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해양누리공원
마산의 새로운 명소 3.15해양누리공원 얘기이다. 이는 신포동 중앙부두 매립지에 세워진 김주열 열사 동상* 언저리에서부터 서항 매립지의 마산합포스포츠센터 앞까지 대략 2km에 걸쳐 해변을 따라 최근에 조성된 공원이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항만 시설관리나 안보 따위의 이유를 내세워 해안 쪽으로 접근을 철저히 봉쇄하며 높은 벽돌담이나 이런저런 울타리를 견고하게 설치했었다. 그렇게 뇌리에서 점점 까마득하게 잊혀진 성역(?)이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철옹성처럼 버티고 섰던 괴물 같은 금단의 벽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10여년 지난 지난해부터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변모하여 걸출한 휴식 공간이자 힐링의 장소로 등장해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연착륙했다.
마산은 어렵던 시절 축복 받은 영지였다. 왜냐하면 참혹한 민족상잔의 전쟁이었던 6.25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도시 전체가 파괴되거나 크게 화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 때문에 수많은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정전 후 혼란기를 지나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자유지역이나 한일합섬 같은 크고 작은 공장이 들어서며 유입인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면서 한동안 전국 7대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급격히 요구되는 주거문제 해결하기 위해 변변한 도시 개발계획도 없이 빈터와 무학산 비탈에 집을 짓는 무리가 연이어졌다. 도로교통, 생활 오수처리 시설, 공원 같은 휴식공간이나 문화시설이 따르지 못해 쾌적한 환경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시내 평지엔 공원이 없어 문제가 되었다. 이는 계획도시인 창원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도드라졌다.
마산 시내 평지에 유일한 휴식공간이라면 산호동에 자리한 ‘산호공원’이 유일하지 싶다. 그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다행히 마산 변두리를 둘러싼 무학산, 청량산, 천주산, 팔용산 등이 있어 경황(景況)에 따라 오르내리며 아쉬움을 벌충해 왔다. 하지만 아녀자나 노인들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그런 가슴앓이로 끌탕을 치던 상황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항구의 바닷가에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안겨줌은 무엇보다 삶의 질 보완에 이바지할 쾌거이다.
공원은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바닷가 쪽으로 조성했다. 그런데 대충 폭 100~400여 미터(m)에 길이가 2km로서 해안도로를 통행하는 차량 소음도 거의 완벽하게 차단토록 설계되었고 여기저기에 다양한 수목이 식재되거나 쉼터로 꾸며져 무척 쾌적하다. 이 공원의 시발점인 신포동에서 출발해 살펴보면 대충 이런 모습이다. 바닷물과 맞닿는 부분은 해수면보다 4~5m 높게 시멘트 옹벽을 설치하고 난간을 만들어 안전을 담보하고 있었다. 시작점부터 끝까지 육상경기장에 트랙이 그어져 있듯이 3개로 구분된 확연한 길이 만들어졌다. 먼저 이 난간부터 폭 4m 안팎의 초록색 보도(步道), 그 오른쪽엔 보도와 분리된 짙은 갈색의 자전거 전용도로 폭 4m 정도, 자전거전용도로에 바로 오른쪽엔 밝은 갈색의 보도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그 ‘밝은 갈색도로’ 오른쪽의 널따란 빈터에는 여러 가지 편의 시설과 벤치, 수목, 잔디광장 따위가 오밀조밀 정겹게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얼추 조성을 마쳤을 뿐 아니라 일부에는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까닭에 숲이 울창하게 어우러지지 않아 조금은 삭막하기도 하다.
“옥에도 티가 있게 마련이라”고 했던가. 이 공원의 코앞에는 ‘해양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인공(人工) 섬이 절벽처럼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바닷가라고 하지만 시종일관 조붓하고 완만하게 흐르는 강변을 따라 한가로이 길을 걷는 기분이다. 그런 때문에 해변 공원임에도 부산의 해운대 동백섬 둘레길이나 광안리 해변을 걷는 기분과는 사뭇 달라 미련이 남는다. 또한 이 인공 섬이 시야를 차단해 외만(外灣) 쪽의 ‘마창대교’의 미려(美麗)한 자태를 온새미로 감상할 수어 불만스럽고 무척 아쉽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항구의 바닷가를 따라 개설된 공원길을 얻은 대신에 이 구간은 항구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앞으로 인공 섬에 어떤 해양도시가 건설될지 모르지만 지금 해안도로에서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다리가 3군데 건설되어있다. 그 첫 번째는 신포동의 시작점에서 얼추 400m 지점에 건설되어 있고, 두 번째는 1km 지점에 보행자가 걸어서 건너는 전용 보도교(步道橋)가 건설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점은 공원의 중심광장과 야외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세 번째는 1.4km 지점에 건설되어있다. 한편 공원에는 레포츠 공간으로 “그라운드 골프장, 게이트볼 장, 테니스장, 다목적 구장(球場), 농구장, 물 놀이터, 능소화 덩굴터널, 해양레저 안전 체험 센터,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중간 지점(시발점에서 1km 지점)인 중심공간엔 “중심광장, 보도교”가 있다. 또한 문화예술광간으로서 “조수정원, 마산항 근대역사박물관”이 있으며, 역사 상징 공간으로 “겨울 연못, 민주주의 전당, 김주열 열사 추모지” 따위가 조성되어 있다.
공원을 거닐 때마다 그 옛날 맑은 바닷물이 출렁이던 해변으로 낚시를 하거나 해수욕을 하며 망아(忘我)의 낭만을 만끽하던 곳이었을까 라는 부질없고 생뚱맞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기껏해야 몇 만 명이 살던 시절에는 충분히 그랬을 게다. 그런 때문에 마산 태생의 이은상 님이 ‘가고파’라는 시에서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라고 읊었을 터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대했던 80년대의 마산 앞바다나 우금(于今)의 그것과 너무도 판이(判異)해 믿겨지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하기도 했다. 하도 믿겨지지 않아 토박이로 연세 드신 어른 몇 분께 여쭤본 뒤에 틀림없다고 사량(思量)되어 그리 믿기로 했다. 어찌 되었던 공원이나 휴식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시에 금싸라기 같은 항구의 해변 절반쯤을 뚝 잘라 어연번듯한 공원으로 꾸며서 시민들의 품에 돌려준 것은 당연한 주민 친화적인 정책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고마움 운운하며 유난을 떠는 내가 어쩌면 덜떨어진 엿돈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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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마산의 신포동 해안가 정부경남지방통합청사 앞쪽 중앙부두 매립지로서 김주열 열사 시신 이양지(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 소재)에 2021년 10월 25일 “김주열 열사 동상”이 제막되었다. 동상이 들어선 터(2003.9㎡)는 경상남도 기념물 277호로 지정돼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특정 부지가 문화재로 지정된 최초의 사례다. 김주열 열사는 1960년 마산상고에 입학해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뒤 4월 11일 중앙부두였던 지금의 동상이 세워진 바다에 시신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당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마산사랑, 창동을 걷다, 마산문협사화집 제9집, 2022년 10월 19일
(2022년 3월 18일 금요일)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교수님 ~^^
교수님
언젠가 시와늪 도반들과
3,15 해양누리공원
걷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