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09-06-20 01:14 조회 : 1891 |
| | | 꽃 나들이
이진화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함양 땅 한들 수십만 평에 씨를 뿌려 꽃피게 한 장관이 있으니 구경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부부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참이라 일박이일의 일정을 잡아 여행길에 나섰다. 원래는 한 일주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직장 생활 35년 만에 정년퇴직을 한 남편의 노고를 감사하고 새로운 구상을 하려는 계획이었는데 퇴직 기념여행이 꽃구경으로 결정이 된 것이다.
처음 가보는 함양 땅은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문화유산도 많은 고장이었다. 신라시대 태군수였던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인공 숲 상림은 녹음이 우거져 있었고 상림 옆으로 만들어진 연못에는 각종 연꽃이 수많은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연꽃이 만개하는 8월에는 그곳에서 연암 박지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함양 안의는 전통 있는 선비의 고장이라 잘 보존된 고택이 많고 연암 박지원 선생이 중국에서 들여온 물레방아가 유래된 곳이기도 하다.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난 용추계곡을 들러 들판으로 내려오니 그곳이 한들이라고 했다. 논과 밭이 있던 자리를 빌려 꽃씨를 뿌렸다는데 끝없이 넓은 들이 꽃 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꽃을 보기는 처음이다. 무려 두 세 시간을 돌았는데도 전체를 볼 수 없었다. 많은 꽃 중에서 가장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은 단연 양귀비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양귀비의 사촌격인 개양귀비지만 모두 그냥 양귀비라고 불렀다. 넓디넓은 벌판에 서서 개양귀비 꽃밭을 바라보고 서있자니 문득 어릴 적 보았던 진짜 양귀비가 생각났다.
서울의 외곽에 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우리 동네에는 거의 담장이 없었다. 온 동네에 토끼를 분양해주던 앞집의 너른 마당에는 수많은 종류의 과실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분꽃, 과꽃, 수국은 기본이고 매우 희귀한 식물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꽃 더미 속에 은밀하게 심어놓은 두어 포기 꽃이 있었는데 그 꽃은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는 꽃이라고 했다. 손녀딸인 내 친구는 그 꽃의 진액이 배 아픈데 최고의 약이며 꽃 이름이 양귀비라고 했다. 만약 그 꽃을 집에서 키우는 걸 들키면 경찰에서 잡아간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 꽃에 더욱 눈길이 갔다. 유익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위험성을 가졌다는 꽃은 고혹적인 매력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도대체 왜 꽃이 위험할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동안 양귀비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살았다.
며칠 전에는 아침 신문에 젊은 남자가 양귀비 꽃다발을 안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그는 마약 단속반 형사로 신안 앞바다 섬마을에서 비상약으로 재배되는 양귀비를 적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당 한 구석에 몇 포기의 양귀비를 숨겨놓고 가꾸던 할머니는 치통이나 관절 아플 때 먹게 한 뿌리만 남겨달라고 간청을 했고, 형사의 품에 안긴 양귀비꽃은 뿌리째 뽑혔는데도 도도한 얼굴을 바짝 쳐들고 있었다. 문득 경국지색이라 일컫던 당 현종의 비 양귀비가 떠올랐다. 양귀비 진액 뿐 아니라 요염한 자태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서일까. 요즈음은 화초로 보는 개양귀비가 양귀비로 불리며 사랑을 받고 있다. 양귀비 못지않게 곱고 빛깔이 예뻐서 지나가다가 발견을 하면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꽃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예쁜 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어있다니 하늘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울까. 양귀비뿐 아니라 십여 가지 다른 종류의 꽃들이 기대기도 하고 자리를 비켜주기도 하며 사이좋게 피어있었다. 자연 속의 꽃들은 빛깔과 모양이 달라도 그렇게 잘 어울린다. 아스라하고 조촐한 느낌의 안개꽃, 손으로 접은 듯 정갈한 금영화, 짙은 보라색의 촘촘한 꽃잎이 사랑스런 수레국화 사이로 청보리밭과 배추밭이 몇 이랑 남아있었다. 농토의 일괄 계약에 따르고 싶지 않은 농부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도 아름다우며 존중받아야 한다. 꽃 나들이 덕분일까. 결혼생활 30년 만에 처음으로 말다툼 한 번 없이 평화로운 여행을 다녀왔다. 다가올 8월의 연꽃 축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 임병식 | 09-06-20 07:39 | | 함양을 다녀오셨군요. 퇴임하신 부군과 함께 즐거우셨겠습니다. 함양은 신비스런 곳이더군요. 계곡이 좋고, 약초시험단지도 볼만 하더군요. 양귀비꽃은 함부로 가꾸지 못하는 식물이라 꽃이 신비로운데, 그 양귀비는 개량한 꽃인듯 합니다. 양귀비는 중국에서 한반도 까지 씨앗이 날아온다고 하더군요. 몇년 전에는 여수 섬사람들이 중국에서 날아온 씨앗이 발아한 바람에 신고가 되어 곤욕을 치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저도 한번 꽃구경을 가봐야겠습니다. | |
| | 최복희 | 09-06-20 09:30 | | 이진화 선생님 꽃구경 잘 했습니다. 글도 꽃처럼 아름답군요. 저도 얼마 전 심학산 돌곶이마을 꽃대궐을 다녀왔는데 그곳 몇 배의 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군요. 한들은. 꽃처럼아름다운 여인 이진화 선생님입니다.ㅎ | |
| | 윤행원 | 09-06-20 17:01 | | 이진화 선생님, 제가 하고싶은 말을 최복희 선생님이 다 하셨군요. 그래서 저는 하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ㅎㅎ..아름다운 글 잘 보았습니다. | |
| | 임재문 | 09-06-20 23:31 | | 이진화 전임 회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도 꽃들처럼 그렇게 서로 어울리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편 네편이 없는 그런 사회, 그러나 경쟁력은 있어야 하겠지요. 경쟁력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으니까요.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그렇게 꽃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창식 | 09-06-21 17:37 | | 이진화 선생님, 그러니까 꽃이 꽃밭을 찾은 것인가요?! | |
| | 김정자 | 09-06-22 00:01 | | 이진화 선생님 전 양귀비꽃좀 펌해서 제 홈에 간직했는데요. 괜찮지요? 어쩜 그리 사진도 잘 찍으시나요. 부럽습니다.
함양을 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꽃처럼 예쁜 이선생님 께서 그렇게 예쁜 꽃들을 바라보니 참으로 황홀한듯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늘 이회장님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는것 아시죠? 더위에 건강 조심하소서~ | |
| | 박원명화 | 09-06-24 13:27 | | 빨간 양귀비 꽃이 이진화선생님을 닮은 듯 아름답습니다. 늘 바지런하신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은 이 있겠습니까^^ 사진 속의 양귀비꽃보다 더 아름다우신 이진화 선생님 좋은 사진, 글 잘 감상하게 해주시어 고맙습니다. | |
| | 일만성철용 | 09-06-25 12:33 | | 먼저 부군의 정년 퇴직 후의 삶이 아름다운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퇴직 후에 잡는 일거리는 전직과 관계가 깊은 일인데 그게 얼마 안 가더군요. 퇴직하면서 그때 가지고 나온 자금은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투자는 위험하다는 고언을 드립니다. 양귀비를 비롯한 꽃 잔치가 매년 파주에서 5월에 열리고 있는 거 아시지요? 거기보다 넓지는 않지만 볼 만하더군요.두분 다 꽃처럼 아름다운 하루하루 사세요. | |
| | 최원현 | 09-06-29 09:12 | | 마치 네델란드의 한 곳을 보는 것 같습니다. 모처럼 귀한 시간 갖게 되셨군요. 이제 더 많은 시간 두 분 함께 하세요. 부럽습니다. | |
| | 이진화 | 09-07-04 00:42 | | 일만 선생님, 지혜의 말씀 명심하고 일러주겠습니다.
최원현 선생님, 두 분도 8월에 연꽃 구경 다녀오세요. | |
| | 정동호 | 09-07-04 06:18 | | 이진화 회장님! 부드럽고 꽃처럼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함양 나들이처럼 날마다 행복하소서. | |
| | 이진화 | 09-07-05 00:43 | | 정동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고 유쾌하게 보내시길 바라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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