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의도적으로 논란꺼리가 될 만한 글을 쓸 때가 있다. 논란을 넘어 비난을 받을 각오까지 하면서 쓰는 글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고 정답처럼 되어 있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 할 때의 글이 그렇다.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고질적인 직업병 때문이다.
2. 2년 전 아들이 차를 사주었다. 나랑 의논도 없이 벤츠를 사주었다. 아직 애비에게 벤츠 사줄 만큼은 아닌데도 좀 무리해서 사주었다. 애비가 암에 걸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무리해서 좋은 차를 사 준 것이다.
3. 부담스러웠다. 한국에서 은퇴한 목사 벤츠를 타면 걸머져야 할 무게가 만만치 않다. 나는 벤츠를 타야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내 삶에 중요한 가치도 아니도 당연히 목표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을 탄다고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을 감당해야만 하고 더 나아가 지탄과 비판 비난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4. 용기를 내어 타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안 올리고 탈 수도 있었지만 벤츠를 타면 무조건 의식 없고 욕심 많은 졸부로 취급하려는 생각 그리고 특히 일반인은 괜찮은데 목사는 안 된다는 생각엔 동의가 안 되어 위험(?)을 무릅쓰고 페이스 북에 올렸다.
엄청난 댓글이 올라왔다. 그중에 기억나는 댓글 하나. 예상 했던 댓글이었다. ‘존경했었는데...’ ‘내 그 말 나올 줄 알았다’^^
5. 오늘도 아들과 비 맞고 골프 친 이야기를 페이스 북에 올렸다. ‘서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목사가 골프나 치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사람이 되겠다’ ‘모든 한국의 성직자들을 증오 한다’
6. ‘존경했었는데....’보다 쎄다. 난 졸지에 배부른 돼지가 되었고 나 때문에 나 만이 아닌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좀 속상했다. 솔직히.
7.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사람이 낫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배부르면 다 돼지고 배고파야만 다 사람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그 틀린 판단기준을 가지고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을 증오까지 한다니 무섭기까지 하다.
8. 그래 난 어제 아들과 골프장에 갔었다. 그러나 난 골프장만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배고픈 서민들 어떻게 하면 밥 먹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그것을 시도하는 일이다. 최소한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 이상을 팔아 재단을 세웠다. 그 재단의 이름은 ‘더 좋은 세상’이고 더 좋은 세상의 목표는 ‘손이 수고한대로 먹는 세상’이다. 우리 아내는 요즘도 내 한 달 수입의 정확히 하루 몫을 떼어 이삭줍기 헌금으로 헌금한다. 그 달이 30일이면 총수입의 30분의 1을 헌금하고 31일이면 31분의 1을 헌금한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일종의 귀퉁이 떼기이다. 끝까지 1원까지 정확하게 낸다. 은퇴 전에는 더 뗐었다.
9. 낼 줄도 알아야 하지만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섬길 줄도 알아야 하지만 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씀과 누림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은 아니다.
10.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올린 글이지만 배부른 돼지까지는 예상 못했었다. 증오까지는 생각 못했었다. 이 글도 안 쓰고 안 올리는 것이 나를 위해서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직업병처럼 글을 쓰고 올린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낫지만 배부르면 다 돼지고 배가 고파야만 다 인간인 것은 아니다. 돼지가 되지 말라는 것이지 배불러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9월 27일 둘째와 난 또 골프 치러 갈꺼고 또 열심히 여전히 나와 같은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열심을 다할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