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역을 다녀 오다
도라산역은 임진강역에서 한역 더 가는데 기차는 임진강역에서 3번(11시. 11시 40분. 12시 40분)있다.
서울역에서 표를 사도되고 임진강역에서 표를 사도된다.
또 임진각에서 관광버스가 육로로 수시로 다닌다.
나는 일산에서 아침에 왕복표를 사서 임진강역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관관안내소에서 신분증과 별도관광요금(11.700원 레일이용 포함)을 내니 표하고 버스 좌석 번호가 적힌 목걸이 표찰을 준다.
기차로 가는 관광도 3가지( 1.도라산역 2.제3땅굴 3.통일촌 )를 다 보려면 12시 40분기차로 가서 4시25분(막차)에 나오는 것을 선택해야한다.
임진강역에서 개찰 할 때 헌병이 검사를 한다.
"자유의 다리"를 통과하여 5분쯤 지나니 현대식 건물에 "도라산 역" 간판과 "경의선 철도 남북출입 사무소"라는 글씨가 보인다.
"자유의 다리"'는 한국전쟁(포로교환) 때 유엔군과 국군포로 12,773명이 남한으로 걸어서 건너와 붙여진 이름인데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임시 다리 였으나 지금은 기차가 다니는 철교다.
도라산역 건물지붕은 태극무늬이고 남북이 서로 손을 맞잡은 모습으로 지었다.
현재로는 지역에 걸맞지 않게 크고 고급스럽게 지었다.
근처에는 평화의 공원(3만평)도 조성돼 있고 전시관도 있다.
.도라산역은 서울에서 55km지점으로 마지막역이 아니고 평양. 중국. 시베리아로 뻗어가는 첫 번째역이라는 데 의미를 둔다.
2002년 4.11일 개통하였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2002. 2. 20일 함께 방문하여 기증한 침목이 있고 밖에는 침목 기증자 명단이 게시되어 있다.
밖에서 둘러보니 깨끗하게 지어진 조립식 건물들이 많은데 이는 남북간에 운반되는 물류창고로 지금은 비어있다.
기차에서 내린 일행40여명이 대기하고 있던 모 관관회사 버스를 타고 도라 전망대로 향했다.
길 양편에는 지뢰표시가 줄에 매달려 있다. 도라 전망대에서 멀리 휴전선이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좋아 육안으로도 잘 보이는데 500백원 동전을 넣고 망원경으로 보니 더 선명하다.
먼저 우리 측 최전방 마을인 대성동 마을에 대형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건너편(1.8km)에는 북한의 가정동 마을에 세계에서 가장높은(160m) 게양대에 인공기(가로30m. 세로14m)도 보인다.
대성동마을은 230여명이 거주하는데 가정동마을은 실제 거주자가 없다고 한다.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사천강)와 산 넘어 개성공단도 보인다. 정막하고 긴장감이 감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포로 교환 때 이 다리에서 포로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남과 북 또는 제3국 가운데 중공군과 북한인민군 포로 75,823명은 북한을 12,773명은 남한을 선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만이나 인도를 선택한 포로도 약간 있었다.
여기서 잠간 도라산(都羅山)에 대한 유래도 알아보자.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함락하자 신라의 56대 경순왕이 군신회의를 열어 백성의 희생을 줄이고자 고려에 귀부하기로 하고 고려의 왕건에게 (개성) 스스로 찾아가 나라를 내주니 왕건은 자기의 딸(낙랑공주)과 결혼시키고 정승벼슬과 경주를 식읍으로 주는 등 극진히 대접을 하였다.
그러나 경순왕은 아침 저녁으로 도라산(156m)에 올라 옛 도읍 서라벌(경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낙랑공주가 그의 향수병을 달래주기 위해 산 중턱에 영수암(永守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경순왕의 능도 경주에 있지 않고 인근 장단군 고량포에 있다.
다음은 제3땅굴로 갔다.
1974년 9.5에 귀순한 김부성(측량기사)의 첩보에 의해 78.6.10에 우리가 찾아낸 것이다.
땅굴 들어가는 입구가 2개인데 하나는 역갱도( 높이2m 폭2m) 350m 에 설치한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도 있고 또 하나는 도보로 다닐 수 있게 최신 굴착기로 크게 뚫어 놓았다.
레일타고 내려가 걸어서 나오는 것도 괜찮다. 영상물과 전시자료도 볼만하다.
다음은 버스를 타고 "통일촌"으로 이동하는데 초창기 "남북회담 사무소"로 쓰던 하얀 건물이 보이는데 지금은 비어있다고 한다.
또 철조망 안 옛 미군부대자리에 주인 잃은 빈 막사만 외롭게 남아있다.
통일촌은 1972년 1사단에서 전역한 하사관 14명이 거주하면서 시작된 마을인데 지금은100여 가구에 400명쯤 거주한다.
입구에 몇 집만 벽돌 담장이 있고 나머지 집들은 조경석으로 경계를 구분한 정도고 대문도 없다.
하기야 그 동네 도둑이 없으니 당연하다 했다.
초등학교가 있는데 전교생이 20명도 안 되어 폐교시키려다 주민의 반대로 유지되고 있다.
행정구역으로 파주시 장단군으로 장단콩 축제에 이곳주민들도 한 몫 한다.
주차장에 내리니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있는데 음식은 주로 콩을 재료로 한 것들이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연세가 들어 보여 알아보니 통일촌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거란다.
이곳에도 "공인 중개사 사무소"간판이 있는데 어느 땅을 매매하는지 궁금했다.
"민통선"이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휴전선(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이 각각 2km 덜어져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그어 남북 4km지역을 비무장지대(DMZ)로 하고 거기서 또 5-20km거리에 민통선이 그어졌는데 이것은 우리가 안전상 필요에 의해서 설정해 놓은 것이다.
이번 관광은 민통선 구역이라 주민등록증(신분확인)을 꼭 지참해야 된다.
민통선 안은 50년 이상 인적이 끊긴 자연생태보전 지역으로 연구가치가 높다고 한다.
과거에는 안보교육장으로 활용되던 장소가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으로 생태환경. 문화사적체험 관광지로 개발하여 지역 주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30여년만에 다시 가 보는 곳인데 감회가 새롭다. 끝
대성동마을, 통일촌,돌아오지 않는다리, 땅굴등 반공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감회가 크셨겠습니다(역시 선생님이셔)~~제가 민정경찰(MP)출신 아닙니까. 내가 최전방 GP에 근무할떄 양구2사단에서 근무하든 강승호 병장이 DMZ에 작업지원 나온적도 있습니다. 다 옛날 이야기지요, 잘읽고 갑니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 시켰습니다. 철통같은 민통선안이 자연 생태 보전지역으로 생태환경. 문화사적체험 관광지로 지역 주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한다니...그렇게 세월은 흘러 통일이 되는 날...그때 우리는 살아 있을까???상세하게 기록한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글 올려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첫댓글 경순왕은 도라산에 올라 신라의 도읍 서라벌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면 현대판 경순왕들은 북의 개성 혹은 평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것만 갔구려. 도라산 역에 대해 공부 잘 하고 갑니다.
대성동마을, 통일촌,돌아오지 않는다리, 땅굴등 반공 교육에 대한 새로운 감회가 크셨겠습니다(역시 선생님이셔)~~제가 민정경찰(MP)출신 아닙니까. 내가 최전방 GP에 근무할떄 양구2사단에서 근무하든 강승호 병장이 DMZ에 작업지원 나온적도 있습니다. 다 옛날 이야기지요, 잘읽고 갑니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 시켰습니다. 철통같은 민통선안이 자연 생태 보전지역으로 생태환경. 문화사적체험 관광지로 지역 주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한다니...그렇게 세월은 흘러 통일이 되는 날...그때 우리는 살아 있을까???상세하게 기록한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글 올려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