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그의 이탈리아 본명은 콜롬보(Colombo)이다. 이것을 라틴어로 표기한 콜룸부스(Columbus)의 영어식 발음을 따라 한글로 표기한 것이 ‘콜럼버스’이다. 그의 본명을 그대로 따와 국명으로 정한 나라가 바로 콜롬비아(Colombia)이다. 즉 ‘Colombo’에다가 장소를 나타내는 어미 ‘-ia’를 붙인 것이다. 이러한 콜롬비아의 최고 관광도시가 바로 카르타헤나이다. 수도 보고타에서 비행기 편으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런데 카르타헤나가 지닌 진짜 매력의 포인트는 다름 아닌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이다. 이곳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아름다운 발코니가 있는 안달루시아풍의 집들과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 또 1811년 콜롬비아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다음에 세워진 ‘공화국 양식’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바로 이런 환경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스페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남쪽으로는 에콰도르와 페루, 북쪽으로는 카리브해가, 북서쪽 국경으로 파나마와 맞닿아있다. 서쪽으로는 태평양이 있으며, 자메이카,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해역과 붙어있다. 콜롬비아는 세계에서 26번째로 큰 나라이며, 남아메리카에서는 4번째로 크다.(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순) 콜롬비아라는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 이름은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에 의해 지어졌는데 당시 에스파냐과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마약왕 파블로의 흔적을 쫓아다닌 메데진을 뒤로 하고 다시 짐을 꾸린다. 이번에는 콜롬비아의 북쪽 끝, 카리브 해에 붙은 카르타헤나를 향해. 메데진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13시간을 달려야 하는 먼 길이다. 남미를 여행하며 부러운 점은 이렇게 버스나 기차를 타고 밤이 새도록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미에서는 버스를 타고 수십 시간을 달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다. 지도를 펴 어느 한 점을 찍고 그곳까지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마흔 몇 시간쯤은 어느 방향으로든 달려가 볼 수 있는 곳.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남미는 보헤미안의 영혼을 흔든다. 여행을 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지리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는다는 것은 결국 정신의 지평선까지 확장하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섬이 되어버린 좁은 한반도에서 온 나는 그 크기만으로도 남미 대륙에 매혹되어버린 것 같다.
콜롬비아 공화국(콜롬비아共和國, 스페인어: República de Colombia 레푸블리카 데 콜롬비아[*]), 줄여서 콜롬비아(스페인어: Colombia 콜롬비아[*], 문화어: 꼴롬비아)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보고타
대부분의 대도시는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콜롬비아 영토는 또한 아마존 열대우림과 열대 초지, 카리브와 태평양 해안에 둘러싸여 있다.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에서 경제규모 4위의 중진국이다. 인종적으로 매우 다양한 구성을 보이며, 토착민 후손과 에스파냐 식민자, 아프리카 노예, 20세기에 유럽과 중동
[09:00]“16세기에 건설된 항구 요새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며, 산후안 항구와 더불어 서인도제도 중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기항
[ 카르타헤나 추천 기항지 선택관광 ]
♣ HIGHLIGHT OF CARTAGENA & FOLKLORIC SHOW (4시간 소요, $59) - 카르타헤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관광하며, 17세기 사이에 스페인 국왕의 지시에 의해 2백년간에 걸쳐 만든 10km가 넘는 길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를 구경하고, 콜롬비아의 금 공예품 구경과 민속공연을 즐기고 나서 배로 돌아오는 길레 1986년
에 설립된 해군박물관(콜롬비아 한국전 참전비 2008년 건립, 거북선 모형으로 국내에서제작 설치 길이4m 높이 2,5m)을 둘러 보는 일정입니다.
*한국전 참전비-1951년11월 1일에 구축함 Padilla가 한국전 참전을 위해 콜롬비아 군인들을 싣고 처음으로 출항한 항구에 건립. 당시 한국과 외교관계가 없는데도 콜롬비아 군인 4314명의 군대를 파견. 그 중 214명의 젊은 병사가 전사. 448명이 부상.
[18:00] 카르르타헤나 출항
♣ 카르타헤나 (Cartagena) 카르타헤나는 아바나 항구와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 항구와 더불어 서인도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콜롬비아 북부에 있는 볼리바르 주의 주도로, 콜롬비아의 주요 무역항이자 공업 도시이며 관광 거점이다. 카르타헤나의 건축물들은 신세계(아메리카) 개척 시대이던 16세기~18세기에 가장 광범위하고 완벽하게 지어진 것으로, 군사 건축문화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카르타헤나는 1533년 6월 1일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인 페드로 데 헤레디아(Pedro de Heredia)에 의해 카리브 연안군도, 리오마그달레나(Rio Magdalena) 항구 입구에서 서쪽으로 100㎞ 떨어진 다리엔(Darien) 만에 건설되었다. 식민 시대에 콜롬비아와 페루 일대에서 채굴된 금과 은의 중계항으로서 번성하기 시작해, 19세기 초에는 콜롬비아의 최대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으며, 남아메리카 북부 노예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에스파냐가 16세기부터 성벽을 쌓아 요새를 만들었는데, 이 요새는 식민 시대 군사 요새의 전형으로 평가받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카르타헤나 항은 콜롬비아 최대의 컨테이너 항만이며, 바랑카베르메하 정유소에서 나오는 송유관의 종점에 해당해 이를 바탕으로 석유 화학 공업 등 중공업도 발달하였다.
콜롬비아의 역사적인 도시로, 1533년스페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명은 스페인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카르타헤나데인디아스(스페인어: Cartagena de Indias)라고 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남아메리카 대륙의 문호로 개발되어, 남아메리카와 유럽금20세기 이후 교통이 정비되면서 다시 중요한 항구가 되었고, 특히 부근의 석유[2]
콜롬비아 북부, 카리브 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과거 식민 시대에 무역항으로 번성하였으며 현재는 볼리바르 주의 주도이다.
별칭:용감무쌍한 도시, 성벽 도시, 아메리카의 낭만 수도
카르타헤나 만의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17세기의 산펠리페데바라하스 요새를 비롯해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구역들은 하나의 반도와 헤트세마니 섬에 자리잡고 있지만, 현재의 시가지는 망가 섬과 만사니요 섬(공항이 있음)과 라포파 구릉 아래의 본토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옛 구역에는 장식이 있는 대성당, 산페드로클라베르 교회(1603), 이교도심문소(1706), 중앙광장, 카르타헤나대학교(1827)가 있다.
1533년에 세워진 카르타헤나데인디아스는 남아메리카 북부의 금과 다른 생산품들을 스페인으로 운반하기 위해 매년 대형 선박들이 정박하던 16세기 중엽 이후부터 유명해졌다. 이 도시는 이교도 심문 중심지와 주요 노예시장이 되었다.
1811년 카르타헤나 주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후 몇 년에 걸쳐 전투가 있었다. 1815~21년 이 도시는 스페인에 넘어갔다가 독립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독립초에는 콜롬비아의 주도적인 항구 역할을 계속했으나 내륙지방과의 교통수단이 미비하여 불리한 점이 많았다. 1840년대까지 인구가 서서히 감소했고 상업도 점차 쇠퇴해갔다. 20세기에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콜롬비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1917년 이후 마그달레나 강 유역의 유전개발이 시작되면서, 카르타헤나가 부흥하게 되었다. 바랑카베르메하에서 바이아데카르타헤나 만까지 연결되는 송유관이 192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유공장이 건설되면서 이 도시는 콜롬비아 제1의 석유항이 되었다. 그밖에 백금과 커피도 중요한 수출품이다. 제조업으로 설탕·담배·화장품·섬유·비료·가죽제품 등이 생산된다.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콜롬비아 북부에 있는 볼리바르 주의 주도로, 콜롬비아의 주요 무역항이자 공업 도시이며 관광 거점이다. 주변에 커다란 산지가 없어 뜨거운 바람이 많이 불지만 서북쪽으로 카리브 해를 접하고 있어 평균 습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1533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페드로 데 에레디아에 의해 처음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식민 시대에 콜롬비아와 페루 일대에서 채굴된 금과 은의 중계항으로서 번성하기 시작해, 19세기 초에는 콜롬비아의 최대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에스파냐가 16세기부터 성벽을 쌓아 요새를 만들었는데, 이 요새는 식민 시대 군사 요새의 전형으로 평가받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카르타헤나 항은 콜롬비아 최대의 컨테이너 항만이며, 바랑카베르메하 정유소에서 나오는 송유관의 종점에 해당해 이를 바탕으로 석유 화학 공업 등 중공업도 발달하였다.
* 산타마르타
카르타헤나 성벽
초기 스페인 정착 시대의 중요한 지역을 보호하던, 대규모의 방어 시설
지역 주민들에게는 '라스 무리오스'라 알려진 카르타헤나 성벽은 카르타헤나 구시가지 서인도 제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사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역을 둘러싸고 있다. 카르타헤나 항구는 그 부유함과 경제적인 중요성 때문에 종종 해적의 습격을 받았고, 이에 도시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카르타헤나는 1533년 스페인 정복자 돈 페드로 데 에레디아에 의해 세워졌으며, 즉각적으로 해적들이 노리는 표적이 되었다. 1551년, 프랑스 해적인 장-프랑수아 드 라 로크 드 뤼베르발은 에레디아에게 도시를 버리고 떠나가도록 강요하고 상당한 양의 금을 쥐어 주었다.
1585년에는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카르타헤나를 덮쳐, 주민들은 근처의 다른 도시로 피신해야만 했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자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대규모 성채를 건설하라고 명했다. 벽의 높이가 27m에 달하며, 산 세바스티안 데 파스텔리요와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를 비롯한 여러 개의 요새로 무장한 이 성채를 완전히 건설하기까지 200년도 넘는 시간과 5천만 페소의 금이 들어갔다. 이 성벽이 가장 가혹한 시험을 겪은 것은 1741년, 카르타헤나 시가 에드워드 버넌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였다. 186척의 배와 23,600명의 군사를 갖춘 영국은 고작 여섯 채의 배와 3천 명에 불과한 스페인 측 병력을 수적으로 크게 능가했다. 그러나 성채와, 스페인 사령관인 블라스 데 레소의 능숙한 지휘 덕택에 결국 영국을 물리칠 수 있었다.
카르타헤나–스페인의 한 항구에서 따온 이름이다–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이며, 이곳의 구시가지는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카르타헤나의 성벽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축조된 방어 체계인 동시에, 마을과 카리브 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카르타헤나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광대한 방어 시설을 갖추었다." 유네스코
제13일 2/8 (금) 산타마르타(콜롬비아)
[12:00]“1525년에 안데스 고원에 대한 에스파냐인의 전진기지로 건설된 도시” 콜롬비아의 산타마르타 기항
[ 산타마르타 추천 기항지 선택관광 ]
♣ HIGHLIGHT OF SANTA MARTA (4시간 소요, $99) - 콜롬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산타마르타의 역사적인 명소인 대성당 등을 둘러보며, 원주민들의 금 세공기술을 알 수 있는 박물관 관람 후 음료수와 함께 민속공연을 관람하실 수 있는 일정입니다.
[16:00] 산타마르타 출항
* 콜롬바어 선타마르타
오래 된 도시. 막달레나 주의 주도인 중심도시 산타마르타는 1525년에 건설된, 콜롬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 역사적인 도시는 마약과 매춘으로 악명 높고, 게릴라 단체가 장악했던 곳이었다. 콜롬비아 정부가 행정력을 되찾은 이후 관광과 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말년을 보낸 이 도시는 이제 콜롬비아 서민들이 해변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카리브 해의 대표적인 항구도시가 되었다.
중심 도시로, 인구는 415,270명이다. 카르타헤나보다 습도도 낮고, 덜 뜨겁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립공원이라는 타이로나 국립공원이 있다.
산타마르타는 바랑키야 북동쪽 70km 지점에 있으며, 1525년에 안데스 고원에 대한 에스파냐인(人)의 전진기지로서 건설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부근에서 카카오·사탕수수·바나나의 플랜테이션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유나이티드프루츠사(社)가 바나나를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하자 세계적인 바나나 적출항이 되었다. 어항이기도 하며 생선 통조림보고타요새·성당수도원 유적 등이 있다.
산타마르타 2월 기온:17도~33도 평균 27도
콜롬비아 막달레나주: 주도(州都)는 산타마르타이다. 마그달레나강(江)의 하류 동쪽 연안에 위치한다. 북동단의 산타마르타산맥 이외는 마그달레나강과 그 지류 및 분류로 이루어진 범람원으로, 소택지바나나 재배가 경제의 중심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