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자축구(둘) / 홍속렬
그 후로 대학팀 이화여대, 숙명여대, 인천전문대학, 그리고 내가 창단한, 체육선교신학교 팀, 고등부는 강원강릉의 강일 여고를 비롯 부산의 문현 여상 서울의 위례 상고 등이 팀을 창단하여 여자축구의 문을 열었다
중학교도 몇 팀이 창단되었고 초등학교도 창단이 되어 나름대로 활성화 되어갔다 나는 대한축구협회 여성분과 부 위원장으로 모든 행정은 물론 각 팀의 애로점을 파악 대축에 보고를 하기도 했다
대학 리그가 있었다. 우리 팀은 타 팀과는 비교가 안 되게 월등한 기량으로 우승을 했다 그러나 학교가 무인가 학교라 해서 3개 월 만에 우승의 영광을 빼앗아 가는 잔인함을 대학연맹은 보여줬다 당시 서울 대를 맡아 지도하던 모 축구원로가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자격 박탈에 앞장섰던 것이다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 팀은 공식경기에 참가 할 수 가 없었다. 만 3년 동안을 그렇게 생활 하며 언제든 기회가 주어기지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평생 군대생활만한 나는 팀 창단을 권유하시던 목사님만 믿고 그 좋은 직장 상무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평생 고생 안 하고 먹구 살 수 있는 연금을 많이 탈 수 도 있는 직장을 여자축구 때문에 그만두고 나왔는데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이것저것 따져 보지 않은 나의 불찰이 크겠지만 그런 여건 속에서 팀을 창단하겠다는 생각을 한 목사님의 큰 실수였고 내 인생을 망쳐 버린 결과였다 선수 몇 명씩 지하방에서 1주 5000원씩을 내고 자취를 한다.
두고 볼 수 가없어 선수들의 식대를 지원해 주다보니 내가 타 갖고 나온 퇴직금과 연금은 1년이 못가 바닥이 났다 그리고 월급이라고 주는 몇 푼의 급여는 돌아다니며 활동하는데도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우리선수들은 가장 싸고 먹기 편한 짜장 면을 먹어 대는데 내 48평 아파트와 연금 퇴직금을 다 먹어 치웠다
이대와 숙대는 창단지원비만 받고 얼마 안 있다가 그만 팀을 해체 시켜 버렸다 정말 못 말리는 일이다 어찌 학교가 이렇단 말인가? 그 창단지원비를 나 같은 사람에게 지원 해 줬다면 훌륭한 팀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당시에는 위례상고와 강일여고가 대학팀보다도 경기력이 좋았다
이대 숙대가 해체되다 보니 인천 전문대와 우리 밖에 남지 않았으나 무인가로 인해 공식경기에 출전 할 수 가없어 팀은 그냥 연습 경기나 호기심 때문에 여자들과 경기를 하고 싶어 하는 조기 축구회라든가 직장 팀들이 콜을 하면 가서 연습 경기를 해 줄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때는 초청을 받고 먼 길 찾아가 연습경기를 해 주면 당연히 점심이라도 대접해 줘 늘 짜장 면으로 식사를 때우는 여자선수들 에게 불고기라도 먹여주면 좋으련만 달랑 볼 하나만 쥐어주는 팀도 있었다. 그러면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곤 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축구원로들의 돌대가리를 원망한다. 우승의 기득권을 무효화 시키고 나머지 공식 경기에 못 나가게 되었을 때 당시 김창기 대학 연맹 회장을 찾아가 통곡을 하며 우승을 취소해도 좋으나 옵서버 자격이라도 줘서 경기출전이 가능 하도록 해 달라 애원을 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이제야 마음 놓고 호소 겸 경직된 축구 인들의 돌대가리를 고발한다. 어쩌면 생각을 대국적으로 할 수 없는지 ? 그들은 과거에 내개 볼을 가장 잘 찼고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라 한다. 정말 안하무인이고 축구인 비축구인들을 가르며 비축구인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얕보는지? 모른다. 내가 처음 육군 대표 축구감독으로 부임을 하니 당신 볼 어디서 찼소 ? 하고 시비 쪼로 물어온다 그래 네 집 안방에서 찼다 했더니 머숙 해 하던 기억을 한다.
어쩌면 지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앞날의 한국 축구는 생각 치 않는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대학 연맹이 아닌 대축에서 주최하는 대통령배와 선수권 대회에 여자종목을 포함 시켜 달라고 당시 경기 부를 맡고 있던 유성환 선배에게 호소했더니 유 선배는 늘 나를 짠하게 여겼다 축구에 미쳐 가정도 돌보지 않고 퇴직금을 여자축구를 위해 다 써버린 나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도와주려 애를 썼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대통령배와 전국 선수권 대회에 여자축구를 포함 시켜 줘서 비로소 공식경기에 참가하게된 것이다
또 서울 신문에서 여왕 배란 대회를 만들어 중고 대학 일반 팀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를 신설하여 그 대회에 참가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길이 열리는데 팀은 학교의 지원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나 개인이 사재를 털어 넣는 것도 한계에 도달해, 할 수 없이 먹고 자는 문제만을 해결 할 수 있는 주식회사 낫소로 옮기기로 한다. 낫소는 부도가 나 법정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공장 한켠의 빈 건물에 숙소를 만들어 식당의 식사를 제공하여 선수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줬다 숙소는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 쥐가 나오고 오물로 가득했다 그래도 운동을 할 수 있게 돼 선수들은 좋아 했다 급여도 없는데 오로지 축구가 좋아 아니 이제 까지 지들의 뒷바라지를 해 준 내 정성 때문에 팀을 못 떠나는 의리파 선수들이었다.
차라리 그때 난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하고 다 떠나 버렸다면 나도 훌훌 털고 정리를 해 버렸을 텐데 남아있으니 이를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