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
이 미 화
모처럼 맑은 햇살이 창을 넘어 거실바닥에 깔린다.
딸이 출산을 하고, 나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조리원에 있겠다는 것을 내가 고집을 부려 집
으로 데리고 왔다. 아무려면 제 새끼 제가 보살펴야지 남은 남이지 싶어서였다. 하루 종
일 신역이야 고되지만 갓 태어난 아기를 산모 따로 아기 따로 남에게 맡기는 것이 편 할
리가 있겠는지.
목욕통에서 건져내자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는 아기를 얼른 강보에 싸서 따끈한 젖병
을 먼저 물렸다. 보송보송한 볼 살이 역광을 받아 투명한데 미세한 솜털 오라기들이 올올
이 빛이 난다.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오묘하고 신비함에 감격할 따름이다. 불현 듯 오보록
히 달려있는 풋 콩꼬투리들을 덮고 있는 미세한 터래기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스친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연상이다. 꼬투리 속에 있을 새 생명을 싸고 있는 껍질을 미세
한 것들에서부터 보호받기 위한 섭리가 아니던가. 이렇듯 자연은 신비스러운 ‘꼬투
리’라는 아름다운 명사를 사람들은 이상스럽게 잘못 연관 지어 쓰고 있는 것은 혹여 아닐
까.
말에도 꼬투리가 있다. 말꼬투리 말이다. 아름다운데 비유해서 써야 할 꼬투리가
말에 붙으면 좋지 않은 뉘앙스로 변질되어버리니 대체 생각을 하고 쓰는 말일까 싶다.
“말 꼬투리를 잡는다” 속된 말로 별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흔히 듣는 말이 아
니던가.
상대를 좋은 잣대로 보지 못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감이 되
지 않았을 때 콩을 연상하는 꼬투리를 잡는다고 한다. 자연이나 식물을 비유해 쓰는 꼬투
리는 아름답고 신비한 생명을 간직한 명사로 쓰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보면 안 될까.
비가 개인 뒤 콩꼬투리를 보자니. 미세한 솜털이 송송송 빗물을 막아 콩껍질을 보호해
주고 있지를 않은가. 갓난이에 표피를 감싸고 있는 솜털은 아기에 감성임에 틀림없다. 미
세한 솜털은 아기를 말갛게 씻긴 후에 더 빛이 난다. 사랑받고 있음을 미세한 솜털이 알
고 있음이다. 사랑에 빛을 받을 때 우리 감성에 있는 미세한 솜털이 살아나 영혼에 껍질
이 더 단단해 지는 것은 아닐까. 젖병을 갖다 입에대니 조막을 꼭쥔 두손이 젖병에게로
온다. 제 생명줄인 것을 갓난아기가 알고 있음이다.
콩꼬투리는 생명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나 줄기를 이르는 명사인데, 어찌해서 사람들은
남을 못 마땅히 여겨 물고 늘어지는 말로 꼬투리를 비유해 썼는지 유래가 있는지 궁금하
다. 아니 꼬투리라는 부정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특히 우리네 문화가 아닐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자기 잣대에 억지로 맞추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는 것 아
닌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려는 자연 심 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어
쩌면 꼬투리라는 어원은 상대를 분석하여 이해하려는 배려심 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오롯이 생명이 보호되어야 할 꼬투리, 사람과 사람 심성을 헤아리는 꼬투리가 되었으
면….
첫댓글 이미화 수필가님! 손자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할머니 되심도 축하드리고, 따님을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에 감명을 받습니다.
어머니 사랑이 늘 그리워 하는 말입니다. 아내가 해산을 할 때도 시어머니든, 친정 어머니던 있었으면 지극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행복의 길인데......
따님 산관을 하시는 솔잎향선생님의 노고가 눈앞에 보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손자 보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따님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건강도 챙기시고 새해 소망 꼭 이루세요.~~~
아효...츅하드립니다 선생님.
그러니까요...고 구여운 승아 아기가 남동생을 보았단 말씀이시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꼬투리라는 어원은 긍정과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지닌 것 같아요.
작가님 손주 보신 것 축하합니다. 건강하고 예쁘게 크기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