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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19-26 그리운 안디옥교회
안디옥교회는 현대교회의 지렛대입니다.
안디옥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왕성하게 나타나는 은혜의 현장이었고
복음 전파의 산실(産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튀르키예가
얼마 전 발생한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터키라고도 했죠.
무려 50,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20만 명에서
3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16만 채 이상 가옥이 무너졌고요.
온 세계에서 구조대를 파견하며
생필품을 보내주고 있지만
그들의 절망과 슬픔을
누가 대신해 주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없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희생당한 자들과 가족이
참으로 불쌍할 뿐입니다.
튀르키예가 속히 이 고난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시간 튀르키예 안디옥을 중심으로
이번 지진 사태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은
엄청난 비극 앞에서
튀르키예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튀르키예는 원래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던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슬람 국가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특히 당시 소아시아로 불렸던
튀르키예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고
소아시아와 그리스, 로마로
선교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된 일로
유대인 성도들은 큰 핍박을 받게 되었고
근동지역으로 흩어진 가운데
안디옥 이방 땅으로 가서 세운 교회였지만
얼마나 부럽고 좋은 교회였는지
한국에도 안디옥교회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아파트 상가에도
안디옥교회가 있더군요.
그러면 안디옥교회는
어떤 믿음의 공동체였습니까?
안디옥교회는 사도행전에서
선교적인 교회요,
모범적인 교회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 중
안디옥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보면서
참된 교회의 모습이 어떤지를
숙고해봐야 합니다.
첫째, 안디옥교회는
주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교회였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안디옥교회를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오늘날에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원래부터 믿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구원받는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가 그런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바나바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왔을 때
그는 안디옥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가 어떻게 교회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안디옥교회 안에서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배타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안디옥교회가
은혜로운 믿음의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별이나, 출신이나, 학력이나,
가문이나, 모든 배경을 넘어서
성도들이 한 몸이 되는 곳이라야 합니다.
셋째, 제자들은 안디옥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이방인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는지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영어로는 크리스천(christian)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천 년 전의
안디옥 교회가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특히 AD 1453년 튀르키예가 이슬람화되면서
기독교회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역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황폐해진 교회 유적지만 남아서
성지 순례 명소가 되어있을 뿐입니다.
저는 기독교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히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열심히 예수를 믿던 사람들이 변질되면
하나님은 점차 그 자리를 옮기십니다.
소수의 노인만 남고
젊은이들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과거에 기독교가 왕성했던 유럽이
이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긴장이 되는 것입니다.
튀르키예는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으셨던 귀한 나라였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도
지대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소아시아, 튀르키예 각 지역에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오래도록 기독교의 꽃을
활짝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던
기독교가 소아시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핍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카톨릭이었던 기독교는
타락의 온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은 망각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로지 교권 싸움과 정치 싸움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역대 카톨릭 교회의 교황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타락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신부들을 통해 수많은 사생아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이 설립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신부들은 세속적으로도
출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인 경건 생활을 위해서
수도원을 지어놓고 그곳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번지기 시작한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상은
막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의 초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예수님의 3대 사역을
정열적으로 감당하는데 중심을 둬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를 보십시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까?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기 위해
애써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까?
단지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거의 믿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신앙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별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교회의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아름다웠던 모습이
지나간 추억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세계적으로 빠른 부흥,
큰 부흥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안주를 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아니, 안주의 차원을 넘어서
습관화가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온갖 핍박과 박해를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 교회는 점점 쇠약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없고, 젊은이들이 사라져가는데
교회가 얼마나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라고 합니다.
소멸할 위험성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합니다.
이 저출산율을 극복하기 위해
2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라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한국 교회의 약화와 쇠퇴에 있다고 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성경의 원리에 따라 결혼을 안 할 수도 없고
자녀를 인위적으로 안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기적인 태도로 결혼을 안 하든지
자녀를 안 낳고 부부만 잘살자고 하는
해괴한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옛날 가난하고 헐벗었을 때도
부모들이 자녀를 얼마나 많이 낳았습니까?
그때는 한국 교회가
크게 부흥하던 때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교회를 살리는 길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창조의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떤지에 따라
한 나라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고,
복을 거둬가시기도 합니다.
튀르키예에 지진의 비극이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있습니다.
이번에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튀르키예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한순간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슬람의 알라를 선택했습니다.
이슬람은 교리적으로도 거짓 종교입니다.
만일 튀르키예가 지금도 기독교 국가로
존재를 하고 있었다면
지진으로 죽는다 해도 천국에 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 튀르키예의 기독교인은
0.2%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버린 조상의 죄악 때문에
자손들이 지옥 불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진이 발생한 중심부는
안디옥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던
안타키아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과거를 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현재 내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를 보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온 세계를 대상으로
유튜브 전도를 하고 있는데요.
튀르키예인들 중에
510여 명이 치유 간증 전도 영상을 통해
천국 복음을 듣고 보았습니다.
이번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복음을 받은 이들이
꼭 예수 믿어 천국에 갔기를 바랍니다.
제 이야기는 죽음에서 살아난 내용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튀르키예인이
우리 교회에서 보내는 전도 영상을 보고
회개하며 예수님께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SNS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그렇지,
좀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면
더욱 효과적으로 광범위하게
천국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이제는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어서
복음 전파의 획기적인 도구로
SNS 매체를 주셨다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명의 이기(利器)를 잘만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32개 언어를 번역 통역하여
84,000여 명의 세계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전도자가 필요하고
더 열정적인 전도 의욕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듯 절실하게 필요한
전도와 선교를 모른 채
나 하나 먹고 사는 것에만 치중하여
영적으로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상해하실까요?
제가 어느 분의 천국과 지옥 간증을 들었는데
예수님이 지옥에 온 사람들이 불쌍해서
크게 울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예수님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지진은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또 다른 사랑의 표현입니다.
지진 외에 전쟁이나 전염병 등 온갖 재난도
어서 빨리 깨닫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손짓입니다.
이처럼 튀르키예 지진에는
하나님의 간곡한 외침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구조대가 파견되었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사실 튀르키예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까?
한국 전쟁 당시에도 많은 군대를 보내서
피 흘려 이 나라를 지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나라’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이 빚을 갚아야 할 시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NGO라는 이름으로
튀르키예에 가서 사랑의 빵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진 지역에 가 있는 사람들 십중팔구는
모두 기독교인들입니다.
특히 황성주 박사가 운영하는 사랑의 병원,
이롬 플러스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개인당 약 3백만 원의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며 튀르키예로 달려갔습니다.
왜 이런 봉사와 헌신을 합니까?
조건없는 예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안디옥교회가 있던 안타키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건
기독교 선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일이고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2천 년 전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 기도가 오늘에 와서 응답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기독교가 지진 사태의 의미를
이렇게 푸는 것이 가장 올바른 해석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진은 반드시 일어나게 될
종말의 대명사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6-8입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수님이 오실 때가 되면
전쟁 소문, 기근과 지진 소문이 퍼지는데
이조차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미국과 서구 유럽, 중국과 러시아가 양분되어
다시 신냉전 시대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튀르키예에
역대급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까지 지진의 진동이 느껴졌다고 하니
얼마나 큰 지진이었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튀르키예에 진도 8, 9의 강진이
재차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깨어 근신하며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수 믿고 구원받도록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말세에 남아있는 마지막 사명은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를 위해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SNS 한국어 전도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10일 전 유튜브에 제 전도 현장 영상을
올렸는데 단 3일 만에 1,000명이 넘게
조회를 한 것입니다.
제가 짐작하기에는 아마 불신자 전도용으로
공유를 많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천 주안 장로교회 나겸일 목사님도
간암 말기 상황에서 장례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역사로 살려주셨고
지금도 건강하십니다.
그런데 주안 장로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오로지 전도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전도 목회에 전념하시던 나 목사님을
하나님이 간암에서 살려주셨듯이
저 역시 전도하라고 췌장암에서
살려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3년이 넘게
노방전도를 278회 나갔고
1,300여 명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안 장로교회가 한국 교회에
큰 전도의 동기를 불어넣었듯이
우리 교회가 한국 교회에
전도의 자극을 주는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미 사라진 제2의 안디옥교회가 되지 않도록
중단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도해야 합니다.
비록 안디옥교회는 없어졌지만
안디옥교회의 복음 전파 정신만큼은
배우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님 오실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전도 사명을 감당하여
큰 상급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성시를 묵상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리운 안디옥교회>
스데반이 순교했네
돌에 맞아 목숨을 바쳤네
얼어붙은 폭포처럼
어둑발이 내린 고난의 환경
유대인 성도들은 산산이 흩어지고
소아시아 안디옥으로 피난했네
그들이 세운 교회, 안디옥교회
헬라인들에게 주 예수를 전파했네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하고
모두가 믿음으로 굳게 서 있었지
안디옥으로 달려간 바울과 바나바
수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쳤지
안디옥교회 성도들 번들번들 놀지 않았네
복음을 전파했네
비로소 전도자
비로소 그리스도인
백 번도 더 보고 싶은데
백 번도 더 가고 싶은데
내 맘을 뜨겁게 하는 안디옥교회
내 심장을 울리는 그리운 안디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