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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齊賢(이제현)
紙被生寒佛燈暗(지피생한불등암)
홑이불 한기 돌고 불등은 희미한데
沙彌一夜不鳴鐘(사미일야불명종)
사미는 밤새도록 종조차 올리잖네.
應嗔宿客開門早(응진숙객개문조)
나그네 일찍 문 연다 응당 투덜대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요간암전설압송)
암자 앞 눈이 소나무 누른 모습 보아야겠네.
정민교수의 해석 >>
깊은 산에 자리잡은 암자에 손님이 찾아 들었다. 궁벽한 암자라 식구라야 스님과 심부름하는 사미승 둘이
고작인데, 예기치 않던 손님을 찾아 군불도 떼지 않은 법당에서 잠자리를 마련했던 모양이다. 얇은 이불로 스물스물 스며드는 한기에 손님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인이 잠 못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미승이 종을 울리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등 희미한 법당 한 구석에서 추위에 떨고 있으려니, 날이 어서 새었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 같았다. 그런데 사미승 녀석은 따뜻한 제 방에서 잠만 쿨쿨 자느라 종을 울리지 않으니 깜깜한 밤에 나그네는 도무지 시각을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춥고 괴로운 밤이 지나고 터오는 먼동이 나그네는 어느 때보다 반가왔겠다. 내다보니 밤새 흰 눈이 내려 천지는 은세계로 변해 있었다. 소담스런 눈에 덮혀 눈 뜨는 물상들의 조촐한 모습에 이끌린 나그네는, 간밤의 추위와 불면도 까맣게 잊고 탄성 속에 밖으로 나선다. 3구는 문을 나서면서 나그네가 혼자 하는 독백이다. 발새 잠난 잔 사미승 녀석은 이른 새벽부터 나그네가 부산을 떨어 아침 잠을 깨운다고 투덜대겠지. 네 녀석이 뭐라건 말건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설경만은 꼭 보아야겠노라는 말이다. 산중 경치에 익은 사미승이야 그깟 눈이 온댔자 눈 치울 일이 귀찮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나그네야 어디 그런가. 나그네와 어린 사미승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시의 흥취는 속세의 시간이 멈춰 선 눈 온 아침 겨울 산사의 고즈넉한 정경과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약간은 들뜬 시선 사이에서 내밀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 이상 -
꿈보다 해몽이라...정민교수의 깔끔하고 섬세한 뜻 풀이가 마치 내가 시인이 되어 겪는 듯한 심경의 변화와 시인이 처한 산세의 풍광을 고스란히 그리는 듯 하다.
첫댓글 좋은교훈에 잠시 머물러 보네요
고운밤 되시고
해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