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들의 백로타령에 백로가 웃는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白鷺야 가지 마라 /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샘낼세라 / 淸江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조는 정몽주의 어머니 이 씨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白鷺歌다.
정몽주의 어머니 이 씨는 고려 말기 권력을 잡은 이방원 등이 고려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이들을 ‘까마귀’ 같은 존재로, 고려를 지키려고 하는 정몽주는 ‘백로’ 같은 존재로 비유했다. 아들 정몽주가 그들과 만나거나 그들과 함께 같이 하지 말라는 것을 이 시조를 통해서 뜻을 전달하고 있다.
당시에도 이분법적 논리가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몽주의 어머니는 몰락하는 고려를 지켜내려는 것이 孤高한 백로요 正義라고 보았다. 당시 이방원은 자신들은 까마귀로 보았을까. 사실상 망해버린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려고 하는 자신들이 백로라고 생각을 하였을 것이고 다시 바로 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고려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까마귀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좌익은 우익을 까마귀로, 우익은 좌익을 까마귀로 본다. 그뿐만 아니라 좌익 내에서 친명과 비명은 서로를 까마귀 취급을 하고 자신들이 백로와 같은 존재이고 상대방은 까마귀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위 우익이라고 하는 자들도 다를 것이 없다.
좌익들은 변론으로 하고 소위 우익이라고 하는 사람 중 누가 까마귀이고 누가 백로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판단하는 기준은 다를 수는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우익의 조건은 ① 정의로움을 추구하느냐 아니냐 하는 점 ② 진실을 위해 노력하고 거짓에 저항하였느냐 하는 점 ③ 대나무 같은 신념을 가졌느냐 하는 점 ④ 불의에 굴복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점 ⑤ 보수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있는가 하는 점 등이다.
이러한 우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은 거의 없다. 좌익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런 사람이 우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음모론에 정신을 놓고 불의와 거짓의 세력에게 굴종하는 자들이 자칭 보수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수가 될 수 없다. 넓은 의미의 우익도 아니다. 이러한 자들이 까마귀다.
‘백로도 아닌 것들이 백로라고 소리 지르네 / 무서운 까마귀 앞에서 까막까막 소리 지르네 / 까마귀 골에서는 검정색 지워질세라 검정에 몸을 문지르네’ 라는 글을 지어본다. 제목을 ‘烏鴉歌’라고 붙여본다. 백로도 아닌 것이 백로의 흉내를 내고 까마귀 앞에서는 까마귀인 양 까마귀 울음 소리 내는 희안한 그런 더러운 세상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