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24년 파리올림픽 400m 세계신기록 '에릭 리들'의 주일성수.
1924년 파리올림픽 때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에릭 리들(Eric Liddell, 1902-1945)은 100미터 경주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조국 영국은 리들에게 열렬하게 우승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리들은 경기 일정이 주일에 잡혀 있다는 이유로 경기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고국의 팬들과 언론들은 리들에게 비난과 비방을 쏟아부었습니다.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등등 비난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리들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주일이 되자 경기장 대신 교회에 갔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평소처럼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400m에 출전하기로 한 선수가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영국의 올림픽위원회에서 리들을 대타로 출전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리들의 주 종목은 100m이지만 어쩔 수 없이 리들을 400m에 출전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리들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님에도 4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는 금메달을 딴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00m는 내 힘으로 뛰었지만, 나머지 300m는 하나님의 힘으로 뛰었습니다.”
그는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일주일 후 그는 에딘버러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식 축하식장에서 졸업 후의 소감을 묻자 그는 다시 한 번 영국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중국으로 가서 생애의 남은 부분을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바치고자 합니다.” 당시 중국은 아편전쟁과 의화단 사건으로 가장 혼란스러울 때였습니다. 치안도 불안했습니다. 그런데도 리들은 하나님과 헌신의 약속을 하고, 조국에서 주어질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중국으로 선교하러 갔습니다.
중국에 온 그는 12년간 텐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고, 그 후 7년 동안 산둥 반도의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전도를 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얼마 전에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는 포로수용소 안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열정적인 복음전도로 인해 포로수용소는 마치 거대한 예배당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리들은 영양실조와 과로, 뇌종양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기 몇 달 전인 1945년 2월 21일 리들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때 리들의 나이는 불과 43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나중에 대학 교수가 된 랭던 칼키는 에릭 리들에 대해서 이런 증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에서 성자를 만나볼 행운을 갖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행운이 슬며시 다가왔습니다. 그 성자의 이름은 에릭 리들입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불의 전차』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고, 나중에 같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안효관: 곤고할 때 더욱. 대하28: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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