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일 외 1편
김세영
개망초 꽃잎이 발에 밟혀도
매미가 솔방울처럼 발길에 차여도
산책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붕어빵 한 봉지의 뼛가루로
산의 풀숲에 뿌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마무리이다
깨어있는 많은 날
노심초사하며 심지를 다 태워 버리고
안식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한 생이다
세상에 갇혀 살았으니
벌거숭이 천문의 시납시스를
당산나무 가지처럼
이제, 언덕에 세우면 된다
보이저호가 헬리오포즈*를 벗어나듯
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버킷리스트이다
상여 노래를 애달피 부르지 마라
흑인 영가라도 흥겹게 부를 일이다
흰나비처럼 승무를 출 일이다.
굽은 손가락 사이로
마지막 남은 기파가 빠져나갈 때까지
손바닥 속, 이승의 기억을
벽초목 염주처럼 여물어지도록
매만지고 다듬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자연스러운 일이다.
*heliopause : 태양풍이 성간 공간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강력한 우주선과 충돌하는 이 거품 영역의 가장자리에 있는 뜨겁고 두꺼운 플라스마 장벽.
안단테 칸타빌레*
초승달로 돋아나서
잠자는 호수의 등을 밟고 가듯이
수초의 달그림자를 딛고 갈 거야
긴 여름 여문 해바라기 씨알
한 톨 한 톨, 들길에 뿌려놓고
깨금발로 되새기며 걸어갈 거야
동백이나 목련처럼
부푼 가슴살, 단칼에 도려내지 않고
달맞이꽃 봉오리, 차오르고 이울어지듯이
한 달에 한 잎, 백 년을 걸려서 떨어질 거야
달빛에 삭은 벼랑의 소나무,
천궁처럼 등뼈 휘어지게 하듯
밤마다 석별의 가슴앓이로
촛불처럼 조금씩, 사위어져 갈 거야
정선아리랑 실은 동강의 거룻배,
첼로 활의 안단테 보폭으로
달빛 잠방이며, 강을 건너갈 거야
그믐달 실눈, 한 올만 남을 때까지
한 겹 한 겹. 천천히 야위어 가듯이
극락강 건너가는 솜털 구름처럼
노을의 바람에 실려, 안단테 아니.
레퀴엠의 아다지오 보폭으로
되돌아보며, 뒷걸음으로 떠나갈 거야.
* “천천히 노래하듯이” 라는 음악용어이며,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현악4중주곡 제1번 D 장조』 (작품번호 11)의 제2악장이기도 하다.
김세영
1949년 부산 출생. 2007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하늘거미집 외. 디카시집 눈과 심장.
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편집인. 상징학연구소 기획자문.
제9회 미네르바 문학상, 제14회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