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장
우리 재건축 사업은 시장에서 너무 멀리왔습니다.
재건축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규제'도 '안전진단'도 아니고 '가격'일 겁니다. 아파트도 상품이니까요. 잔뜩 올라버린 건축비와 분양가가 재건축 사업성을 어떻게 흔드는지 직접 계산해봤습니다.
1. 1기 A신도시의 경우
입주 30여년이 지난 A신도시. 평균 용적률 170% 정도로 조성됐습니다. 계산하기 쉽게 용적률을 300%로 올렸다고 가정해보죠. 기존 170%의 용적률이 300%로 올랐으니 쉽게말해 17평형을 가진 조합원은 (건축비를 전액 자신이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30평형 새아파트를 받는 겁니다. 쉽죠. 그런데 계산기를 자세히 두드려보면 이게 쉽지 않습니다.
A신도시에 1천 세대가 모두 32평형인 A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지금 시세는 대략 7억 원 정도입니다. 용적률이 76%(170%=>300%)나 올랐으니 1,000세대를 재건축하면 (이론적으로) 동일 평형으로 1,760세대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중 1,000세대는 조합원들 몫으로 치면, 새로 늘어난 760세대를 일반분양합니다. 전체 건축 면적은 [32평*1000가구=32,000평]에서 용적률이 76% 올랐으니 56,471평이 됩니다.
아시겠지만 문제는 건축비입니다. 5년 전쯤 평당 5백만 원 정도 했던 건축비가 최근에는 8백만 원을 넘어갑니다(최근 1조 6천 억원 규모로 관심이 모아졌던 부산 촉진 지구에서 선정된 시공사가 제시한 건축비는 평당 900만 원이였습니다). 일단 평당 8백만 원을 적용하면 건축비는 [56,471평*평당 8백만 원=4,518억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또 금융비용이나 이주지원비 설계비 감리비 분양홍보비 등 간접비가 들어갑니다. 통상 건축비의 40% 정도니까 대략 1,807억 원 정도입니다. 따라서 총 공사비는 [건축비 4,518억 원+간접비 1,807억 원=6,325억 원]입니다.
정부는 늘어나는 용적률만큼 이익을 회수합니다. 용적률을 많이 올려줄 경우 40~70%까지 다시 가져갑니다. 새 아파트를 기부채납 받거나 현금(공공기여)으로 환수하는데요. 760채 중 360채 정도를 공공이 환수해간다고 가정하면 조합은 이제 400세대 정도를 일반분양할 수 있습니다.
새 아파트 32평형을 10억 원에 분양한다고 가정하면 조합은 [10억 원*400세대=4,000억 원]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합원 1,000가구는 [총 공사비 6,325억 원-일반분양 수익 4,000억 원=2,325억 원]을 부담해야합니다.
결국 가구당 분담금이 2억 3,250만 원입니다. 7억 원 아파트를 재건축해 10억 원짜리 새 아파트를 받는데 2억 3,250만 원을 내야합니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이제 재건축 사업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업성이 낮으면 조합설립부터 사업 시행인가를 거치는 과정에서 온갖 잡음과 소송이 이어집니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 사업이 연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수록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용적률을 더 크게 올려줘야 합니다.
2. 압구정 B아파트의 경우
모두 같은 조건의 압구정 B아파트를 재건축할 경우에는 계산이 크게 달라집니다. 더 값비싼 자재를 쓴다고 가정해 총 공사비를 8천억 원, 일반분양도 A신도시 아파트의 50%인 200세대만 일반분양을 한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압구정동의 32평형은 분양가는 지금도 40억 원 가량입니다(강남 3구는 여전히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데 그래서 후분양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조합은 200세대를 분양가 40억 원에 일반분양해 8천억 원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조합원 분담금은 [총 공사비 8,000억 원-일반분양 수익 8,000억원=0원]입니다. 건축비가 치솟아도 일부 지역은 여전히 재건축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3.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적용 108곳, 215만 가구로 확대...용적률 최대 750%
1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 188% 수준입니다(일산 169%, 분당 184%,평촌 204%). 그동안은 보통 재건축을 하면 250% 선에서 맞춰줬습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용적률이 최대 500%까지 가능해졌습니다.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후 특별인센티브까지 받으면 최대 750% 용적률이 가능합니다.
1)하지만 용적률을 500%로 올리면 도로부터 상하수도, 심지어 교회나 공원용지까지 부족해집니다. 새아파트는 빌딩숲이 될 겁니다. 실제로 1만 세대가 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용적률 285%, 건폐율 19%인데도 거대한 빌딩숲입니다. 이보다 더 크고 높은 빌딩숲이 일산과 분당 등 1기 신도시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서울 개포, 고덕, 상계, 중계, 목동, 수원 영통, 인천 구월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정말 큰일납니다. 더 극심한 교통지옥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해요"
-금기정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1기신도시 정비 특별위원장)/중앙일보 보도 인용
2)용적률을 올려주면 당연히 그만큼 세대수가 늘어납니다. 30만 가구쯤 되는 1기 신도시에 최소 10만 가구는 더 늘어납니다. 수도권에 공주시 인구가 더 늘어나는 셈입니다. 높아진 분양가에 공급까지 늘어날 경우 '모두 분양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도 남습니다. 설령 이 분양가에 분양이 잘 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분양가가 오르면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기 때문입니다.
4.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인데도 지난해 서울의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17%나 올랐습니다(HUG). 조합도 정부도 건설사도 답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어떤 고차방정식으로도 사업성을 높여 아파트를 더 비싸게, 더 많이 공급하며 아파트가 더 잘 팔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재건축 사업성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도 없습니다.
시장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의 파격적인 대책이 잇달아 나오는데도 대치동도, 1기 신도시 집값도 오르지 않습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계속 짓고 계속 용적률을 끌어 올린 끝에 우리 재건축 시장은 시장원리에서 너무 멀리 왔습니다. 500% 용적률이 해법이 되긴 어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