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물줄기 따라 협곡의 비경을 누리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
낙동강 물줄기가 빚어낸 협곡의 비경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자동차로 여행해서는 절대 볼 수 없다. 오직 V-트레인, 백두대간 협곡열차에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풍광이다. 바위틈에 자라난 소나무와 멋지게 물든 낙엽송까지 손끝에 만져질 듯 가깝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줄 세 칸짜리 열차에 올라보자.
백두대간의 협곡을 달려 나가는 V-트레인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과 경상북도 봉화군 분천역을 1일 3회 오가는 V-트레인은 낙동강 물줄기가 빚어낸 협곡의 속살을 가까이서 만나는 세 칸짜리 관광열차다. V자로 깊게 팬 협곡을 지나는 열차라 해서 V-트레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철암에서 출발해 석포역과 승부역을 지나 양원역, 비동역을 거쳐 분천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10분 정도 기차여행을 하게 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광은 오로지 기차를 타야만 만날 수 있다. 승부역과 양원역, 비동역은 도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자동차로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힘들게 예약해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열차가 출발하는 태백 철암역과 봉화 분천역은 설렘과 기대로 들뜬 여행자들로 늘 붐빈다.
철암역 주변의 이색적인 풍광
철암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짧은 철암 여행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철암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국내 최대의 선탄시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석탄이 운반되면서 한때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1970년대에서 시계가 멈춘 듯 고요하다. 철암역 주변에는 예전 선탄장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철암역 앞 다리를 건너면 개천을 따라 늘어선 빈집들이 이색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철암역 플랫폼에서 대기 중인 V-트레인
철암역에서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기차여행에 대한 기대로 상기된 모습이다. 플랫폼에서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열차의 외관도 인상적이다. 백두대간을 누비고 다녔던 아기 호랑이를 닮은 기관차와 이국적이면서도 앙증맞은 핑크빛 외관의 객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열차 내부도 일반 열차와는 다르다. 차창을 따라 한 줄로 이어진 좌석과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좌석으로 구분되어 있다. 천장은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빛나도록 야광으로 장식했다. 달랑 세 칸뿐인 열차지만 방송과 안내를 담당하는 승무원도 있고, 간식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매점도 있다.
[왼쪽/오른쪽]V-트레인 승무원 / V-트레인 내부
철암역을 출발한 열차는 간이역인 동점역을 지나 석포역에 이르는 동안은 제법 속도를 낸다. 본격적인 협곡 여행은 석포역 이후부터 시작된다. 시속 60km 정도로 달리던 열차는 석포역을 지나면서 시속 25km 안팎의 속도로 달리며 창밖의 풍경을 천천히 끌어모은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는 모습도 다양하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여행자가 있는가 하면, 자리에 앉아 묵묵히 풍경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여정을 동영상으로 담기 위해 아예 열차 제일 끝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유유자적하는 사람도 있다.
[왼쪽/오른쪽]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 여행자 / 열차 제일 끝에서 동영상을 담고 있는 여행자 승부역에 정차한 V-트레인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는 문구로 유명한 승부역에서는 약 10분간 정차해 오지마을 간이역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협곡의 비경은 승부역에서 양원마을에 이르는 구간에서 절정에 이른다. 태백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V-트레인도 협곡의 속살을 쓰다듬듯 달려 나간다.
양원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사’로 불리는 역이다. 승부역과 비동역 사이에 자리한 양원마을에는 열차가 서지 않았다. 주민들이 기차를 타려면 승부역이나 비동역까지 걸어가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직접 시멘트를 사서 작은 역사를 만들었고, 드디어 열차가 서기 시작했다. 그때 주민들이 만든 역사와 간이화장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사인 양원역 [왼쪽/오른쪽]양원역 간이화장실 / 양원역에 펼쳐진 난전
작은 나무의자와 구형 TV가 추억을 되살려주는 양원역 안의 풍경이 정겹다. 말린 산나물과 약용식물, 감자떡과 옥수수를 파는 난전도 선다. 적막한 오지마을이 북적이는 시간이다.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양원마을에서 비동마을로 이어지는 ‘체르마트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스위스의 빙하특급열차가 출발하는 체르마트역과 분천역이 자매결연을 맺으며 새롭게 이름을 얻은 ‘체르마트길’은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던 길이다. 협곡의 물소리를 친구 삼아 두 발로 직접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약 2.2km 구간으로 길지는 않지만 계곡과 산길이 이어지며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왼쪽/오른쪽]화전민들이 살았던 비동역에 정차한 V-트레인 / 양원역과 비동역을 잇는 체르마트길
열차 안에는 또 다른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본다. 간단한 메모를 적어 열차 벽면에 남기기도 하고, 엽서를 구입해 사연을 담기기도 한다. 열차 안 우체통에 넣으면 한 달 후에 집으로 배달되어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다.
열차여행의 추억을 기록한 메모판 [왼쪽/가운데/오른쪽]엽서 위에 찍어보는 V-트레인 스탬프 /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꾸며진 분천역 / 분천역 자전거대여소
이제 V-트레인은 화전민들이 모여 살았던 비동마을을 지나 종착역인 분천역에 도착한다.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꾸며진 분천역과 호랑이 인형들이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물한다. 분천역을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지면서 조용하던 분천마을에 생기가 넘친다. 마을 주민들은 공동으로 식당을 운영해 산골마을의 손맛과 인심을 전한다. 분천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거나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 인근 지역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가능하다.
첫댓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데... 너무 너무 좋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