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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제20일 2019년 2/15 (금) 뉴 욕(미국)
[ 뉴욕 관광 ]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 자유의 여신상 유람선 투어
- 뉴욕 시내 관광
미국
뉴욕
미국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적 지위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1946년 국제연합(UN) 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었다.
뉴욕주의 남동단, 뉴욕만(灣)으로 흘러드는 허드슨강 어귀 일대에 위치한다. 허드슨강·이스트강·할렘강·뉴욕만 및 롱아일랜드 수로(水路) 등에 의하여 구획된다. 대도시권으로서의 뉴욕은 시역 밖으로 뻗어, 뉴저지·코네티컷의 두 주에도 미치고 있다.
시는 맨해튼·브롱크스·브루클린·퀸스 및 스태튼섬의 5개구(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은 시의 중심부이며, 그 남단에 금융 중심지인 월가(街)가 있다. 월가에서 북동쪽으로 브로드웨이와, 이것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5번가의 두 대로가 시를 종관(縱貫)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42번가는 타임스스퀘어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며, 그 남쪽에 펜실베이니아역(驛), 동쪽에 그랜드센트럴역 등 도심의 두 주요역이 있으며, UN 본부도 동쪽 이스트 강가에 있다.
맨해튼섬의 북동부는 흑인 거주지구로 알려진 할렘이며, 여기서부터 할렘강을 사이에 두고 브롱크스구(區)가 된다. 브루클린구는 롱아일랜드의 남단에 위치하는데, 맨해튼섬과는 맨해튼교(橋)와 브루클린교로 연결되어 있다. 브루클린구는 북쪽에 있는 퀸스구와 함께 주택지가 많으나 남부에는 해군공장이 있고, 퀸스구에는 케네디 국제공항이 자리잡고 있다. 스태튼섬은 주로 공장지구와 주택지구로 이루어진다.
2월기온:-3~4도
뉴욕지도
뉴욕
대서양 연안의 주 가운데 하나이다. 북쪽은 온타리오 호와 캐나다의 온타리오·퀘벡 주, 동쪽은 버몬트·매사추세츠·코네티컷 주와 접하고, 남동쪽 끝은 대서양과 접한다. 남쪽 경계는 뉴저지·펜실베이니아 주, 서쪽 경계는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호, 온타리오 호,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등이다. 주도는 올버니이다.
대서양 연안의 미들스테이츠 가운데 하나이다.
북쪽은 온타리오 호와 캐나다의 온타리오·퀘벡 주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은 버몬트·매사추세츠·코네티컷 주와 접하고, 남동쪽 끝은 대서양과 접한다. 남쪽 경계는 뉴저지·펜실베이니아 주이고, 서쪽 경계는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호, 온타리오 호,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등이다. 주도는 허드슨 강가에 있는 올버니이다.
뉴욕 주에는 원래 2종류의 주요 인디언 집단들이 살았다.
알공킨어를 사용하는 모히간족과 먼시족이 있었고, 모호크·오나이다·오넌다가·카유가·세네카족 들로 이루어진 이로쿼이족 연맹프렌치-인디언 전쟁허드슨이 그의 이름을 딴 허드슨 강을 탐험(1609)한 뒤 네덜란드
네덜란드인들은 1624년에 포트오렌지(지금의 올버니)를 건설했고, 1625년에 뉴앰스터댐을 건설했다. 1664년에 영국인들이 뉴앰스터댐을 지배하게 되자 뉴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763년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에 패배하자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이 뉴욕으로 활발히 이주하기 시작했다. 미국 독립전쟁
뉴욕 주는 미합중국 헌법을 승인한 11번째 주였다. 1810년경에 뉴욕은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주가 되었고 이미 제조업·무역·운송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뉴욕 주는 지형학적으로, 여러 지역으로 구분된다. 그중 애팔래치아 고원
허드슨모호크 저지대는 허드슨 강을 따라 북으로 올버니 시까지 뻗고, 거기서 모호크 강을 따라 서쪽으로 펼쳐진다. 이리-온타리오롤랜즈로 알려진 고원지대는 애팔래치아 고원 북쪽과 모호크 계곡의 서쪽에 걸쳐 있다. 이 지대는 오대호의 남쪽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서쪽에는 애디론댁 산맥이 있는데 산맥 남쪽에 있는 애팔래치아 고원과는 지질구조가 다른 노년기 고원이다.
월평균 기온은 뉴욕시티가 12℃로 가장 높고, 레이크플래시드가 4℃로 가장 낮다.
주 전체에 걸쳐 날씨가 흐린 편이어서 맑게 갠 날이 드물다. 연강수량은 810~1,140㎜이다. 캐츠킬 산맥 부근이 강우량이 가장 많고 이리·온타리오 저지대가 가장 적은 지역이다. 버펄로와 워터타운 동쪽지역에는 드물게 많은 눈이 내린다.
식민지시대부터 뉴욕 주의 성장은 주로 이민에 기인한다. 20세기말 현재 뉴욕 주 사람들 8명 가운데 1명이 외국 태생이다. 흑인이 전체 인구의 1/8 이상을 차지하며, 라틴 아메리카계 사람들도 거의 1/10 가량 된다. 주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는 소수집단인 푸에르토리코계는 대부분 뉴욕시티에 산다.
뉴욕 주는 1970~80년에 인구가 줄어든 몇 안 되는 주들 가운데 하나이다. 같은 시기에 뉴욕시티의 인구는 10% 이상 줄었다. 그러나 인구밀도는 여전히 높다. 1970년에 캘리포니아 주가 뉴욕 주를 앞질러 인구가 가장 많은 주가 되었다.
뉴욕 주의 경제는 국가 경제활동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큰 몫을 담당하는 분야로는 도·소매업, 금융·보험·부동산, 교통·통신·공익 사업, 제조업, 건설, 행정 등이 있다. 농업소득의 주요원천은 낙농제품과 소 사육이다. 주요작물은 건초·옥수수·사과·감자 등이며 주요광물은 돌·모래·자갈·아연, 소금 등이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제조업으로 인한 부가가치 총액은 여전히 전국적으로 높은 편이다.
허드슨 계곡과 모호크 계곡은 전부터 주의 주요 교통로였으며 허드슨 강과 모호크 강은 이리 운하의 기초였다.
이 강들의 계곡들을 거쳐 버펄로와 시카고에 이르는 뉴욕센트럴 철도가 지나며, 최근에는 뉴욕 주 고속도로가 같은 방향으로 건설되었다. 이리 운하를 현대적으로 바꿔 계승한 뉴욕 주 바지 운하뉴욕시티
뉴욕시티 대도시권에는 3개의 국제공항이 있다. 주 전체에 걸쳐 광대한 도로망을 갖추고 있으며 철도망도 잘 짜여져 있다.
뉴욕시티는 미국 금융의 중심지이고, 전국의 주요 주식거래소가 시내에 있다. 시는 미국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데 패션, 극장, 텔레비전 방송, 음악의 여러 유행들이 이곳에서 생긴다. 또한 뉴욕시티는 오랫동안 뉴스 매체의 세계적인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국제연합이 이곳에 있다.
그러나 문화 및 문화 관련활동이 뉴욕시티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버펄로와 로체스터에 유명한 예술박물관들과 뛰어난 교향악단들이 있다. 로체스터에 있는 이스트먼 음악학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쿠퍼스타운에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있다. 또 교육의 기회도 풍부하다.
Ⅴ. 관광지 안내 – 뉴욕(미국)
♣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강 입구의 리버티섬(Liberty Island)에 세워진 조각상으로, 프랑스가 1886년에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이다. 횃불을 치켜든 거대한 여신상으로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지만 통상 자유의 여신상으로 알려져 있다. 여신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각이지만 내부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축물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작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조각했다고 하며, 에펠탑의 설계자이기도 한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내부 철골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맡았다. 구스타브 에펠은 미국으로 옮기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역할도 맡았다. 여신상의 받침대는 건축가 리차드 헌트(Richard Hunt)가 디자인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은 자유와 희망상징.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édéric-Auguste Bartholdi)와 공학자·토목 기술자인 구스타브 에펠이 협업하여 만들었다. 자유를 기념하는 이 높다란 조각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조각상은 뉴욕 항(New York Harbour) 입구에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을 환영해 왔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뉴욕 앞바다에는 자그마한 2개의 섬이 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은 빌딩이 즐비한 맨해튼을 바라보고 있는 2개의 섬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두 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이 녹아 있으며, 두 섬 중 하나인 리버티 섬에는 ‘자유의 여신상’이란 거대한 동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온 인류에게 던지는 상징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전쟁, 독재, 가난을 뒤로하고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을 맞아 주었던 자유의 상징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미국에 기증한 작품으로 오른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 기념일이 새겨진 책을 들고 있지요.
자유의 여신상은 리버티 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1886년 이후 오늘날까지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우뚝 서서, 기회의 땅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1931년 지어진 이래 오랫동안 뉴욕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높이 381m, 102층으로 처음 완공됐을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67m 높이의 텔레비전 방송 안테나는 1950년에 추가로 설치된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29년 대공황 때 단시간에 완공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아한 아르데코풍 건물은 <러브 어페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킹콩> 같은 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는 86층, 102층 두 곳에 전망대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86층 전망대까지만 올라간다. 실외로 나갈 수 있는 86층 전망대와 달리 102층은 유리창으로 막혀 있고, 입장료 외에 추가 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비며 일몰 시간에는 절정을 이룬다.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의 정식 국가 명칭은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며, 수도는 워싱턴 D.C.이다.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은 1945년 10월 24일에 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으며, 국가형태는 연방공화국이고, 정부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국토의 면적은 982만 6,675㎢로서 세계 3위이며, 한반도의 약 45배가 된다. 위치는 서경 66°57′~124°44′, 북위 25°7′~49°23′, 북위 40°선을 중심으로 한 온대지역에 있으며,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남북의 위도 차이가 24°나 되는 대륙인 만큼 기후의 차이가 심하다.
자유와 희망,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에두아르 드 라불레의 제의로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에두아르 드 라불레가 미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기념하는 동상을 만들자고 한 거예요. 에두아르 드 라불레는 추진 위원회를 설립하고, 동상을 만들 작가로 프랑스 출신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를 선정했어요.
1871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간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이미지를 확정했어요. 그리고 1874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를 만나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는 일은 미국과 프랑스 사람들 모두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 맨해튼 바로 앞에 있는 리버티 섬(당시 지명 베들레 섬)에 세우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 7월 4일에 공개하기로 했지요. 동상은 프랑스에서 만들고, 동상을 올려놓을 받침대는 미국에서 만들기로 했답니다.
또 나라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건설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모금액은 아주 적었답니다.
모금 운동은 1875년에 시작되었지만 성금이 목표한 금액보다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은 1881년에야 겨우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자신의 어머니를 여신상의 모델로 삼고, 얼굴의 형태를 만드는 등 기초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나이 많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어머니를 닮은 젊은 여인을 찾아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한 여인을 찾아냈다고 해요.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은 프랑스 여성인 셈이지요. 흥미롭게도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모델이었던 그 여인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실물 크기로 동상을 만들기 전에 4분의 1 크기로 축소된 동상을 만들었어요. 여러 번 모형을 제작하여 문제점을 해결한 뒤 본격적으로 동상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4년에 드디어 완성되었어요. 여신상은 완성되었지만 곧장 미국으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준비하기로 약속한 받침대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미국 역시 받침대를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기로 했지만 성금이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금 모금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유명한 신문 발행인 조지프 퓰리처였어요.
미국에서 신문사를 운영하던 퓰리처는 자신이 운영하는 ‘더 월드’라는 신문을 통해 모금에 참여해 줄 것을 시민들에게 부탁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그 결과 1885년 자유의 여신상을 올려놓을 별 모양의 받침대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높이 46m, 총무게 225t에 달하는 거대한 동상은 완성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운반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거대한 동상을 효과적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300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누었고, 기차를 이용하여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프랑스의 항구 도시 루앙으로 운반했어요. 그리고 루앙에서 현재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리버티 섬까지는 프랑스 군함으로 옮겨 왔습니다.
리버티 섬으로 옮겨 온 자유의 여신상을 원래 상태로 조립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별 모양의 받침대 위에서 나누어 옮겨 온 여신상을 조립했지요. 조각 1개가 수백 kg이나 되는 동상을 정확하게 조립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오늘날처럼 첨단 건축 기술과 거대한 장비가 있었다면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공사였습니다.
드디어 1886년 10월 28일, 성대한 동상 제막식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불리게 된 것은 나중이고 동상의 원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였습니다.
높이가 47m인 받침대 위에 46m 높이의 동상이 세워졌고, 둘을 합한 전체 높이는 93m였습니다. 거대한 동상을 본 뉴욕 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그 이전까지 만들어진 어떤 동상보다 아름답고 웅장했기 때문이지요.
별 모양의 넓은 기단 위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에는 무척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어요. 우선 오른손에 들고 있는 횃불은 자유의 빛(‘계몽의 빛’이라고 부르기도 해요)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사각형 책자는 미국 독립 선언서를 상징한 것으로 앞면에 ‘1776년 7월 4일’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왕관에 달린 7개의 가시는 북극해, 남극해, 남대서양, 북대서양, 북태평양, 남태평양, 인도양의 7개의 바다와 전 세계의 대륙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몸을 감싸고 있는 긴 옷은 민주주의를 실행했던 로마 공화국을 상징합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신상은 쇠사슬을 발로 밟고 있습니다. 여신상이 밟고 있는 이 쇠사슬은 노예 제도 폐지를 의미하고 있지요.
자유의 여신상 제작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했지만 조각상을 세우는 데 기여한 사람은 따로 있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전체 무게가 225t이나 되는 거대한 모습이지만 두께가 2.37mm에 불과합니다. 이런 거대한 동상을 얇은 두께로 유지하게 하는 것은 첨단 과학이 발달한 요즘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귀스타브 에펠은 얇은 청동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동상 안에 철재 구조물을 설치했습니다. 훗날 귀스타브 에펠은 자유의 여신상을 지탱하는 철재 구조물을 만든 것을 응용하여 파리 에펠탑을 만들게 되었답니다.
자유의 여신상 안에는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동상 안에 각종 자료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있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상이 아니라 받침대 안에 박물관이 있지요. 이 박물관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만드는 과정을 비롯하여 사용한 재료와 모형, 도구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인 왕관 부분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뉴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구리로 만들어졌어요. 구리로 만들었다면 분명 어두운 갈색이거나 검은색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어야 하는데 자유의 여신상은 밝은 녹색을 띠고 있지요. 처음 프랑스에서 완성된 동상의 색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리 색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군함에 실어 대서양을 건너 옮기는 과정에서 바닷바람 때문에 빠르게 산화되었지요. 리버티 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밝은 녹색으로 변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상은 지금도 희망과 생명을 상징하는 밝은 녹색을 띠고 있는 것이랍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지구촌에 세워진 어떤 동상보다도 크고 웅장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크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자유의 여신상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자유와 희망입니다. 자유의 여신상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를 바라는 그대여, 가난에 찌들어 지친 이여, 나에게 오라. 고난에 처해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황금의 문가에서 횃불을 들리라.’
전 세계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거대한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가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전쟁으로 가족과 형제를 잃은 사람과 가난과 독재 정권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 그리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민주주의의 상징입니다.
① 파리 자유의 여신상
파리 자유의 여신상
파리를 흐르는 센 강변에는 뉴욕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비슷하게 생긴 또 하나의 자유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센 강 그르넬 다리 아래 백조의 섬에 세워진 파리 자유의 여신상은 공교롭게도 뉴욕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파리 자유의 여신상이 훨씬 작지만 두 여신상은 전체적인 모양과 분위기가 무척 비슷합니다.
물론 뉴욕 자유의 여신상은 넓은 바다와 세계 최고의 마천루로 불리는 맨해튼을 배경으로 서 있고, 파리 자유의 여신상은 나지막한 석조 건축물이 늘어선 곳에 서 있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두 동상이 비슷하게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파리 자유의 여신상을 두고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많습니다. 어떤 학자는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이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 기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기 1년 전인 1885년 파리 시에 기증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파리 자유의 여신상의 받침대를 뺀 높이는 11.5m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실제 크기로 제작하기 전에 4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었다고 했지요? 파리 자유의 여신상은 바로 본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축소해 만들었던 작품이랍니다.
② 엘리스 섬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리버티 섬 바로 앞에는 미국 이민사를 보여 주는 엘리스 섬이 있습니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엘리스 섬은 가난을 극복하고 자유를 찾기 위해 신대륙으로 이주해 온 이민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갔던 곳입니다. 초기에는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 같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과 중동,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주해 오자 미국은 이민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엘리스 섬에 이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민에 대한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져 가난한 이민자와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이곳에 머물다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답니다.
이민자에 대한 철저한 심사로 유명했던 엘리스 섬의 출입국 관리소는 현재 이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물관 1층에는 당시 이민자들이 가져온 가방과 짐을 넣어 왔던 상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민에 관련된 수많은 사연이 실린 신문기사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미국 이민사에 관하여 알 수 있도록 꾸며져 있지요.
박물관 2~3층에는 세계 각국에서 뉴욕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초대형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어떤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왔는지 알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이민 박물관 앞 공원에는 이곳을 거쳐 간 이민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후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상 포인트 여객선 위에서 보는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을 가장 확실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약도 많고, 값도 비싸지요. 여객선 갑판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그만입니다. 맨해튼과 리버티 섬과 엘리스 섬을 오가는 여객선의 갑판 위에서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여신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여객선에 오르면 먼저 갑판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유람선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갑판에 올라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면 거리와 각도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여신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맨해튼을 출발하는 항구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이 아주 작게 보이지만 리버티 섬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크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여객선이 리버티 섬에 정박하기 직전 섬을 반 바퀴쯤 돌아가는데 이때 펼쳐지는 광경이 장관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은 거대한 빌딩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여신상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여객선이 움직일 때마다 모습이 바뀌는 여신상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갑판 위에 서면 마치 100년 전의 이민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 기회의 땅 뉴욕으로 들어왔던 이민자들만큼 긴장과 흥분을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기분을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뉴욕 상징건물.뉴욕의 대표적인 두 전망대)
높이 443m, 102층 건물로 1931년 공사를 시작한 이래 2년 만에 지어진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화강암, 대리석 그리고 스테인레스 자재로 지어져 완공 당시 스펙터클한 면모를 가진 스카이 스크래퍼였다. 매년 4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할 정도로 유명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경제 공황 땐 빈 사무실들이 많아 ‘텅빈 주의 빌딩(empty state building)’이라는 오명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뉴욕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만 1억 명 이상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였으니 그들의 부도 위기를 면하게 해준 것은 바로 관광객들의 힘이 가장 크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이래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었지만 제1의 테러 대상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그런지 오피스 주인들이 사무실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격
86층 전망대 : 성인 $32 / 어린이(6~12세) $26 / 노인(62세 이상) $29
86층 익스프레스 티켓(줄 서지 않고 바로 입장) : $65
86층 전망대와 102층 전망대 : 성인 $52 / 어린이(6~12세) $46 / 노인(62세 이상) $49
86층 전망대와 102층 전망대 익스프레스 티켓 : $85
뉴욕 시티 패스(New York City Pass, 다른 관광 명소들을 패키지로 둘러볼 수 있다) : 성인(18세 이상) $114 / 어린이 · 청소년(6~17세) $89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뉴욕 주 뉴욕 시 맨해튼 섬 5번가와 34블록의 모퉁이에 있는, 1931년에 지어진 울워스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1931년 뉴욕 시에 건설된 102층의 철골 구조 건물.높이 381m인 이 건물은 이같은 거대한 규모의 마천루로서는 세계 최초의 것이었고 195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1950년 67.6m의 텔레비전 안테나 기둥이 정상부에 세워져 전체 높이가 448.6m로 높아졌다. 이 건물은 뉴욕 중부 맨해튼 34번가 51번 도로변에 약 0.8㏊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대기 시간 : 관람객이 많은 시즌은 가늠할 수 없다
티켓 가격
86층 전망대 : 성인 $29 / 어린이(6~12세) $23 / 노인(62세 이상) $26
86층 전망대와 102층 전망대 : 성인 $46 / 어린이(6~12세) $40 / 노인(62세 이상) $43
줄을 피하는 법 : 온라인으로 티켓을 사면 대기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고 익스프레스 티켓은 20분 안에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 : 360도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시야 : 날씨가 좋은 날은 다섯 개의 자치구를 모두 볼 수 있다.
붐비지 않는 시간 : 아침 9시 전이나 밤 10시 이후.
촬영된 대표적인 영화 : 〈킹콩〉
관람객층 :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 특히 한국인, 중국인 등 동양인이 많다.
* 톱 오브 더 락(Top Of The Rock)
대기 시간 : 1시간 30분
티켓 가격
성인 : $29 / 어린이(6~12세) : $18 / 노인(62세 이상) : $27
일출 · 일몰일 때 : 성인 $42 / 어린이 $24
전망대 : 67층, 69층, 70층 총 3곳
붐비지 않는 시간 :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밤
관람객층 : 유럽인 관광객들과 뉴요커들
촬영된 영화 : 〈온 더 타워〉
특징 : 탁 트인 센트럴 파크의 전경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볼 수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와는 달리 시야를 막는 장애물이 없다.
제20일 2019년 2/15 (금) 뉴 욕(미국)
[10:00] 미국 경제의 중심지 뉴욕 기항 [10:30] 크루즈 하선 후 가이드 미팅 [ 뉴욕 관광 ]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 자유의 여신상 유람선 투어 - 뉴욕 시내 관광 [20:00] 저녁식사 후 공항으로 이동 [21:00] 뉴욕 국제공항 도착, 항공기 탑승 및 출국 수속 |
제21일 2/17 (일) 인 천
[05:15] 인천국제공항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