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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오늘도 몇 가정이 감기 증세 때문에 예배를 참여하지 못한 분들이 계신데요. 요즘 코로나 시기하고 약간 느낌이 비슷한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지금도 또 몇몇 분들이 지난 중에 고생하시다가 또 이 시간 나오신 분들도 계신데 아무튼 이 기간 우리가 지혜롭게 잘 넘겨야 될 것은 코로나 때처럼 방역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이 기간을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몸에 약간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고 식사할 때는 되도록 대화를 최소화하고 식사 끝나고 난 다음에 마스크를 끼고 하시든 이렇게 편안하게 좀 대화를 하시면 좋을 것 같고 또 악수를 하는 것은 금하고 이렇게 주먹 인사 정도 수준으로 이렇게 이 기간을 우리가 잘 넘겨야 또 더 이렇게 예배드리는 일에 방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우리가 5가지의 우리 교회의 비전을 함께 선포하면서 그것들을 함께 나누며 나가려고 하는데요. 여러분들 주보 뒷면에 5대 비전을 다시 한 번 봐주시고 확인한 다음에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5대 비전에 타이틀을 읽으면 여러분들은 그 옆에 우리는 이라는 그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늘 소망교회 5대 비전
소망하는 예배 공동체 진실한 관계 공동체 균형 있는 성장 공동체 찾는이 중심 공동체 안팎의 변역 공동체
아멘 제일 위에 큰 글씨로 읽는 우리 하늘소망교회 사명 선언을 읽겠습니다. 시작
하늘 소망 교회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배우고 살아내고 전수하는 공동체입니다.
아멘 여러분들 이것들을 매번 모임마다 좀 같이 읽으면서 또 어떻게 이것들을 이루어 나갈지 이게 뭐 그냥 선언으로만 끝나면 안 되고요. 우리의 삶에 실천되어야 하니까요. 오늘은 특별히 소망하는 예배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의 예배가 더욱더 기복적인 예배가 아니라 나 중심적인 우리의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 소망을 둔 예배,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해서 정말 우리 안에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또 온전한 치유와 회복이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세기에 영향력 있는 신학자라고 불리는 칼 바르트가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세요.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오 가장 긴급한 것이오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뭐가요?
네 예배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급하고 가장 영광스럽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라고 한다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예배에 대해서 이 예배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해서 힘써야 되고요. 우리가 그냥 극장에 나가서 오늘 무슨 영화에 그리고 그 영화 들어가서 보고 관람평을 말하는 관람객이 돼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이제 좀 이따가 오늘 말씀에서도 나누겠지만 예배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예요. 예배는 보러 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 말씀을 들을 때에도 여러분이 말씀을 듣는다라고 하지만 그 말씀의 들음에 반응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예배 가운데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예배 때 그냥 와가지고 하나님 내 기도 제목을 들어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하고 말만 하고 그냥 가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어야죠. 하나님이 따뜻한 품으로 여러분들을 안아주시고 회복케 하시는 그 은혜도 누려야죠. 그래서 우리는 예배 예배만큼 더 우리에게 우선되는 것이 없고 예배만큼 나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없다라고 하는 사실을 신앙인의 고백으로 먼저 고백하며 예배를 더욱더 예배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천교도인 클락슨은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예배에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듣는 자들마다 살아난다. 그곳에서 성자께서는 병든 영혼들을 말씀으로 고치신다. 그 예배에서 성자께서 사단을 쫓아내신다. 물론 하나님께서 공적인 예배에서만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예배는 주님께서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유일하고도 정상적인 수단이다.
아멘 이 짧은 이 예배에 대한 정의 속에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우리가 누구든 주님 앞에서 진정한 예배, 참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 가운데 생명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치료되고 또 우리의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그 역사가 시작됨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의 예배 가운데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예배 가운데 특별히 우리가 요즘 육체적으로 연약한 분들이 많은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착각하면 안 돼요. 치유의 역사는 사람으로부터 나타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직접 안수 기도해줘야 아니면 치유의 은사가 있는 그 누군가가 와가지고 선포를 해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역사는 예수님의 능력이에요.
우리 매일 주 예배 끝날 때 우리가 자신의 육신의 연약한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손을 얹고 기도하는 그 기도 가운데도 하나님은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네 예배 가운데 그러한 생명이 얻어지고 또 치유가 일어나며 또 우리 안에 있는 간절한 소망의 응답이 일어나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배를 우리가 너무나도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순위로 삼아야 될 이 예배를 방해하는 마귀의 공격이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귀는 예배에 빠질 이유를 끊임없이 제공할 겁니다.
특별히 코로나 이후에 우리가 공적인 예배를 이게 예전에 예전과 비교할 때 공적인 예배에 대한 참석률이 우선순위에서 많이 뒤로 물러났다는 거를 여러분들 직접 느끼지 않으십니까?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는 아마 학교 다닐 때 초중고를 12년 출석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각하지 않고 그래서 뭐라고 그러죠? 개근상 12년 개근상 받으신 분들 혹시 계시나요? 정근상 개근상 정근상 몇 분이 계신데 예전에는 그거를 당연하게 여겼고 부모들이 개근상 받는 것에 대해서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상황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돼 그래서 학교 가서 아프면 아팠지, 학교 가서 들어누워 있다가 조퇴를 하면 조퇴를 했지 절대 학교 가는 일에 빠지는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개근상 받는 게 당연한 거라 여겼는데 요즘에는 개근상 받는 게 당연한 시대가 아닌 시대가 됐더라고요.
근데 그게 예배의 현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예배에 빠지면 죽는다라고 생각을 하고 주일날 예배드리는 일에 가장 우선순위를 삼았던 우리 성도들이 지금은 예배드리는 일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좀 뒤로 물러선 것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악한 사단은요 끊임없이 예배 빠질 이유들을 만들어낼 겁니다. 그리고 또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에 실패할 요소들을 만들어 놓을 겁니다. 때로는 이 앞에 서는 목회자와의 관계를 깨어뜨려서라도 또는 옆에 있는 내 동력자와의 관계가 불편하게 만들어서라도 예배를 방해할 거예요. 어쩌면 교회의 환경이 왜 우리 교회는 요즘 이렇게 추워 이런 거 이런 게 막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텐데 먼저는 나 개인의 예배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고 예배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고 어떠한 자세로 내가 예배를 참여하고 있는가 그리고 혹시 나의 삶의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지는 않은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좀 점검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올해에는 우리가 더 모여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흩어져서 드리는 예배, 우리의 삶의 예배 가운데 더욱더 예배에 집중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배 가운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우리 모두가 누리고 그 은혜를 마음껏 자랑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출애굽기는 크게 세 가지의 내용으로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데요.초반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출애굽하는 그 장면이 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그리고 나서 두 번째에서는 이제 신의산에서 계명을 받은 거 그리고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세 번째 장면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의 처소인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25장부터 38장까지 쭉 기록이 돼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몇 장을 읽었어요 38장을 읽었어요. 그러니까 이 성막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마지막 부분을 우리가 읽은 겁니다. 출애굽기 후반부의 성막 이야기는 가장 깊은 요 이미지는 오늘 예배 끝날 때까지 띄워주세요. 네 성막 지금 이미지를 띄워놨는데요.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이 성막을 통해서 임재함을 늘 드러내셨습니다. 이 성막이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어요. 아마 이제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들은 웬만하면 이 구조는 어느 정도 알 겁니다. 그래서 성막 문을 통해 들어가면 성막 뜰이 있고 그 성막 뜰 안에 보면 번제단 또 물두멍이 있고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성서가 있죠. 그 성서에서도 또 구분이 됩니다. 지성서와 성서로 이렇게 구분이 되죠. 이런 과정들을 이 안에서 오늘은 이거를 일일이 다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원래는 이 내용을 여러분 하나하나 다 따져보면 지금 현재 우리가 예배드리는 예배 우리의 신앙의 내용들이 이 안에 다 녹아져 있어요.
어쩌면 구약의 이 성막이 지금 이제 현재의 우리의 신앙의 예배 우리 신앙의 어떤 형태에 녹아져 있는 것이죠. 그중에서 오늘은 이 뜰에 있는 내용 번제단과 물두멍 이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은 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게 지성서이고 이제 지성소에서부터 성소 그리고 뜰로 이어지게 되죠. 이렇게 깊은 곳으로 따지면 그런데 이게 무슨 이제 의미가 있냐면 제사장의 입장으로 보면 처음에 어디를 통해서 들어가게 됩니까?
문을 통해 들어가서 뜰을 밟게 되죠. 그리고 뜰에서 성서로 그리고 성서에서 지성소로 이렇게 들어가는 이제 이 방향으로 쭉 들어가게 되는데 참된 예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지성소에서부터 이제 다시 나오는 과정에 있기까지도 참된 예배는 그대로 연결이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포인트가 될 텐데 한번 잘 들어보세요. 참된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성서로 오셨는데 예배 전에 오셨는데 이렇게 예배드리러 온 이 행위만으로 참된 예배가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이 말하는 참된 예배는 이제 이 성막에서 이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그리고 나서 그 은혜와 감격을 가지고 이제는 지성소에서 서로 성서에서 뜰로 그리고 이제 각자 자기의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모습까지 참된 예배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신약 시대에 우리 모두는 만인 대제사장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만인제사장 여러분들이 앞에 서 있는 목회자만 거룩한 대제사장이 아니에요. 제사장이 아니에요. 저도 똑같은 여러분들과 같은 성도입니다. 다만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고 또 여러분들을 목양하는 역할을 담당한 거예요.
그러니까 앞에 서 있는 목사님은 목회하는 사람이니까 거룩하고 구별되고 저 사람은 뭔가 특별해야 돼 이런 인식을 내려놓으셔야 됩니다.
물론 더 본이 되기 위해서 애써야 되겠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먼저 부름 받은 사람들로서 제사장으로 삼으셨어요. 여러분들 믿지 않는 여러분들 가족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그 가족들에게 여러분들이 제사장입니다. 여러분들 믿지 않는 여러분들 이웃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제사장이에요. 제사장으로서 우리가 먼저 해야 될 일은 뭐냐면 먼저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성소까지 가야 합니다.
근데 여러분 지성소에서 계속 살아갑니까? 아니죠. 제사를 드리고 나면 이제 나와야죠. 거기서 받은 은혜를 가지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괄적으로 지금 계속해서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 중에 먼저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이제 정말 우리가 소망하는 예배를 드리자라고 외쳤는데요. 하나님을 전심으로 우리가 예배하겠다고 선포하였는데요. 과연 나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여러분 정말 운동도요. 막 어떤 거친 운동을 하기 전에는 몸을 풀어야 돼요. 준비를 하지 않으면 다칩니다.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준비가 필요해요. 제가 토요일 날 저녁이 되면 주보를 카톡방에 올려드리고 그리고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먼저 보시고 충분히 여러분들이 예배를 준비하라는 거예요.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으로 매주 반복되니까 그냥 흘려버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찬양도 우리가 너무 익숙하고 잘하는 찬양들로만 해도 좋지만 지금 이곳에는 연령대가 다양하게 있잖아요. 그쵸?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우리 어린 청소년 청년들은 어른들이 부르는 찬양 중심으로만 찬양을 하면 아이들은 이 시간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어요.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배려할 수 있어요? 신앙적으로 더 깊이 경험한 분들 어른들이 좀 더 더 배려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금 새로운 찬양들을 주일 낮에는 좀 더 더 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미리 토요일 날 전달된 링크를 통해서 찬양들을 좀 들어보시면 내가 나는 모르는 찬양을 맨날 하시네. 이렇게 하지 마시고 미리미리 듣고 연습도 해보시고 그리고 오면 여러분 훨씬 더 그 가사 하나하나가 내 고백으로 올려드려질 줄 믿습니다. 예배 중에 은혜와 감동을 경험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예배 중에는 나 은혜받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나를 만져주셨어요라고 고백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삶의 자리에 가서는 전혀 변화가 없고 가족들에게 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쌀쌀 맞게 냉랭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섬기는 일이 전혀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그건 바른 예배를 드린 게 아니라는 거죠.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누렸다면 그 은혜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 특별히 이 물두멍 그리고 번제단 이 두 가지의 내용만으로도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한 메시지를 좀 더 더 깊이 마주할 수 있습니다. 먼저 뜰의 물두멍이라는 게 있죠. 여기 보시면 제사장을 위해 신는 장소라고 이렇게 되어 있는 물두멍입니다. 네 물두멍의 위치는 성막에 있는 부분에 있어서 이런 구조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물두멍의 모양이나 크기가 어떠 했는지는 정확하게 성막의 구조에서는 잘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있는 물두멍은 12마리의 소가 떠받치고 있는 놋바다라고 이렇게 이름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규모가 컸어요. 근데 이 성막은 지금 광야 시대에 계속 움직이면서 이걸 계속 지었다가 풀었다 지었다 풀었다가 이게 이렇게 해야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 물두멍이 아주 큰 규모는 아닐 겁니다. 이 물두멍은 씻는 물을 담아두는 곳으로서 일종의 대아라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먼저 이곳에서 씻는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예배는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거룩한 목욕탕입니다.
여러분 예배에 나와서 거룩한 목욕탕에 오신 거예요 네 그 목욕탕에 오셔서 씻김을 받는 자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찬양하죠.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그런 찬양을 하듯이 우리는 보유를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점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혈로 정결하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존재이잖아요.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영원히 정결케 됨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 주간 나의 삶에 혹 실패하고 넘어지고 더럽혀진 그러한 모습이 있다 할지라도 예배의 자리에 나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회개함으로 나아간다면 씻겨지는 은혜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 씻겨짐은 내 회개의 눈물 눈물로 씻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사실이에요. 예배의 현장은 씻겨지는 자리입니다. 물두멍의 이미지를 기억하면서 아 내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은 씻으러 가는 거예요.
그렇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예배의 현장을 사모함으로 이 자리에 나와서 정말 주님 앞에 나를 정결케 하게 되는 그런 은혜의 역사가 이 시간을 통해 일어나는 성결의 역사가 일어나는 이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이 물두멍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하나 더 발견할 것은 물두멍을 만든 재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절에 보니까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망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물두멍의 재료 재료는 패망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어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뭐 재료나 이런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어 인터넷을 뒤지기만 하면 얼마든지 재료 웬만한 건 다 만들 수 있어 인터넷을 잘 만지면 요즘에는 폭탄도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런 지금 이 과거에는 이러한 것들이 풍족하지 않을 때 아닙니까? 그런 시대에 여인들이 사용하는 녹거울의 재질은요 아주 고급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근데 그것으로 만들었어요. 근데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이 회망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 왜 이 사실을 밝히고 있을까요? 회망문에서 수정되는 여인들은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헛물,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녹거울 과 이 물두멍의 이미지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놋거울은 무엇을 위해 사용됐을까요? 그 여인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사용했던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이것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거예요. 자기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던 도구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예배에 나올 때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인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입게 되는 자리가 바로 예배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물두멍 이 한 가지로 두 가지를 정리해 봤죠. 예배는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시간이다. 목욕탕 예배를 통하여 나같이 연약한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세워지는 자리다.
이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매 예배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번제단의 이야기입니다. 번제단의 크기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죠. 규빗 규빗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나와 있는데, 규빗은 여러분들이 성경에 나오는 그런 하나의 단위라고 볼 때 약 가로 세로가 2.5m 그리고 높이가 1.5m 정도 됩니다. 이 번제단을 조각목으로 만든 후에 놋으로 감쌌고 내 모퉁이에는 뿔을 만들어서, 그리고 번제단에 바닥이 비어 있고 바닥에서 불을 피워서 재물을 태우면 그 재물이 탈 수 있도록 놋그릇으로 만든 그러한 것이 이 앞에 있는 번제단입니다. 이 번제단은 한마디로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구약 시대에 번제로 드리는 제사를 드렸던 구약과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번제가 없잖아요. 이 차이가 있는데 왜 그러면 번제가 그렇게 하나님께서 드리라고 하신 번제가 지금은 없고 지금 우리는 예배를 이러한 형태로 드리는가 이런 것도 궁금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번제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제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고기를 좋아하셔서 고기 냄새를 좋아하셔서 고기들을 태워가지고 나한테 올려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죠. 어떤 것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은 이 번제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쉽게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메시지를 그 안에 담아놓으신 거예요.
여러분 번제는요. 짐승을 제물로 잡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근데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짐승이 아니에요. 그 짐승을 들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짐승을 제물로 드리기 전에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명을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켜요. 그리고 나서 이제 이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번제의 중요한 포인트는 번제를 불러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번제를 드리는 그 사람을 태워서 하나님께 올린다는 의미가 이 번제단에 있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자신의 생명 나의 모든 것을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바로 번제다. 그것이 바로 예배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기를 원해 예배를 통해서 응답받기를 원해 치유받기를 원해요. 우리는 뭔가 예배를 통해서 받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 중에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예배의 먼저 시작은요. 우리가 올려드리는 거라는 거예요. 번제를 드리듯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광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출력기 34장 29절에 보면 모세가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신혜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가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왜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까?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영광에 그 광채가 이 모세에게 임한 거예요. 여러분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였을 때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듯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 예배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 정말 회복되고 새롭게 되어서 우리 안에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상처받고 아프고 좀 여러분들 안에 고민되고 있던 것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면 회복되어서 감사로 기쁨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 그냥 드리기 전과 드린 후에 변화가 없는 예배라면 다시금 예배를 점검하고 먼저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과 또 우리 공동체의 상황과 이 모든 것들에 여러분들이 집중하셔야 됩니다. 예배를 집중하게 못하는 요소가 만든 데 있다면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 예배의 은혜를 누릴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치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얼굴에 광채가 났듯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기쁨과 감사가 감격이 넘쳐나는 예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이 번제단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는 바로 뿔입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이 재단의 뿔을 잡으면 그에게 내려질 사형이 집행이 유예되는 법입니다. 범죄자라도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을 입게 되었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통해 우리가 누리게 되는 은혜 유익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 십자가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먼저 우리 자신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관람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시고 그의 영광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간단한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린다. 예배의 분명한 정의를 기억하길 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마치 이 성막에 이 성전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흠 없는 재물을 드리기 위해서 얼마나 그들이 조심하고 그 재물을 드리기까지 얼마나 수고하고 애썼을까요?
여러분 예배를 준비하는 여러분들의 자세가 먼저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토요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청소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교회를 청소하고 정리하는 거 너무 좋습니다. 그것과 함께 꼭 그다음 날 있을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 팀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또 예배 전에 헐레벌떡 시간 맞춰서 마라톤 달리기 하듯이 오지 마시고 좀 최소한 10분 20분 전에는 올라오셔서 옆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도 하시고 먼저 자리에 앉아서 오늘 본문의 말씀도 묵상하시고 기도로 준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게 바로 준비의 자세인 거예요. 여러분 찬양과 기도와 말씀의 선포, 성도 간의 깊은 교제,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의 모습들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하나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2025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뜰에서 나와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한번 따라 해볼까요?
우리의 예배는 이 성전에서 나가면서 시작됩니다.
네 진정한 예배는 공적인 예배 그다음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죠.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극히 거룩한 성소에서 지성소에서 성소로, 성소에서 뜰로 그리고 그 틀에서 세상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진정한 예배입니다. 공적인 예배 너무 중요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오늘부터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의 공적인 모든 예배가 주님 안에서 더욱더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제가 요즘 가요를 되게 좋아합니다. 목사가 가요를 좋아한다고요?
가요를 좋아하는데요. 성은 나씨를 좋아합니다. 뭘까요? 나가요 새벽에 저에게 나가요라는 글자가 새겨지면 힘이 납니다. 이번 한 주 새벽 예배가 우리 여기자 권사님의 유일한 지킴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여규자 권사님 안 계셨으면 저하고 저희 집사람 둘이 지켰을 뻔했어요. 이제 내일부터는 나가요가 많이 늘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물론 지금 육체적으로 연약한 분들 제가 알고 있고요. 환경적으로 춥고 미끄럽고 알고 있어요. 근데 여러분 내일부터 2박 3일 동안 이어질 우리 다음 세대들의 수련회를 그냥 회비 얼마 주고 후원 얼마 해주고 그러면 우리 역할이 끝난 겁니까? 아니요.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관심 갖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거기 가서 무슨 은혜를 누리고 와요 준비 과정이 없이는 절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리고 은혜를 받고 끝난 게 아니고 돌아와서 그들의 삶의 변화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가 그들과 함께 그 은혜를 누리지 않으면 전혀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 이후에 다시금 공적 예배에 참여해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할까요? 우리 찬양팀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우리의 예배의 은혜와 감격은 이 자리에서만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똑같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도 특별히 직장생활하는 분들은 여러분들 직장 하는 직장의 그 책상이 여러분들이 일하는 그 일터의 그 자리가 주부들은 거실과 주방이, 학생들에게는 교실과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책상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린 이유,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바로 예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든 자리가 예배의 최소가 되기를 원하고요. 참된 예배자로서 정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온전히 씻음을 받고 또 주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또 그 가운데 온전히 나를 태워드림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누림을 우리가 가지고 세상 가운데 우리 가정 가운데 나아갈 때에 우리들을 통하여 더욱더 풍성한 삶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확장되는 축복의 통로가 열릴 줄 믿습니다.
2025년 우리 하늘소망교회 더욱더 소망의 예배가 확장되어서 정말 예배드릴 때마다 풍성한 기쁨을 회복해야 하실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