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인천상륙작전기념관
2022.7.11
맥아더장군나무
1945년 미국 농무성은 ㅁ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군의 기상을 닮은
스트로브잣나무 중 위스콘신주에 있는 높이 43미터, 직경 1.64 미터, 수령 5백년의 크고 빼어난 나무를
'맥아더장군나무'로 지정하였다, 우리나라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는 1989년, 맥아더 장군 후원회로부터
이 나무의 종자를 기증받아 14년간 키운 후 6.25당시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전세를 역전시켜
구국의 계기가 되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자유의 소중함을 널리 일깨우기 위해
2003년 9월 15일, 제53주년 인천상륙작전기념일에 이 자리에 심게 되었다.
상륙작전 당시 쓰였던 무기와 장갑차들
육지 상륙 모습 재현
자유수호의 탑
기념관 바로 뒤의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우현 고유섭 선생 동상
제물포해전 러시아함 포탄
1904년 2월, 일본과 러시아 군함이 인천 앞바다 팔미도 해상에서 충돌한 제물포해전이 발발하였다.
기습공격을 받은 러시아의 순양함 바리야크호, 전투함 크레이츠호 등은 자폭했지만 후에 인양되었고
이 포탄은 그 때 수거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는 제물포해전으로 시작된 러일전쟁의 승리를 인천부민에게
선전하고자 이 포탄을 인천부청사에 전시하였다. 이후 일본인 학교인 인천공립신상소학교(현 신흥초교)
교정으로 옮겨 전시하였다. 가운데 포탄은 높이가 약 1 미터이고 양 옆의 포탄은 높이가 0.5 미터이다.
후에 폭 1.2 미터 길이 0;6 미터의 좌대석을 만들어 학교 앞에 전시하였다.
청동기시대 학익동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무덤양식인 이 고인돌은, 1998년 인천지방법원 신축공사 과정에서
옛 인천구치소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원래는 문학산 인근에 여러 기의 고인돌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발견 당시에는 다른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 한 개와 받침돌 4개로 구성되었고
막음돌은 남아있지 않다. 전체 높이는 0.6 미터, 덮개돌은 길이 2 미터, 너비 1.75 미터, 무게 0.3 킬로그램이다.
이전 당시에는 뒤집힌 상태로 놓여있었던 덮개돌은 본래의 모습으로 바로 잡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