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3일 목달 후기는 민경식 회원님께서 쓰기로 하였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목달에 관련된 각종 글들은 (사진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CD-ROM에 굽어서 항상 보실 수 있도록 목달에 오시는 여러 회원님 들에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어느 정도 분량이 됬을때)
하오니 목달 에서 올리는 글은 한번 읽히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추억 속에 남을 수 있는 기록물로 선물된다는 사실을 유념하시어 목달 후기를 올리는데 있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면 대단히 감사 하겠습니다.
목달은!
방관적 참여가 아닌 적극적 참여!
참여 목달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왜 달리느냐고 묻는다면 !
산을 오르는 사람이면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물을 것이고
보통의 평범한 소시민이면 왜 사느냐고도 물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들은 현자들의 깔끔히 정리된 답도 있고 조금은 포장된 삶의 답들도 있을 것이다.
재주 있는 사람들의 좋은 글이 있고 현자들의 현명한 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재주가 있어서 남들을 감동 시켜본 적도 없고, 말재주가 있어서 남들을 웃겨보지도 못한 놈이 갑자기 펜대를 굴린답시고 깝죽거리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면 가히 세상이 비웃을 일이나, 몇몇 오렌지족처럼(혹시 오렌지 계시면 죄송합니다.) 부모를 잘 만나 평생 여행이나 하면서 살수 있는 여유도 없고, 남들처럼 공부를 잘해서 떳떳이 내어놓을 지갑(직업)을 가진 것 도 아니고, 얼굴이 잘나서 언제나 스카우트 될 수 있는 연예인의 자질을 가진 것도 아닌 내가 삶의 가치를 여기에서라도 만들어 보아야 하겠기에,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에게 "열심히 살았으니까 조금만 봐주시오" 변명할 수 있는 핑계라도 있어야 하겠기에......
다행히 왜 달리느냐고 묻는 화두에 대한 답들은 수억만 가지의 답들이 있을 수 있고, 수많은 답 중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답이 있으면 굳이 이렇게 정리할 필요도 없이, 그것을 자신의 지주로 삼아서 자신의 삶에 적용을 하고 살면 아주 편하고 쉽게 살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 쉽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요즘의 내 건강으로는 답을 구하고 도를 터득하려고 하면, 왜 달리느냐고 묻는 화두 하나의 의문을 구하는데 있어서 나의 남은 마지막 생을 다 바쳐도 구하지 못할 것 같다.
하여서
수억 만가지 답들 중에서 나에게 맞는 답을 구하기보다는 좀 빈약하고 부족하지만 내 스스로가 그러한 답들을 나에게 맞추어 만들어 가는 것이 조금은 빠를듯하여 잔대가리 굴려가며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그러한 이유에 대하여 한가지씩 정리해 보고 싶을 따름이다.
순서는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서 자신에게 던져진 화두들을 하나씩 챙겨 보고 싶다.
지금의 낙동강 뚝 길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부산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성큼 다가와 자리 잡고 있지만, 빡빡 머리 밀고 중(中)자 붙인 모자를 눌러쓴 나에게는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는 꽤나 멀게 느껴졌던 길이기도 하였다.
신작로가 나있는 길로 걸어오면 조금은 가깝게 집으로 올 수도 있지만, 한번쯤 마음이 통하면 괜히 먼 뚝 길을 걷곤 했다.
나의 주먹을 유심히 보면 정권에 굳은살이 박혀 있어서 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정식으로 운동을 배워본 기억이 없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뚝 길에 널 부려져 있던 기와장을 깨는 취미가 있었다.
걷다가 심심하면 죄없는 기와장을 연신 격파하곤 했다.
한번은 운동을 하던 영구네 도장에 놀러갔다가 샌드백을 치던 나의 펀치력(?)을 보고는 권투를 해보라고 하던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정권에 박힌 굳은살의 출처이리라.
그렇게 걷고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어린(?) 아 ~ 들은 어느새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소위이야기 하는 칠성파나 칠공주파 뭐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된 비밀 조직은 아니다.
그냥 처음으로 모인 장소가 다락이니 다락회가 적당한 것은 아닌가해서 그냥 다락으로 부른 것 같다.
요즘의 집들이야 다락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옛날의 집들은 다락이 참으로 많았었던 것 같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고 열악한 주거환경의 여건상 다락은 필요 했었으리라.
꿈 많은 시절에 다락방에서 비밀스러운 조직의 결성은 이루어졌다.
각각 담당을 맡은 것이 천문, 화학, 전자, 물리 등인 것으로 기억이 된다.
수준에 맞지도 않는 책들을 보수동 헌책방에서 구입을 하곤 폼재는 일들하며......
대부분은 과학동아에 나오는 내용의 주제를 깊이도 없으면서 딴에는 각자의 주장을 밤새 우기곤 했다.
그렇게 서로 우기다 보면 맘이 상하여 틀어지고, 그리곤 얼마가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밤새 이야기하곤 하였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만 하여도 수많은 사연과 글로 남길 수 있을 것이지만, 시간과 내용의 진부함으로 인해 기회가 된다면 차후 조금씩 끄적거리기로 하고......
굳이 이러한 진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이다.
다락에 모여 난상 토론하던 친구중 철수라는 녀석이 있었다.
떡 벌어진 체격에 조금은 과묵하고 말이 없는 녀석이다
난상 토론 중에도 꿋꿋이 말이 많지 않았던 녀석이다
소위 말해 촌 머슴처럼 생겼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
큰 키에 한 대 맞으면 어지간한 사람은 나가떨어질 만한, 악수를 하여 보면 녀석의 손은 나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은 뭉툭하면서 한편으로는 듬직하기도 했다. 혹여 어디 가서 시비라도 붙으면 녀석의 뒤에 서있으면 싸움은 시작도 안하고 그냥 끝날 것도 같았기에 듬직하기도 했다.
각설하고!
계절이 몇 번은 지나고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고 대학을 가고 하는 사이에 다락에 얽힌 사연은 추억으로 남겨질 시간이 되었음직한 따스한 봄날 어느 날 캠퍼스 시계탑 언저리에서 오른손에 붕대를 감아든 녀석의 모습을 보았다.
시간이라는 것이 추억을 추억에 남게 하는 것인가 보다.
항상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 있었으면서 그 추억을 찾고자 적극적으로 수소문하여 보거나 하는 행위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이면에는 조금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향이 한몫을 했으리라!
여하튼 잠시의 만남을 통하여 녀석은 일주일 후 군에 입대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손에 감은 붕대는 일하다 다쳤다는 사실도 알았다.
사실 녀석의 가정 상황은 그다지 넉넉지 못하였고, 학생운동에 열중하여 취업 전선에서 활동하였던 걸로 들은바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입대를 불과 일주여 남겨놓고 다치고 만 것이다.
붕대에 감겨 있으니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고, 시간이 흘러 녀석이 입대 한후 군의관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거쳐서 군면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한참이나 지난 후에 들었다.
사실 궁금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군 입대를 하지 않았지만 2년여를 다른 일을 한 후에 복학하여 졸업 한것으로 들은것 같다.) 그리고 캠퍼스 내에서 가끔씩 녀석을 만났지만 나는 한번도 묻지를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를!
사실은 묻기 전에 녀석이 이야기 해 주었으면 하였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새끼 낳고 하는 사이에 다락으로 시작된 만남부터 계산하여보면 거의 삼십여 년이 흘렀다.
다락에 모였던 녀석들 중 한 녀석이 늦깍이 장가를 간단다. 옛날 같으면 손자 볼 나이(?) 평생 장가 안가고 녀석 모친 애 많이 썩힐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새삼스레 장가를 간단다. 아무튼 반갑기도 하여서 청춘 예식장에 들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더벅머리 철수가 와있지 않는가! 집사람과 듬직한 아들, 엄마를 닮아서인지 예쁜 딸과 함께 언제나 변함 없는 큰바위 얼굴이 되어 덩그러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선뜻 악수를 청한다.
어! 이게 누꼬!
반갑다!
두 손을 마주잡는 순간 분명히 보았다.
오른손 검지 앞마디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집안일 이 있다고 하며 총총히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은 왜 달리느냐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면 이러한 화두를 던지고 싶다.
악수하면서 나의 오른 손 검지를 볼 것인가요!
악수하면서 나의 오른손 정권에 박힌 굳은살을 볼 것인가요!
더하고 싶은말
혹여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 미리 밝힙니다.
글 중에 조금은 과장되고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추상적인 생각을 적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약간의 허구가 가미될 수도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고, 본인에게 사실 여부를 묻는 우매함을 보여주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아이리 어렵노 니가그러니난 너무 취했다
아니 무신 그리 능력도 탁월하신지 원. 갑자기 울산의 강혜승선배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요. 글,글하면 우리효마클에서 단연 으뜸인지라, 쬐끔 위기감느끼시겠다. 히히. 어제 목달도 무사히 마치셨군요. 암튼 다음주 화요일 화명동(복고을)복집에서 제가 점심사겠습니다. 그럼 휘리릭~.
목달지기님~, 휴
평소에 그리 술도 많이 묵고,이야기도 많이 했건만,새로운 면을 봐, 어리둥절함다.
이기 무신 말입니꺼. 글재주는 보통수준은 넘는거 잩은디 맞장을 함 투 보자는 얘기닙까 아이믄 건딜지 마란 이바구닙까 잘 읽었읍니다
내사 마 뭐가 뭔지 한개도 모리것다. 근데 다락은 알것구만. 고딩때 ㅉㅉ이 뒤풀이로 부전역앞 꼼장어집 다락방, 또 80년에는 용두산 밑 고갈비집 다락방(그때는 진짜로 촌놈이 갈비인줄 알고 따라갔는데). 아~~~! 뒤로 뛰면 그때로 갈 수 있으려나..
이종근 선배님! 거듭 이야기 합니다만 숨은 재능을 다시 살려 보시죠. 요즘 늦깍이 문단 데뷰자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60넘어서 소설 신인상 받았는데, 이 선배님이 좀 더 다듬는다면 신춘에도 도전 해 볼만 할 것 같습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