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우리집엔 흔한 항아리가 한 개도 없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운반하던 항아리인데 어느 순간부터 항아리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하기 이전엔 초가에서 살았습니다. 가을이면 짚을 구해다 이엉을 엮어 지붕을 올리는 것이 연례행사였지요. 그렇게 튼튼하게 지붕을 해 일어도 긴 장마엔 으레 집이 새기 마련이고 천장 또한 쥐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 쥐똥과 쥐 오줌으로 늘 누렇게 변색된 도배지 아래서 생활했지요.
베란다 문화가 없었던 시절이고 보면 문창호지 하나로 겨울을 맞서야 했고 밤이 되면 쥐들이 천정에서 운동회를 하는 바람에 잠이 깨기도 했지요. 긴긴 겨울밤에 소복소복 눈이 내리면 아침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었습니다.
김광섭은 설야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옷벗는 소리"에 비유했지만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을뿐더러 눈은 소리 없이 내렸으니 그건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눈 내리는 날이면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그렇게 복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싸리비를 꺼내어 장독대까지 길을 내는 것도 눈 내린 아침에 할 일 중의 하나였지요. 한 겨울 김장 김치가 얼지 말라고 장독대 위에 짚으로 고깔을 씌워 놓기도 했습니다.
뒤란에 장독대는 크고 작은 것이 옹기종기 20개는 족히 있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를 디지털 문명이 밀어내었고 정감 어린 장독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자리엔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자리하고 있으니 이젠 항아리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갑니다.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풍접초와 같은 꽃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 꽃 속에 파묻혀 숨바꼭질하던 때가 어제런듯 합니다. 아련한 우리의 것들이 편리함으로 위장한 문명의 이기에 밀려 세월의 무대 뒤로 사라질 때 시대에 유감이 드는 것은 나이 든 탓일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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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이 분은 눈 내리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새벽 문창호지 너머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특히 싸락눈이 내릴 때면 더 잘 들렸죠. 하기사 소리가 나든 안나든 그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장독대 위에 쌓인 눈은 몹시도 소담스럽던 기억도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