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좋다고 여겨지는 일, 주님의 뜻에 맞는다고 하는 일인데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막혀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그에게, 또 나에게 바라는 가치고 있습니다. 옳고 덜하다고 생각해도 사는 삶의 길과 가치가 다르면 이런 일들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 선한 일, 그리고 주님. 그분의 일이 곤난에 처하고 나갈 길이 막힐 때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두고 그를 못마땅해 생각할 수 있고, 그를 책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나를 생각하면서 나의 발걸음과 나아감에서 부족한 걸음걸이를 생각합니다. 설령 나의 방법이 옳다고 하여도 온전히 고려하지 못한 나의 발걸음을 반성합니다. 그렇 후 그 다음에는 더 깊이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을 고려해서 해 나아가야 합니다.
한편 우리는 좋은 일, 선한 일, 주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대해서 기도가 필요로 하고, 자주 만남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가치와 이상과 복음의 길에 대해서 더 자주 많은 담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좋은 일이 바른 일이 복음의 일을 온전하게 할 수 있으며, 함께 그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길에서, 그분의 나라의 일에서, 우리는 바른 길과 나아감에 있어서 인내하고 자비와 사랑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과 진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의 길을 더 굳건히 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고 함께 찬양을 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에서 그 나라의 일에서 잠시 머뭇거릴 수 밖에 없고, 진행되지 않았을 때, 그것은 우리 너와 나, 우리와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이 일. 주님의 일 때문에 형제들의 삶과 관심사, 어려움과 아픔을 얼마나 보았는가? 그 일과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수직의 길을 갔지만, 수평의 일을 얼마나 관심과 사랑을 갖고 만났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일은 수직적 관계의 주님의 길을 나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평적 형제들과 벗들과의 관계도 동시에 함께 교제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이런 수직과 수평의 교차할 때, 주님의 일을 더 온전히 이루어집니다ㅣ
형제의 어려움과 아픔을 생각하고, 그의 묶임과 눌림과 조여짐을 생각합니다. 실타래의 묶임과 엉킴은 그것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좋은 일, 선한 일, 주님의 일. 곧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일이 수직과 수평의 교차를 통해서 온전한 이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주님의 참된 길을 걸어갑니다. 그 일을 합니다. 한편 형제들과의 자비와 사랑, 선과 진리의 교제도 해 나갑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일과 의로움이 이루어집니다.
주님, 오늘 당신의 하느님 나라의 길을 걷게 하소서. 당신의 길을, 진리의 길을 올곧게 가게 하소서. 그리고 형제들과의 자비와 사랑, 진리와 선의 길을 나누고 함께 친교를 나누게 하소서. 그렇게 하여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 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첫댓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
우리가 바라는 가치와 이상과 복음의 길에 대해서 더 자주 많은 담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