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인은 항상 슬라브민족의 무모함의 공포 속에 속에 살아왔다. ‘slave’는 노예로 사느냐, 아니면 주인으로 살 것인가? 그게 그들의 삶의 양식이었다면, 그들은 곰처럼 무모함이 틀림이 없다. 또 다른 해석은 슬라브민족은 왜 무모한가? 추운 지방에 살아가는 생존 방식이다. 일본인들은 그들을 비웃는다. 그들은 어린아이 기저귀를 하루에 2〜3번 밖에 갈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슬라브민족의 표본 블라디미르 푸틴이 언젠가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은 그들은 예측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인은 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 유태인계 볼로디미르 젤렌시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젤렌시키는 세계를 향했다. 조선일보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2022.03.08), 〈한 러시아계 유대인이 우크라이나 운명을 바꾸고 있다〉, ““러시아가 ‘젤렌스키가 수도를 탈출했다’는 허위 보도를 하기 시작하자 그는 SNS를 통해 수시로 근황을 알리며 국민을 단결시켰다. ’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우리의 진실은 이곳이 우리 땅, 우리 조국, 우리 후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월 1일 젤렌스키는 유럽 의회에 화상 연설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웁니다. 자유와 생명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유럽의 동등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도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걸 증명해 주십시오. 당신들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증명해 주십시오. 당신들이 실로 유럽인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그러면 삶이 죽음을 이기고, 빛이 어둠을 이길 것입니다.” 젤렌스키가 수도를 사수하기로 한 결정은 큰 영향을 끼쳤다. 개전 직후 사흘 이내에 함락될 것이라 여겨졌던 키이우는 최고 통수권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열흘이 지나도록 함락되지 않았다...그 사이에 우크라이나는 세계 각국의 지원을 받아 악조건 속에서 전쟁을 버텨내고 있다. 그의 용기와 외교술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3월 3일, 개전 이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죽는 게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자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또 자식들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고 답했다.“ 젤렌스키는 숨겨둔 탱크를 다시 등장시키고, 미국이 준 휴대용 재블린 대전차 유도 미사일을 사용했다. 그는 2019년 대통령 당선되자 전쟁준비를 한 것이다. 러시아는 6·25 때 밀고 내려온, 전차의 위력만 생각했다. 그러나 스마트한 젤렌스키는 달랐다. 그는 러시아가 아닌 서방 세계 친화적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에 있는 유태인들이 도와줬을 것은 뻔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 정신이 우리의 헌법정신과 일맥상통한다. 그 정신은 ‘열린 민족주의’이다.” 헌법전문에 “자유와 권리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어 홍 전 세종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44세 젤렌스키-젤렌스키는 1978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다. 아버지는 컴퓨터공학 교수였고, 어머니도 공학자였다. 몽골에서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몽골에서 살다 어머니 건강 문제로 4년 만에 귀국했다. “친구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고 탈무드는 강조한다. 랍비 샴마이는 “모든 사람을 쾌활하게 맞이하라”고 가르치며, 자신의 우울함과 침체된 분위기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 유대인의 인생관은 할 수만 있다면 “아낌없이 즐기라”는 것이다. 이런 교육 덕분에 젤렌스키는 어려서부터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남을 웃기는 재주가 탁월했다. 10대 때는 운동을 좋아해 역도와 레슬링을 배웠다. 한편 예능에도 소질이 있어 춤도 잘 추고 학교 앙상블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젤렌스키는 1997년 코미디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는 코미디언이 되었다. 그는 19세에 ‘크바르탈95′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 자신이 주연을 맡아 사회 풍자 드라마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했다. 그의 드라마는 모스크바를 비롯해 구소련 공화국들에서 공연되었다. 젤렌스키는 일과 공부도 병행해 명문 키이우(키예프)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에는 댄스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2015년부터 방영된 ‘국민의 종’이라는 51부 작 대하드라마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 드라마는 부패한 우크라이나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했다. 제작자 겸 주연인 젤렌스키는 드라마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 역할을 맡아 학생들 앞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성토했다. 이 장면을 한 학생이 몰래 촬영해 온라인에 올리는 바람에 역사 교사는 국민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부패 정치인들을 몰아낸다는 게 드라마 줄거리다. 시청자 수가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2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젤렌스키는 ‘국민의 종’ 출연진과 함께 같은 이름의 정당을 2018년 창당해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 젤렌스키는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을 어필하여 현직 대통령을 3배 가까운 차이로 꺾으며 당선되었다. TV 드라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2019년 41세의 최연소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나는 평생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 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중앙일보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03.08), 〈발언의 자유 절대론〉,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접속을 끊거나 방해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정보통신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일론 머스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인 스타링크 서비스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PR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머스크는 곧바로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서비스를 개통했다. 우크라이나의 사이버 방어 수준이 높아서 우려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보도도 있지만, 그래도 스타링크는 도움이 됐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데 세계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수위를 높이면서 많은 나라에서 전쟁에 대한 허위정보를 퍼뜨리던 러시아 언론사가 퇴출당했지만, 머스크는 스타링크에서 러시아 뉴스 매체를 막지 않고 있다. 그는 트윗에서 “몇몇 나라에서 러시아 매체를 막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지만,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요구해도 응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하지만 나는 발언의 자유 절대론자(absolutist)”라고 밝혔다.“ 1976년 8월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개최된 비동맹 국가 회담에서 ‘신국제정보질서’를 발표했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는 “국가 간의 보도가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이 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부가 언론의 행동 규범이나 강령을 제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펼치는 반면, 이에 맞선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국가의 간섭이 배제될 때에만 실현 된다고 주장했다. 전자가 푸틴이었다면 후자는 젤렌스키의 입장이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다. 젤렌스키를 선택한 우크라이나민족이다. 미안하게도 여야 주요 주자 중에 젤렌스키 같은 유능한 후보가 없다. 그런데 문재인 청와대는 다음 대선을 두고, 국가 간 거래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부정선거 눈감아 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행위이다. 그들 인생도 참 딱한 인생들이다. |
첫댓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