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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생백(虛室生白)
방을 비우면 빛이 그 틈새로 들어와 환하다는 뜻으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虛 : 빌 허(虍/6)
室 : 집 실(宀/6)
生 : 날 생(生/0)
白 : 흰 백(白/0)
출전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방이 비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환하게 밝아진다는 뜻으로, 마음을 비우는 자에게는 복이 있음의 비유이다. 마음이 무상무념(無想無念)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장자(莊子) 인간세편(人間世篇)에 출전한다.
이 성어는 공자(孔子)와 제자 안회(顔回)가 문답하는 가운데 재계(齋戒; 부정을 피하고 몸을 깨끗이 함)하는 도리를 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안회가 물었다. "마음의 재계란 어떤 것이옵니까?"
顏回曰: 敢問心齋.
공자(仲尼; 공자의 자)가 답했다. "먼저 뜻을 한데 모아 잡념을 없애라. 그리하여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기운)로 들어라. 무릇 들음은 귀에서 그치고 마음은 뜻이 서로 합하는데 그치지만, 기는 공허해서 무엇이나 다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도는 오직 공허 속에 모이며, 이 공허가 곧 마음의 재계이니라."
仲尼曰: 若一志, 無聽之以耳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안회가 다시 물었다. "제가 아직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스스로 나인 줄 알았는데, 이제 가르침을 받자 그만 제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공허라고 하겠습니까?"
顏回曰: 回之未始得使, 實自回也. 得使之也, 未始有回也. 可謂虛乎.
공자가 답했다. "어허, 지극하구나. 그럼 너에게 일러주마. 너는 위나라에 가거든 노닐기만 할 일이지 명예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라. 네 말이 용납되거든 입을 떼고, 용납되지 않거든 그만 그쳐라.
마음을 크게 가져 남에게 엿보이지 말며, 마음을 깨끗이 가져 남의 꺼림을 받지 말도록 해라. 오직 한결같이 스스로 지키다가 마지못할 때만 응하면 거의 도에 가깝다 할 것이다.
(...)
저 구멍이 뚫린 빈방 안에는 하얀 기운이 있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좋은 징조가 깃들지만, 만일 사람의 마음이 그칠 곳에 그치지 못하면 이를 일러 겉은 조용한 듯해도 속이 분주하다고 하는 것이다.
무릇 귀와 눈의 작용을 안으로 받아들여 마음의 집착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에게는 신도 의지하려 하겠거늘 하물며 사람은 어찌하겠느냐!."
(莊子/人間世)
◼ 인간세(人間世)
○ 顔回見仲尼, 請行. 曰: 奚之.
안회(顔回)가 중니(仲尼)를 뵙고 길을 떠날 것을 청했다. 이에 중니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 顔回曰: 將之衛.
안회가 말했다. "위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 仲尼曰: 奚爲焉.
중니가 물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는 겐가?"
○ 顔回曰: 回聞衛君, 其年壯, 其行獨, 輕用其國, 而不見其過.
안회가 말했다. "제가 듣기에 위나라 주군은 나이가 젊은데 행실이 독선적이어서, 나랏일을 가벼이 경영하고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輕用民死, 死者以國量乎澤, 若蕉. 民其無如矣.
또한 그는 백성을 함부로 사지로 몰아 넣어, 시체가 흡사 연못에 무성한 잡초와도 같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回嘗聞之夫子曰; 治國去之, 亂國就之, 醫門多疾. 願以所聞, 思其所行, 則庶幾其國有瘳乎.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의원의 문앞에는 많은 병자가 모이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본받고자 하면 위나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仲尼曰: 譆. 若殆往而刑耳. 夫道不欲雜. 雜則多, 多則擾. 擾則憂, 憂而不救.
중니가 말했다. "어허! 자네가 가면 필시 형벌을 받을 걸세. 무릇 도란 번잡스런 것을 멀리 해야 되는 법이네. 번잡해지면 일이 많아지고, 일이 많으면 어지러워지게 되지. 어지러워지면 근심이 있게 되는데, 근심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구해 낼 수도 없다네.
古之至人, 先存諸己而後存諸人. 所存於己者未定, 何暇至於暴人之所行.
옛 지인(至人)은 먼저 자기 자신이 갖추고 난 연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갔다네. 자네 자신도 아직 갖추지 못했으면서 포악한 사람의 행실을 관여할 틈이 있겠는가?
且若亦知夫德之所蕩而知之所爲出乎哉.
또한 자네는 덕이 어떻게 허물어지고 앎이 어떻게 해서 나오는지 알고 있는가?
德蕩乎名, 知出乎爭.
덕은 명예심에 허물어지고 앎은 경쟁심에서 생기는 법이라네.
名也者, 相軋也. 知者也, 爭之器也.
명예란 서로를 손상시키고, 지식은 다툼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지.
二者凶器, 非所以盡行也.
명예와 지식은 흉기이므로 결코 취할 바가 못되네.
且德厚信矼, 未達人氣, 名聞不爭, 未達人心.
자네가 아무리 후덕하고 신망이 두터울 지라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충분히 간파하지 못한 채 명예와 지식으로 다퉈서는 안된다네.
而强以仁義繩墨之言衒暴人之前者, 是以人惡育其美也. 命之曰菑人.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억지로 인의(仁義)의 바른 말을 포악한 사람 앞에 늘어놓는 것은 남의 못난 점을 기화로 하여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짓이라네. 이런 자를 일러 남을 해치는 자라고 하지.
菑人者, 人必反菑之, 若殆爲人菑夫.
남에게 해를 입히면 상대에게 그로부터 해침을 당하는 법, 자네도 이와 마찬가지로 해를 입게 될 걸세.
且苟爲悅賢而惡不肖, 惡用而求有以異.
또한 애당초 위나라 군주가 진실로 어짊을 좋아하고 어리석음을 싫어한다면 어찌 자네를 써서 다른 것을 구하는 일이 있겠느냐!
若唯無詔. 王公必將乘人而鬪其捷.
자네는 부름을 받고 위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네. 따라서 위나라 군주는 필시 권세로 누르고 말꼬리를 잡고자 할 것이네.
而目將熒之, 而色將平之, 口將營之, 容將形之, 心且成之.
그러면 자네의 눈이 초점을 잃고 낯빛은 변하고 입으로는 온갖 변명을 늘어놓고 태도는 비굴해지고 마음도 또한 상대를 따르게 되지.
是以火救火, 以水救水. 名之曰益多.
이것은 불로써 불을 끄려 하고 물로써 물을 막으려 하는 격이라네. 이를 이름하여 군더더기가 많아짐(益多)이라고 하지.
順始無窮. 若殆以不信厚言, 必死於暴人之前矣.
처음부터 그러다 보면 끝없이 끌려갈 것이네. 만약 자네가 신임도 받지 못하면서 충직한 언사만 쏟아낸다면 필시 포악한 군주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네.
且昔者桀殺關龍逢, 紂殺王子比干.
또한 옛날에 하나라 걸(桀) 왕은 관룡봉을 죽였고, 은나라 주(紂) 왕은 왕자 비간을 죽였네.
是皆修其身以下傴拊人之民, 以下拂其上者也, 故其君因其修以擠之. 是好名者也.
두 인물은 자기 몸을 수양하여 몸을 구부리어 아래로 백성들을 따르게 만듦으로써 신하의 신분으로 왕을 거역한 자들이 되었네. 죽음을 당한 것은 두 인물이 명예를 좋아한 허물 탓이지.
昔者堯攻叢枝胥敖, 禹攻有扈. 國爲虛厲, 身爲刑戮. 其用兵不止, 其求實無已.
옛적에 요나라 임금은 총지와 서오를 공격했고, 우나라 임금은 유호를 침공한 적이 있지. 세 나라는 모두 폐허가 되고 군주는 형벌을 가하여 죽였네. 그들은 계속해서 군대를 동원하여 끝없이 재물을 구하려 했다더군.
是皆求名實者也. 而獨不聞之乎.
이는 두 왕 모두 명성과 실익을 추구한 자라고 하겠지. 자넨 이것을 듣지 못했는가?
名實者,聖人之所不能勝也, 而況若乎.
명성과 실익을 구하는 자는 성인이라 해도 온전히 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자네에 있어서야 어떻겠는가!
雖然, 若必有以也, 嘗以語我來.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자네가 굳이 위나라에 가려 할 때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게야. 자, 한번 말이나 해보게."
○ 顔回曰: 端而虛, 勉而一則可乎.
안회가 말했다. "몸을 단정하게 하고 마음을 겸허히 하여 힘써 뜻을 한결같이 하면 되겠습니까?"
○ 仲尼曰: 惡. 惡可. 夫以陽爲充孔揚, 采色不定, 常人之所不違, 因案人之所感, 以求容與其心.
중니가 대답했다. "안되네. 어찌 되겠는가! 그는 기세가 등등해 사나운 기운으로 충만하고 공명심에 차 있으며 낯빛이 매순간 변하여 평범한 사람은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한다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억누르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 걸세.
名之曰日漸之德不成, 而況大德乎.
이런 인물에 대해 날마다의 작은 덕마저 성취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큰 덕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將執而不化, 外合而內不訾, 其庸詎可乎.
그는 자기 소견에 집착할 뿐 남과 화합하지 않고, 겉으로는 타협하는 듯해도 내심으로는 헐뜯고 있을 터인데 어찌 자네의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 仲尼曰: 然則我內直而外曲, 成而上比.
다시금 안회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안으로는 곧게 하고 밖으로는 굽히며, 제 의견을 말하되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그 말을 좇겠습니다.
內直者, 與天爲徒.
안으로 마음을 곧게 하는 것은 하늘과 더불어 한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與天爲徒者, 知天子之與己皆天之所子.
하늘과 하나가 되면 천자나 저와 같은 사람 모두 하늘의 자손임을 알게 됩니다.
而獨以己言蘄乎而人善之, 跽乎而人不善之邪.
그러니 어찌 홀로 자기의 말을 남들이 옳다고 해주기를 바라거나 또는 옳지 않다고 해주기를 바라겠습니까.
若然者, 人謂之童子, 是之謂與天爲徒.
이러한 인물을 어린 아이라 일컫기도 하고 하늘과 한 무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外曲者, 與人爲徒也.
밖으로 몸을 굽힌다는 것은 사람들과 한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擎跽曲拳, 人臣之禮也.
人皆爲之, 吾敢不爲邪.
손을 높이 들고 꿇어앉아 몸을 굽혀 절하는 것은 신하의 예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데 저라고 어찌 감히 하지 않겠습니까?
爲人之所爲者, 人亦無疵焉. 是之謂與人爲徒.
남이 하는 대로 하고 있으면 사람들도 헐뜯지 않습니다. 이것을 사람들과 한 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成而上比者, 與古爲徒.
말을 하되 옛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그 말을 좇겠다는 것은 옛 사람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其言雖敎, 讁之實也, 古之有也, 非吾有也.
비록 그 말이 가르침과 꾸짖음이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옛 사람의 것이지 제 자신이 지어낸 말은 아닙니다.
若然者, 雖直而不病.
是之謂與古爲徒. 若是則可乎.
이와 같이 하면 비록 말은 곧이 하더라도 화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옛 사람과 한 무리가 되었다고 일컫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 仲尼曰: 惡. 惡可. 大多政法而不諜, 雖固亦無罪. 雖然, 止是耳矣, 夫胡可以及化! 猶師心者也.
중니가 대답했다. "안 되지, 당치도 않아. 바로 잡는 방법이 너무 많아 마땅치가 않네. 비록 방법은 고루하여 죄를 받지는 않겠으나 단지 그 정도에 그칠 뿐이지. 그래 가지고서야 어찌 감화시킬 수가 있겠는가? 자네는 아직 자기 마음에 묶여 있네."
○ 顔回曰: 吾无以進矣, 敢問其方.
이에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다른 방도를 묻고 싶습니다."
○ 仲尼曰: 齋, 吾將語若. 有心而爲之, 其易邪. 易之者, 皞天不宜.
중니가 말했다. "먼저 마음을 재계하도록 하게. 자네에게 그것을 말해 주겠네. 마음을 먹고 일을 하려 하면 쉽게 되겠는가? 쉽다고 여기는 자는 하늘이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 顔回曰: 回之家貧, 唯不飮酒不茹葷者數月矣. 如此, 則可以爲齋乎.
안회가 말했다. "저희 집은 가난해서 술 먹을 생각조차 못하고 향기로운 야채를 못 먹은 지가 여러 달입니다. 이렇다면 재계하고 있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 仲尼曰: 時祭祀之齋, 非心齋也.
중니가 대답했다. "이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재계라 할 수 있어도 마음의 재계는 아니네."
○ 回曰: 敢問心齋.
이에 안회가 물었다. "마음의 재계란 어떤 것입니까?"
○ 仲尼曰: 若一志,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 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 耳止於聽,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중니가 대답했다. "뜻을 하나로 모아 귀로 소리를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게.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써 듣도록 해야 하네. 귀는 소리를 듣기만 할뿐이고 마음은 사물에 응할 뿐이지만 기는 비어있어 무엇이나 받아들이지. 도道는 오직 허(虛)한 곳에 모이는 법이야. 바로 이 허한 상태가 마음의 재계라네."
○ 顔回曰: 回之未始得使, 實有回也, 得使之也, 未始有回也, 可謂虛乎.
안회가 말했다. "제가 선생님으로부터 심재心齋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을 때는 참으로 제 자신에게 얽매여 있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자마자 처음의 제 자신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를 허虛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夫子曰: 盡矣. 吾語若. 若能入遊其樊而无感其名.
이에 사부가 말했다. "다 되었구나. 자네에게 말해 주겠네. 자네는 그 나라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소요하되 명예 따위에는 흔들리지 말아야 되네.
入則鳴, 不入則止.
자네가 받아 들여지면 말을 하고 받아 들여지지 않거든 그대로 있게나.
无門无毒, 一宅而寓於不得已, 則幾矣.
문을 두지도 말고 벽을 세우지 말 것이며 거처를 일정하게 하여 부득이한 경우에만 응한다면 그런대로 무난할 것이네.
絶迹易, 无行地難.
잠시 자취를 남기지 않기는 쉬어도 평생 땅 위를 밟지 않고 걷기는 어려운 일이네.
爲人使易以僞, 爲天使難以僞.
사람에게 부림을 받을 때는 거짓으로 속이기 쉽지만 하늘이 시키는 바를 속이기는 어렵다네.
聞以有翼飛者矣, 未聞以无翼飛者也.
날개가 있음으로 날았다는 말은 들었어도 날개가 없이 날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걸세.
聞以有知知者矣, 未聞以无知知者也.
지혜가 있어 사물 이치를 안다는 말은 들었어도 지혜가 없음에도 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겠지.
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저 빈 곳을 보게나. 텅빈 방이지만 저렇게 환한 햇빛이 들지 않는가. 길한 일도 거기에 머문다.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그런데도 그치지 않음은 몸은 앉아 있으나 마음은 내달리고 있다(坐馳)고 하지.
夫徇耳目內通而外於心知, 鬼神將來舍, 而況人乎.
무릇 눈과 귀를 안으로 향하게 하고 마음의 지각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 귀신도 찾아와 머무를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는 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是萬物之化也, 禹舜之所紐也, 伏羲几蘧之所行終. 而況散焉者乎.
이것이야 말로 만물의 변화에 응하는 것이니 우임금과 순임금도 이를 따랐으며 복희(伏羲)와 궤거(几蘧)가 평생 행한 것이었지. 그러니 범인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 葉公子高將使於齊, 問於仲尼曰: 王使諸梁也甚重.
섭공 자고(子高)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중니에게 물었다. "왕이 저를 사신으로 보내는 것은 일이 매우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齊之待使者, 蓋將甚敬而不急.
그런데 제나라는 사신을 정중하게 접대하겠지만 교섭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匹夫猶未可動, 而況諸侯乎. 吾甚慄之.
필부의 마음도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데 제후에 있어서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子常語諸梁也曰; 凡事若小若大, 寡不道以懽成. 事若不成, 則必有人道之患. 事若成, 則必有陰陽之患. 若成若不成而後無患者, 唯有德者能之.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도에 벗어난 방식으로 성취했다면 만족스러운 경우는 드물다. 만일 일이 성취되지 못하면 왕이 주는 벌을 피할 수 없고, 일을 성취한다 해도 필시 음양의 부조화로 인한 병에 걸릴 것이다. 일을 이루거나 못 이루거나 간에 우환이 없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인물만이 할 수 있다.'
吾食也執粗而不臧, 爨無欲淸之人.
저는 평소 거친 음식을 먹고 질박한 생활을 하여 불을 거의 때지 않으므로, 밥을 지을 때는 요리사가 시원함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今吾朝受命而夕飮氷, 我其內熱與.
오늘 아침에 저는 어명을 받고 저녁에는 얼음을 먹었음에도 속에서는 열이 식을 줄 모릅니다.
吾未至乎事之情, 而旣有陰陽之患矣.
아직 일에 착수하기도 전에 이미 음양의 부조화로 인한 병에 걸렸습니다.
事若不成, 必有人道之患.
또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 왕은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
是兩也, 爲人臣者不足以任之, 子其有以語我來.
이 두 가지 근심이 함께 닥쳐온 셈입니다. 신하된 제가 감히 임무를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부디 선생님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 仲尼曰: 天下有大戒二. 其一, 命也, 其一, 義也.
중니가 말했다. "천하에 크게 경계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명(命)이고 다른 하나는 의(義)입니다.
子之愛親, 命也, 不可解於心.
자식이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명으로 사람의 마음에서 제거할 수 없습니다.
臣之事君, 義也, 無適而非君也, 無所逃於天地之間. 是之謂大戒.
신하가 임금을 섬김은 의로서,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임금이 다스리지 않은 데가 없으니 누구도 이 천지에서 달아날 곳은 없습니다. 이를 크게 경계할 일(大戒)이라고 일컫습니다.
是以夫事其親者, 不擇地而安之, 孝之至也.
따라서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편안케 해드려야만 지극한 효도라 할 수 있습니다.
夫事其君者, 不擇事而安之, 忠之盛也.
또한 임금을 받드는 데 있어서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편안히 섬겨야만 최고의 충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自事其心者, 哀樂不易施乎前, 知其不可奈何而安之若命, 德之至也.
스스로 자기 마음을 섬기는 사람은 슬픔과 즐거움으로 인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았을 때는 순순히 명에 따르는 것이 지극한 덕입니다.
爲人臣子者, 固有所不得已, 行事之情而忘其身.
왕의 신하나 자식된 사람은 참으로 부득이한 일에 부딪히면 주어진 바를 충실히 행하고 자기 몸을 보살피지 않아야 합니다.
何暇至於悅生而惡死. 夫子其行可矣.
그러니 어느 겨를에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겠습니까! 그대는 주저하지 말고 제나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丘請復以所聞. 凡交近則必相靡以信, 交遠則必忠之以言.
제가 들은 바를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릇 외교란 가까운 나라와는 반드시 신의로서 서로 존중하고 먼 나라와는 모름지기 말로써 진심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言必或傳之, 夫傳兩喜兩怒之言, 天下之難者也.
말에는 그것을 전할 사신이 필요한데, 양쪽 모두가 기뻐하거나 화나게 하는 말을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夫兩喜必多溢美之言, 兩怒必多溢惡之言.
양쪽 모두를 기뻐하도록 할려면 거기에는 필시 지나치게 칭찬하는 말이 많아지고, 양쪽 모두를 성내도록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지나치게 헐뜯는 말이 많아집니다.
凡溢之類妄, 妄則其信之也莫, 莫則傳言者殃.
지나친 것에는 진실성이 없게 되고, 진실성이 없으면 믿음을 잃게 됩니다. 믿음이 없어지면 그 말을 전한 사신은 화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故法言曰: 傳其常情, 無傳其溢言, 則幾乎全.
그러므로 격언에 이르기를, '있는 그대로의 실정은 전하고, 지나친 언사는 전하지 않는다면 거의 온전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且以巧鬪力者, 始乎陽, 常卒乎陰, 泰至則多奇巧.
또한 기교로 승부를 겨루는 자는 처음에는 정정당당히 맞서지만 항상 끝에 가서는 음모를 품게 되는데 기이한 간계가 많아지게 됩니다.
以禮飮酒者, 始乎治, 常卒乎亂, 泰至則多奇樂.
예를 갖추고 술을 마시는 자도 시작은 법도에 맞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늘 난장판이 되고 지나칠 경우에는 기이한 즐거움을 추구하게 됩니다.
凡事亦然, 始乎諒, 常卒乎鄙.
其作始也簡, 其將畢也必巨.
일이란 이와 같아서 진실에서 시작하여 언제나 야비하게 끝납니다. 시초에는 간략했으나 마지막에 이르면 복잡다단해 집니다.
言者, 風波也. 行者, 實喪也.
말이란 바람따라 일어나는 물결과 같고, 행동에는 득실이 있습니다.
夫風波易以動, 實喪易以危.
풍파는 요동하기 쉽고, 득실은 위태롭기 십상입니다.
故忿設無由, 巧言偏辭.
화가 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교묘한 언사와 치우친 말 때문입니다.
獸死不擇音, 氣息발然, 於是竝生茀心.
짐승이 죽음에 이를 경우 아무렇게나 악을 쓰게 되고 호흡은 거칠어져 성질은 사나워집니다.
剋核大至, 則必有不肖之心應之, 而不知其然也.
사람도 너무 엄하게 다그치면 상대도 사납게 대응하게 되지만 왜 그런지 까닭을 모릅니다.
苟爲不知其然也, 孰知其所終.
참으로 그 이유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결과를 알겠습니까!
故法言曰 : 無遷令, 無勸成. 過度益也.
그러므로 격언에 '왕의 명령을 고치지도 말고 일을 억지로 이루려고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지나침은 불필요함을 덧붙이는 격입니다.
遷令勸成殆事. 美成在久, 惡成不及改. 可不愼與.
왕의 명령을 고치고 일을 억지로 이루려고 함은 위험을 자초합니다. 일을 잘 이루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한번 저지른 나쁜 일은 쉽사리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且夫乘物以遊心, 託不得已以養中, 至矣.
그저 사물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니고,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지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 최상입니다.
何作爲報也. 莫若爲致命, 此其難者.
어찌 일을 꾸며서 보고하겠습니까. 명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으니 이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例)
○ 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저 공허한 경지를 바라보노라면 텅 빈 마음이 밝아질 것이요, 행복이나 좋은 일은 이런 곳에 머물게 된다.
- 장자(莊子) 내편(內篇) 인간세(人間世)
○ 虛白高人靜, 喧卑俗累牽.
허실생백으로 높은 은사 고요히 있는데, 나는 어지러운 시속에 매여 끌려 다니노라.
- 두보(杜甫) 귀(歸)
○ 室小虛生白, 雲收月在天.
방이 작아 햇빛으로 환해지고, 구름 걷히니 달이 하늘에 있네.
- 김시습(金時習) 효의(曉意)
⏹ 남기면 넉넉하다, 여유
여유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이 말은 삶을 관통하는 말이다. 여(餘)는 남는 것이고 유(裕)는 넉넉한 것이다. 사실 뒷말은 군더더기라고 볼 수 있다. 남으면 저절로 넉넉하니까.
말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이렇다.
○ 그렇게 여유를 부릴 상황이야?
이 때의 여유는 시간적인 넉넉함을 의미한다. 남은 시간이 없는데 그렇게 뜸을 들이고 있느냐는 힐난이다. 차 한 잔을 하면서 여유를 즐겨라. 이것도 너무 바쁘게만 살지말고 마음을 부려놓을 여지를 만들라는 뜻이다.
○ 조금 여유를 두고 잘라.
이때의 여유는 공간적인 여유이다. 너무 각박하게 싹둑 자르지 말고 넉넉하게 자르라는 말이다.
○ 그 친구는 여유 있게 살더라.
이것은 다중의 의미가 생긴다. 그 친구가 한가롭게 산다는 의미도 되고,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는 얘기도 된다. 뭔가 쫓기고 사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더라는 얘기도 된다.
'가난해도 여유 있게 산다'는 말은, 가난이 그의 마음의 평정을 깨지 않아, 없으면 없는 대로 넉넉하게 산다는 뜻이다.
여유를 관통하는 뜻은, 남는 것이 있어 넉넉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남는 것은 사실 '필요없는 것'과도 통하는 것이다.
'여유'라는 말은 '필요없음의 필요'를 역설하는 말이다. 필요없음의 필요없음은 동어반복이니, 필요없음의 필요는 역설(逆說)이다.
필요없음이 왜 필요한가. 필요없음은 장차 필요함에 대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그게 없어도, 현재의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차후 무슨 일이 생길 때 그것이 필요할 수 있기에, 여유는 중요해지는 것이다.
우리 삶의 많은 목표와 강박과 질투와 슬픔과 근심과 고통은, '여유'의 문제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필요도 없을 부(富)에 대해 미친 듯이 동경하고, 돈 몇 푼에 실성하고 사람을 죽이고, 엄친아를 찬미하면서 슬그머니 미워하는 것도 모두 여유의 이미지에 환장하는 탓이다.
우리가 그 질곡과 각박을 벗어나, 마음의 한적함을 갖고자 하는 것, 옛사람들이 벼슬을 때려치우고 한사코 산 속에 파묻히고자 했던 것, 생각이 만들어내는 평화의 비밀, 감정이 몰아붙이는 생에서 한 걸음 이탈하고자 하는 마음, 이 모두가 여유의 동경이다.
'필요없는 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의미는,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장식들, 우리의 모든 허영들, 우리의 모든 형식들, 우리의 수많은 축제들, 우리의 다양한 일탈들, 우리의 헛된 꿈들, 우리의 수많은 보석들, 우리의 문화 콘텐츠들, 우리의 영화와 소설과 신문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사는데 굳이 필요없는 것들이다. 필요없는 것이 더 비싸고 더 귀하고 더 오래 가고 더 치명적이다.
여유라는 말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말을 '남는 것이 있어 넉넉하다'고 생각하지만, 발상을 바꾸면, '남기면 넉넉하다'로 읽을 수 있다.
남는 것이 있어서 남기는 게 아니라, 남기면 남는 것이 있는 것이 되는 셈이다. 여유없는 공간도 여유롭게 쓰면 남는다. 이것이 장자의 허실생백(虛室生白)이라고 할 수 있다,
100년 안쪽의 시간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삶도 여유롭게 쓰면 넉넉한 시간이다. 그 속에 사랑을 넣고 그 속에 고마움을 넣고 그 속에 미안함을 넣고 그 속에 믿음과 진정성을 넣으면 시간이 길어진다.
재물의 여유, 혹은 삶의 조건들의 여유 또한 그러하다. 스스로가 가난을 기꺼워하면 가난이 헐겁도록 여유롭다는 옛 말씀이 그러한 것이다. 나누면 여유로워진다는 뜻도 그러한 생각의 연장일 것이다.
마음이 재물이고 태도가 재물이고 솜씨가 재물이고 그 사람이 재물이라는 생각을 거듭하면, 삶의 여유없음이 어느 정도는 가시지 않을까?
물론 여유와 여유없음이 사회적인 모순으로 커지고, 누군가의 농간이 누군가의 여유를 탈취하고, 여유와 여유 없음의 차이가 지나쳐서 세상의 고통이 되는 상황까지, 여유롭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유가 단지 생각의 차이를 벗어나, 탐욕과 무책임과 정글의 질서 때문에 깨지는 것이라면, 우린 여유의 기본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남기려고 애써도 남길 것이 너무 없는 그 자리에 선 사람에게, 이 여유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서정춘의 '허시(虛詩)'
내 시의 문장은/
타고남은 서까래다/
풍장이 남긴 뼈다귀다
이것저것 다잡아/
상한 몸 엮었더니/
서서 죽은 인골 탑!!
허실생백(虛室生白)만큼, 비움의 효용을 간명하게 정리한 말도 드물 것이다. 방에 들어찬 것들을 비우면 여백이 생겨난다.
우린 방을 넓게 쓰고자 하는 욕망과 방에 많은 것을 들여놓고 싶은 욕망을 함께 실현하려 한다. 그러려니, 방이 자꾸 커진다. 방이 커질수록 들여놓고 싶은 물건들이 더 빨리 늘어나 늘 비좁다.
이 문제를 고민하는 세상의 바보에게 장자는 말한다. "물건을 버려, 그러면 방이 넓어지잖아."
시를 이루는 문자들도, 욕심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번다한 문장과 휘황한 기교로 채우면서 시의 방도 커진다. 방은 크지만 여운(餘韻)이 있을 자리가 없으니 답답하다.
저것들을 버려야 하건만 시인 또한 이미 들인 가재도구에 애착이 생겨 방만 더욱 늘여 놓는다. 이 병폐를 저 시인은 뒤집어 보인다.
큰 집이었다고 생각했던 시, 그 까짓 것 다 태워 없애니 시커먼 서까래 한 덩어리가 남았다.
큰 삶이었다고 생각했던 시, 그거 풍장하고 나니 뼈다귀 몇만 남았다. 시를 사람처럼 만들어 보려고 엮었더니 뼛조각들이 서 있는 꼴이다.
집이었던 것, 삶이었던 것, 사람이라 여겼던 것. 비워 놓고 보면 그 본질은 이 모양이니, 번들거리던 것들을 다 비워 낸 나머지가 후련하게 누리는 것이 시가 아니겠는가. 실(室)이 시가 아니고, 백(白; 빈 자리)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