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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다양한 강연과 저서를 통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계신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어요.
맑은샘학교에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는데요,
울고 웃고 했던 현장 분위기까지는 못 전해도
함께 하고 싶은 내용이라 이렇게 빙산의 일각이나마 나눠요.
1. 개념을 정확히 써야 한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함께 하기를 요청했으나 함께 하지 않았다.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함께 하자는 것이다.
선행학습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당황했다.
하지만 개념과 신념이 달랐다.
우리가 개념을 정확하게 쓰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전선이 뚜렷이 형성된다.
순열주의 사회에서는 조금만 달라도 차별을 받는다.
그러니 차별을 덜 받기 위해 앞서 준비해야 한다.
앞지르려는 게 아니라 차별을 덜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미친 진도 앞지르기’ 학습이다.
이 미친 진도 앞지르기를 반대하는 운동이라고 하면 앞장서겠다.
개념을 조심스럽게 썼으면 한다. 우리부터.
명문 학교와 좋은 학교는 다르다.
사람들의 이해관계로 구별이 안 될 수 있다.
정말 좋은 학교인지 우리가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을 지키려고 해야
소위 명문 대학도 겸손해질 것이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이 깔려 있다.
다문화가 의도대로라면 유럽 사람에게도 다문화라고 해야 한다.
이탈리아 식당은 그냥 식당인데 동남아는 왜 다문화 식당인가?
나쁜 듯이 아님을 알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한국 문화 속에 동화시키는 관점이 조심스럽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2. 연대하는 이유
과천의 아이들은 좀 넓은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겁난다.
세상을 미쳐 살아가면 고민할 게 없다.
양심과 상식을 지키려면 두렵다.
그걸 기독교에서 진리라고 하는 거다.
진리의 길을 가야 최고의 행복, 자유함을 얻는다.
인간이 누리는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자유함이다.
이웃집 아이 학원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함.
불안해질 것이다. 우리 아이 소외될까 봐.
FOMO 현상이다. 모두 미쳐 날뛰게 된다.
대안교육 연대인 우리는 모이면 안심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가는 순간 외로워진다.
그래서 자주 모여야 한다.
우리가 초능력자 아니니까, 초인 아니니까,
우리는 지혜를 모으고 의지해야 한다.
안에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
다 소신 있어 보이지만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는 힘들다.
그런데 그게 아름다운 거다.
내적 갈등이 심해도 이곳에 오는 거
세상이 미쳐있을 때 나의 양심을 지키는 거
그게 힘든 거다.
우리는 완전체가 아니니 힘든 게 당연한 거다.
대안교육의 의미를 알리고 공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현재 맑은샘, 무지개학교가 과대교협으로 힘을 이어오고 있다.
3. 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오늘날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입시설명회는 아니나 결과적으로 나중에 도움은 될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토요일 오후에 모이는 분들은 스스로 노력하는 분들이다.
꼭 이곳에 와야 할 사람들은 이런 강연에 모시기 힘들다.
그래서 정작 이런 이야기 들려드리고 싶은 그분들은 만날 기회가 없다.
집집마다 방문해서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니
혹시 오늘 강연을 듣고 마음에 와닿는 게 있다면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나눠주면 좋겠다.
같은 이야기라도 폭력적으로 나누지는 않으면 좋겠다.
오늘 이야기를 퍼즐이라 상상해 보자.
우리는 어떤 학습 경험이 있었을까?
왼쪽 모퉁이부터 차례대로 차분하게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항상 때 묻는 부분만 묻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는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모인 여러분은 나머지 조각을 채울 분들이라 믿는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느끼면 좋겠다.
다음에 만나 - 그럴 일 없겠지만 - 오늘 이야기를 똑같이 들려드린다 해도
와닿는 것이 다를 것이다.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이다.
가끔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지만 당황스럽다.
만일 한 권의 책만 계속 붙잡고 있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자신에게 녹여내야 한다.
오늘 이야기는 이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검색만 하면 빛의 속도로 답이 나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그게 폭력이다.
검색되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
그 필요한 것들 중 검증된 것, 그것을 나누려고 한다.
행여나 이 이야기를 전문지식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듣지는 않기 바란다.
대안적 교육 공간은 왜 중요한지
이에 대해 확신을 갖고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강의에 최선을 다할 거다.
30년 전 대안교육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한국에서 한
‘원조’의 이야기니 저항 없이 들어도 된다.
4. 교사, 부모의 핵심 역량
두 가지 중 교사의 핵심 역량이 무어라 생각하는지 골라보라.
1. 전문성
2. 인격
딱 하나를 고르라면 1번 전문성일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기술 시대라 해도 전문성 없이 교사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동의하는가?
이제까지는 전문성이 교사의 경쟁력을 갈랐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문성이 디폴트 모드로 깔릴 것이다.
한국은 디지털 교과서로 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교사의 존재감이 없는데…
그렇다면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교사든 학부모든 갖춰야 할 것은 매력이다.
“저렇게 사는 거구나”하고 느끼게 하는 것
인공지능이 사람 교사, 사람 부모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매력이다.
전문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전문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문성이 경쟁력을 가르는 게 아니라
기본값이라는 거다.
웬만한 전문성으로 교사의 전문성을 내보일일은 없어졌다.
인공지능 시기에는 사람이 훨씬 중요해진 거다.
왜 다른 나라에서 인문을 함께 중요시하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 문총(문과 나온 벌레) 이야기가 난무한다.
조만간 심각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마루타도 아닌데, 공청회를 열지도 않았는데
디지털 교과서를 쓰겠다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우리보다 앞서 썼던 나라가 실패하고 종이책으로 돌아오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 것인가?
만일 나는 안 그러는데 당신은 그럴 거야. 그러니 당신이 문제라고 하는 건 결례다.
내가 이러니까 당신도 이럴 거야, 하는 가정이 중요하다.
부모와 교사는 그런 태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삶이 있다.
말로는 ‘마을교육공동체’라는 말을 쓰는데
실제 겪은 사람은 없는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적 요소가 들어온다.
교육공동체와 복지공동체는 다른 부분이 있다.
복지공동체적 접근은 삶의 질 향상이다.
우리가 모인 이 대안교육 공간은 복지공동체와 무엇이 제일 구별될까?
좋은 삶을 지향하는데 거기에 교육 콘텐츠가 들어가는 거다.
대안교육협의회를 만드는 것은 교육공동체다.
자존감을 실제로 경험한 친구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고
그런 주체끼리 만나야 소통이 가능하다.
부모, 교사가 그런 주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은 배울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상대의 이야기에
“아, 그 점은 제가 생각을 못했네요.”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녀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아이들은 우리를 본다.
저 어른은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거지? 멋지다.
그런 사례를 봐야 당당하게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
왜 자기 삶을 살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삶만 쳐다보는가?
대안교육기관은 다른 데보다 규모가 작다.
30년 전 대안교육의 다섯 가지 성격이 있다.
그중 세 번째가 ‘작은 규모의 학교’라는 이야기다.
규모가 작은 것은 최악으로 갈 수도 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주는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는 거다.
작은 학교가 좋은 학교려면 부모와 교사가 인격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규모가 큰 학교는 내가 부족해도 다른 교사가 다른 부모가 보충해 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작은 학교는 내 두려움이 그대로 학교 전체에 투영되고 파장을 일으킨다.
그래서 훨씬 위험하다.
그러니
대안학교 부모들은 자기 자신을 먼저 성장시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해 가나? 부모는 항상 공부해야 한다.
대안학교는 부모 인생학교로 함께 운영되면 괜찮지 않은가?
저 나이에 저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요즘 큰 문제는 무엇인가?
종교계든 교육계든 ‘어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가 종교와 교육이다.
한국 종교 의지할 만한가?
어른은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저렇게 사는 게 좋구나 느끼게 하는 게 어른이다.
학부모? 부모?
한국에는 부모가 없다.
전부 학부모다. 자기 삶을 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학부모를 번역할 단어가 없다.
덴마크에 교육을 배우러 간다? 가서 볼 것은 제도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능력과 순발력 면에서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한국인이 모르면 다른 나라 사람도 모른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을 그저 일상적이라 치부한다.
같은 교과서도 전혀 다른 가르침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덴마크 의무교육 9년 동안 담임교사가 한 명이다.
한국인의 ‘9년 동안 한 담임인데 문제없냐?’는 질문에
덴마크 학자들은 그 질문을 못 알아듣다가 반문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교사답지 못한 사람이 교사를 하는가?”라고.
한국에서는 우리 아이가 인질로 잡힌 거다.
우리 아이에게는 부모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제일 중요하다.
5. 내 삶을 살자
대안교육을 받는 우리의 아이들은
전생이 나라를 구했을까, 나라를 팔았을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 삶을 살자는 것’이다.
좀비 학부모들은 자기 삶을 살지 않는다.
외부로 인해 조금만 불안하면 아이를 잡는다.
내 마음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 주변이 전부 흡혈귀다.
맑은 영혼의 자녀들이 우리에게 사사건건 묻는다.
나의 판단을 구하는 게 어떤가?
“엄마, 아빠, 나 이거 해도 돼?”
내 기분에 따라서…
그래도 될까?
부모는 자녀를 기르는 게 아니다.
자녀의 존재 이유는 부모를 어른 만들기 위함이다.
아이의 존재를 잘 활용해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녀가 살면서 몇 번의 강렬한 기회를 줄 것이다.
한국에는 세 개의 대학밖에 없다!!
명문대학이 아니라 좋은 대학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이번 생에 자기 삶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 이 순간 자기 삶의 설렘을 경험하면
아이는 영문을 모르지만 설레는 세상을 만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허락하면
아이들은 고요함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난다.
나의 존재가 현실이고 세상이다.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자녀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는
“엄마, 아빠,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어?”
이 이야기다.
말 같지 않은 세상을 버티려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부모는 현실이고 세상이다.
좋은 사람을 어른이라 표현했다.
부모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기술의 문제는 기술이 해결한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사람다움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거다.
1차적 후보가 교사고 부모다.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성장하는 노력을 하게 되면
학교가 이런저런 부족함이 있어도
아이들은 그걸 경험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경험하다.
아이들은 경청, 공감, 사랑해 주면 된다.
서로 의지하고 함께 해나가는 거다.
난민수용소에서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이유는 어머니 아버지의 에너지다.
어머니 아버지가 현실이고 세상이다.
우리는 초능력자 아니고 초인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동창회를 끊은 지 수십 년이 되었다.
나도 명색이 대학 정교수니 밀릴 거 없는데
그래도 뭔가 빨린다.
그래서 지역 안에서 산다.
6. 비상시 마스크는 내가 먼저
초등대안 잘 보내고
중등단계에 도달했을 때 아이들에게
“너, 내가 돈이 남아돌아서 대안학교 보냈니?”
“나는 괜찮은데, 너는 안 불안해?”
“아무리 어리지만 너 스스로 학원 보내달라 해야지, 그게 인간 아니니?”
할 것인가?
지금 여러분을 설레게 만드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
그게 아이들이 나이 들어도 당신을 똑같이 설레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 번밖에 없는 찰나의 삶을 내가 설레며 사는 거다.
내 안에서 오는 자유함
그게 인간이 누리는 행복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생쥐들은 우연히 치즈를 발견하고 갉아먹다가 옆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놀라 도망간다.
잡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대안교육 길을 가는 우리가 사자다.
7.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거
삶의 고비마다 2차 함수, 3차 함수로 버텼는가?
삶의 중요한 공간에서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공지능 부모는 변덕스럽지 않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거
8. 짧은 인생
어머니들 어떤가?
어젯밤까지 소녀였을 것이다.
오늘밤 자면 노인 프로그램에서 만난다.
인생은 쏜살같이 간다, 정신 차려야 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 같은 삶이다.
우리는 이번 생을 살려고 왔다.
자신이 불안할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면서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가?
왜 학부모들은 자기 삶을 살지 않는가?
지금은 부모가 자녀보다 더 많이 살았다고 딱 구별된다.
전생이 들어오면 어떤가?
누가 더 많은 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나?
이번 생의 구성원
딱 이 구성원, 이 가족으로 살아본 경험은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없다.
구성원 누구도 이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 삶이 있다 해도 이 가족 구성원으로 이렇게 만나 살 기회는 없다.
찰나의 삶보다 짧은 이번 생에만 있다.
후회 없이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저마다 삶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게 있다.
파트너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위로해 주려고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이번 생에 환상의 팀으로 온 거다.
근데 왜 대학 보내려고 아이를 잡는가?
가고 안 가고는 아이의 과제다.
우리가 개입한들 뭘 할 수 있다.
우리 부모 이야기가 우리 삶에 스며들었는가 기억해 보라.
그런데 왜 우리 아이 삶에는 우리가 스며들어야 하는가?
그냥 이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살게 하지 못하나? 왜? 뭐가 두려운가?
사실 기쁨은 내 안에서 충만해야
내가 하는 일, 관계를 통해 흘러나간다.
내가 힘들어죽겠는데
내 갈증도 못 채우는 바닥의 물을 퍼서 애를 준다?
마음은 고맙지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가득 찬 물이 흘러 바닥을 다 적시는 거다.
지난 30년 간 대안교육이 소홀히 했던 것은
교육과정, 교사에만 관심을 쏟고
부모 자기의 중요성을 간과한 점이다.
어떤 환경이든 부모가 현실이고 세상이다.
신입 부모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의미 잇게 살아가기 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삶이다.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가르치는 대로 내가 살아가는 것
가장 중요한 교수법은 보여주는 것이다.
행복의 원천도, 삶을 힘들게 하는 것도 인간관계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도
우리는 아이의 삶이고 세상이다.
육체는 쇠퇴한다.
쇠퇴를 넘어서는 아름다움,
관계적 차원의 인간이 있다.
인간다움, 어른다움
사과나무든 뭐든 끝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
인간은 왜 추해야 하는가?
죽음이 성장의 최고점일 수 있다는 거
그걸 유산으로 주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가 공동체를 지키는 부분은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지만 노력하고 있는 이유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받으며 사는 거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다.
우리는 죽을 몸이다. 그러니 가슴에 따라 살아야 한다.
-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졸업식 축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오늘을 살아나갈 때
애가 대학 가든 말든 그건 아이의 과제가 된다.
아들은 며느리 남편, 사돈의 자식이다.
나의 과제에 집중해서
내 가슴에 따라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듯이 곧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주변이 엉터리일수록 당신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그때마다 그 긴장감이 당신의 자녀에게 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관성으로 살아가는 것, 하는 대로 그저 사는 것
무리가 주는 아늑함이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자유함을 얻기 위해 사는 것
진흙에서 피어도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가는 거다.
아이들과 같은 방향을 보고
반발짝 앞서서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비를 맞는 존재로
보여줘야 한다.
인간의 삶은 나침반과 같아서 진동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 진동을 버티려면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이때 말발보다는 ‘존재’와 ‘삶’이 중요하다.
9. 연대
사상누각
모래의 특성을 흩어진다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러나 모래의 핵심 특성은 세상의 무게를 나누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니 감정의 얽힘은 당연히 있다.
우리가 한국의 최고 능력 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만큼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집다니 있는가?
개인적으로 서운함이 있을 수 있지만,
최고의 파트너와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힘든가?
노력하는 사람들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안 해도 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자식 문제로 스타일 구기지 않기는 어렵다.
자녀가 성장할수록 더 깊은 본질로 가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어지는 거다.
그걸 잘 버텨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 어려움은
나의 선택에서 나온 건데
그것은 나의 용감함에서 오는 한계다.
오류가 아니다.
내가 용감했기에 겪는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이 오류와 한계만 구별해도 세상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간을 행복을 경험하고 연습하는 곳
행복한 삶과 좋은 삶이 만나는 곳으로 융합하고 화합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과정은 완벽하다.
부정적이고 힘든 일, 행복하고 설레는 일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니 우리가 할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것은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에너지로 나를 위로해야 할 때다.
방점은 에너지를 지키고 충전하는 데에 찍혀야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 내가 어떻게 내 삶의 에너지를 지키는지
- 내 기도는 무엇인지
- 내 일상의 주문, 신조는 무엇인지
이런 것을 의식적으로 나누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블랙홀 같은 세상에서 내 삶의 에너지를 빼앗기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암흑을 살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자녀는 부모를 인간 만들기 위해 온 존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