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뭘 잘못했겠지”… 피해자의 운명을 바꾼 말 / 김이후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피해자를 울린다
최근 MBC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에 등장한 한 가족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30대인 작은딸은 부모에게 거친 막말을 퍼붓고, 언니를 때려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작은딸은 밥을 함께 먹자는 엄마의 말에도 살벌하게 대들고, 경찰이 처벌을 경고하자 “감옥 가면 된다”고 말해 지켜보던 이들을 아연케 했다.
작은딸이 가족에게 품고 있던 분노의 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상처 중 하나는, 그녀가 20대 초반 성폭력 사건을 겪었을 때 가족이 보였던 태도였다. “네가 행동을 똑바로 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래 전 교육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학교폭력(학폭)을 취재했을 때, 학폭 피해를 겪은 자녀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 “네가 가만히 있는데 걔가 널 괴롭히진 않았을 거 아냐?” “다른 얘들은 별일 없이 학교 잘 다니는데, 너는 어떻게 행동 했길래 이런 일이 생기냐?”
많은 아이들이 학폭 자체보다 부모의 이런 반응에 더 큰 상처를 입고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불안과 공포에 대처하는 ‘공정한 세상 가설’
따뜻하게 위로를 해줘도 모자랄 상황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 현상에 대해 심리학은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빈 J. 러너가 제시한 ‘공정한 세상 가설’이란 세상이 기본적으로 공정하게 돌아가며, 인간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결과를 얻는다고 믿는 인지 편향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지 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당했을 때 자동적으로 ‘뭔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일을 당했겠지’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나도 아무 잘못 없이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빨리 피해자에게 원인을 찾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고, ‘나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허위의 안전감까지 확보한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해 “그러니까 왜 밤에 돌아다녔어?” “그러니까 왜 옷을 그렇게 입고 다녔어?”라고 손가락질해 온 유구한 역사도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공정한 인과관계로만 설명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12년 전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부터 지난달 미사일 오폭으로 목숨을 잃은 이란 초등학생들까지, 그들이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이유란 없다.
미성숙한 내면을 드러내는 말들
삶은 근본적으로 취약하고 불안정하며 불가해하다. 그래서 인간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선명한 인과관계를 찾으려 든다. 그중 가장 손쉬운 방식이 ‘피해자 잘못’이다. 그렇게 해석하면, 가해자와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되고,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되며, 그저 피해자만 반성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 비난은 일종의 ‘회피’ 전략이기도 하다. 목격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융은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하고 나이브한 믿음을 극복하는 것을 발달의 척도로 봤다. 심리학에서 성숙이란, 애매모호함과 불가해성, 비인과성과 무작위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불안을 감내하는 능력이다. 즉 나의 잘못 없이도 억울한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암에 걸릴 수 있고, 교통규칙 한 번 어긴 적 없는데도 타인의 음주운전으로 중증 장애를 입을 수도 있으며, 선의로 가득 찬 삶을 살아왔음에도 음해와 오해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세상에서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취약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미성숙한 내면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기만적인 자기 위안을 얻는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피해자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삶의 근원적 취약성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피해자가 겪은 일이 나 역시 겪을 수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피해자를 온전히 위로하고 사회적 치유를 논의하며 구조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외상 후 성장’ 뒤에야 고통은 삶의 선물
한편, 학폭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 자녀를 탓하는 부모도 있지만 자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가해자를 찾아가 응징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사실 피해 학생들이 원하는 해결책의 스펙트럼은 넓다.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고 화해를 한 뒤 학교생활을 이어가길 원하는 경우도 있고, 더 이상 가해자와 엮이지 않고 조용히 전학을 원하는 경우, 법적으로 엄정한 처벌을 원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라며 오직 자신의 분노가 풀리는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 역시 자녀의 고통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믿고 신뢰하며 의논할 상대로서의 부모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만드는 행위다.
자녀의 고통에 응답하고 위로하는 태도만큼 부모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아이들은 고통 자체에서 무너지기보다 자신의 고통을 의심하거나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부모의 태도 앞에서 더 크게 무너진다.
반면, 부모의 성숙한 태도는 자녀를 ‘외상 후 성장’으로 이끈다. 그때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삶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김이후 프리랜서 afterthislife@nate.com
수정 2026-03-17 09:07 등록 2026-03-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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