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기행(5/6) 차와 동백이 아름다운 만덕산 백련사
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만덕산(萬德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백련사에 대한 사적은 1432년(세종 13)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 八道地理志》와 정약용(丁若鏞)의 《만덕사지 萬德寺誌》 등에 나타나 있다.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839년(문성왕1)무염(無染)이 창건하였으며, 중요한 수도도량으로 면모를 달리한 것은 1211년(희종 7)요세(了世)가 크게 중창한 뒤부터이다.
요세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 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와 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자리를 잡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하였다.
(양 기둥에 용의 조각상이 특이하다)
이 역사(役事)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까지 21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목백(牧伯)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물을 보시(布施)하였다고 한다.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이다.
(해탈문)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의 왜구침입을 받았을 때 이 절도 함께 폐허화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다. 그 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그때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조계종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종세(宗勢)를 키우고 있을 때, 이 절은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結社道場)을 개설하여 침체한 불교중흥을 꾀한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절 주위에 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행호토성(行乎土城)이라고 한다. 현재의 절 또한 그때 쌓은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써 각 추녀마다 네 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두 개의 주두(柱頭)는 용두(龍頭)로 장식한 다포집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만경루는 규모가 큰 누각으로 강진만 일대의 바다를 환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만경루와 배롱나무)
그 밖의 사중유적(寺中遺蹟)으로는 만덕산 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圓妙國師中眞塔)이 있다. 사적비의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용의 눈이 험상궂게 생긴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 모양을 한 가첨석(加?石)이 놓여 있다. 중진탑은 방형의 지대석(地臺石)인 위에 연화문(蓮花文)의 중대석(中臺石)이 있으며, 상대석에도 무늬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만경루) 고복형(鼓腹形)의 옥신(屋身)에는 두 줄의 주렴문이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이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귀양와서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하고 차를 끊여 마시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
백련사 경내에는 이런 배롱나무가 많이 보인다. 붉은 꽃이 한 번 피어 난다는 백일홍이 열리는 나무다.
만경루 계단에서 올려다 대웅보전
@대웅보전(大雄寶殿) 백련사는 원래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 19세기에는 만덕사로 불려졌다. <한국사대사전>에 의하면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고 고려1232년에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가 이곳에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어켰다. 지붕의 단청이 화려한 정면 3칸,측면 3칸의 다포식건물이며 1761년에 건립되었다. 각 추녀마다 활주(活柱)를 치고 있으며 건물 전면 2개의 주두(柱頭)에 용머리를 장식하였다. 법당 안에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여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과 대웅보전)
명부전의 지장보살과 시왕
지장보살
@백련사의 유래를 보면 구경포 바다에서 바라 본 만덕산 모습이 마치 활짝 핀 연꽃이 사찰을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라 해서 큰 인물이 많이 나올 터라고 전해진다. 또한 백련사 연지는 물이 차가워 연꽃이 피지 않은 데 고려시대에 하얀 연꽃이 필적마다 국사(國師)가 한분씩 배출되어 8분의 국사가 나왔다는 설화가 있다. 대웅보전 앞 뜰악에서 보이는 위 사진에서 만경루와 종각 뒤편에 푸른색의 아스란한 모습이 구경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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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림의 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첫댓글 사진으로나마 잘봅니다,
옛적에 백연사에서 한철을 보낸 적이 있었는대 많이 달라지고 더 좋아젔읍니다.
날마다 행복 하시고 즐거웁게 건강 하시길,(),
강진은 초행이라 주마간산격으로 다녀온 절입니다.
배롱나무 꽃이 참 곱게 피었드군요.
편한하고 좋은 밤 되세요.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어눌한 글그림 잊지 않고 고이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