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불가근불가원의 지혜
A스님과 종로 조계사에서 몇 년을 함께 보냈다. 출신지가 각각 한반도의 동쪽과 서쪽인지라 성정이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런대로 잘 맞았다. 패키지 여행은 싫다면서 의기투합한 몇 명과 더불어 배낭여행으로 두 번에 걸쳐 티베트 라싸와 운남성 여강을 함께 다녀온 사이이기도 하다.
때로 좋은 한시를 발견하거나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긴 문자로 장황한 설명문을 보내 주던 그가 어느 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거래사를 부르며 땅끝마을을 지척에 둔 유서 깊은 암자로 거처를 옮겼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다. 올해 단풍도 끝물이었던 지난 주말, 성지 순례팀 40여 명 사이에 끼여 그가 머물고 있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을 찾았다. 헤어진 지 5년 만의 일이다.
절친 B스님도 홀로 여행하던 길에 우연히 대흥사를 방문햇다가 우리와 조우했다.
우리 셋은 모처럼 한 공간에서 만남 덕분에 답사객이 되어 일행에 합류했다.
조선 후기 대흥사와 일지암에서 초의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세 어름이 모였던 일을 떠올렸다. 불가와 유가가 교류하고 동학과 서학이 만났으며 차와 곡차라는 이름으로 잔이 오가며 우정이 차곡차곡 쌓였을 터이다. 풍성한 편지글과 시문이 오가면서 신분의 겉치레를 뛰어넘어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풍요로운 인문학적 정신 문화를 창출했다. 이것이 뒷날 ‘남도 답사 일번지’로 불리는 배경이 되었다.
일지암 초당 뒤쪽에서 차인들이 성수로 여기를 유천수를 담은 표주박에 가을차꽃을 띄워 돌아가며 한 잔씩 마셨다. 그런 의식 아닌 의식은 다른 시간을 살았던 초의 선사와 우리 일행이 만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나뭇가지 하나라도 충분히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는 작은 새의 삶을 추구한 초의선사가 만년에 머물렀다는 일지암의 원래 구조는초당과 누마루 달린 기와집 두 채가 전부였다.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찻집과 운치있는 살림집인 기와집의 만남이다. 두 집 사이에는 물에 비친 달을 즐기기 위해 작은 연못을 팠다. 얇고 널따란 구들장 동을 켜켜이 쌓아 올린 초석 위에 굵지 않은 기둥 네 개가 받치고 있는 밋밋한 누마루집이 소박한 초당과 더불어 대비감을 연출했다.
두 건물은 서로 지척에 있지만 물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 듯이 나누었다.
그야말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의 긴장감이 오랜 세월 권태로움 없이 서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된 것 아닐까.
그야말로 건축적 불가근불가원인 셈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일지암을 바라보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지혜를 새삼 곱씹었다.
출처 : 원철 스님 산문집 /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중에서
첫댓글 점자책으로 만들려고 주문한 책, 세 권이 어제 왔습니다.
그 중 원철 스님의 책을 우선 시작했습니다.
내가 좋으면 남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자타일시성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