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포항에 살거나 포항에 가본 사람은 송도 해수욕장이라는 곳을 알 것이다.
오늘 영화를 보았다.
스크린 속, 낯익은 바닷가가 보였다. 새장 여인숙, 흐린 날씨, 방파제, 그리고 망가져버린 바닷가. 한 여인이
사진을 찢어 바다모래에 묻어버린 후 바다속으로 들어가 자살했다. 나는, 어쩌면 그 바닷가에 한 번 가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 익은 곳, 지나가다가 들렸을 지도 모르는 아니면 어릴적 향수가 있는 곳이나 그도 아니면
기억 저 구석속에 있는 어쩌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바닷가가 낯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송도 해수욕장이었다.
내가 가끔씩 찾아가던 곳. 몇 시간 기차를 타고 동대구로 와서 갈아 탄 다음, 또 몇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포항.
그리고 비가 막 개어서 아직 하늘이 찌푸릴 때, 택시를 타고 갔었던 그 곳이었다. 뉘역뉘역 해질 무렵, 근처
구멍가게에서 캔맥주를 사고 탁해져 버린 백사장을 거느리다가, 산성비에 부식되어버린 여신상에 기대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흐린 하늘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 곳이었다. 비대칭 적으로 포스코의 기계적
음성과 불빛 사이에 이미 망해버려 철수해버린 점포들과 여인숙. 나 역시 새장 여인숙 앞에 앉아 있었다.
내 글들을 보면, 송도 해수욕장이라는 곳이 자주 나온다. 그렇게 마음에 드나 보다. 왜냐면 나 역시, 그 영화 속
인물 처럼 그 곳에 앉아 있었기에, 그리고 그 곳에 내가 있었기에.
<영화 '나쁜남자'를 보고 든 생각>
첫댓글 김기덕 영화의 생경한 풍경은 다루고 있는 계급과 풍경의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