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진태: 08. 드보라. 삿4:1-16
(삿 4: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삿 4: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삿 4: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삿 4: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삿 4: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삿 4: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삿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삿 4: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삿 4: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삿 4: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삿 4: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삿 4: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삿 4: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 부터 기손강으로 모은지라 (삿 4: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삿 4: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삿 4: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삿4:1-16)
성서 속의 여인들(08) - 드보라
이스라엘의 랍비들이 드리는 감사기도 가운데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땅에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라고 그들은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랍비들이 흔히 드리는 감사의 기도 내용입니다. 랍비들이 왜 이런 기도를 드리는가? 즉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관념에 이방인과 짐승들과 여자들을 함께 취급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인구 숫자를 헤아릴 때도 여자는 제외하였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여자에 대한 한국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여자가 운전을 한다"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한가지였습니다. "여자가 회사의 사장이 되고 그 여자 사장아래에 남자 중역들" 이것은 아주 남자의 위신을 깎아 내리는 것 중의 한가지였습니다. 이런 중역들에게 하는 말이 한가지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여군들 중에는 과연 별을 단 사람이 나올까?"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한국에 있던 대 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궁금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국군 창군이래 최초로 여성장군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여자가 목사가 된다" 우리 생각에는 늘 큰 가방 한 개를 어깨에 메고 목사님과 함께 이 집, 저 집을 찾아 심방 하는 나이가 좀 든 여자 전도사만 생각하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목사가 되어서 남자와 똑 같이 설교도 하고 축도도 하고 세례도 행하는 것입니다. 과연 저 젊은 여자 목사의 축도를 받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많은 교인들의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상하게 들립니까? 아직도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합니까? 그것은 왜냐하면 이것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별이 있었고 또 여자이기에 사회생활을 하는데 장애요소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대한 편견이나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불평등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운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 사사가 있는데 그 이름은 드보라입니다. 이 드보라가 "랍비돗의 아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 드보라는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여자 지도자입니다. 또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몇 안 되는 여자 지도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당시 상황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는 여자인 드보라를 사사의 자리에 세웠고 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로 세웠을까? 하는 것입니다. 랍비들의 기도에서도 보았듯이 남녀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많은 그때에 왜 하나님은 드보라를 지도자로 세웠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남자와 여자라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생각을 뛰어 넘어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만 한다면 자신이 가진 그 약점에서 그 불평등한 조건에서 뛰어 넘을 수가 있다 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드보라를 들어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벗어버리지 않고, 또 사회적인 여건이나 조건에 자신을 가두어서 지내는 그런 일로부터 극복하지 않고서는 큰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을까 봐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사 드보라를 세웠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늘 어떤 틀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너는 어려서 안 되", "너는 학벌이 없어서 안 되", "너는 어떤 지역 출신이니까? 안 되".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에 가두어져 살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의 재벌 그룹 회사 가운데 전문 경영인들을 세워서 경영하는데 사장들 중에는 전무에서 사장으로 곧바로 영전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들의 나이가 보통 45-50세 정도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30대 사장도 있는 것 알지 않습니까?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젊은 전문 경영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를 초빙하는데도 이제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만 초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초등학교만 나와도 누구든지 대학 교수로 초빙되는 것을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가운데 오프라 윈프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유명한 방송인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입을 하였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 넘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고 합니다. 미국이 상당히 개방적인 나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적응하기가 어려운 나라인 것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호주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주류 사회로 이민자들이 진출하는 것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에 갇혀서 살면 결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였는데 그것은 여성이 방송에서 인기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의 한계는 그 자신이 바로 흑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흑인이 미국에서 주류 사회로 들어가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런 조건을 뛰어 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벗어야 합니다. 오래 된 전통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나로 하여금 옴짝달싹 할 수가 없도록 얽어 매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드보라는 왜 지도자가 되면 안됩니까? 그것은 드보라가 여자이기 때문입니까?. 사실 이스라엘의 환경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서는 결코 여자가 지도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서는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20년 동안 가나안 왕 야빈의 박해 속에 있던 이스라엘을 어려움에서 구원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는 이런 드보라의 활약을 발견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에훗이라는 사사가 죽고 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에훗은 이스라엘의 2대 사사입니다.
1대 사사는 웃니엘이죠? 수15장에 갈렙의 딸 악사를 아내로 맞이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에훗을 왼손잡이라고 기록하는데 왼손잡이라는 말의 뜻에는 "장애인"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에훗이 만약에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왼손잡이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귀하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에훗이 죽고 3번째로 사사가 된 사람은 삼갈인데 그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을 600명을 죽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3줄을 말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에 기록될 나의 평가가 어떻게 될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삿4:1절에서는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고하시기 위해서 가나안 왕 야빈에게 파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씀에 불순종하니 하나님께서 이들은 가나안 왕 야빈이라는의 통제하에 넣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야빈이라는 왕이 철 병거가 900승이 있어 20년 동안 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히 학대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는데 그때 사사로 드보라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드보라라는 이름의 뜻은 "꿀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드보라가 이전에부터 뛰어난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성경은 "랍비돗"의 아내라고만 기록을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드보라가 한 사람의 아내로서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는 그런 보통사람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평범한 사람도 하나님의 역사에 사로잡히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리니까? 단번에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드보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사가 되고 난 뒤에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와 벧엘 사이에 있는 종려나무 아래서 많은 재판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후에 사람들이 이곳을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드보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장관 바락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진을 치면서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끌어내어 전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바락이 말하기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가고 당신이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왜! 바락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하였을까? 선지자가 전쟁에 가서 승리할 것이다 라고 하면 전쟁에서 승리하였는데 왜! 그가 같이 가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학자들은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합니다.
첫째: 바락이 드보라의 예언을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니 여자인 당신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계시 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좀 꺼림찍하니 같이 가자 라는 것입니다.
둘째: 바락은 전쟁하는 것이 두려워 선지자인 드보라를 동행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바락이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만한 그릇이 못되니 즉 자신이 부족하니 선지자께서 함께 동행하여 주시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어느 것이 알맞겠습니까? 많은 성경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는 세번째 "바락이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만큼 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니 선지자인 당신이 동행하여 주십시오" 라는 것입니다. 바락은 자신에게 전쟁에 나가서 씨우라고 말하는 드보라가 여자이기 때문에도 아니요, 전쟁하는 것이 두려워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큼 준비된 그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지자께서 함께 동행하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에 드보라는 순순히 함께 동행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서는 이 전쟁은 반드시 이길 것인데 그 결과에 대한 영광은 네가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을 가만히 살펴보면 드보라가 바락이라는 군대장관에게 용기를 주고 확신을 주었지만 그 바락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다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셔야 하실 지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히 11: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곧 확신입니다. 신뢰입니다.
철강 왕이라고 불리는 카네기라는 사람은 "확신이 있는 사람은 확신이 없는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두 배 이상 높다"라는 말을 하였답니다. 부도 직전의 쓰러져 가던 회사인 크라이슬러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킨 아이아코카라는 사람은 "삶의 승패는 환경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고 하였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확신과 신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분명한 신뢰를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감사하면서 살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면 됩니다. "나는 안 돼, 나는 안 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확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귀중한 확신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었지만 바락은 오히려 "함께 올라가자" 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드보라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가 이끄는 900승의 철 병거 부대를 완전히 무찌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드보라의 사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첫째: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선택하여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아주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인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이끌림을 받게 되니까? 놀랍게 쓰임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자신을 비어서 드릴 수가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의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하여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아모스라는 선지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아모스는 베들레헴 남쪽에 있는 드고아라는 동네에서 짐승을 기르고 뽕나무를 재배하는 목자였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되기 위해서 선지학교를 다닌 것도 선지자로부터 특별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부르셔서 북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사마리아와 벧엘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면서 믿음의 정의를 되찾자 라고 선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니까? 놀랍게 쓰임을 받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어떤 조건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가진 이 조건을 보시지 않고 우리를 들어 사용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드보라 처럼 겸손히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둘째: 함께 하는 믿음이 승리함을 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는 한 개인의 승리가 아닙니다. 드보라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드보라가 바락이라는 장관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니 너는 가서 싸워라고 하였을 때 그가 나가서 싸웠고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가 도망을 하였을 때 야엘이라는 여인이 그 시스라를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한 사람보다는 순종하고 희생할 많은 사람을 원하시는 것 입니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이라는 동역자를 주셨기에 모세의 40년 사역이 아름답게 마무리 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 아니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부부가 잇었고, 감옥도 함께 갈 정도로 헌신된 실라와 누가와 같은 이들이 있었고, 멀리까지 바울의 편지를 전하러 다닌 두기고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바울의 사역이 더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함께 하는 동역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스타 플이어 보다는 열심히 하나님을 위하여 뛸 많은 사람을 원하고 게십니다.
히딩크라는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고종수 선수를 무척 사랑하고 아꼈는데 그가 월드컵 대표로 나가지 못한 것은 스타 플레이어라는 것입니다. 단독 드리볼이 너무 많고 옆 사람에게 패스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깝지만 그를 탈락시켰다고 하지 않습니까?
운동도 팀 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손으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야엘이라는 여인은 무명의 여인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시스라를 죽여서 바락에게 전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섬김의 결과 그는 5:24절에서 드보라의 노래에서 복 있는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오늘 드보라라는 여인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평범한 한 사람의 아내였고 가정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고 어려운 나라 형편에서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함께 하는 믿음의 동역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 뛰어난 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어 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섬김의 자세가 있고 봉사의 자세가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를 감동시켜서 우리를 영적인 전투의 자리에 서게 하시고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귀한 동역자로 삼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귀한 사역에 아름답게 쓰임 받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은혜로운 찬양 목록
http://m.cafe.daum.net/ssj0643/cR42/93?svc=cafeapp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