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올가 토가르축 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잃어버린 영혼』
잃어버린 영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넓은 초원을 말을 달리다가 가끔씩 멈추고 뒤를 돌아보다고 한다
내 영혼이 육체의 속도를 따라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득바득 살지?’ 반복적인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공허한 순간들. 어쩌면 틀에 박힌 하루 속에서 지쳐버린 나에게 그리고 답답하고 힘겨웠을 영혼에게, 한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얀 영혼의 얀 찾기
‘어떤 사람이 있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이었다. 영혼은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였지만, 오히려 잘 살고 있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운전을 하고 테니스를 쳤다. 다만 가끔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멍청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마치 수학 공책의 가지런한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날, 출장길의 호텔방에서 한밤중에 잠이 깬 남자는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도통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왜 왔는지, 무슨 일로 왔는지, 심지어는 자기 이름마저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이상한 기분에 그저 침묵했다. 오전 내내 자기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은 남자는 마치 몸속에 어떤 사람도 없는 것처럼 사무치게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욕실의 거울 앞에 서서 안개처럼 뿌옇게 변한 자신을 보며 자기 이름을 떠올려보다가, 결국 여권을 찾아 들여다보고는 얀이라는 자기 이름을 알게 된다.
다음 날, 겁이 난 얀은 현명하고 나이 든 여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은 그래도 주인을 잃었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의사의 진단은 얀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해 “그럼 제가 제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까” 라고 되묻는다. 의사는 “영혼이 움직이는 속도가 육체보다 아주 느리기 때문이에요. 영혼은 아주 먼 옛날, 우주 대폭발 직후에 생겨났어요. 당시엔 우주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지는 않았어요. 그땐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었죠. 환자분은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히 환자분이 이 삼 년 전쯤 갔던 곳에 환자분의 영혼이 있을 거예요. 기다리는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요. 제가 드릴 약은 없습니다.” 라고 답해 준다.
그 말을 들은 얀은 도시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해, 매일매일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머리가 길게 자라고, 수염이 허리에 닿게 될 때까지 많은 날들, 몇 주가, 몇 달이 지나갔다.
어느 오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앞에 잃어버린 영혼이 서 있었다. 영혼은 지치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었다. 영혼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드디어!”라고. 그 이후 얀은 그의 영혼이 따라 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시계와 트렁크 등을 정원에 파묻어 버렸고, 트렁크를 묻은 자리에서는 호박이 열려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식량이 되어주었고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게 된다.
당신이 삶의 길 위에서 지쳐있다면
이 책의 저자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축(Olga Tokarczuk)이다.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린 그림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필 선 밑으로 고요하며 쓸쓸하고, 동시에 온기 어린 아름다움이 매력적이다. 2018년 맨부커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올가 토카르축은 영혼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비정상적인 속도와 자극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요안나 콘세이요는 특유의 감수성으로 낡은 것들이 전하는 아늑한 위안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더욱 짙어지는 고요함이 가만히 마음을 건드린다.
어른이 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과 위치에 따라 페르소나라는 가면 안에 나를 숨기고 살아가다, 어느 날 시간의 한 자락에서 던지게 되는 나에 대한 질문이 그림자라는 무의식의 원형 안에 숨겨두고 있는 진정한 자기를 찾아 떠나게 되는 여정의 시작이 아닐까? 감춰두었던 나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결과로서의 완벽함이 아닌 과정으로써의 온전함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 분석심리학자 융이 말하고자 하는 자기실현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신이 삶의 길 위에서 지쳐있다면,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
책익는 마을 안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