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푸틴 대통령 체포영장
21세기 들어 최악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다르푸르 학살’이 꼽힌다. 아프리카 수단 서부 지역에서 아랍계 유목민과 아프리카계 토착민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자 당시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 바시르는 아랍계 민병대로 하여금 반군을 진압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토착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2003년 시작된 내전이 7년간 이어지면서 30여 만명이 숨지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알 바시르를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ICC가 현직 국가원수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첫 사례다.
▶알 바시르는 영장 발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집트, 리비아, 카타르 등을 방문했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는 “ICC 영장은 서방의 테러”라며 그를 감쌌다. 하지만 카다피도 2년 후 자신의 아들과 함께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한 혐의로 ICC 체포 대상에 올랐다. 알 바시르는 2019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수감됐고, 카다피는 결국 권좌에서 축출돼 자국민에게 피살됐다.
▶ICC는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을 다루는 국제 재판정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재판소와 수감시설이 있다. 국가 수반급으로는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이 내전 중 84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2006년 헤이그 감옥에서 사망했다.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도 어린이를 병사로 동원한 시에라리온 내전 개입 혐의로 기소돼 50년형을 선고받고 한동안 헤이그 감옥에서 복역했다.
▶ICC가 현직 국가 지도자로는 세 번째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전쟁 중에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반인도적 범죄 혐의다. 러시아 정부는 ICC가 러시아 시민을 기소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체포영장을 발부한 ICC 판사·검사에 대해 자국 내 형사소송에 착수했다. 러시아는 2016년 ICC에서 탈퇴했다.
▶한국도 ICC와 인연이 깊다. 매년 90억원의 분담금을 납부해 재정 기여도가 회원 123국 중 7위이고, 송상현 전 서울대 교수가 6년간 재판소장을 지냈다. ICC 회계 외부감사는 영국·프랑스에 이어 현재 한국 감사원이 맡고 있다. 피오트르 호프만스키 ICC 소장은 “ICC 회원국은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 전 세계 3분의 2에 달하는 지역에서 푸틴은 체포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론적으론 푸틴이 한국을 포함한 회원 123국을 방문하면 그를 체포해 ICC에 넘겨야 한다. ICC 영장은 소멸시효도 없다고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푸틴이 체포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가 권력을 잃는다면 모를까.
문재인의 전언(傳言) 정치 역대 대통령들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모두 소박했다. 탈정치 약속도 담겨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연인으로 돌아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겠다”고 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사회를 위해 기여와 봉사를 하겠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치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임 이후)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꾸준히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오가며 글과 사진을 올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저서를 추천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 직후 양산 사저로 찾아온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신임 지도부에게는 “요즘 정부·여당이 잘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9·19 군사합의 4주년 기념 토론회에는 축사를 보내 “정부가 바뀌어도 남북 간 합의는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당에서 문 전 대통령 발언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최근 그를 각각 만났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비명(비이재명)계인 박용진 의원의 전언이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박 전 원장이 전한 문 전 대통령 발언은 ‘이재명 퇴진론’에 반대한다는 뉘앙스였다. 반면 박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당내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당 사정을 놓고 여러 말이 전해지니 문 전 대통령이 ‘전언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정국 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원론적인 언급이라도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맞다. 논란이 되는 걸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도 계속 이어갈 뿐 아니라 아무 해명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정치 행보’로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인사들이 문 전 대통령 발언 중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만 부각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말을 내놓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이나 모두 자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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