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바닷가
여름장마가 북상한다고 보도했는데도 쾌청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고향집으로 향했다.
고향으로 내려가다가 서해대교 위를 달리고, 당진을 지난 뒤에 살짝 에둘러서 서북해안 지역을 방문하고 싶었다.
서산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지방도로 634번으로 북상하여 태안군 원북면 바닷가에 들렀다.
시야가 툭 터진 갯바다, 갯마을의 학암포해수욕장.
해안가를 따라서 일정한 길이로 자른 통대나무를 모래-땅에 말뚝 박았다. 갯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대나무 울타리 안으로 모으는 장치.
수북이 쌓인 갯모래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염기성 식물인 갯메꽃, 갯방풍등이 눈에 띄었다. 붉은 장미꽃과 비슷한 해당화가 날카로운 가시로 '나를 건드리면 찌를 테야요' 하듯이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드넓은 모래사장.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서 쌓인 패사(貝).
전면은 툭 터진 바다.
포구는 서쪽과 동쪽으로 나눠졌다.
서쪽은 학암포해수욕장으로 해변 길이가 2km이며 해변 양쪽으로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둥근 해안선을 따라 두 팔 벌린 듯한 좌우 끝머리에는 야트막한 소나무 숲.
더위에 지친 해수욕객이 캠핑장에서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가파른 암석 위에 올라선 바다-태공이 낚싯줄을 드리운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아내와 큰딸은 오랜 세월 풍파로 닳아버린 바위너덜 아래에서 둥글게 닳아진 조약돌 세 개를 주었다. 제법 묵직했다.
솔(소나무) 위로 학이 많이 내려왔다던 학암포가 덜 개발되어서 좋았다.
동쪽은 작은 해변, 개발이 안 되었다.
작은 포구, 새로 조성한 포구 안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태안군으로 되돌아오는 길목 오른쪽에 서 있는 이정표, 바위에 글자를 새긴 신두리해수욕장.
비포장 도로, 깊게 파인 행길 탓으로 차가 좌우로 요동을 쳤다.
백사장 길이가 끝없이 가물거리듯 이어졌다. 사구(砂丘)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무척이나 길었다.
일부 구간에는 '하늘과 바다 사이' 펜션이 바닷가를 향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최근에 산뜻한 모습으로 조성된 리조트 시설. 서구형의 지붕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고, 상가나 위락시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전체적인 인상은 개발이 덜 된 곳.
아쉽다면 사유지가 많아서, 무더기로 개발되면서 전국 최대 천혜의 천연기념물인 해안사구가 없어지는 것.
그래도 아직은 텅 빈 바다, 텅 빈 공간,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서 좋았다.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린 채 찰랑거리는 바다 안쪽으로 들어가도 바닷물은 종아리를 겨우 적실 정도였다. 물 깊이가 아주 얕아서 아이들이 마구 뛰면서 놀아도 다칠 염려가 전혀 없어 보였다.
가족들이 참으로 많았다.
천수만 간월호 끝자락에 있는 간월도의 간월암(看月庵 서산면 부석면 간월도리).
바닷물이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된 작은 섬.
조선 초기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창건했다는 암자는 참으로 조그마하고 낡았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나무기둥들이 비에 썩고 해풍에 뜯겨나가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터가 아주 비좁은 절 마당에는 나이테가 아주 많을 것 같은 늙은 측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하얀 꽃이 잘게 피어서 잎사귀와 함께 그럴듯한 자태를 내보였다.
간월호를 빠져나와 오른쪽 도로 이정표를 따라 남당항(홍성군 서부면 남당리)으로 향했다.
좁은 길 양편에 간이 해물 가게들(조개구이, 횟집)이 줄을 이었다.
보령시 오천면 오천항 주차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항구에 정박된 어선들을 내려다보았다.
오천항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갈뫼못 순교성지 마당에 주차했다.
긴 만(灣)이 이어지는 곳.
대천제방뚝을 지나 대천항 쪽으로 천천히 내달렸다.
어둠 속에서 펼쳐진 대천갯벌에서 진창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어항에서 2km도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에 있는 대천해수욕장 안으로 들어섰다. 철 이른 해수욕철이지만 많은 청춘남녀들이 시민헌장탑 아래 모래장불에 모여서 해변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 날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모래장불을 밝히는 서치라이트, 불꽃놀이, 참으로 많은 인파.
어둠 속의 남포방포제(남포면 양항리)를 따라 계속 남하했다.
무창포해수욕장(웅천읍 관당리) 쪽으로 가는 지방도로는 몹씨도 구불거렸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고향땅.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뵐 수 있겠다.
고향으로 내려가다가 살짝 에둘러서 들른 서북해안권의 해안은 개발이 덜 된 곳이어서 정감이 더 있다.
툭 터진 조망, 바위너덜, 포구, 괭이갈매기, 송림 ...
바다는 이래야 한다.
사람의 손때가 덜 묻은 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2006. 7. 9. 바람의 아들
날마다 일기를 쓴 뒤에 나중에, 먼 뒷날에 일기를 읽으면 그날의 기억이 가물거리면서 조금씩 떠오른다.
글과 사진을 남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위 글을 쓴 지도 벌써 만15년 가까이나 된다.
오늘은 2021. 5. 27.
이른 아침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에도 비가 내린다. 은근히 서늘하다.
햇볕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날씨가 꾸물거리고 비 내리는 날에는 마음조차 우울해진다.
외출하지 못하기에 예전에 써 든 글(일기)을 읽다가는 마음에 들기에 퍼서 여기에 올린다.
이번 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충남 보령지방 화망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다가 서산IC 또는 홍성IC로 빠져나가면 충남 서산, 태안지방으로 나갈 수 있기에 고향으로 내려가다가 한번 에둘러서 갯바다 구경이나 할까?
고향 내려가는 길목에서 조금만 에두르면 서해바다가 있고, 또 고향집에서 차를 잠깐 몰면 무창포 갯바다로 나갈 수 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먼 일가의 산소를 이장한 뒤에 시간이 나면 무창포 갯바다, 또는 대천어항으로 바람쐬러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21. 5. 27. 비 내리는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