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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연의 本草衍义
출처:바이두백과 소스:이페어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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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연의》, 본명 《본초연의》초광의(草廣義)는 북송구 종석찬(宗石 撰)으로 서기 1116년(송정화 원년)에 간행되었다.약론의 본초로서 모두 20이다권1부터 권3까지를 서례로 하여 본초 기원, 오미 오기, 섭양의 방법, 병을 치료하는 팔요, 약물 투여량, 제법, 주토의법, 저약용 약의 사용법, 그리고 단미약 운용의 몇 가지 전형적인 의안 등을 논술하였다.권4부터 권20까지 502개 약물의 각론(『가우본초』 467종과 부록 35종)은 관련 문헌 및 코씨 자신의 약 변별, 투약 경험을 참고하여 한층 더 판별하고 토론한다.각종 약물의 명목, 산지, 형색, 성상, 채취, 진위감별, 포제, 제제, 약성, 기능, 주치의, 금기 등 투약 방법과 투약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병리해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전인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책 제목 본초연의《본초광의》 작자 구종석 성서연대 북송은 분류 중의전적에 귀속되었다.
카테고리
1 책배경
2유전판
3. 교주, 정리
4 작성자 소개
5 서평, 머리말
6 내용 소개
7 영향평가
책의 배경.
《본초연의》는 코씨적다이다.연간 경험과 관찰은 《가우본초》, 《본초도경》의 미완의 의를 널리 알리고, 이를 진일화하기 위한 것이다.행보의 변정과 규명을 저술하다.
판본이 전해지다.
《본초연의》가 책으로 쓰여진 후, 우북송선화 연간 간행, 선화간본은 현재 알려진 이 책의 최초 간행본이다.남송순희 11년(1184)이 책은 《경사증류대관본초(經史證類大觀本草)》의 후속으로 산실되었다.남송경원 원년(1195) 강남서로 환적사(轉運司) 구간이 밝은 등 대관본초(大觀本草)를 중수판(再修版)으로 간행하면서 이를 부각한 것으로, 이 판본은 현존하는 최초의 판본이다.
본초정의 단행본으로,대관본초(大觀本草)에 새기지 않고 단독으로 간행된 판본으로, 원간본(元刊本), 청광서(淸光書)가 3년 만에 돌아와 안륙심원영남(安陸心源永南)으로 들어왔다.송마사 각본과 이와 같은 계통의 《십만권루총서》본, 《중국의학대성》본과 《총서집성초편》본이 있다.
이 밖에도 《본초연의》가 또 하나 있다.종합본은 곧 《본초연의》의 내용을 《증류본초》에 조목조목 흩어지게 할 것이다.그중 금대 장혜회명헌간본·명성화 4년 산동 원걸간본(原本本)이 《정화본초(政和本草)》와 합본(合作)된 책이다.명정통(明正統) '도장(道藏)'본서는 '대관본초(大觀本草)'와 함께 엮은 책이다.명만력 5년상의당 간행본, 명만력 28년, 30년적 산서원 두 차례 중간본은 《정화본초(政和本草)》《대관본초(大觀本草)》 두 책의 합본이다.
합간본은 《본초연의》 이전이다.기의 전본 형식은 주로 대관본초(大觀本草) 뒤에 붙어서 독립하였으나, 정작 단행본은 아니었다.주로 2년 금나라 주 정 하 우 씨, 숭 있는 큰 간행본 간행본까지 일본 서원, 문 자는 원량 분세이 6년 댄원 그림자파 자손 ( 1823 ) 해다., 남송 판본선통 2년 청나라 때 우창을 치료할 코카 ( 1910 )관 학교 등이다. 각본이다코씨 교본이 최고다.
《본초연의》는 북송에서 나왔다.선화원년(宣和元年)이 초간된 후 송(宋)·김(金) 양조 모두에서 간행되었으며, 현존하는 남송경원(南宋慶元) 원년(元年)의 간행본남송 때 이 책을 《》에 실었다.대관본초(大觀本草)가 합조되었고, 지금(至金), 장존혜(張存惠)가 이 책의 내용을 《정화본초(政和本草)》에 조목조목 산재한 후, 주로 《정화본초(政和本草)》가 전해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특히 청나라 말기 육심원(陸心源) 중간본(重刊)과 커우시(可見) 때의 교각본(校刻本)이 등장하면서 단행본으로 전해졌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가씨교각본(可氏校 刻本)이 가장 뛰어난 정교정본(正敎正本)이다.
교주, 정리
청말코가 만났을 때 양지오에 의해 숨겨졌다.저본원으로 이 잡지는 일본이 얻은 영 경북·송을, 원금은 학교·인삼, 명·청·육권의 성화 때문. 마음을 새기본등정교에서는 127개의 교기가 나오는데, 이 중 목록교기는 12개, 본문교기는 115개다.커 씨의 교정을 거쳐 본초연의가 비로소 본초학의 가작으로 널리 알려졌고, 학각본도 본초연의의 최고 판본 중 하나가 되었다.
저자 소개
구종석, 이적 미상, 약생.12세기에 살면서 북송정화 연간은 '승직랑리주사호조사(承直郞州州司戶曹司)'로 환남북으로부터 10여 년 동안 유의하였다.의약, 《본초연의》라는 책을 쓰다.
서평·서언.
차례
《본초연의》 20권, 송통직랑첨차는 약재를 매수한 검사 약재인 구종찬을 채웠다.조조공무 '독서지', 진직재 '서록해제' 모두우록.정화 6년, 형호북로상평등사유아부신투상서성태의학박사이강상신(李江 。)을제대하고,지전일관첨차(地轉一官 。次)로약재를매수하여약재를판별하였다.선화 원년에는 조카인 선교랑과 해주해현 승구요각판인행이 있었다.종리에는 아무런 고시가 없다. 자부 및 권육석조, 국화수조, 권십삼상 기생조로 미루어 항주, 영요, 순안군 등을 거쳐 승직랑주 사호진서(司戶進書)로 벼슬을 옮긴 것을 알 수 있다.「신농본초(神農本草)」의 명칭은 양(梁)《칠록(七錄)」에서 시작되었는데, 도은거(道恩居)는 삼백육십오종(三三白五種)으로 《명의별록(名醫別錄)」이 추가되었다.
당현경중, 소공 등 참고하도록 명하다.득실이 114개나 늘어난 것은 《당본초》 때문이다.송태조는 유한 등 이의가 시용에 유효한 자에게 130명을 증식하도록 명령하였다.세 가지, '개보중정본초(開寶重定本草인종이 우석 등을 장악하도록 명하고, 여기에 백 종류를 교정하는 것은 《가나라에 본초를 보충 주입하기 위해서》이다.촉인당신미박채군서는 《경사증류본초(經史證類本草)》를 위해 6백여 종의 책을 증집하였다.휘종은 또 《정화중수경사증류비본초(政和重修經史證類)》를 위해 조효충지(趙孝忠之)에 정지를 간행하도록 명했다.종은 우석이 지은 것으로써 조신하게 한 것은 부차적인 것이 있고, 여러 집에 시험하였기 때문에 삼을 눈으로 확인하여 오류를 바로잡은 것을 이 책으로 삼았다.무릇 이름이 사용되지 않아 의미가 끝난 사람은 편입하지 않는다.
그가 판별한 증거는, 동쪽 벽토에서 태를 얻은 것과 같다.양소화장은 겨울의 잿빛에서 겨울의 날씨를 얻어 태운 지 오래되었는데, 국화꽃으로 물맛이 고소한 것이 아니라, 두더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돌 속의 황자가 누런 물이라는 것은 모두 사실이고, 증명을 소통시킬 수 있다는 것은 <본초>의 공신이자 의림지진배다.송시에는 《증류본초(證類本草)》와 별본(別本)을 단행하였는데, 김인 장존혜가 《증류본초(證類本草)》에 채집한 것으로부터 인해서 단행본은 미미하고, 여소는 남송마사본(南宋馬沙本)으로 완비하여 그 전래의 폭을 넓혔다.
광서는 삼 년의 세 살에 강건히 자라고 있다.중동의 달 귀안육심원찬
내용 소개.
앞 3권이 서례이다.) 의약 이론을 설명하고, 병을 치료하는 팔요(허실냉열과 정의 내외)를 제시하고, 전통의 "사기"를 고친다.온량)은 '사성(四性)'으로, 한방 진료 및 섭양·제제 등 새로운 것이 많다.뒤의 17권은 각론으로 지부와 약물의 편성 순서가 가우본초와 같으며, 다만 '유명미용(有名未用)' 약물은 수록하지 않는다.모두 470종의 약을 싣다.'가우본초'의 '의미 다했다'는 저자의 뜻을 표현할 수 없는 자는 입력하지 않는다.이 책은 약에 대해 필기하는 것과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각 약의 내용은 주로 보구본초미비언이다.그러나 책 전체로는 약물 산지·형태·채취·감별·포제·제제·성미·효능·주치의·금기 등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특히 약물 감별과 약리 검토로 물의를 빚고 있다.또 저자는 복석폐습에 극력 반대하며 약물 실태 조사와 실험에 매달리는 소견을 갖고 있다.코씨는 의사가 처방을 임증하는 것은 모두 약리약성을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여, 각 집의 말을 참고하여,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약물에 대하여 한다.진일보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약은 나이의 노소, 체질의 강약, 질병의 신구 등과 함께 사용량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그는 약물의 우열 진위를 가려내는데늘 조사와 실험의 방법을 써서 낡은 것을 증명하다옳고 그름을 말하는데, 마치 자신이 한 말과 같다.황새 둥지 보고 가마우지 보고산비둘기를 기르는 것. 뿌리자신의 풍부한 경험에 의하면문헌 자료의 지적은 "항상"이다.산, 닭 뼈다귀.임증천과 현대연구밝혀낸 바로는, 작은 지엽적인 일은 늘 그렇다는 것이다.산, 즉 닭 뼈인 상산의 약효가 확실히 가장 강하다."피터스는 아들의 맛에 달콤함, 쌉쌀함 등 그 모양이 같다.고생한 만큼 좋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그는 또 선인의 약물 성미를 지적했다기록상의 일부분을 유용하게 쓰다오류: 예를 들어, "차 앞에서 도은거운: 주님은 어렸을 때 적나라하게 나오셨고, 어떤 사람이 음식을 만드셨고, 소변을 참지 못해 거의 실수하신 것 같다.그는 "반여름에 사람이 가래 제거만 할 줄 알 뿐이지 말이 없고, 고난을 가릴 줄 안다.비악은 습하다, 젖으면 습하다, 졸리면 물을 만들 수 없다.본초경은 천문동구복 경구복으로 장년하였다고 하며, 구씨는 폐열을 다스리는 일은 많고, 그 맛은 고생스럽다고 지적하였다.하지만 설사만 하는 게 아니라 추위에 떨며 금기시하는데…"라고 피망 줄기에 '초목은 물도 잘 흐리고 고름도 잘 잡는다'고 말했다.이것들은 모두 실제에 부합되는 것이다.
영향평가
이 책은 인쇄된 당시와 나중에 맞는 것이다본초를 연구하는 의사는 매우 큰 영향을 끼쳤으나, 후에 장존혜는 이 책의 내용을 따라 정치 및 신수증류 준비본초에 산입하였다.주단계는 본서로 미루어 《본초연의보유(本草 衍義補遺)》라는 책을 지었다.
이시진은 이 책에 대해 "삼(三)이다.사실 관계를 따져보고, 사실을 확인하고, 변명하고, 발명을 많이 했다."일본 방문은 양수경 청인에 등장하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성미설을 뒤집고 냄새설을 세우다.동원, 단계의 무리들이 믿었던 본초지학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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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草衍义
本词条由国家中医药管理局中医药名词术语成果转化与规范推广项目 提供内容 。
《本草衍义》,原名《本草广义》,北宋寇宗奭撰,刊于公元1116年(宋政和元年)。为药论性本草,共20卷。卷一至卷三为序例,论述本草起源、五味五气、摄养之道、治病八要、药物剂量、炮炙诸法、州土所宜、蓄药用药之法,以及单味药运用的若干典型医案等。卷四至卷二十为502种药物的各论(《嘉佑本草》467种和附录35种),参考有关文献及寇氏自己的辨药、用药经验,作进一步辨析与讨论。其内容涉及各种药物的名义、产地、形色、性状、采收、真伪鉴别、炮制、制剂、药性、功能、主治、禁忌等以及用药方法等方面,并结合具体病例阐明作者本人的观点,纠正前人的一些错误。
书 名《本草衍义》《本草广义》 作 者寇宗奭 成书年代北宋 归属类别中医典籍
目录
1 成书背景
2 流传版本
3 校注、整理
4 作者简介
5 书评、序言
6 内容简介
7 影响评价
成书背景
《本草衍义》是寇氏积多年经验与实际观察,旨在推衍《嘉祐本草》、《本草图经》的未尽之义,并对其进行进一步的辨正和阐发而撰。
流传版本
《本草衍义》成书后,于北宋宣和年间刊行,宣和刊本是目前已知该书的最早刊本。南宋淳熙十一年(1184),江南西路转运司刊行该书,附于《经史证类大观本草》之后,亦佚。南宋庆元元年(1195)江南西路转运司段杲等重新修版刊行《大观本草》时又将此书附刻于后,该版本是现存的最早版本。
《本草正义》的单行本,即不附刻于《大观本草》之后而单独刊行的版本有:元刊本、清光绪三年归安陆心源影南宋麻沙刻本,以及与此同一系统的《十万卷楼丛书》本、《中国医学大成》本和《丛书集成初编》本。
此外《本草衍义》还有一种合编本,即将《本草衍义》的内容逐条散入《证类本草》中。其中金代张存惠晦明轩刊本、明成化四年山东原杰刊本为本书与《政和本草》合编。明正统《道藏》本是本书与《大观本草》合编。明万历五年尚义堂刊本、明万历二十八年、三十年籍山书院两次重刊本是本书与《政和本草》《大观本草》两书的合编本。
合刊本是《本草衍义》早期的传本形式,主要是附于《大观本草》之后,相对独立,但并非真正的单行本。主要有金代贞祐二年嵩州夏氏刊本、元代大德宗文书院刊本、日本文政六年(1823)丹波元胤影南宋庆元刊本、清宣统二年(1910)柯逢时武昌医馆校刻本等。以柯氏校本为最佳。
《本草衍义》一书自北宋宣和元年首刊后,在宋、金两朝都有刊行,现存南宋庆元元年刊本。南宋时就将此书与《大观本草》合编,至金,张存惠将此书内容逐条散入《政和本草》中后,此书主要随《政和本草》的流传而流传于世。至清末始有陆心源重刊本与柯逢时的校刻本出现,使该书得以单行流传,而其中以柯氏校刻本尤为上乘,是不可多得的精校精刻本。
校注、整理
清末柯逢时以杨惺吾所藏元刊本为底本,以杨氏在日本所获宋·庆元本为校本,并参以明·成化本,清·陆心源刻本等精校,共出校记127条,其中目录校记12条,正文校记115条。经过柯氏的校勘,《本草衍义》才真正成为一部本草学佳作而广泛流传,柯氏校刻本也成为《本草衍义》的最佳版本之一。
作者简介
寇宗奭,里籍不详,约生活于12世纪中,北宋政和年间为“承直郎澧州司户曹司”,从宦南北十余年,且留意于医药,撰《本草衍义》一书。
书评、序言
序
《本草衍义》二十卷,宋通直郎添差充收买药材所辨验药材寇宗 撰。晁公武《读书志》、陈直斋《书录解题》皆着于录。政和六年,提举荆湖北路常平等事刘亚夫申投尚书省太医学博士李康看详状申,有旨转一官添差充收买药材所辨验药材。宣和元年,其侄宣教郎和解州解县丞寇约镂板印行。宗 里贯无考。以扎付及卷六 石条、菊花水条、卷十三桑寄生条推之,知其曾官杭州、永耀、顺安军等处,由承直郎澧州司户进书转一官而已。《神农本草》之名,始见于梁《七录》,凡三百六十五种,陶隐居又增三百六十五种,是为《名医别录》。
唐显庆中,命苏恭等参考得失,增一百一十四种,是为《唐本草》。宋太祖命刘翰等以医家尝用有效者增一百三十三种,是为《开宝重定本草》。仁宗命掌禹锡等,再加校正增一百种,是为《嘉 补注本草》。蜀人唐慎微博采群书,增六百余种,是为《经史证类本草》。徽宗又命曹孝忠刊正之,是为《政和重修经史证类备用本草》。宗 以禹锡所修、慎微所续尚有差失,因考诸家,参以目验,拾遗纠谬,着为此书。凡名未用而意义已尽者,皆不编入。
其所辨证,如东壁土取太阳少火之壮,冬灰取冬令烧灼之久,水味不因菊花而香,鼹鼠不能遗溺生子,玉泉为玉浆之讹,石中黄子为黄水之讹,皆能实事求是,疏通证明,洵乎《本草》之功臣,医林之津筏也。宋时与《证类本草》别本单行,自金人张存惠采附《证类本草》之中,明人因之,而单行本遂微,余所藏为南宋麻沙本,完善无缺,因重梓以广其传。
光绪三年岁在强圉赤奋若仲冬之月归安陆心源撰
内容简介
前3卷为序例(相当于总论),阐述医药理论,提出治病八要(虚实冷热邪正内外),并改传统的“四气”(寒热温凉)为“四性”,于中医诊治及摄养、制剂等均多新见。后17卷为各论,分部及药物编排次序均同《嘉祐本草》,惟不录“有名未用”类药物。共载药470种。凡《嘉祐本草》“意义已尽”,作者无可发挥者,则不录入。此书论药采用类似笔记的形式,各药内容主要是补旧本草未备之言。然就全书而言,讨论范围甚广,涉及药物产地、形态、采收、鉴别、炮制、制剂、性味、功效、主治、禁忌等,尤以药物鉴别及药理探讨引人注目,多纠前人之非。另作者极力反对服石陋习,注重药物实际调查和实验,每多新见。寇氏认为医生临证处方,全凭了解药理药性,所以他依据个人经验,参考各家之说,对一般常用药物作了进一步阐述。他强调用药应结合年龄的老少、体质的强弱、疾病的新久等斟酌用量。他对于辨别药物的优劣真伪,常用调查和实验的方法来证实旧说之是非,如亲自检视鹳巢,观察鸬鹚,饲养斑鸠等。根据自己的丰富经验和文献资料指出“常山,鸡骨者佳”。临证实践和现代研究证明,小枝黄常山,即鸡骨常山的药效确为最强。再如,“葶苈用子,子之味有甜、苦两等,其形则一也。经既言味辛苦,即甜者不复更入药也”。他还指出前人对药物性味功用记载上的一些谬误,如说:“车前,陶隐居云:主小便赤下气,有人作菜食,小便不禁,几为所误”。他还补充了对药物功用和性味的认识,如说:“半夏,今人惟知去痰,不言益脾,盖能分水故也。脾恶湿,湿则濡而困,困则不能制水,经曰湿甚则泻”。本草经说,天门冬久服轻身延年,而寇氏指出:“治肺热之功为多,其味苦,但专泻而不专收,寒多人禁服……”在蜀椒条中说:“椒目能行水,又能治蛊”。这些都是切合实际的。
影响评价
此书刊印的当时及后来对研究本草的医家有很大影响,后张存惠将本书内容,随文散入政和新修证类备用本草中,朱丹溪以本书推衍补充,著成《本草衍义补遗》一书。
李时珍评价此书说:“参考事实,核其情理;爰引辨证,发明良多。”清人杨守敬在《日本访书志》中评价说:“盖翻性味之说,而立气味之论。东垣、丹溪之徒,多尊信之,本草之学,自此一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