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세모, 임인 세밑
돼지띠 기해년, 쥐띠 경자년, 소띠 신축년. 올해까지 최근 육십갑자 간지다. 이 세 간지를 꼽음은 내가 교직 말년 거제로 건너가 보낸 3년이라 새겨두고 싶어서다. 신축년이 저무는 마지막 날에 전체 교직원들이 한 해 교육활동을 돌아보고 신학년도를 설계하는 워크숍을 하는데 나는 빠졌다. 관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학식보다 하루 먼저 연사 와실의 짐을 꾸려 뭍으로 건너왔다.
재작년 봄방학 때 거제 부임지로 건너갈 때는 시내 초등 교장으로 재직하는 대학 동기가 몇 가지 생활 용품을 거제로 옮겨주었다. 3년 뒤 그보다 줄지도 늘지 않은 세간 그대로를 옮겨왔는데 이번엔 이웃 학교 카풀 지기가 도와주어 잘 왔다. 설 쇠고 이월에 며칠 출근이 예정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거제 생활을 청산해 내 교직도 마감되어 민간인으로 신분이 전환되려는 즈음이다.
뭍으로 상륙한 첫날은 신축년 그믐이다. 이른 시간에 아침을 해결했지만 임인년 세밑 한파가 닥쳐 새벽이면 나서는 산책이나 산행은 머뭇거려졌다. 나중 점심나절 햇살이 퍼지면 바깥으로 나가볼까 생각 중이었다. 전날 짐 꾸러기 가운데 세탁소로 보낼 옷가지가 있어 아파트단지 상가로 나가면서 현관을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옛 도지사 관사 근처 겨울 메타스퀘어 거리를 걸었다.
집을 떠나 지내면서 정작 가까운 곳으로 산책은 나서지 않았더랬다. 도지사 관사 근처 용호동 주택지는 근래 찻집거리로 알려져 갓길에 세워둔 차들이 빼곡했다. 용지행정복지센터와 창원문화원은 용지어울림동산과 이어져 있다. 용지어울림동산은 창원 자연보호협회 학습장으로 유리온실이 세 동 있었다. 다육식물과 관엽식물과 선인장을 가꾸는 겨울철 유리온실을 차례로 둘러봤다.
자연학습장을 나오니 초등학교와 인접한 주민운동장은 인조잔디로 바뀌어 산뜻했다. 거제로 같이 오간 카풀 지기는 운동을 좋아해 그곳에서 동호인들끼리 조기축구를 한다고 들었다. 롯데아파트에서 용지호수로 들어섰다. 호수로 물이 공급되는 수로엔 커다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다. 북녘에서 날아와 도심 호수에서 겨울을 나는 큰고니 가족 다섯 마리가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용지호숫가 산책로를 한 바퀴 둘러 재건축한 아파트단지 곁을 지났다. 개교 역사가 꽤 오래된 고등학교는 오전에 졸업식을 가지고 주인공과 하객들이 모두 빠져나가 썰렁했다. 요즘은 학교마다 졸업 일자가 달라졌다. 거기 학교는 교실 천정 석고보드 환경 개선 공사로 학사 일정을 당겨 운영하는 듯했다. 석면이 함유된 석고보드는 유해 물질로 분류되어 교육현장에서 점차 사라져간다.
원이대로를 건너 용지동 주택가에서 창원스포츠파크 동문으로 들어섰다. 코로나로 손님을 찾지 못한 관광버스들이 이면도로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회사 출퇴근버스로 대체된 차량도 있을 듯했다. 종합운동장과 인접한 보조경기장으로 올라가 천연잔디가 시든 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걸었다. 겨울 한낮인데도 잔디운동장을 찾아 산책 나온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보조경기장에서 창원실내체육관과 만남의 광장을 지나 원이대로를 건너 반송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일도 없으면서 과일과 채소가 진열된 골목을 지나니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횟집 수족관에는 활어가 유영하고, 노점 떡볶이가게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집 근처 농협 마트 생선 코너에서 대구 한 마리와 몇 가지 생필품을 사서 집으로 가 짐을 부려 놓았다.
한 해가 저무는 날에 같은 아파트단지초등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둘을 건너편 아파트 상가 주점에 마주 앉아 거제에서 뭍으로 오른 소회로 잔을 채워 비웠다. 주인 아낙은 돼지껍데기와 편육을 안주로 차려냈다. 예전 근무지에서 퇴직한 선배와 상가 관리소장이 합류해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다 일어나 옷 수선 가게에 들려 누님뻘 되는 주인 건강을 염려하면서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2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