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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없는 화공법(火攻法)과 주유의 혼절(昏絶) -
조조(曹操)와 주유(周瑜)가 위계(僞計)의 혼전(混戰)을 벌이는 가운데 삼강(三江)에 진(陣)을 친 조조의 수군은 어느덧 주둔지 인근의 물길에 익숙해지고 훈련(訓鍊)도 모두 마친 상태(狀態)가 되었다.
그리하여 수군(水軍) 대도독(大都督) 우금(于禁)이 조조(曹操)에게 수군(水軍) 사열(査閱)을 요청(要請)하니 조조는 크게 기뻐하면서 수락(受諾)한다.
"좋아! 십일월 보름 정오에 문무 대신(文武 大臣)들을 이끌고 사열(査閱)을 하도록 하겠다."
"네! 소장이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수군 사열(査閱)의 날이 왔다. 수군 병사들의 함성과 진고(晉鼓)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조(曹操)가 탄 대전함(大戰艦)이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정박(碇泊)한 수군(水軍) 전함(戰艦) 사이를 유유(悠悠)히 운항(運航)하였다.
사열(査閱)을 받는 병선은 각각 오색기(五色旗)를 달고 있었는데,
중앙(中央)의 황기(黃旗)는 우금(于禁)과 모개(毛介)의 수군(水軍) 군사(軍士)요,
홍기(紅旗)는 장합(張郃)의 군사(軍士)고,
흑기(黑旗)는 여건(呂虔)의 군사(軍士)였다.
좌군(左軍)의 청기(靑旗)는 문빙(文聘)의 군사(軍士)요,
우군(右軍)의 백기(白旗)는 여통(呂通)의 군사(軍士)였다.
조조(曹操)가 강(江)을 뒤덮은 장중(莊重)한 전함(戰艦)을 바라보며 감회(感懷)에 젖은 어조로 수군(水軍) 대도독(大都督) 우금(于禁)을 호명(呼名)하였다.
"우금(于禁), 모개(毛介)! 정말 내 눈이 의심(疑心)스럽군 관도(官渡)가 천지(天地)를 개벽(開闢)하니 역사(歷史) 이래로 이렇게 웅장(雄壯)한 수군(水軍)이 있었던가?"
"승상(丞相)이 아니시면 이런 수군(水軍)은 누가 조성(造成)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병선(兵船)은 승상의 군령(軍令)대로 오륙십(五六十) 척(隻)씩 모두 연결(連結)해 놓고 땅에서와 같이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전투(戰鬪) 태세(態勢)를 갖추었습니다."
그것은 사실(事實)이었다. 역사(歷史) 이래로 이렇게 거대(巨大)하고 웅장(雄壯)한 수군(水軍)은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거병(擧兵)한지 이십여 년 동안 나라를 위해 힘쓰면서도 아직 강남(江南)을 취하지 못해 성에 차지를 않았는데 오늘날 수륙(水陸) 양군(兩軍)을 통틀어 백만(白萬) 대군(大軍)과 전함(戰艦) 팔천 척(八千隻)으로 강남을 수복하고 대업을 달성할 기반이 조성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분연히 이를 달성하게 되면 나와 여러분들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며 편안(便安)하게 살 수가 있다!"
조조가 이렇게 감회에 젖은 소리를 외치자 배 안의 문무 대신(文武大臣)들은 일제(一齊)히,
"승상(丞相), 만세(萬歲)! 만만세(萬萬歲)!"를 외쳤다. 그러자 만세 소리는 옆 배에서 옆 배로 계속해 이어지면서 삼강 하구는 만세 소리로 뒤덮였다.
잔뜩 감흥(感興)이 오른 조조(曹操)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외친다.
"오늘 밤 보름달이 뜨면 삼군(三軍)을 위해 연회(宴會)를 베풀어 그동안 훈련(訓練)과 전쟁(戰爭) 준비(準備)에 노고(勞苦)가 많았던 장수(將帥)들과 병사(兵士)들을 위로(慰勞)할 것이니 모두들 마지막 승전(勝戰)을 위하여 일치단결(一致團結)하여 노력(努力하자!"
조조(曹操)가 뱃전에 높이 올라서 만족(滿足)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또다시 북소리가 울리고 모든 병선이 서서히 움직이며 조조(曹操)에게 사열(査閱) 대형(隊形)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이날은 바람이 제법 불어 물결이 높았지만 병선(兵船)은 서로 연결(連結)되어 있었기에 수군 병사(水軍兵士)들은 멀미를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정욱(程昱)이 말한다.
"승상(丞相), 배를 서로 연결(連結)해 놓으니 미상 불편하기는 합니다만 만약(萬若) 적(敵)이 화공법(火攻法)을 쓰게 된다면 아군(我軍)의 피해(被害)가 극심(極甚)할 것으로 보여 걱정입니다."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오. 화공법(火攻法)이란 반드시 바람을 빌려야 되는 것인데 지금 같은 한겨울에는 서풍(西風)이나 북풍(北風)은 불어도 동풍(東風)이나 남풍(南風)은 절대(絕對)로 불지 않소. 우리는 서북편(西北便)에 있고, 적(敵)은 남(南)쪽에 있는데 저들이 만약(萬若) 불을 쓴다면 오히려 저들이 불에 탈것이 아닌가? 물론 봄이나 여름에는 적들이 화공법(火攻法)을 쓸 수는 있지만 요즘 같은 겨울에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니 걱정을 마오."
모든 장수들이 그 말을 듣고 감탄(感歎)한다.
"과연(果然) 승상(丞相께)서는 천문(天文)에도 밝으신 어른이십니다."
조조가 다시 말한다.
"우리 수군들은 대부분이 청주(靑州), 서주(徐州), 연주(燕州) 출신인 까닭에 이런 연쇄 철환(連鎖 鐵環) 법을 쓰지 않았다면 물결이 거친 이곳 삼강에서 어떻게 이처럼 자유롭게 항행할 수가 있었겠나?"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측근의 수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조조의 선견지명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조조가 수군 사열을 마친 이날 밤, 대소 병사를 위한 연회가 진중 곳곳에서 벌어졌다.
조조의 군영에서는 조조(曹操)를 위시(爲始)하여 정욱(程昱), 우금(于禁), 모개(毛介), 장합(張郃), 여건(呂虔), 문빙(文聘), 여통(呂通)을 비롯하여 이전(李典), 악진(樂進), 하후연(夏侯淵), 하후돈(夏侯惇), 조홍(曺洪), 조인(曺仁), 허저(許褚), 장료(張遼) 등 수륙 양군(水陸 兩軍) 제장(諸將)들이 함께 자리했다.
조조가 이들을 둘러보며 뿌듯한 자신감을 가지고 입을 연다.
"여러 수륙 양군의 장수를 비롯한 문무 대신과 형제들이여! 나, 조조가 올해 쉰 하고도 넷이 되었소.
옛날을 회상해 보면 황건적(黃巾賊)과 여포(呂布)를 없앴고, 원술(袁術)을 멸하고, 원소(袁紹)를 깨치고, 다시 삭북(朔北)에 진격하여 요동(遼東)을 평정하였소. 그뿐만 아니라 근자에는 형주(荊州)까지 취했으니, 이제 최후로 남은 것은 강동이오. 이렇게 내 말(馬)은 북쪽 끝, 검(劒)은 동북까지 미쳤고 천하를 질풍같이 누비며 기세를 드높였소. 나의 삶이 이럴진대 무얼 더 바라겠나! 허허 허허! ..."
조조는 기분이 양양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으면서 손에 술잔을 들고 즉흥시(卽興詩) 한편을 읊는다.
술 들고 노래하세 인생이 그 얼마인고.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 같다고나 할까,
지난날이 꿈같구나.
슬픈 일을 당할 때면 근심을 풀 길이 없어,
그 많은 세월을 술을 약으로 풀었네라.
푸르른 그대 옷깃 유유한 이내 마음,
사슴은 울어대며 풀을 뜯어 먹는구나.
귀한 손 모시고 비파 타고 피리 불면,
밝고 밝은 저기 저 달 기울 줄이 있으랴.
한편, 조조(曹操)가 수군을 조련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 주유(周瑜)는 오늘도 포구(浦口)에 나와 나부끼는 깃발을 응시하며 바람의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바람은 북풍으로 깃발을 남쪽으로 힘차게 흔들기만 할 뿐 이를 지켜보는 주유(周瑜)의 가슴속을 태우고 있었다.
주유(周瑜)가 바람의 방향을 관찰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십 여일 그가 기다리는 동풍과 남풍이 불어올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바람이 부는 방향을 유심히 살피던 주유(周瑜)가 어느 순간 입에서는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푹 고꾸라졌다.
"대도독! 대도독!" 여몽(呂蒙)을 비롯한 측근의 병사들이 크게 놀라며 달려와 주유를 내실로 옮겨 눕혔다.
주유(周瑜)의 혼절(昏絕) 소식을 듣고 그의 아내인 소교(小喬)가 달려왔다.
"서방님!... 혼절(昏絕)하시다니 어디가 아프신가요?"
"아니오 난 괜찮소...." 병석에 누운 주유(周瑜)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
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오...."
주유(周瑜)가 혼절(昏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노숙(魯肅)이 달려왔다.
"공근(公瑾 :주유의 字)!.. 혼절(昏絕)하였다는 말을 듣고 너무도 놀라 아직도 진정이 되질 않소. 지금은 어떻소, 응?... " 노숙(魯肅)은 병석의 주유(周瑜)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말을 하였다.
그러나 주유(周瑜)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조금 흔들어 보인다.
"괜찮소... 좀 쉬면 낫겠지... 내가 아픈 사실을 절대 소문 내지 마시오. 군심이 흔들릴 거요."
"알았소. 걱정말고 몸조리를 잘 하시오.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응?"
노숙(魯肅)은 이렇게 말한 뒤에 밖으로 나와 주유의 군막 앞을 서성대었다. 잠시 후 주유(周瑜)의 처(妻) 소교(小喬)가 밖으로 나와 말한다.
"선생, 의원이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프신 것도 처음 보았고요. 원인이 뭘까요?"
"하늘의 뜻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노숙(魯肅)은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대답한다.
"아!... 서방님이 이번 전쟁(戰爭)을 앞두고 많이 괴로워하신 것 때문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연일 전략을 세우는데 노심초사(勞心焦思) 하였으니..." 노숙(魯肅)은 여기까지 말을 한 뒤에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라면 공근(公瑾)과는 마음도 통하고 애기도 잘 되니 그가 나서면 공근(公瑾)의 병을 고칠 방법을 알 수도 있겠군요." 하고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누구요? 제갈량(諸葛亮) 선생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를 청해 오면 방법이 나올 것 같습니다."
노숙(魯肅)은 그 길로 공명(孔明)을 찾아갔다. 노숙(魯肅)이 공명에게 말한다.
"의원이 가서 진맥을 봤으나 대체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하였소. 여몽(呂蒙) 장군 말로는 당시 공근(公瑾)은 조조군 진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며 깃발이 휘날리는 순간 그것을 보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혼절하였다고 하오."
"바람이 몰아치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자경(子敬) 그 당시 풍향은요?" 공명(孔明)이 노숙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숙(魯肅)은,
"이맘때라면?... 당연히 서북풍이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고 공명(孔明)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서북풍이라?.. 후훗, 자경(子敬), 공근(公瑾)의 병은 내가 잘 아는 병인지라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소." 하고 말하였다.
노숙(魯肅)이 반가운 얼굴을 하며,
"호?.. 가능하시겠소?" 하고 반문한다.
그러자 공명(孔明)이 고개를 노숙(魯肅) 쪽으로 기울이며 말한다.
"허허 허허!... 제가 이래 봬도 천문지리(天文地理)와 기문둔갑(奇門遁甲)은 물론이고 고금(古今)의 난제(難題)와 사람의 질병(疾病)까지 모르는 게 없지요."
"좋소, 선생! 그럼 어서 가십시다!"
노숙(魯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장 서서 길잡이를 자청한다.
"어서요, 어서 가봅시다!"
그 길로 공명(孔明)과 노숙(魯肅)이 주유(周瑜)의 거처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노숙(魯肅)이 먼저 주유의 병석으로 찾아가니 주유(周瑜)는 소교(小喬)의 극진한 병구완을 받고 있었다.
노숙(魯肅)이 소교(小喬)에게 묻는다.
"부인, 공근(公瑾)의 차도가 좀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속이 좀 거북하다고 하셨는데 조금 전부터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노숙(魯肅)이 주유(周瑜)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공근(公瑾), 조금 전에 공명(孔明)을 만났는데 병세를 얘기했더니 공근의 병을 고치겠다고 하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소."
"음... 소교(小喬), 일으켜 주시오. 옷도 내오고. 제갈량(諸葛亮)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소."
자존심이 강한 주유(周瑜)는 공명(孔明)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예..."
잠시 후, 노숙(魯肅)은 공명(孔明)과 함께 다시 들어왔다.
주유(周瑜)는 병석에서 곧 일어난 모습으로 힘없이 자리에 기울여 앉아 있었다.
"아! 주도독(周都督)!" 공명(孔明)이 황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와 예를 표하자 주유(周瑜)는 공명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공명(孔明)이 자리에 앉은 뒤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며칠 못 뵈어 걱정이 많았는데 이처럼 많이 편찮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인생의 길흉화복을 누가 다스리겠소." 주유(周瑜)가 기운이 진한 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한다.
"하늘의 섭리를 어찌 사람이 예측하겠습니까?" 공명(孔明)이 거기까지 말을 하였을 때,
주유(周瑜)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린다. 그리고 가슴을 쥐어 잡으며,
"가슴이 터질 듯 견디기가 어렵소. 힘들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공명(孔明)이 묻는다.
"가슴이 답답하십니까?"
"그렇소... 마치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말이오..."
"그럼 약을 드셔야지요."
"흠, 약이 소용없는 것 같소."
"약이 소용없다면 다른 방도가 있기는 한데 치료가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주유(周瑜)가 그 말을 듣고 공명(孔明)을 반신반의하며 다시금 쳐다본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그럼, 선생이 처방(處方)을 내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공명(孔明)이 그 말을 듣고 붓을 들자 시종이 달려와 종이와 먹을 공명의 앞으로 대령한다.
공명(孔明)은 지체 없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처방(處方)을 써 내려갔다.
노숙(魯肅)은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만을 듣고 있었다.
주유(周瑜)와 소교(小喬)는 공명(孔明)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명(孔明)의 처방문(處方文)이 잠깐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공명(孔明)이 붓을 거두자 시종이 다가와서 공명(孔明)의 처방문을 주유(周瑜)의 책상 위로 옮겨갔다.
주유(周瑜)의 책상 위로 처방문(處方文)이 올라가자 공명(孔明)이 입을 열어 말한다.
"보십시오. 그게 처방문(處方文) 올시다."
주유(周瑜)가 공명(孔明)의 처방문(處方文)을 받아들고 입을 딱 벌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선생(先生)은 정녕(丁寧) 신선(神仙)이시군!..." 하고 말하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자 소교(小喬)가 주유(周瑜)의 손에서 공명(孔明)이 써 준 처방문을 들어 보았는데 그 처방문(處方文)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欲破曺公 (욕파조공) 조조를 멸하려면
需用火攻 (수용화공) 불을 써야 하는데
萬事皆備 (만사개비) 준비는 끝났으나
祗欠東風 (지흠동풍) 동풍만이 없구나.
삼국지 - 187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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