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인중에서 가장 글을 많이 쓰고, 가장 많이 읽히는 글을 쓰는 조갑제씨의 글 잘쓰는 문장론을 소개한다.
좀 길기는 하지만 글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분의 글을 읽고 나면 상당한 소득이 있을 것이다.
한 시간 강의 몇만원하는 강의 듣는 기분으로 읽노라면 글쓰기의 노하우를 체득하게 될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의 자료저장 공간에 저장해 두고 참고하면 좋은 자료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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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쓰기는 漢字혼용에서부터 조갑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정확하고 쉽고 짧게' 쓴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서도 정확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품위 있는 낱말의 선택'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어의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한국어=70%의 漢字語+30%의 한글語'이다. 한자어에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는 개념어를 비롯한 명사가 많다. 國家, 民主主義, 市場, 電力 같은 단어들이다. 한글語는 '바람, 눈물, 덥다, 좋다' 따위의 자연현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원초적 의미語가 많다. 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발음부호를 붙이는 것인데 의미전달에 지장을 줄 때가 많다. 同音異義語가 많기 때문이다. '전력이 줄었다'고 할 때 그 '전력'이 電力인지 戰力인지는 앞뒤를 맞춰보아야 알 수 있다. '부상했다'고 써놓으면 '다쳤다'는 뜻인지 '떠올랐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앞뒤를 연결시켜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암호를 푸는 행위이지 독서가 아니다. 시간 낭비이다. 글의 1차적 목적이 정확한 의미전달이므로 漢字와 한글 혼용을 버리고 한글專用으로 가는 것은 한국어의 약70%를 암호로 만드는 母國語 파괴행위이다. 지금처럼 한글專用이 오래 간다면 한국어는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한국어=70%의 암호+30%의 본능(감정+자연현상)語' 언어는 인간의 思考를 지배한다고 한다. 암호와 본능이 뒤섞인 정신세계를 생각해보라. 안개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막연하고, 뜨거운 감정과 즉흥적인 본능이 분출하는 머리속! 맑은 논리와 깊은 성찰을 통해서만 우러나오는 창조와 예술이 이런 정신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한글專用은 인간을 一次元的인, 가볍고 천박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선동에 잘 넘어간다. 한국 사회의 두 가지 흐름인 좌경화와 저질화의 바탕에는 漢字말살에 의한 理性의 실종사태가 있다. 한자를 모르면 우리나라 단어의 약70%, 그것도 고급의 개념과 思惟를 담고 있는 낱말의 뜻을 정확히 모르게 된다. 한자를 모르면 철학서, 역사서, 법률서적을 읽을 수 없다. 전통문화가 들어 있는 정보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없으면 뿌리 없는 인간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쓰는 글도 가볍고 잘 흔들릴 것이다. 예컨대 한자를 모르면 이런 글도 쓸 수 없다. < 경주박물관에 있는 新羅聖德大王神鐘은 별명이 奉德寺鐘이고 속칭은 에밀레종이다. 이 종에 새겨진 640여자의 頌詞(송사)가 있다. 그 가운데 '圓空神體'(원공신체)라는 말이 있다. 이 범종이 그냥 종이 아니라 그 형상이 둥글고 그 속이 비어 있으므로 바로 이것이 '神의 몸'이라는 뜻이다. 神의 속성을 圓空, 즉 둥글고 속이 빈 존재로 규정한 것이 참으로 의미 깊다. 원만하면서도 속이 비어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 에밀레종이고, 神의 모습이다. 神은 둥글둥글해서 누구와 싸우지 않으며 속이 텅 비어 있어 모든 것, 즉 갈등과 淸濁까지도 다 받아들여 하나의 질서로 융합한다. 에밀레종은 바로 그런 神의 소리인 것이다> 한자를 멀리하고싶은 사람은 글을 아예 쓸 생각을 말아야 한다. 좋은 글은 主題가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그런 글은 읽고나면 가슴에 남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감동일 수도 있고 정보일 수도 있다. 관념적인 글보다는 사례와 사실이 많은 구체적인 글이 좋은 글이다. 적절한 통계와 사례가 글의 설득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글은 리듬과 흐름이 있어야 한다. 독자가 물흐르듯 편하게 읽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러나, 반면, 그런데' 같은 말들이 문장 앞에 붙으면 글의 흐름이 끊어진다. 글을 써놓고 소리 내어 읽어가면서 고쳐보라. "그는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금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식 문장을 버리자. 이런 문장은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이 강조하는 일종의 宣傳文이다. '그는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금메달을 따왔다'고 쓰면 되지 여기에 굳이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는 의미를 독자들에게 강제할 필요가 없다. 글은 담백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라, 저렇게 보라는 식으로 글의 의미를 강조, 독자들의 몫까지 빼앗아갈 필요가 없다. 한국인의 글은 대체로 설명과 강조가 지나치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와 좋은 문장과 교양 있는 낱말들이 入力될 때 名文이 자연스럽게 出力된다. 많은 入力은 결국 독서를 통해서 하는 것이다. 名文과 名연설을 많이 읽자. 책상 위에 항상 국내외의 名言集을 두고 심심할 때 읽어보자. 좋은 글은 읽는 이들을 의식하고 계산하며 쓴 글이다. 글의 소비자를 무시하고 써대는 글은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 자기가 쓰고싶은 글보다 독자들이 읽고싶은 글을 쓰자. 좋은 글은 타이밍이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빨리 써야 많이 읽힌다. 널리, 빨리 읽히는 글이 대체로 좋은 글이다. 결국 아는 것만큼 쓸 수 있다. 많이, 정확히 알아야 잘 쓸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쓰려고 할 때 기교가 등장한다. 취재와 調査와 분석을 잘 하면 좋은 글은 의외로 쉽게, 빨리 쓰여진다. ,,,,,,,,,,,,,,,,,,,,,,,,,,,,,,,,,,,,,,,,,,,,,,,,,,,,,,,,,,,, *나는 글쓰기가 너무나 쉽다 머리에서 힘을 빼자.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글쓰기의 두려움도 없어진다. 趙甲濟 좋은 글쓰기의 일반 원리 1.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글쓰기의 두려움도 없어진다. 2. 名文보다는 ‘정확하고 쉬우며 짧은’문장이 더 좋다. 3. 修飾語(수식어)보다는 명사와 동사를 많이 써야. 4. 무엇을 쓸 것인가. 글의 主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5. 낱말의 중복을 최소화한다. 글도 경제적이라야 한다. 6. 모든 글은 30%를 줄일 수 있다. 압축해야 폭발력이 생긴다. 7. 글의 리듬(韻律)을 맞추자. 글을 써놓고 소리내어 읽어본다. 8. 漢子를 適所(적소)에 섞어 쓰면 읽기 쉽고 이해가 빠르다. 9. 긴 글엔 긴장이 유지되어야 하고 흐름이 있어야 한다. 10. 語彙力(어휘력)은 독서의 축적이다.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11. ‘잘 쓰기’보다는 ‘많이 쓰기’이다. 12. 글의 원료는 語彙力과 자료와 생각이다. 13. 글은 즐겁게 써야 한다. 글은 말처럼 인간의 본능이다. 14. 名言, 名文, 名연설집, 그리고 사전류를 곁에 둔다. 제목 달기 1. 제목은 내용의 요약이고, 미끼이며, 主題이다. 2. 제목은 글자수의 제한을 받는다. 3. 독자들이 읽을까말까를 결정하는 것은 제목을 통해서이다. 4. 제목은 필자가 다는 것이 원칙이나 편집자가 최종적인 권한이 있다. 5. 제목을 뽑는 것은 레이아웃(사진 그림 등) 및 기사비중 결정과 함께 잡지, 신문 편집의 3대 핵심 요소이다. 6. 제목을 보면 신문, 잡지, 기자들의 자질과 안목을 알 수 있다. 7. 제목의 내용이 기사의 등급을 결정한다. 8. 무슨 기사가 중요하고 무슨 기사가 덜 중요하느냐의 판단은 기자의 자기능력 평가이다. 뉴스밸류 감각이 좋은 기자가 특종을 많이 한다. 9. 제목과 跋文(발문·뽑음글)의 조화와 보완과 대조가 기사를 입체감 있게 만든다. 10. 제목은 詩이기도 하다. - 제목달기의 각론 가. 제목은 기사를 읽은 직후 그 느낌이 살아 있을 때 뽑아야 한다. 나. 제목은 우선 흥미유발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 과장해선 안되지만 평범해서도 안된다. 라. 새로운 사실을 부각시켜야 한다. 마. 제목은 구체적이거나 본질적이거나 상징적이다. 바. 단어의 중복이 없어야 한다. 기사도 중복은 허용되지 않는데 하물며 제목에서랴. 사. 말의 묘미를 살려야 한다. ‘KAL에 칼을 댄다’, ‘Future of Freedom’, ‘12·12사건이 녹음되었다’, ‘장군들의 밤’, ‘평양은 비가 내린다’, ‘북한은 달러위조, 남한은 논문위조’, ‘국제사기단을 편드는 정권사기단’. 아. 상징적인 낱말 하나가 가장 좋은 제목이 될 수 있다. 자: 大제목과 副제목과 小제목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차: 제목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카: 제목으로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고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독자는 의외로 이해력과 추리력이 높다. 타: 造語(조어)를 만들어 유행시키는 것은 최고의 제목달기이다. ‘뉴 라이트’ ‘차떼기’ ‘퍼주기’ ‘연방제 事變(사변)’ 등은 국민들의 여론에도 영향을 준다. ,,,,,,,,,,,,,,,,,,,,,,,,,,,,,,,,,,,,,,,,,,,,,,,,,,,,,,,,,,,,,,,,,,,,,, *해석을 강요하는 기사문장 조갑제 "김길동 총장은 000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임기 3년을 다 못채우며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위의 例文과 같은 기사문장이 자주 눈에 뜨인다. "....중도하차했다"고 하면 되지 왜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고 토를 달아야 하는가. 먼저 따져볼 일이 있다. 중도하차하는 것이 불명예인가. 중도하차하는 것은 책임을 지는 일로서 명예로운 일일 수가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안타까운 일일 수가 있다. 중도하차를 불명예라고 해석하는 것은 기자일 뿐이다. 이는 私見이다. 보도문장에 이런 식의 私見을 넣으면 객관과 주관이 혼동된다. 기자는 불명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중도하차를 불명예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중도하차란 사실에 대한 독자들의 해석을 기자가 한쪽 방향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변칙이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중도하차에 대해서 왜 독자들이 불명예라고만 생각해야 하는가 말이다.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는 기사문장에는 객관보도와 주관적인 논평이 혼재하고 있다. 이는 사실보도 문장과 논설문장을 섞어놓은 것이다. 기자가 私見을 보도문장에 섞어 독자들의 해석권을 침해하는 것은 일종의 독선이다. 이런 유형의 문장이 신문과 방송에 너무나 많다. 그런 기자들의 가슴속에는 다 독재자가 들어 있는 셈이다. 기자는 그냥 "중도하차했다"고만 쓰면 되는 것이다. 담백하게, 편하게. 불명예로 생각하든, 안타깝게 생각하든, 명예롭게 생각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문장 교정/중복 설명, 불필요한 설명의 例 <그는 인간적인 신의나 금전적 신용이 약한 사람은 동반자로서 함께 일할 만한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신의와 신용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사람은 회사에 금전적인 손실을 끼칠 것은 물론 사람들 사이의 좋은 관계마저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의 例文은 이렇게 줄일 수 있다. <그는 신의나 신용이 약한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정해두었다. 그런 이들은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끼치고 인화를 깨뜨릴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 신의'란 말에서 '인간적'은 필요 없는 낱말이다. 신의는 모두 인간관계의 현상이므로 인간적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금전적 신용'도 마찬가지이다. 앞에 信義란 말이 있으므로 신용은 자동적으로 금전적인 면을 가리킨다. 그 뒤의 문장은 전면 삭제해도 좋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기술했으므로. 신의와 신용이 없는 사람의 폐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한된 지면안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는 경제활동이다. 문장을 경제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으면 중복된 문장, 불필요한 설명이 들어가 글이 늘어진다. ,,,,,,,,,,,,,,,,,,,,,,,,,,,,,,,,,,,,,,,,,,,,,,,,,,,,,,, 한국인 문장의 한 惡習 조갑제 편집장으로서 남이 쓴 글을 고치고 줄이고 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한국인들의 문장력은 국력에 비례하여 발전해왔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지식인층의 문장력은 한글전용을 무작정 추종하면서 오히려 정확성이나 품격에 있어선 못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교정을 보다가 보면 한국인의 문장습관중 되풀이되는 惡習이 많이 발견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할 정도로 -하다"는 공식이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날 정도로 건강하다> <그는 출장을 도맡아다닐 정도로 주인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청백리라고 불릴 정도로 깨끗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의 100대 인물로 꼽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문장에서는 '했다'로 잘라버려야 한다. 뒤의 '정도로 -하다'는 것은 중복이거나 쓸데없는 부연설명이다. 이런 악습의 심리가 재미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라고 쓰면 되는데 여기에 의미부여를 하여 '새벽 5시에 일어날 정도로 건강하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하나의 사례를 너무 확대해석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는 건강해서가 아니라 걱정이 많아서일 가능성도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일과 건강하다는 현상을 억지로 연결기키려는 방식이 '-할 정도로 하다'이다. <김정일은 상해 시찰을 하면서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을 정도로 북한 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위의 例文은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한 말을 바로 그의 개혁의지로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과장과 일반화의 논법이다. '천지개벽이란 말을 했다'고 전달만 하면 될텐데 이 말을 해석하고 의미부여를 해야 자신이 쓰는 글이 돋보인다고 강박관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문장법은 자기 과시형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이 이미 설정해놓은 논리의 틀에 사례를 그냥 끼워넣으려는 독재적 모습이기도 하다. 위의 例文 필자는 김정일이 개혁 마인드가 강하다는 점을 미리 전제해두고 '천지개벽' 발언을 그 논리 구조속에 끼워넣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천지개벽이라고 말했다고만 전달하면 독자들은 자신의 思考 틀속에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그렇지 않고 '-할 정도로 하다'라는 틀에 끼워넣어버리면 독자들은 필자가 제시한 해석에 끌려가든지 거부할 수밖에 없다. '-할 정도로 -하다'는 문장이 많이 쓰이지 않을 때 한국 사회가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사회로 성숙될 것이다. ,,,,,,,,,,,,,,,,,,,,,,,,,,,,,,,,,,,,,,,,,,,,,,,,,,,,,,,,, *나쁜 문장/'느닷없이' '하늘의 별따기' 운운 조갑제 <느닷없이 들이닥친 국세청 조사반은 장부를 압수하고 운운> <그의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이 진행되었다> <유능하면서도 깨끗한 정치인을 찾아내기란 한국의 현실에선 하늘의 별따기이다> '느닷없이'순풍에 돛단듯이'하늘의 별따기'란 용어는 정확한 문장을 만드는 데는 좀 빠져주었으면 좋을 표현들이다.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누구 편이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폭로시켜주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필자가 중립적이고 공정한 입장에 서 있기를 원한다. 느닷없이 국세청이 들이닥쳤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국세청을 비판하고 피조사자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하늘의 별따기'란 단어를 사용한 사람은 한국 정치를 비하 내지 비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독자들은 필자의 모든 문장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읽어갈 것이다. 이 사람이 누구 편에 서서 이런 글을 썼는가,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 필자와 독자 사이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독자는 글읽기를 중단한다. 의심한다는 것은 때로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 *한국식 名文: '三代'중 한 문장 여러 문장 같으면서 사실은 한 문장으로 이뤄진 기막힌 글” 편집자 注: 이 글은 1921년 ‘개벽’지를 통해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문단에 나온 작가의 장편 대표작이다. 아래 글은 김진국 교사가 발췌한 것이다. 金교사는 이 글이 “여러 문장 같으면서 사실은 한 문장으로 이뤄진 기막힌 글”이라고 했다. <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꼴 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뿐이냐?”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못마땅하다는 잔소리를 하다가, 아범이 꾸리는 이불로 시선을 돌리며, 놀란 듯이 “얘, 얘, 그게 뭐냐? 그게 무슨 이불이냐?” 하며 가서 만져 보다가, “당치 않은 삼동주 이불이 다 뭐냐? 주속이란 내 낫세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고 나가서 더럽혀 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죽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 ,,,,,,,,,,,,,,,,,,,,,,,,,,,,,,,,,,,,,,,,,,,,,,,,,,,,,,,,,,,,,,,,,, *우리 민족사 最高의 名文은? 文武王이 쓴 答薛仁貴書 조갑제 민족사 최고의 천하 名文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 최고의 명문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671년 신라 문무왕이 唐將 薛仁貴에게 보낸 답신을 추천할 것이다. 이 글은 신라의 名문장가 强首가 썼던 것으로 보인다. 「答薛仁貴書」라고 일컬어지는 이 글이 명문인 것은 민족사의 결정적 순간에 쓰인 글이라는 역사적 무게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는 삼국통일을 해낸 신라 지도부의 고민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숨결처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쓰였다. 이 글이 명문인 또 다른 이유는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국가이익을 도모하여야 하는 문무왕의 고민이 고귀한 지혜와 품격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檄文(격문)이 아니라 외교문서이다. 唐과 정면대결할 수도, 굴종할 수도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작게 굽히면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을까 하는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여 만들어 낸 글이다. 너무 굽히면 唐은 신라 지도부를 얕잡아 볼 것이고, 너무 버티면 전성기의 세계 최대 제국이 체면을 걸고 달려들 것이다. 신라가 死活을 걸어야 할 균형점은 어디인가, 그 줄타기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이 글은 삼국사기 문무왕條에 자세히 실려 있다. 이 글을 이해하려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羅唐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어야 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唐이 13만 명의 대군을 보내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킬 때의 의도는 분명했다. 그것은, 신라를 이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한 다음엔 신라마저 복속시킴으로써 한반도 전체를 唐의 식민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의도를 신라도 알았다. 서로를 잘 아는 羅唐은 공동의 敵 앞에서 손을 잡은 것이었다. 공동의 敵이 사라졌을 때는 결판을 내야 한다는 것을 신라도, 唐도 알면서 웃는 얼굴로 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唐은 신라와 함께 백제 부흥운동을 좌절시킨 다음에도 이 옛 백제 땅을 신라가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唐은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여 唐의 명령하에 백제 땅을 다스리게 했다. 문무왕이 반발하자 唐은 압력을 넣어 문무왕과 부여융이 대등한 자격으로 상호 불가침 약속을 하도록 했다. 唐은 망한 백제사람들을 이용하여 신라를 견제하는 정책으로 나온 것이다. 唐은 또 문무왕을 鷄林대도독에 임명하였다. 신라왕을 唐의 한 지방행정관으로 격하시킨 꼴이었다. 문무왕이야 속으로 피눈물이 났겠지만 고구려 멸망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참아야 했다. 서기 668년 평양성에 신라군이 먼저 돌입함으로써 고구려가 망했다. 唐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안동도호부는 백제 땅을 다스리는 웅진도독부와 신라=계림도독부를 아래에 둔 총독부였다. 이 순간 한반도는 형식상 唐의 식민지로 변한 것이다. 金庾信·문무왕으로 대표되는 신라 지도부는 전쟁이냐, 평화냐의 선택을 해야 했다. 이들은 굴욕적인 평화가 아닌 정의로운 전쟁을 선택했다. 이때 만약 신라 지도부가 비겁한 평화를 선택했다면, 즉 唐의 지배체제를 받아들였다면 신라는 唐을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이용당해 한반도와 만주의 삼국을 唐에 넘겨준 어리석은 민족반역 세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로 해서 우리는 지금 중국의 일부가 되어 중국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후대의 것이고, 만약 평화를 선택했다면 신라 지도부만은 唐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문무왕의 위대성은 이런 일시적 유혹과 안락을 거부하고 결코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아니 절망적인 것처럼 보인 세계제국과의 決戰을 결단했다는 점에 있다. 문무왕이 그런 결단의 의지를 담아 쓴 것이 바로 「答薛仁貴書」인 것이다. 문무왕의 자존심 서기 668년부터 2년간 신라 문무왕은 對唐 결전을 준비해 간다. 문무왕은 고구려 유민들이 唐을 상대로 부흥운동을 하는 것을 지원했다. 고구려의 劍牟岑(검모잠)이 遺民들을 데리고 투항하자 익산 지방에 살게 했다. 그 뒤 고구려의 왕족인 安勝을 고구려왕으로 봉해 그가 이 유민들을 다스리게 했다. 唐이 백제왕족을 웅진도독에 임명하여 신라를 견제한 그 수법을 거꾸로 쓴 것이다. 고구려 유민들을 이용하여 백제 독립운동을 꺾으려 한 것이다. 문무왕은 또 對日공작을 개시한다. 唐은 한반도를 안동도호부의 지배下에 둔 다음 일본에도 2000명의 병력을 보내 주둔시키면서 지배下에 두려고 했다. 문무왕은 일본의 신라系 도래인들을 움직여 壬申의 亂 때 일본의 天武天皇 세력을 지원, 親신라정권이 들어서게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唐의 對日공작을 좌절시킨다. 天武天皇 이후 약 30년간 日本은 唐과의 교류를 거의 끊고 신라에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 문물을 배워 갔다. 701년 天武가 반포한 大寶律令은 일본 고대 국가의 완성을 의미하는 「古代의 명치유신」인데 신라를 모델로 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동북아시아를 안정시켜 그 뒤 200여 년간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다. 670년 드디어 문무왕은 행동을 개시했다. 唐의 괴뢰국 행세를 하던 옛 백제지역 웅진도독부로 쳐들어가서 城과 땅을 차지하였다. 비로소 백제 땅이 신라 땅이 된 것이다. 671년 여름 신라군은 백제군을 도우려던 唐軍과 싸워 5300명의 목을 베고 장군들을 포로로 잡았다. 그 한 달 뒤 唐의 총관 薛仁貴가 서해를 건너와서 신라 승려 임윤법사를 통해 문무왕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편지엔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왕은 안전한 터전을 버리고 멀리 天命을 어기고, 天時를 무시하고, 이웃나라를 속여 침략하고, 한 모퉁이 궁벽한 땅에서 집집마다 병력을 징발하고, 해마다 무기를 들어서 과부가 곡식을 운반하고, 어린아이가 屯田하게 되니 지키려도 버틸 것이 없고, 이는 왕이 역량을 모르는 일입니다. 仁貴는 친히 위임을 받은 일이 있으니 글로 기록하여 (황제에게) 아뢰면 일이 반드시 환히 풀릴 터인데 어찌 조급하고 스스로 요란하게 합니까. 교전 중에도 사신은 왕래하니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薛仁貴는 과부와 어린이까지 동원되는 擧國一致의 단합으로 세계 최강의 제국과 정면대결하는 신라의 처절한 모습을 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 편지에 대한 긴 答書의 서두에서 문무왕은 약속을 어긴 것은 唐임을 지적하면서 시작한다. 전쟁의 명분이 신라 측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신라는 善의 편이고 唐이 도덕적으로 결점이 많다는 것을 확실히 한 때문에 이 답신의 권위가 처음부터 잡힌다. <唐 태종은 先王(태종무열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산천과 토지는 내가 탐내는 것이 아니니 내가 양국을 평정하면 평양 이남과 백제의 토지를 모두 너희 신라에 주어 길이 안일케 하고자 한다」고> 문무왕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부흥운동을 토벌할 때 신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先王(무열왕)이 늙고 약해서 행군하기 어려웠으나 힘써 국경에까지 나아가 나를 보내어 唐의 대군을 응접하게 하였던 것이오. 唐의 수군이 겨우 강어귀에 들어올 때 육군은 이미 대적을 깨뜨리고 나라를 평정하였습니다. 그 뒤 漢兵(唐兵을 의미함) 1만 명과 신라병 7000명을 두어 지키게 하였는데 賊臣 福信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이 군수품을 탈취하고 다시 府城을 포위하니 거의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적의 포위를 뚫고 사면의 敵城을 모두 쳐부수어 먼저 그 위급을 구하고 다시 군량을 운반하여 드디어 1만 명의 漢兵으로 하여금 虎口의 위난을 면케 하였고, 머물러 지키는 굶주린 군사로서 자식을 서로 바꾸어 먹는 일이 없게 하였던 것이오. 웅진의 漢兵 1000명이 적을 치다가 패배하여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였으니 웅진으로부터 군사를 보내달라는 청이 밤낮을 계속하였소. 신라에서는 괴질이 유행하여서 兵馬를 징발할 수 없었어도 쓰라린 청을 거역하기 어려워 드디어 많은 군사를 일으켜서 周留城을 포위하였으나 적은 아군의 병마가 적은 것을 알고 곧 나와 쳤으므로 병마만 크게 상하고 이득없이 돌아오니 남방의 여러 성이 일시에 배반하여 복신에게로 가고 복신은 승세를 타고 다시 府城을 포위하였소. 이로 인하여 곧 웅진의 길이 끊기어 소금·된장이 다 떨어졌으니 곧 건아를 모집하여 길을 엿보아 소금을 보내어 그 곤경을 구하였소> 「당신네의 血肉은 우리 것이오」 671년 문무왕의 答薛仁貴書는 계속된다. 그는, 신라가 백제 지방에 주둔한 唐兵과 고구려 원정 唐軍에 대한 군량미 수송의 2중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가를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6월에 先王이 돌아가서 장례가 겨우 끝나고 상복을 벗지 못하여 부름에 응하지 못하였는데, (황제의) 勅旨에 신라로 하여금 평양에 軍糧을 공급하라고 하였소. 이때 웅진에서 사람이 와서 府城의 위급함을 알리니, 劉德敏 총관은 나와 더불어 상의하여 말하기를, 『만역 먼저 평양에 군량을 보낸다면 곧 웅진의 길이 끊어질 염려가 있고, 웅진의 길이 끊어지면 머물러 지키는 漢兵이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소. 12월에 이르러 웅진에 군량이 다하였으나 웅진으로 군량을 운송한다면 勅旨를 어길까 두려웠고, 평양으로 운송한다면 웅진의 양식이 떨어질까 염려되었으므로 노약자를 보내어 웅진으로 운송하고, 강건한 精兵은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으나 웅진에 군량을 보낼 때 路上에서 눈을 만나 人馬가 다 죽어 100에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였소. 劉총관은 김유신과 함께 군량을 운송하는데 당시에 달을 이어 비가 내리고 풍설로 극히 추워 사람과 말이 얼어죽으니 가지고 가던 군량을 능히 전달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평양의 대군이 또 돌아가려 하므로 신라의 병마도 양식이 다하여 역시 회군하던 중에, 병사들은 굶주리고 추워 수족이 얼어터지고 노상에서 죽는 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소. 이 군사가 집에 도착하고 한 달도 못 되어 웅진 府城에서 곡식 종사를 자주 요청하므로 前後에 보낸 것이 수만 가마였소. 南으로 웅진에 보내고 北으로 평양에 바쳐 조그마한 신라가 양쪽으로 이바지함에, 인력이 극히 피곤하고 牛馬가 거의 다 죽었으며, 농사의 시기를 잃어서 곡식이 익지 못하고, 곳간에 저장된 양곡은 다 수송되었으니 신라 백성은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하였으나, 웅진의 漢兵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소. 머물러 지키는 漢兵은 집을 떠나온 지 오래이므로 의복이 해져 온전한 것이 없었으니 신라는 백성들에게 勸課하여 철에 맞는 옷을 보내었소. 都護 劉仁願이 멀리 와서 지키자니 四面이 모두 적이라 항상 백제의 침위가 있었으므로 신라의 구원을 받았으며, 1만 명의 漢兵이 4년을 신라에게 衣食하였으니, 仁願 이하 병사 이상이 가죽과 뼈는 비록 漢나라 땅에서 태어났으나 피와 살은 신라의 육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 唐軍의 皮骨은 당나라 것이지만 당신들의 血肉은 신라 것이오」라고 부르짖듯이 말한 문무왕의 이 대목이야말로 신라가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견디면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해 희생했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문장이 答薛仁貴書의 한 클라이맥스이다. 신라가 백제지역 주둔 唐軍과 고구려 원정 唐軍에게 동시에 군량미를 공급하기 위하여 노약자까지 동원하여야 했던 상황에 대한 묘사는 르포 기사를 읽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런 고통을 지배층과 백성들이 장기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신라 사회의 내부 단결이 잘 유지되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唐은 신라 지배층 내부의 분열을 기다렸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신라가 對唐 결전을 통해서 삼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었던 데는 내부 단합과 이에 근거한 동원체제의 유지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신라의 승리는 정치의 승리인 것이다.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명예심, 다양한 구성원의 통합, 특히 軍官民의 일체감이 장기간의 통일전쟁 중에서도 신라의 체제를 지켜냈다. 수모를 참고 견딘 이유는 문무왕이 피를 토하듯이 쓴(문장가 强首의 대필인 듯) 答薛仁貴書에는 그동안 신라가 唐과의 연합을 위하여 참았던 굴욕을 털어놓고 쌓인 울분을 품위 있게 드러내는 내용들이 많다. 신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참아낸 것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唐의 힘을 빌린 다음에 보자는 스스로의 기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다운 승리는 굴욕을 참아낸 뒤에 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다. 문무왕은 唐이 개입하여, 망한 백제와 흥한 신라가 억지 會盟하도록 한 상황을 실감 있게 설명한다. 서기 663년 倭는 국력을 총동원하여 3만 명의 해군을 함선에 실어 보낸다. 이 대함대는 백제부흥운동을 돕기 위해 파견된 것인데 역사적인 白村江(지금의 금강)의 해전이 벌어진다. 문무왕의 편지는 이 상황을 묘사해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총관 孫仁師가 군사를 거느리고 府城을 구원하러 올 때 신라의 병마 또한 함께 치기로 하여 周留城 아래 당도하였소. 이때 왜국의 해군이 백제를 원조하여 왜선 1000척이 白沙에 정박하고 백제의 精騎兵은 언덕 위에서 배를 지켰소. 신라의 날랜 기병이 漢의 선봉이 되어 먼저 언덕의 陣을 부수니 주류성은 용기를 잃고 드디어 항복하였소. 남방이 이미 평정되었으므로 군사를 돌이켜 北을 치자 任存城 하나만이 고집을 부리고 항복하지 않기에 양군이 협력하여서 하나의 城을 쳤으나 굳게 지키어 항거하니 깨뜨리지 못하였소. 신라가 돌아가려는데 杜大夫가 말하기를, 『勅旨에 평정된 후에는 함께 맹세하라고 하였으니 임존성만이 비록 항복하지는 않았다 해도 함께 회맹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신라는 『임존성이 항복하지 않았으니 평정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또 백제는 간사하고 반복이 무상하니 지금 서로 회맹한다 해도 뒤에 후회할 것이다』고 하여 맹세를 정지할 것을 주청하였소. 麟德 원년(664)에 (唐 고종이) 다시 엄한 칙지를 내려 맹세치 않을 것을 책망하므로 곧 熊領으로 사람을 보내어 단을 쌓아 서로 회맹하고 회맹한 곳(지금 公州市의 就利山)을 양국의 경계선으로 삼았소. 회맹은 비록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감히 칙지를 어길 수 없었소> 唐은 망해 버린 백제를 唐의 직할로 하여 신라와 형제의 맹세를 하게 한 것이다. 신라로서는 敗者와 勝者를 같이 취급하는 唐의 정책에 이를 갈았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무왕은 편지에서 신라군이 668년에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할 때도 선봉에 섰던 사실을 설인귀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唐의 체면을 세워 주면서도 이겨야 했던 전쟁 <蕃漢의 모든 군사가 蛇水에 총집합하니 南建(연개소문의 아들)은 군사를 내어 한번 싸움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려고 하였소. 신라 병마가 홀로 선봉이 되어 먼저 대부대를 부수니, 평양 城中은 사기가 꺾이고 기운이 빠졌소. 후에 영공(英國公 李勣)은 다시 신라의 날랜 기병 500명을 취하여 먼저 성문으로 들어가 드디어 평양을 부수고 큰 공을 이루게 된 것이오> 문무왕은 신라의 공이 큼에도 唐이 신라 장병들에게 상을 주지 않고 박대한 것을 조목조목 비판한 뒤 신라가 갖고 있던 비열성을 唐이 빼앗아 고구려(멸망한 뒤 唐이 다스리고 있던)의 관할로 넘겨 준 것이라든지, 백제의 옛땅을 모두 웅진도독의 백제사람들에게 돌려 주라고 압력을 넣은 것, 그리고 이제 와서 군사를 보내어 신라를 치려고 하는 사실들을 들어 이럴 수가 있느냐고 공박한다. <이제 억울함을 열거하여 배반함이 없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오. 양국이 평정되지 않을 때까지는 신라가 심부름꾼으로 쓰이더니 이제 敵이 사라지니 요리사의 제물이 되게 되었소. 백제는 상을 받고 신라는 죽음을 당하게 생겼소. 태양이 비록 빛을 주지 않을망정 해바라기의 본심은 오히려 태양을 생각하는 것이오. 청컨대 총관은 자세히 헤아려서 글월을 갖추어 황제께 말씀드리시오> ,,,,,,,,,,,,,,,,,,,,,,,,,,,,,,,,,,,,,,,,,,,,,,,,,,,,,,,,,,,,,,,,,,,,,,,,, *吳之湖 화백의 名文 吳之湖화백이 1971년에 쓴 ‘國語에 대한 重大한 오해’란 70쪽 남짓한 소책자는 67세에 쓴 글답지 않게 힘있는 내용이다. 筆力은 體力이기도 한데 그(1982년에 작고)의 글은 대단한 기백을 느끼게 한다. 그 힘은 그의 울분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섯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까말까하는 다만 몇 사람 한글주의자의 그릇된 애국심이 禍가 되어 지금 이 時刻, 한 민족의 아들 딸들 모두가 일제히 멍청이가 되어가고있다는 이 무서운 현실을 보다 못하여 나는 여기 또 다시 이 글을 草하는 것이다> 이 글은 한글전용론의 허구성을 언어학적으로, 또 문명사의 입장에서 정확히 지적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한글전용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강력한 논리의 무기를 갖게 된다. 吳之湖는 우리 國語가 한글로 표기될 수 있는 바람, 눈물, 하늘 같은 固有語와 주로 고급 개념어가 많은 漢字語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실히 하여 한자가 결코 외국어가 아니라 국어의 일부임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한글로써는 한자어의 발음부호를 달 수는 있지만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없으므로 한자의 도움을 받지 않은 國語는 언어가 아닌 소리, 또는 암호화한다고 밝힌다. <국어에 있어서의 고유어와 한자어와의 관계는 척추동물에 있어서의 근육과 骨格과의 관계와 같다. 우리말은 漢字語라는 골격을 얻음으로써 軟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진화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말에서 한자어를 제거하자는 말은 우리 몸에서 척추를 제거하자는 말과 같다> 吳之湖는 우리 낱말 가운데 70%나 되는 한자어의 약80%는 異義同音語이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는 그 뜻을 외울 수 없어 언어가 아니라 소리로 전락한다고 주장한다. 吳之湖씨의 글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통계의 적절한 활용 덕분이다. 吳씨는 ‘우리나라의 한자 字典엔 한자음이 480여개가 있다. 이 자전에 수록된 한자가 1만3000여字이니 1音 평균 30자 가까운 異義同音字가 있는 셈이 된다’고 썼다. 기자는 서울 종로 1가를 지나가다가 한 음식점의 간판에 ‘가연’이라 쓰여진 것을 보았다.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뜻을 알 수는 없으니 이건 말이 아니라 소리이다. ‘佳緣’의 한글표기인 것 같은데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이처럼 읽어서 그 의미가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는 언어는 암호이든지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吳之湖씨의 되풀이되는 주장이다. 한글의 한계를 분명히 한 吳之湖씨는 한자의 위대성을 강조한다. ‘漢字造語의 만능성’이란 대목에서 吳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한자로는 이것을 완전무결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 Philosophy를 哲學, Sociology를 社會學, Ethics를 倫理學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번역된 언어가 原語보다도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 語彙가 갖는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더 분명히 말하면, 언어 자체가 바로 그 언어의 定義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어휘는 漢字만 알면 물을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이 한자는 1. 그 의미의 정확성에 있어, 2.그 意味解得의 자동성에 있어, 3. 그 의미 인식의 신속성에 있어, 4. 소수의 문자로 다수의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그 경제성에 있어 인간이 문자에게 바랄 수 있는 최고의 理想을 완전히 실현하여준 文字다> 吳씨는 한자가 배우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도 異義를 제기한다. <영어는 우리나라에 있어 대학입시를 치르려면 단어 5천개는 알아야 하고 歐美에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자면 최소한 단어 1만 개가 필요하고 학술을 연구하자면 단어 3,4만개는 있어야 하는데 한자는 3천자 정도만 알면 족하다> 그 이유는 한자의 거의 무제한적인 造語 능력에 있다. 그는 ‘漢字 3천 자를 알게 되면 서로 연결하여 60만자를 不學而解(불학이해=배우지 않아도 안다)하게 된다’는 것이다. 吳씨는 한글전용을 주장한 정부가 人口調査라고 하면 될 것을 ‘센서스’라고 쓰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식민지가 인구조사결과를 미국이나 俄羅斯에게 보고하려고 만든 것이면 모르되 국민들 절대다수가 모르는 외국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底意가 奈邊에 있는 것인가.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대사상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주체사상이라는 말인가?’라고 痛駁(통박)했다. 한자어를 추방한 그 자리에다가 영어를 가져와 쓰고 있는 오늘날의 허구적인 한글전용을 예언한 말이기도 하다. 이 소책자의 결론 부분에는 어두운 예언이 실려 있다. 이 대목을 기자는 稀代의 명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한자가 깨끗이 소멸한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惹起될 것인가. 1.少數의 특수 지식인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언어능력의 원시화에 의한 사고능력의 퇴화로 말미암아 국민의 정신상태는 한자 수입 이전의 저급한 단계로 환원될 것이다.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이미 진행중에 있다. 2. 학술을 연구하는 자는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순전히 유럽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은 白人化한 소수의 지식귀족과 한글밖에 모르는 다수의 원주민 低知識族의 두 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3. 우리의 민족문화는 黃人文明의 일환으로서 한자와 한자어를 바탕으로 생성하고 발전되어 왔다. 우리는 한자를 없앰으로써 이 강토에서 수천년 동안 連綿히 계속되어온 우리의 고유문화는 그 전통이 단절될 것이다. 그 불가피한 결과로서 국민의 생활감정과 사고방식은 외형적, 또 말초적 면에서 歐美化할 것이다. 4. 아세아대륙의 10억의 황인종이 향유하고 있는 동양문화권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함으로써 한민족은 天涯無依의 문화적 고아가 될 것이다> 한 세대 전의 이 예언은 상당 부분 적중하여 지금 우리 눈앞에서 진행중이다. 최고의 名文은 그 내용의 예언적인 능력으로 더욱 빛난다. ,,,,,,,,,,,,,,,,,,,,,,,,,,,,,,,,,,,,,,,,,,,,,,,,,,,,,,,, *오늘의 名文: 김진의 '남한 대통령의 이념무장' MB의 황석영 카드는 북한의 천안함 어뢰와 남한의 한상렬 목사로 돌아왔다. 남북대치라는 현실은 그렇게 냉엄한 것이다. 조갑제닷컴 "MB의 황석영 카드는 북한의 천안함 어뢰와 남한의 한상렬 목사로 돌아왔다. 남북대치라는 현실은 그렇게 냉엄한 것이다. 남한의 대통령이 이념적 사치(奢侈)를 모험할 여유가 없다. 이념Ⅱ에서는 실용적으로 유연하면서도 이념Ⅰ에선 중심을 잡는 대통령…불안한 시대, 불안한 공간은 그런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의 시시각각/ 남한 대통령의 이념 무장) *필자는 이런 해설을 덧붙였다. <이념Ⅰ은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한국으로 따지면 건국과 자유민주주의·남북문제 등에 관한 것이다. 이념Ⅱ는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방식이다. 세금·복지·노사 같은 경제 이슈나 소수자 정책과 교육규제 같은 사회적 문제에 관한 것이다.> [ 2010-08-16, 10:02 ] ,,,,,,,,,,,,,,,,,,,,,,,,,,,,,,,,,,,,,,,,,,,,,,,,,,,,,,, 투표장에 가기 전에 읽어본 名文 "자유라는 나무는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를 마심으로써 원기왕성해져야 한다. 이는 자유의 속성이자 거름이기도 하다" 趙甲濟 1787년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 기초자인 토마스 제퍼슨은 知人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라는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를 마심으로써 원기왕성해져야 한다. 이는 자유의 근본 속성이자 거름이기도 하다: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 It is its natural manure> 제퍼슨은 1809년에 연설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좋은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이다> 그는 1810년에 知人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성문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선량한 시민의 고귀한 의무중의 하나임을 의심할 바 없지만 그것이 가장 고귀한 것은 아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지켜내는 것이 더 고귀한 의무이다> 미국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제퍼슨은 1820년 윌리엄 찰스 자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사회의 궁극적 권력을 안전하게 예치할 수 있는 곳은 국민들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국민들이 충분히 開明하지 못해 신중하게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그 권력을 그들로부터 뺏을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그들에게 신중함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이런 제퍼슨의 철학이 담긴 글이 그가 기초한 독립선언서이다. 그 가운데 이런 문장이 유명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부정할 수 없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acred and undeniable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and independent, that from that equal creation they derive rights inherent and inalienable, among which are the preservation of life, and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생명의 보전, 자유, 행복의 추구는 인간의 존재 이유이다. 특히 행복의 추구권을 명시함으로써 인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점에서, 그런 해석을 名文으로만 남겨놓지 않고 국가를 통해서 인간을 상대로 실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미국 독립정신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미국을, 생명의 말살과 억압과 불행 강요를 정치의 주제로 삼고 있는 金正日 정권보다도 더 미워하는 일부 한국인들이 있다. 제퍼슨에 따르면 그런 어리석은 국민들로부터 主權을 빼앗을 수도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중함을 교육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5.31 선거가 바로 그런 교육장이다. [ 2006-05-31, 11:49 ] ,,,,,,,,,,,,,,,,,,,,,,,,,,,,,,,,,,,,,,,,,,,,,,,,,,,,,,,,,,,,,,,,,,,,,,, 韓國人을 행복하게 만든 4大 문장 미국 독립선언서, 李承晩의 독립정신, 崔南善의 三一독립선언서, 대한민국 헌법. 趙甲濟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의 유명한 귀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神聖(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保全(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1904년 李承晩이 獄中에서 쓴 '독립정신'의 한 귀절: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活力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活力이 생겨서 몇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根本이다> *崔南善이 기초한 1919년 3.1 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단: <우리가 본디 타고난 自由權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 피우리라> *李承晩이 建國을 주도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위의 역사적 文書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토마스 제퍼슨은 인간의 기본권을 생존권, 평등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으로 규정하였다. 국가도 개인의 이런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고 人權의 바탕이 되는 人間觀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이런 思想은 그 뒤 後發국가가 민주주의를 건설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19세기말 시작된 한국의 開化운동은 미국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를 理想으로 삼게 된다. 그 理想을 가장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가장 줄기차게 실천하였던 이가 李承晩이었다. 그가 온몸으로 담아내었던 開化의 꿈은 韓日倂合으로 좌절되었으나 그 불씨는 이어졌고 3.1 독립선언서로 재확인되었으며 드디어 대한민국 헌법에 자리잡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제퍼슨-李承晩-三一운동-建國-憲法의 연결망에서 빠져버린 것이 북한이었다. 북한은 인간생명의 신성함, 人權의 존중, 자유-평등-행복의 세계에서 제외됨으로써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북한에 비교하면 한국은 천국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美國과 李承晩, 그리고 기독교의 합작품이다. 위의 4大 문서에 등장하는 키 워드는 자유, 생명, 평등, 존엄, 행복, 풍요, 삶의 즐거움 등등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삶을 긍정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행복해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불행해질 자격이 없는 것이다. ,,,,,,,,,,,,,,,,,,,,,,,,,,,,,,,,,,,,,,,,,,,,,,,,,,,,,,,,,,,,,,,,,,,,, *사랑에 대하여 人類가 남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溫柔(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利益만 찾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惡을 행하지 아니하며 不義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趙甲濟 新約 성경 고린도 前書 13장을 읽기 쉽게 번역한 글이다. 사랑에 대하여 人類가 남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定義일 것이다. [내가 사람의 方言과 天使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과 시끄러운 꽹과리에 지나지 않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山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救濟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溫柔(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利益만 찾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惡을 행하지 아니하며 不義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나 예언은 끊어지고, 方言도 그치고, 知識도 없어지리라. 우리는 단편적으로 알고 단편적으로 예언하나, 溫全한 것이 올 때는 不完全한 것이 사라지리라.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고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으며 깨닫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버릇을 버렸노라. 지금은 흐린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단편적으로 아나 그때는 主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모든것을 온전히 알게 되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2010-08-20, 2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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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히야! 교과서로 써야 할만큼 배울게많은 정보네요.......정열적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