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1) (최진석著, 위즈덤하우스刊)
지난 이야기는 “隨處作主(수처작주)”로 어디를 가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제였다. 오늘은 책 이야기를 드릴 차례입니다.
“EBS인문학특강”특강을 기반으로 엮은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학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인문학”으로 사고할 능력을 기르는데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당한 이야기이다. 교양을 확장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통섭”도 실행이 있어야 빛이 나는 것이며 고전을 통해 얻은 지식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장정이 화려한 책이 아니라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책이 좋은 책이라 하지 않았던가. 논어, 한비자, 명심보감 등이 고전으로 몇 천 년간 목숨을 지탱하는 것도 후대에서 읽혀져 왔고 일상에 녹아들어 실천해 왔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을 읽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 “좋은 책”이 아니며 “고전”이 아니라 생각된다.)
7강 “안다”는 것은 결국 ‘모른다“는 것
노자사상의 기본구도는 이 세계가 두 대립면의 꼬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유무상생인데 유무상생을 “道”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一”로 상징합니다. 그런데 “一”은 스테인리스 젓가락처럼 생겼다기 보다는 새끼줄처럼 생긴 겁니다. 도덕경 39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昔之得一者: 옛날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天得一以淸: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다.
地得一以寧: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된다.
神得一以靈: 신은 하나를 얻어 영험하고
谷得一以盆: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萬物得一以生: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살며
侯王得一以爲天不正: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여기서 “一” 은 유무상생이며 옛날부터 대립면의 긴장위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옛날부터 이 세계가 그러했다는 뜻이니 진리입니다. 신이 영험하고 계곡이 채워지고 만물이 생명을 유지하며 잘사는 이유도 모두 다 “一” 을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통치자가 통치를 잘하는 것도 사실은 “一” 즉 “道”를 근거로 통치하기 때문인데 이는 바로 대립면의 공존을 담당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노자는 자연계의 존재나 운행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를 운용하는 정치 영역까지도 모두 “대립면의 꼬임”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제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고전을 멀리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번 읽어서는 뜻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인데 옛날 선비들은 뜻이 통할 때까지 수천 번을 일었지요. 책에 손때가 반질반질할 정도로...
뜻을 자세히 풀어 보면)
其致之: 경계하는 의미로 그것을 좀 더 설명해 보자.
天無己淸 將恐裂: 하늘이 끊임없이 청명하려고만 하면 장차 무너져 내릴 것이고
地無己寧 將恐廢: 땅이 끊임없이 안정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장차 쪼개질 것이며
神無己靈 將恐歇: 신이 끊임없이 영험하려고만 하면 장차 사라지게 될 것이며
谷無己盆 將恐竭: 계곡은 끊임없이 꽉 채우려고만 들면 장차 말라버릴 것이며
萬物無己生 將恐滅: 만물이 끊임없이 살려고만 하면 장차 소멸하게 될 것이고
侯王無己貴以高 將恐蹶: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故貴以賤爲本: 그러므로 고귀함은 비천함을 뿌리로 하고
高以下爲基: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是以侯王自謂孤寡不穀: 이 때문에 통치자는 스스로를 고, 과 그리고 불곡으로 낮춰 부르는 것이다.
此非以賤爲本邪非乎:이것이 비천함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故致數與無與: 그러므로 몇 가지 명예를 지키려 하다가는 명예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不欲琭琭如玉珞珞如石: 옥처럼 고귀해지려 하지 말고 돌처럼 소박하라.
땅이 안정된 상태만 고집하면 결국 쪼개져 버리듯 청명한 하늘도 탁한 하늘과의 공존 속에서만 청명함을 길게 유지 합니다. 이런 일은 정치나 회사에도 적용이 됩니다. 통치자는 위치가 높고 고귀한 것이 사실이나 낮은 백성들과 공존하기에 상호의존관계가 유지됩니다. 통치자가 자신의 위치에 도취하여 고귀하게만 나아가려 한다면 낮은 위치의 백성들의 지지를 상실하게 되어 실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통치자들은 스스로를 孤人(고인: 부모가 없는 사람), 寡人(과인: 남편이 없는 사람), 不穀(불곡: 곡식을 번창하게 하지 못할 사람), 朕(짐: 조그맣게 갈라진 틈과 같은 사소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낮게 칭했습니다. 현재 가진 고귀함은 천한 것을 기초로 이뤄줬음을 끊임없이 자각하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도가사상에는 “光而不耀 和光同塵 (광이불요 화광동진)”라는 표현이 있는데 빛을 발하지만 눈부시지는 않고 자기 빛을 다른 흙먼지들과 함께 펼쳐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외부의 것을 제압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절제와 그 절제가 빚어내는 탄성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립면의 긴장을 품은 사람은 빛처럼, 구슬처럼 빛나지 않고 돌처럼 소박합니다. 노자가 “돌처럼 소박하라”고 이른 것은 돌멩이처럼 사소하게 지내라는 뜻이 아니고 빛나되 눈부시지 않게(光而不耀), 빛나되 그 빛이 다른 먼지들과 조화를 이뤄 같아지라는(和光同塵) 당부입니다.
* 도덕경은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책으로 “노자”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2015.07.05 전력사업처 임순형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