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3 대림 12월 23 일 – 그가 온다
“보라, 그가 온다.”(말라 3,1).
그가 온다.
알리러 온다.
아니, 이미 그가 와서 내 집 둘레를 돌며 울타리 안을 기웃거린다.
전할 말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다만 그도 나도 때만 기다린다.
궐집(闕)에서나 발집(民家)에서 내가 듣지 못하는 귀먹은 소리소문이 출구입이(出口入耳)[1]하는 줄 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없어지면 더 좋고!”
그보다 발등에 떨어진 철부지급(轍鮒之)[2]은 ‘세끼 밥’이다.
맘 편히 세끼 밥 먹기 어려워진 지 삼 년이 지났다.
時方 버티는 건강이 언제까질 런지 알 수 없어 밤마다 날 밝음이 걱정이다.
밥 짓는 취부(炊婦)[3]는 냉장고에 찬을 가득 채워 놓고 때 되면 알아서 차례지식(嗟來之食)[4]하란다.
식사가 어찌 입치래요 충복(充腹)뿐이랴!
식구 없는 밥상은 형틀이니, 그 먹음은 고신(拷訊)과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 토설(吐說)하듯, 살기 위한 취식(取食) 걸식(乞食) 같아 인열폐식(咽噎廢食)[5]하지 않겠나!
이제껏 사사명식(四邪命食)[6]에 길들여져 내 지르는 탄식이 아닌가?
하여튼 내게 은퇴는 밥 세 끼가 꼬박꼬박 생기는 일이다.
근래에 자다가도 속이 더부룩하여 잠에서 깨니, 그 세 끼 밥 얼마나 더 먹을런가?
귀먹은 隱退 소리 들으며 내 맘속에 먼지처럼 飛散하는 말들이 있다
屬歸(속귀), 鄕歸(향귀), 還歸(환귀), 回歸(회귀), 復歸(복귀), 天歸(천귀), 順歸(순귀), 再歸(재귀), 決歸(결귀), 投歸(투귀), 撤歸(철귀), 捲歸(권귀), 已歸(이귀), 敗歸(패귀), 逃歸(도귀), 徑歸(경귀), 脫歸(탈귀), 于歸(우귀), 錦歸(금귀), 麻歸(마귀), 破歸(파귀), ······· 같은 글자들을 난독한다.
젊든지, 출세했든지, 돈이 많든지 했어야 하는데······.
걸해골[7]이 코앞이건만 끼니타령, 밥상타령을 늘어 놓다니······!
주님께서는 말라키를 통해 “정신 차려라, 구세주가 오신다! 천 년 길을 하루 만에 달려서 오시는 구세주를 맞지 못하면 뼈(靈魂)도 못 추린다(乞骸不可) ─ 구령(救靈)치 못한다!”라고 외치신다.
[1] 출구입이(出口入耳) : 甲의 입에서 나온 말이 乙의 귀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당사자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비밀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반대로 甲男乙女 입에 속닥속닥 膾炙되어 하마평(下馬評)이 만구전파(萬口傳播)하지만, 당사자 앞에서는 무구포(無口匏: 입 없는 박)하여 당사자는 듣지도 알지도 못함.
[2] 철부지급(轍鮒之) :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의 급함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급한 처지에 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을 이르는 말. 《장자》의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이다.
[3] 취부(炊婦) : 끼니로 먹을 음식 따위를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
[4] 차래지식(嗟來之食) : “자, 와서 먹으라.”라며 주는 음식. 무례한 태도로 주는 음식을 이르는 말. 모욕적인 대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5] 인열폐식(咽噎廢食) : 목구멍이 메어서 먹는 것을 그만둔다.
[6] 사사명식(四邪命食) : 승려의 떳떳하지 못한 네 가지 생활 방식. ①하구식(下口食): 논밭을 갈며, 탕약을 지어서 생활하는 것, ②앙구식(仰口食): 천문학을 연구하여 이로써 생활하는 것. ③방구식(方口食): 부호(富豪)에게 아첨하여 공교한 말과 잘 보이려는 얼굴로 그들의 뜻을 영합(迎合)하여 수입을 넉넉케 하여 생활하는 것. ④유구식(維口食): 주술(呪術)이나, 점치고 관상 보는 것을 배워 사람의 길흉을 말하여 생활하는 것. 比丘는 원래 걸식(乞食)을 본의로 하므로, 다른 수단으로 생활하는 것은 모두 사명식(邪命食: 不淨한 생활방식)이 된다.
[7] 걸해골(乞骸骨) : (준말) 걸신(乞身), 걸해(乞骸). (유의어) 청로(請老). (원말) 청사해골(願賜骸骨), (참조) 건곤일척(乾坤一擲, 주사위를 던져 승패를 건걸다. 운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루다). (출전) 《史記》, 〈項羽本記〉, ‘子春秋’.
(뜻) ‘해골을 구걸한다’는 뜻. 心身은 주군에게 바치지만, 이제 노쇠하여 뼈만 남았으니 살아서 낙향하여 뼈라도 묻히게 해달라는 뜻이다.
(유래)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 전쟁에서 팽성(彭城, 서주)을 잃고 형양(滎陽, 하남성)으로 쫓기기자, 유방은 항우의 아부(亞父: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요 재상이었던 범증(范增)을 이간질한다. 유방의 이간책에 속은 항우는 범증이 적과 내통한다고 믿고 관직을 박탈하려고 한다, 판세가 기울고 관명이 다 되었음을 안 범증이 한 발 앞서 항우에게 사직을 청하며 ‘걸해골(乞骸骨)’을 소망한다. 그 후 고려에 이르기까지 ‘걸해골(乞骸骨)’은 정세와 관운에 실망한 늙은 신하가 나이를 빙자하여 임금에게 사직을 청할 때 쓰는 말이 되었다. 범증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팽성(彭城)으로 돌아가는 길에 등창이 터져 75세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