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16장 (구 356장) / 누가복음 23 : 39 – 5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1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39절 – 56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이리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아멘!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33년을 이 세상에 사시고, 성 금요일 제 3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제 9시쯤 되어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에서 6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십자가형은 노예나 반역자나 살인죄, 탈주, 비밀 폭로죄, 강도까지 이 형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형이 법질서를 유지하는데 유용하다고 인식한 로마의 속국을 다스리던 총독들에 의해서 집행되었습니다. 전시효과로 백성들의 범죄와 소요를 막기 위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교차로에서 형을 집행하였답니다.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에 보통 피가 날 때까지 매질을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자로서 고통을 덜어주고 빨리 죽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처형장까지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메고 걸어갑니다. 예수님은 심한 매질을 당해 십자가 나무를 메고 처형장까지 가실 기력조차 없어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짊어지고 갈 정도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때문에 그렇게 채찍에 맞고 발길로 채이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많은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수직 말뚝 중간에 엉덩이를 받칠만한 작은 나무를 대어 체중으로 인하여 손이 찢어져 손에 박힌 못이 빠져나오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지를 꼼짝할 수 없게 메 달려 모진 날씨나 새들에게 노출되어 구경꾼들의 욕설과 조롱에 그대로 노출되어 육신의 아픔과 처절한 고통을 당하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더러는 매장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나무에 달아두어 새들이 시신을 다 쪼아 먹도록 내버려 둠으로 모욕하기도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이런 수치와 모욕과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비참하게 처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44절 말씀을 보면, 그렇게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을 때, 해가 빛을 잃고 어두움이 3시간동안 드리우게 됩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어두움은 하나님이 그 아들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게 되었을 때, 십자가를 덮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두움이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절규하시는 십자가의 처절한 아들을 볼 수가 없어 어두움으로 가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의 죄악과 허물이 심각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그만한 죄를 속하기 위하여 이 고통, 이 아픔, 이 수치, 이 모멸감을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다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가 동시에 떨어진 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한 대가였습니다.
다음으로 45절 말씀에 보면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소의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고백한 바와 같이, 성소의 휘장이 찢겨서 우리는 담대하게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화목케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면, 우리 예수님은 운명하시기 전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모든 된 일을 본 로마의 백부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 예수님은 메시아, 구원자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인들이 마지막까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연약한 여인들은 주님의 고난과 아픔의 현장을 끝까지 따르며 주님께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렇게 바로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주를 앙망하며 사모하는 이 여인들이 그랬습니다. 결국 이 여인들은 부활의 아침에 부활의 영광을 제일 먼저 경험한 여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0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아리마대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평범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예수님을 위하여 한 몫 하는 믿음직하고 든든한 제자입니다. 교회에는 이런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피하고 몸을 사리고 이유와 변명이 많은 힘이 되지 않는 허약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유익하고 존경 받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잘라 버려야 할 것들을 과감하게 베어 버려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인격과 신앙과 삶을 잘 관리하여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어려운 일을 잘 감당한 아리마대의 요셉과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마가와 요한은 요셉을 산헤드린 공의회의 요직을 맡은 자로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아리마대 요셉을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요셉을 부자라고 표현하였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비록 요셉이 은밀하게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이나 교인, 이웃과 불신자들에게 아리마대 요셉처럼 ‘선하고 의로운 사람’ ‘예수님의 제자’ 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 모두 이 시대의 의로운 요셉이 되고 의로운 요셉으로 가득한 우리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다음으로 아리마대 요셉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을 노출시키지 않았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담대히 떨쳐버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요셉의 요청대로 예수님의 시체를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정성껏 장례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손해나 불이익도 계산하지 않는 아리마대의 요셉처럼 예수님을 위해 용기 있게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다음으로 아리마대 요셉은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세마포에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자기 새 무덤”에 안치하므로, 영원히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몸을 가지신 예수님을 모시는 헌신을 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레네 시몬처럼! 로마 백부장처럼,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처럼,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처럼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의로운 사람, 용기 있는 사람, 헌신적인 사람들이 되어 예수님의 영광된 부활에 동참하시기를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