타야하는데 도시의 매연 때문에 한손으로는 수건으로 코를 감싸고 한손은 손잡이를 움켜잡고 앞다리에 힘을 꽉 준다.
두 군데 기념품점과 백화점을 둘러보았더니 ‘행여나는 역시나.’다. 서울서부터 익히 알고 온 베어푸트(Bare Foot)라는 스리랑카 전통수예점엘 갔더니 일요일이라 11시에 문을 연단다. 밖에서 기웃거리는데 안에 사람소리가 나서 문을 밀치니 경비원이 나오면서 “11시까지는 출입을 하지 못한다.”고 뻣뻣하게 말하더니만, 비가 들이치는 날씨에 서있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간부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는 둘러보라고 한다. 예상외로 규모가 크고 상품도 다양하고 품질도 우수하다. 꼼꼼한 바느질에 화사한 색감으로 염색한 천은 열대 원색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으며, 금방 손님이 몰려와 200평이 넘는 가게는 왁자지껄한 장터로 변한다.
1964년 이 나라의 가톨릭 자선단체가 부녀자들의 자립을 위해 전통적인 수공예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조직으로 만든 것이 베어푸트나, 조악한 디자인으로 판매가 부진하자 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아일랜드계 젊은 여성인 바바라 산소니에게 디자인을 의뢰하였다. 그녀는 스리랑카 전역을 돌면서 주민의 풍습과 색상을 스케치하여 스리랑카 고유의 영감과 색깔을 찾으면서 회사는 급성장을 한다.
또 그녀의 친구인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건축가인 제프리 바와는 가게를 유연한 동선으로 설계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곡선으로 시공하고 가게 뒤에는 레스토랑을 앉혔다. 일층 가운데 15평 정도의 공간에는 스리랑카의 자연과 건축에 관한 책도 판매하며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있으니, 말하자면 태국에는 짐 톰슨 숍과 스리랑카의 베어푸트는 각각 나라를 빛내는 실크산업의 총아로 한국의 유명백화점에도 숍이 있다.
베어 푸트 숍 내부
무역 센터 앞에 있는 Ministry of Crab은 아시아 5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게 요리가 유명한 식당이지만, 웨이터가 추천하는 오늘의 요리(Today's special)인 갑오징어튀김과 새우 카레, 샐러드를 시켰다. 400여 년 전 네덜란드 병원이었던 자리의 식당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현지의 외국인과 개별관광객들이 심심치 않다. 옆자리의 북구(北歐)계통으로 보이는 덩치가 큰 중년의 부인 세 명이 와인을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밉지가 않고, 오히려 저렇게 담배를 피워대도 괜찮은 건강을 타고 난 사람들의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사교모임이 부럽다.
호텔로 돌아와 옥상의 수영장에서 30분 수영을 하니 오늘 운동의 기본은 한 것 같아 상쾌하다. 저녁을 먹으려 해변으로 가면서 툭툭이를 탔는데, 식당이 아닌 다른 호텔로 안내하여 약 1.5km 밤길을 데이트하면서 중식전문점을 찾아갔다. 이곳의 기사들은 메타를 꺽지 않고 가서는 조금 비싼 요금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또 못사는 나라에 와서 박절하게 구느니 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선구이와 샐러드에 와인과 로칼 맥주를 시켜놓고, 인도양의 파도가 찰랑거리는 바닷가에서 축구를 하는 젊은이들은 땀을 식히려 바다로 뛰어드는 건강한 모습을 본다. 하우스 와인은 괜찮으나 맥주는 밍밍하다. 생선은 싱싱하나 야채는 별로인 것과 여기 물가를 감안하면 50,000원은 다소 비싸다.
콘시에저에게 4박 5일간 스리랑카 각지를 돌아볼 차량과 운전사를 부탁했더니 가격이 미화로 470불. 한국에서 알아봤을 때는 650불이라 했었는데 역시 현지에서 알아보면 득을 본다. 하루에 100불정도이며 점심만 사주고, 기사의 나머지 식사와 숙소는 물론 가스비와 주차요금 등도 포함된 가격이다. 여행지의 호텔은 예약을 해놓았으니 내일 이른 아침에 담불라로 떠나면 되니 잠이나 푹 자자.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피곤하면 코를 골기도 하는 모양이라, ‘코골이를 하지 말자.’라고 최면을 건다. 신체에 관한 것은 ‘나는 할 수가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 대략 해결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날 일이 있을 때도 이렇게 최면을 걸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기에 알람이 필요 없다.
스리랑카의 교통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도는 2차선이 기본이고, 중앙 분리선은 점선으로 되어있어 하시라도 추월이 가능하다. 눈 밝고 거리 감각이 탁월한 기사가 하는 곡예운전은 가슴을 조이지만 믿지 않으면 불안 하니 무조건 기사를 믿어본다. 이런 난장판 도로에서 교통법규 지키면서 느려터지게 직접 운전을 하면 답답함에 속이 터지겠고, 기사가 잽싸게 빠지는 운전을 지켜보면 심장이 터진다. 나 역시 15년 동안 바다낚시를 다니면서 일 년에 7-8만km를 쏘다녀 베테랑운전자라 자부하지만, 이 양반에게는 두 손을 들었다.
첫댓글 좋은 여행 하셨네요 ! 덕분에 스리랑카 간접 여행 해 봅니다
재미있는 여행하셨네요. 글도 잘 쓰셨고. ...
여행을 다닌 것 보다 상세하고 자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