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동의 옛날
효창능이 있어서 많은 사연을 간직한 동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용산 마을 탑방 안내(효창종합사회복지관)
'효창원'이란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효창능'이란 이야기는 못 들어 보셨죠? 효창원에는 지금은 여러 임정 요인들의 묘가 있어 셩역화되어 있습니다. 근처의 효창운동장은 전에는 큰 행사가 자주 열리곤 했죠.
약 1백 년 전 을축년 홍수 때는 물이 효창원 가까이까지 들어왔었다네요. 옆 동네인 용문동의 물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구요.
효창원 북쪽으로는 서울 우백호의 산줄기가 지나갑니다. 그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계속 뻗어나가 한강까지 가는데, 그 한강 근처에서 불끈 머리를 들고 있는 산이 '용산(龍山)'이라고 하는 산이죠.
지금의 효창동이란 동명은 조선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묘인 효창원(孝昌園)이 있어 유래되었습니다. 이곳은 조선 중기까지는 한성부 서부 성외 지역이었고, 한성부 서부 용산방(성외) 만리창계였습니다. 일제 때에 경기도 고양군 용산면에 속했는데, 만리창계 일부와 하마비계 일부를 통합하여 금정(錦町)이라 하였습니다. 광복 후에 용산구 효창동이 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금정. 이 이름은 처음 들어 보시죠? 일제 때는 지금의 효창동이 '금정'이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지금의 금양초교도 당시엔 금정국민학교였구요. 원효로쪽에 있던 학교는 원정국민학교였습니다. 이 원정학교는 일제 때는 일본인 자녀들만 다니던 학교였어요. 지금의 원효로가 당시에는 '원정(元町)'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학교가 남정초등학교가 되어 있지요. 해방 직후엔 금양학교와 남정학교 아이들이 서로 상대쪽 학교를 '똥통학교'라고 놀리곤 했어요.
능이 있던 효창동 골짜기로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물줄기는 금양학교쪽을 지나 용문동을 거쳐 전자상가쪽의 큰 개울인 덩굴내(만초천)로 들어갑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물줄기는 장마 때에 크게 물이 넘치곤 해서 용문동과 효창동 아래쪽 동네인 하마비 일대까지 물바다로 만들어 놓곤 했습니다. 이 냇줄기를 효창동쪽에서는 '능개천'이라 했습니다. 능(효창능)에서부터 흘러내린다는 뜻이죠. 금양초교 앞쪽으로 흐르는 이 내는 지금은 복개되어 볼 수가 없습니다.
이 능개천 아래쪽으로는 하마비(下馬碑)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효창역 근처에 세워져 있던 '하마비'라는 돌비석 때문에 나온 마을 이름이죠. 근처에 능이 있으니 말을 타고 지나는 사람은 반드시 예를 갖추어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고 해서 세운 것이 하마비입니다.
허마비 있던 근처엔 전에는 굴다리가 있었죠. 옛 경의선(당인리선) 철도 밑으로 뚫린 굴인데, 굴 양쪽으로는 장사치들이 앉아 먹을 것을 팔기도 했습니다.
효창동 근처에는 잘 알려진 고개가 몇 있습니다. 효창원의 능 근처에 옛날 능에 거둥 다니던 '거둥고개'가 있었고요, 훨씬 아래쪽으로는 용마루고개가 있었습니다. 하마비가 있던 자리인 사거리에서 마포쪽으로 넘는 고개가 용마루고개인데, 우백호 줄기의 안부(鞍部)가 됩니다. 이 고개 옆 용문동쪽에서 마포 도화동쪽으로 넘는 '새창고개'가 있는데, 이 이름은 근처에 새 창고가 있어서 ‘새창고고개’라 한 것이 변한 이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