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빅토르 위고(Victor M. Hugo, 1802-1885) |
국가 |
프랑스 |
분야 |
시 |
해설자 |
윤세홍(국립창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
빅토르 위고는 청장년 시절, 거의 매일 아침 100행에 달하는 정교한 운문시를 써 내려갔을 정도로 필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평생에 걸쳐 그가 집필한 총 스무 권의 크고 작은 시집 중, 옮긴이는 이 책의 분량을 감안하여, 그의 두 번째 시집인 ≪동방시집≫(1829)으로부터 생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 시집인 ≪정신의 네 바람≫(1881)에 이르기까지 열 권의 시집과 사후 유고집으로 나온 ≪모든 리라≫와 ≪마지막 꽃다발≫의 두 권을 택해 총 50편의 작품을 선별, 수록했다.
위고의 나이 27세 때 간행된 ≪동방시집≫은 빅토르 위고가 낭만주의 시인의 면모를 드러낸 첫 작품으로서, 그 이전까지의 고전적인 형식과 가톨릭ㆍ왕정주의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뚜렷한 개성으로 이국 취향을 담아낸 작품이다. 위고는 여기에서 터키인에 맞서 봉기한 그리스인의 애국적 영웅주의를 드높이 찬양하면서, 화려한 색깔과 강렬한 빛으로 지중해나 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 지방의 의복, 경치 등을 그려내고 있다.
얼마 뒤 위고는 ≪가을 나뭇잎≫(1831), ≪황혼의 노래≫(1835), ≪내면의 목소리≫(1837), ≪빛과 그림자≫(1840)와 같은 일련의 우수에 찬 서정시집들을 발표한다. ≪가을 나뭇잎≫을 쓰면서, 위고는 20대 청춘의 쇠락에서 생겨난 우울, 부인과의 불화로 인해 깊어진 불안, 문학 투쟁의 격렬함에서 빚어진 피로를 한탄하면서도, 아이들이 선사하는 가정생활의 소박한 행복 등을 노래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자 애썼다. ≪황혼의 노래≫는, 혁명의 암운이 채 가시지 않은 입헌군주 체제하의 불안한 정정(政情)의 내일에 대한 위고의 고민과 함께,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 가까워지면서 피어난 새로운 사랑과 그로 인한 위고의 번민을 토로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서, 위고는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쥘리에트 드루에에 대한 사랑을 몽상에 잠긴 듯 읊조리면서, 한편으로는 좀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내면을 응시하는 시인이 되는데, 중상모략당하고 오해받는 고상한 스스로의 모습을 ‘올랭피오(Olympio)’라는 상징적인 인물에 투영한다. ≪빛과 그림자≫는 앞서 집필한 내밀한 서정시 연작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류의 빛이 되어야 할 시인의 직분에 대한 한층 깊어진 철학적 명상과 함께, 가엾은 사람들의 삶을 향한 연민을 통해 개인의 불행을 딛고 일어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1850년대는 빅토르 위고가 오랜 망명 생활에 들어가면서 ≪징벌시집≫(1853), ≪정관시집≫(1856), ≪제 세기의 전설≫(1859)과 같은 세 권의 대작을 집필한 시기다. 1851년 12월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전복시키고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 3세를, 위고는 ≪징벌시집≫을 통해 거침없는 웅변과 독설로 단죄한다. 이 시집은 제2제정 권력의 철저한 감시와 출판 금지 등 숱한 어려움을 뚫고 은밀하게 반입되어 파리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프랑스인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내일’에 대한 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정관시집≫은 1839년에서 1855년까지 17년에 걸쳐 쓴 시들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위고의 표현대로 “한 영혼의 회상록”이다. 이 시집은, 맏딸 레오폴딘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1843년 9월 4일을 경계로 ‘옛날’과 ‘오늘날’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그가 걸어온 영혼의 역정을 투사하고 있다. 작품의 산실이 된, 망명지 노르망디의 광막한 바다에 둘러싸여, 갈수록 인생과 우주의 불가사의에 크게 동요하던 위고는, 1853년 우연히 체험하게 된 강신술(降神術)을 통해 죽음 저 너머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철학적 성찰의 해답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정관시집≫을 완성할 무렵, 위고는 영혼의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 우주 만물은 선행과 사랑의 미덕을 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설파하는 신의 메신저가 되기에 이른다. ≪제 세기의 전설≫은 특히 중세에서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위대한 시기들을 배경으로 영웅담과 함께 시대별 영혼들을 거대 상상력으로 그려낸 서사시집으로, 위고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류 진보의 행적과 영속성을 확인하고 있다.
60대에 접어든 위고는 앞서 본 ≪정관시집≫이나 ≪제 세기의 전설≫에서처럼 방대한 스케일의 집필이 안겨준 피로에서 벗어나려는 듯, ≪길과 숲의 노래≫(1865)라는 경쾌한 작품을 발표한다. 대중성이 돋보이는 이 시집은 제목처럼 자연과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데, 조형적인 미를 추구했던 고답파(高踏派) 시처럼 정밀한 세부 묘사를 선보이면서 원숙한 표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뒤 위고는 ≪할아버지 되는 법≫(1877)을 간행하는데, 아내의 죽음에 이은 두 아들의 죽음으로, 어린 손자와 손녀를 유일한 가족으로 돌보게 된 쓸쓸한 노년에 발견한 뜻밖의 행복을 감미로운 노래로 표현했다. 문학비평가들은 이구동성으로 75세에 달한 위고의 이 아름다운 영감의 혁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79세의 위고는 생전의 마지막 시집이 될 ≪정신의 네 바람≫(1881)을 남긴다. 이 시집은 풍자시, 극시, 서정시, 서사시의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만년에 이른 시인 위고의 지평을 이루고 있는 네 가지 장르의 시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특히 서정시 편에서는 그가 표현했듯이 “슬프면서도 멋진, 쇠약해진 늙은 시인”의 눈으로 자연과 인생을 마지막으로 관조하면서, 영생을 얻게 될 그의 시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