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2003.10.8(수) 13:31
20대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면서 사이버 전당포가 날로 번창하고 있다.
도대체 신용불량과 사이버 전당포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아무리 뜯어봐도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8월 말 현재 신용불량자는 341만여명. 이 가운데 20대가 67만2000여명에 이른다. 20대 전체 인구(795만4000여명)의 8.4%다. 전체 신용불량자 수가 지난해와 비교해 43% 정도 늘어난 데 비해 20대는 무려 70%나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 신용불량자는 올초보다 48.6% 늘었다.
현재 인터넷에서 성업 중인 사이버 전당포는 30여 곳으로 고객의 70%가 20~30대다. 신용카드 결제를 앞둔 월말에 온라인 매출의 50% 이상이 몰리는 것으로 미뤄 카드 돌려막기를 위해 사이버 전당포를 이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사이버 전당포에 맡겨진 물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돈이 필요해서, 명품을 사기 위해, 카드결제 때문에 등 다양한 이유로 사이버 전당포를 찾지만 맡기는 물건은 대부분 명품이었다.
명품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히게 만들고 값비싸게 구입한 명품을 사고파는 일을 반복하게 한다. 사이버 전당포에 명품을 맡긴 이들은 명품 대여 사이트에서 하루 5000~1만원에 명품을 빌려 ‘명품 없는 허전함’을 메운다. 과시욕과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모든 시스템이 갖춰진 듯하다.
부족함 없는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이들의 나약한 정신력만 탓할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부는 과시욕이 20대 신용불량자의 급증을 부채질함을 명심해야 한다. ‘신분상승 수단으로’ 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카드를 긁어 명품을 사고 이를 다시 전당포에 맡기는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체면중시 풍토가 2003년 요즘 재현되고 있다.
신용불량은 그 사회의 건강함을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 시험지를 통해 들여다본 사회가 치료불가능이나 포기 상태가 아니라면 치유책을 서둘러 실행해야 한다.
명확한 기준 아래 신용을 평가하고 카드를 발급하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는 기본이다. 명품을 착용해야만 멋있다고 여기는 허영을 부추기는 사회분위기, 인간미나 능력보다 그가 소유한 명품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잘못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뇌를 열어 ‘정신개조’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잠깐만이라도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품질 좋고 오래 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명품을 들어야 남들이 알아줄 것 같으니까’라는 솔직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