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파나마 운하
제11일2/6 (수) 파나마운하(파나마)
파나마 운하 지도
파나마 (Panama)
남아메리카의 북서쪽 끝부분에 연결되는 파나마 지협의 남쪽 끝부분 연장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는 파나마시티이며 긴 S자 모양의 나라이다. 북쪽 카리브 해 쪽으로 1,160km의 해안선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콜롬비아에 접해 있다. 남쪽 태평양 쪽으로 1,690km의 험준한 해안선이 있으며, 서쪽 으로는 코스타리카에 접해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돌기로 솟아 있어 산과 언덕이 많은 편이다. 북아메 리카 에서 뻗어나온 산맥은 아니며 콜롬비아와의 국경에서 안데스산맥과 맞닿는다. 일부 산봉우리는 화산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파나마를 크게 나눌 수 있게 하는 분수계를 코르디예라 데 칼라만카 (Cordillera de Talamanca)라고 하는데 코스타리카와의 국경에 접하고 있다. 더 동쪽으로 가면 세라니 아 데 타바사라가 있고 인근에 파나마 운하가 있다. 인구는 약 300만명이다.
Ⅴ. 관광지 안내 – 파나마운하 (파나마)
제11일2/6 (수) 파나마운하(파나마)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전장 64Km의 인공 운하 , 연간 15,000척이 이용하며, 운하를 통과하는데만 평균 9시간이 소요되는 곳”
[05:00] 파나마 운하 진입
♣ 니유 암스테르담호는 카리브해 대서양쪽에서 진입하여, 항해하면서 파나마 운하의 총 3개의 갑문을 지나 태평양으로 나가게 됩니다.
[ 전일항해 ] // 파나마운하 주변 경관 감상
[19:00] 파나마 운하 통과 |
♣ 파나마운하 (Panama canal)
태평양 연안의 발보아에서 대서양 연안의 크리스토발까지 전장 64 km. 카리브해로 흘러드는 차그레스강을 막아 축조한 가툰호(면적 약 420 km2) 안에 만들어진 34 km의 수로 및 파나마만 쪽의 미라플로레스호 안에 만들어진 1.6 km의 수로와, 이 두 호수 사이에서 지협의 척추 구실을 하는 구릉지를 15 km나 파헤쳐 만든 쿨레브라 수로로 구성되어 있다. 가툰호와 쿨레브라 수로의 수면표고는 25.9 m, 미라플로레스호의 수면표고는 16 m이다. 이 두 호수 사이의 표고차는 물론 호수와 해면의 표고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갑문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파나마만에서 미라플로레스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2단식 미라플로레스 갑문, 여기에서 쿨레브라 수로로 통하는 입구에는 1단식의 페드로미겔 갑문, 가툰호에서 카리브만으로 나가는 출구에는 3단식 가툰 갑문이 건설되어 있다.
파나마 운하는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대양을 연결하는 인공 수로이다. 미국에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관통하는 데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경우 남아메리카를 돌아가는 것보다 운항 거리를 약 1만 5,000㎞가량 줄일 수 있다. 운하를 통과하는 데에는 평균 9시간이 걸리며, 통과 수속에는 약 15~20시간이 소요된다. 파나마 운하의 연간 평균 이용 선박의 수는 15,000척이다. 운하는 1914년 8월 15일에 완성되어 8만 1237톤의 퀸엘리자베스호가 사상 최초로 이 운하를 통과하였다. 이후 85년 동안 미국이 관리해 온 파나마운항권은 1999년 12월 31일을 기해 파나마로 이양되었다.
중앙아메리카 파나마 운하
미국이 건설한 것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운하.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81.6km에 걸쳐 뻗어 있다.
1879년 대양간운하만국회사가 설립되고 이듬해 공사를 시작했으나 불충분한 계획, 질병 등으로 1889년 사업이 붕괴되었고, 이 회사는 1894년 신파나마운하회사로 재탄생했다.
1903년 미국이 운하 건설권과 관리·통제권을 얻었고 신파나마운하회사의 운하소유권은 1904년 미국에 매도되었다.
1904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14년 8월 15일 운하가 개통되었다. 수로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파나마가 충돌을 빚었으나 2000년 파나마가 운하 통제에 대한 전권을 가져갔다.
운하의 갑문들을 통과할 수 있는 작은 선박을 제외한 다른 선박들은 예인 전동차로 안내되며, 운하 통과 시간은 약 24~30시간이다. 주로 원유·석유제품, 곡물, 석탄·역청탄이 운하를 통해 운송된다.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인 인공수로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동쪽과 서쪽 해안 사이를 항해하는 배들은 혼 곶으로 돌아가는 대신 파나마 운하를 이용함으로써 약 8,000 해리의 항해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 오늘날 파나마 운하의 건설은 세계 대(大)토목공사의 위업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지만 시공 이후 공사과정에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다.
1879년 수에즈 운하의 굴착을 감독했던 프랑스의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대양간운하만국회사를 구성하고 이듬해 지협을 통과하는 수평식 수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불충분한 계획, 질병, 사기죄 기소 등으로 1889년 결국 사업은 붕괴되었고, 1894년 이 프랑스계 운하회사는 신(新)파나마운하회사로 재조직되었다. 1903년 파나마와 미국 사이의 헤이-뷔노-바리아 조약으로 미국
신파나마운하회사의 운하소유권은 1904년 미국에 매도되었다.
신파나마운하회사의 운하소유권은 1904년 미국에 매도되었다. 미국 토목기사들에게 주어진 주요당면문제는 해수면 높이의 수평식 호수-갑문식 운하를 건설하느냐,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높이의 호수-갑문식 운하를 건설하느냐였다.
1879년 프랑스의 공학자 아돌프 드 레피네는 대서양 쪽의 물살이 세찬 차그레스 강과 태평양 쪽의 리오그란데 강을 막아 각각의 하곡에 항행이 가능한 호수들을 만들고 대륙 분수계에 수로를 내어 양쪽을 연결하는 안(案)을 제시했다.
레피네의 안은 해수면 높이의 운하를 선호한 당시의 프랑스 회사와 초기 미국 위원회에 거절당했으나, 1906년 미국 파나마 지협 운하위원회의 존 F. 스티븐스가 이를 기초로 최종 설계도를 작성했다. 1904년에 시작된 미국 감독하의 공사는 국회가 스티븐스의 설계를 채택한 후 급속히 진척되었고, 1914년 8월 15일 마침내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었다.
수로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파나마가 수많은 충돌을 빚은 끝에 1977년 파나마 운하조약으로 2000년에 파나마 공화국이 운하 통제에 대한 전권을 갖게 된다는 안이 확정되었다.
리몬 만을 11km 준설한 대서양 쪽 입구수로에서 정남쪽 18.5km 지점에 가툰 갑문이 설치되어 있다. 일련의 세 갑문으로 이루어진 가툰 갑문에서 인공호인 가툰 호까지 선박들은 수위가 26m 높아진 수로를 거치게 된다. 계속하여 가툰 호에서 남쪽으로, 그다음 남서쪽으로 총 38km가량 지나면 쿨레브라 수로가 시작되는 감보아에 이른다.
쿨레브라 인공수로가 지나는 운하는 길이 약 13km, 너비 150m로서 대륙 분수계를 흘러 페드로미겔 갑문에 이른다. 페드로미겔 갑문에서 선박들은 9.3m 아래에 있는 작은 호수를 거쳐 1.6km를 항행한 후 미라플로레스 갑문에 이른다. 미라플로레스 갑문은 호수면에서 16m 높이에서 해수면까지 2단계 하강을 거쳐 길이 13km의 준설수로까지 연결된 후 파나마 만의 태평양 종점까지 이어진다.
작은 선박을 제외하고는 어떤 선박도 자체 동력으로 파나마 운하의 갑문들을 통과할 수 없다. 배들은 3.2km/h의 속도로 갑문 벽 위의 치형(齒形) 궤도에서 운행되는 예인 전동차로 안내된다. 선박 하나를 예인하는 데 전동차 6개가 사용된다.
갑문들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 배들이 동시에 서로 반대편으로 통과할 수도 있다. 기다리는 시간을 합쳐 배가 운하를 통과하는 데 약 24~30시간이 소요된다. 원유·석유제품, 곡물, 석탄·역청탄이 운하를 통해 운송되는 3대 상품군(群)이다.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지협을 건너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약 64km의 운하이다.
파나마 운하 건설을 착안한 것은 16세기 초의 일이었지만, 처음으로 운하 건설을 실행에 옮긴 것은 1880년대의 프랑스인들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피하였고, 미국이 1903년 프랑스에게 운하 건설권을 구입하여 1914년 개통하였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높였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강대국이 되었다. 파나마에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운하의 운항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미국이 권한을 행사하였다.
파나마 운하는 기술의 승리였다.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지협을 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로, 미국 서부에서 캐낸 금을 유럽으로 운반하는 안전한 경로를 찾던 16세기에 처음 구상되었다. 이 운하는 1534년 스페인 당국에 의해 오늘날의 운하와 거의 같은 경로를 따라 계획된 뒤, 19세기에 프랑스 회사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도산하는 바람에 중단되었다가 미국이 넘겨받아 1914년에 완성했다.
길이: 현재 대서양의 콜론에서 태평양 연안의 파나마 시티까지 81㎞를 연결하고 있다.
단추거리: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운항하는 선박은 남아메리카의 남단을 돌아가는 대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면 1만 2,668㎞를 단축할 수 있다.
통과하는 선박 : 매일 평균 30척의 배, 연간 1만 척이 넘는 배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다.
파나마 운하 단면도
파나마
파나마 운하(Canal de Panamá)는 파나마 지협을 횡단하여 태평양과 카리브 해(대서양)를 연결한다. 태평양 연안의 발보아에서부터 카리브 해 연안의 크리스토발(Christóbal)에 이르기까지 총 길이 64㎞로 1914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파나마 운하의 건설은 운하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로 인해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최초로 파나마 운하의 굴착을 계획한 사람은 1529년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5세였지만, 실질적으로 운하 건설이 논의된 것은 1880년대였다. 처음에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빠른 완공을 자신했던 프랑스가 운하 건설을 주도했다.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는 1881년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공사에 착수하지만, 지형적 조건과 풍토병의 만연, 자금 부족 등으로 9년 만에 파산하고 만다.
1894년 프랑스에서 다시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지만, 당시 운하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미국이 1903년 4000만 달러를 들여 프랑스로부터 운하 굴착권을 사들인다. 그러나 당시 파나마를 통치하던 콜롬비아 정부가 운하 건설을 거부하자 미국은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한다. 파나마의 독립 이후 미국은 운하 지역의 치외법권을 획득하고 운하 공사를 시작했다. 총 4만 3,000여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어 1914년 마침내 운하가 완성되었다. 이후 미국은 85년 동안 파나마 운하의 운항권을 독점적으로 관리해 왔고, 1999년 12월 31일에 이르러서야 운항권이 파나마로 이양되었다.
파나마 운하는 차그레스 강(Río Chagres)을 막아 만든 34㎞ 가툰 호(Lago Gatún)와 파나마 만 쪽에 인공적으로 건설한 1.6㎞의 미라플로레스 호(Lago Miraflores), 두 호수 사이의 15㎞를 굴착하여 만든 쿨레브라 수로(Corte Culebra, 과거 Gaillard Cut)로 이루어져 있다. 가툰 호와 쿨레브라 수로의 수면 표고는 26m로 높은 반면, 미라플로레스 호의 수면 표고는 16m로 낮아서 갑문(閘門) 방식을 활용하여 표고 차를 해결하였다. 파나마 만에서 미라플로레스 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2단으로 된 미라플로레스 갑문(Esclusa de Miraflores)이, 쿨레브라 수로로 통하는 입구에는 1단식의 페드로미겔 갑문(Esclusa de Pedro Miguel)이, 가툰 호에서 카리브 만으로 나가는 출구에는 3단식 가툰 갑문(Esclusa de Gatún)이 설치되어 있다.
파나마 운하는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대양을 연결하는 인공 수로이다. 미국에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관통하는 데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경우 남아메리카를 돌아가는 것보다 운항 거리를 약 1만 5,000㎞가량 줄일 수 있다. 운하를 통과하는 데에는 평균 9시간이 걸리며, 통과 수속에는 약 15~20시간이 소요된다. 파나마 운하의 연간 평균 이용 선박의 수는 15,000척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운하의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면 운하의 이용 가능 용량은 2배로 증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