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암자, 남해 보리암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알려진 곳은 서해・남해・동해 각각 한 군데씩 있다.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의 바다를 대표하는 기도처가 서쪽, 동쪽, 남쪽 한 군데씩 있는 것이다. 서해에는 강화 보문사, 동해에는 양양 낙산사가 있다면 남해에는 남해 보리암이 있다. 원래는 남해 보리암이 가장 가기 쉬운 곳이었지만, 수도권에 올라와 살면서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세 기도처 모두 가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지만, 그나마 강화 보문사와 양양 낙산사가 가기 쉬운 편이다. 남쪽 지방에서 살 때 보리암을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결국 큰 맘 먹고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장장 4시간에 걸쳐 남해읍에 도착한 뒤, 이른 새벽 남해읍에서 택시를 타고 보리암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국립공원 이야기 19 - 남해도
남해도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원래는 강화도보다 큰 섬이었지만, 강화도가 계속되는 간척 사업으로 면적을 넓혀 4위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남해도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다른 섬처럼 척박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거제도와 통영 앞바다에 뿌려진 많은 바다들이 높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농사를 짓기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남해도에서도 급경사를 가진 수많은 언덕을 볼 수 있다.
남해 고지도
대한민국 국토 대부분이 산지긴 하지만, 경사가 완만한 구릉 지역이 많아 농사를 짓기 용이하다. 하지만 남해도는 육지와 멀고 경사가 급해 농사를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단식 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랭이 논이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남해의 명소가 된 이유는 남해의 척박한 환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의 동해시가 1980년에 새로 만든 명칭인 것과 달리, 남해 (南海)라는 명칭은 신라 경덕왕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 온 것으로 1,300년이나 된 오래된 지명이다.
남해 용문사
남해에 가기 위해선 하동에서 남해대교나 노량대교를 타거나 사천에서 삼천포대교를 타야 한다. 통영이나 거제에서 여객선을 타고 섬 여행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남해에서 여객선을 타고 갈 수 있는 섬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하지만 남해도는 관광도시이자 산업도시인 통영과 거제와 비교했을 때 더 깨끗한 환경을 갖추고 있고,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다고 느낄 풍경이 지천에 널려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 해전 또한 남해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기 때문에 역사 탐방 여행으로 남해를 방문하는 것도 좋다.
금산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다
남해 금산 꼭대기에 위치한 보리암에서 보는 일출은 옆동네 여수 돌산도 향일암의 일출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보리암 일출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금산 꼭대기에 올라 해가 뜨는 곳을 바라보아도 바다 대신 산 봉우리 위로 떠오르는 풍경만 담을 수 있다. 남해가 수많은 일출 명소를 가지고 있어 발품을 들여 금산 꼭대기에 오를 정도로 고생을 한 것 치곤 실망스럽다.
남해 보리암
하지만 아침 일찍 보리암에 오르기로 계획했을 때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예전에 향일암에 올랐을 때 바라본 일출이 너무나 멋있어 보리암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남해 금산이 높이가 704.9m이긴 하지만 오른쪽으로 6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많아 여름에 바다 위로 해가 뜨는 걸 보는 건 불가능했다. 아침 일찍 고생해서 금산에 올랐지만 일출은 커녕 점점 붉어지는 하늘만 바라볼 수 있었다.
상주 은모래 해변
그럼에도 금산에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의 풍경은 아름다워 고생한 보람이 있기는 했다.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상주해수욕장이 한 눈에 보이며 전국 100대 명산으로도 꼽히는 금산의 봉우리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각종 기암괴석으로 뒤덮인 금산 봉우리 아래 3대 기도처라 불리는 보리암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많은 불자들이 이 먼 곳까지 찾아와 부처님께 소원을 빌곤 한다. 비록 기대했던 일출은 보지 못 했지만 금산 아래 보리암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잃고 말았다. 아침 햇살로 빛나는 금산 봉우리와 보리암을 보니 왜 이 곳이 3대 기도처로 불리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조항의 다정식당
금산에서 내려와 미조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미조항은 남해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어업 전진기지 뿐 아니라 미항 (美港)으로도 이름이 높다. 미조항으로 향한 이유는 아침식사를 한 뒤 이 곳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멸치로 유명한 남해답게 미조항의 많은 식당이 멸치쌈밥을 내세우고 있지만 혼자서 먹는 건 불가능해 다정식당 (055-867-7334)에서 된장찌개를 먹었다. 시골 여행을 가면 혼자 먹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아주머니께서 선심써서 백반을 먹게 해주셨다. 아침을 먹고 미조항을 둘러보고 있으니 친구가 몰고 온 차가 오는게 눈에 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해수욕장은 상주은모래해변 하나밖에 없지만 남해의 다른 해변 또한 국립공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먼저 송정솔바람해변에 들린 뒤 다랭이마을과 두곡월포해변을 둘러본 후 임진성과 용문사를 들러 남해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송정솔바람해변
송정솔바람해변은 상주은모래해변에 이어 남해를 대표하는 해변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부드러운 은모래 해변 뒤로 소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으며, 백사장 길이가 1.5km나 되고 상주은모래해변과 비교하면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어 붐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 해안을 볼 수 있어 매력을 더한다. 최근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랭이마을
다랭이마을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다랭이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남해도 대부분의 땅이 급경사가 진 언덕이기 때문에 비탈 위에 논을 만들어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선조들의 애틋한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산비탈에 위치한 논이기 때문에 농기구의 진입이 불가능해 아직도 소와 쟁기를 사용해서 농사지을 수밖에 없다. 다랭이논을 항공사진으로 봤을 땐 계단식논이 한 눈에 들어오지만 실제로 마을을 걷다보면 이 곳이 다랭이논인지 느끼기 힘든 경우가 많다. 마을에서 바다 끝까지 내려가면 남해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다랭이논의 진가를 느끼고 싶다면 마을에서 농사 체험을 해 보는 것도 좋다.
두곡월포해변
남해도의 서남쪽 남면으로 향하면 두곡월포해변이 나온다. 아쉽게도 두곡월포해변은 상주은모래해변이나 송정솔바람해변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모래는 많이 유실된 상태이며 돌이 많아 해수욕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적어 한적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점점 더 사라져가는 모래를 보면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임진성
두곡월포해변에서 여수방향으로 향하면 임진성이 나온다. 임진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군・관・민이 힘을 합쳐 지은 성이다.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해 둘레 286m의 작은 규모로 쌓은 산성으로, 동쪽과 서쪽에 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동문만 남아있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은 성이었지만, 1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이 유사시에 대피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더라도 임진성은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성 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왜 이곳에 요새를 지었는지 알 수 있다. 남해와 여수 사이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왜적의 침입을 감지하기 용이하다. 전쟁이 그친 지금 임진성은 평화로운 남해 앞바다를 조망하는 전망대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드디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끝인 여수로!
통영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펼쳐진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여정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서쪽 끝은 여수 오동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섬이 국립공원인지도 모른 채 방문하곤 한다. 방파제로 길게 이어진 오동도는 그냥 겉에서 보기엔 평범하고 작은 무인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섬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봄이 찾아와 남도를 따뜻하게 품어줄 때다. 3월 말이 되면 오동도는 온통 동백꽃으로 뒤덮여 붉은 빛을 뽐낸다. 오동도의 동백꽃을 보고 난 뒤 여수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여수 앞바다를 감상하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여수지만 직접 여수에 가서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또한 묘미다. 여수의 매력은 어떨지 궁금해하며 여수로 향하는 고속열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