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왕모 신화
서왕모 신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모신신화이다. 그는 어머니와 여자의 속성을 모두 지니므로, 이중적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모신계열에 속한다. 또 곤륜산 꼭대기에 건목이 있어서 우주를 잇는 축의 역할을 한다. 산해경에는 지모신적인 요소가 아주 강하다.
서왕모는 서쪽의 끝에 신들이 사는 곤륜산에 위치한 ‘요지’라는 호수에 살고 있는 여신이다.
사실 서왕모가 처음부터 아름다운 서방의 왕모는 아니었다. 서왕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산해경山海經’에서 서왕모는 미인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도 확실하지 않고, 사람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표범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봉두난발에 머리꾸미개를 얹기는 했으나, 하늘의 재앙과 형벌을 관장하는 무시무시한 신이다. 이런 서왕모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삼청조三靑鳥’, 즉 세 마리 푸른 새다. 이 새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귀엽고 작은 파랑새가 아니라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다. 그 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먹을 것을 사냥해 서왕모가 사는 동굴까지 날아와 떨어뜨려 준다. 그래서 후대 작품에서는 삼청조가 세 명의 시녀로 변모하기도 한다. ‘춘향가’에서 푸른 새가 서왕모의 요지연을 알려주는 전령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곤륜산, 건목이라는 우주수, 전령 역할을 하는 푸른 새는 곤륜산이 우주산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곤륜산과 서왕모가 중국에서 발생한 신화임으로, 곤륜산-서왕모 신화는 중국적 요소인 신선 사상이 스면든다.
서왕모는 ‘요지’에서 아주 성대한 잔치를 열었는데, 그 잔치에 많은 신선을 초대해 불로장생의 영약인 ‘반도蟠桃’라는 복숭아를 나눠줬다. 이 잔치를 ‘요지연’이라고 한다. 잔치가 곧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건 서왕모 곁에 머무는 ‘푸른 새’의 역할이다. 보존 상태가 좋은 여덟 폭의 ‘요지연도’ 병풍이 경기도박물관에 있다.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을 한 서왕모가 반도를 풍성하게 쌓아놓은 상 앞에 앉아 있고, 한편에는 ‘목천자穆天子’가 보인다. 목천자는 주周 목왕穆王을 가리키는데, 여덟 필의 준마를 타고 머나먼 서쪽으로 순행을 나갔다가 ‘요지’에서 ‘서방의 왕모’, 즉 서왕모를 만난다. 목왕은 서왕모에게 영롱한 옥과 꽃무늬 비단을 선물로 준다. 그리고 둘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동쪽에 있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목왕에게 서왕모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애틋한 노래를 남기면서 이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의 영역에 속하는 ‘목천자전穆天子傳’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요지’는 서왕모가 신선들에게 반도를 나눠주는 장소가 아니라, 연인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사랑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서왕모가 욕정을 표상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서왕모가 한漢나라 때 이르면 불사약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변한다. 당시에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불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무덤의 벽에는 부조를 새겨 죽은 이를 기리고 그의 영혼이 불멸하기를 기원했는데, 무덤의 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도상圖像의 주인공이 서왕모다. 용과 호랑이 모양의 자리에 웅크리고 앉은 서왕모 앞에는 해를 상징하는 세발 까마귀三足烏와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가 있고, 절구에 약을 찧는 토끼가 있다. 상서로움을 뜻하는 구미호九尾狐도 있고, 약초를 바치는 신선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2천여 년 전 서왕모는 불사약을 갖고 있는 독립적이고 위대한 여신으로 받들어졌던 것이다.
물론 한나라 때의 무덤벽화에는 서왕모가 ‘복숭아’를 들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왕모가 갖고 있는 불로장생의 영약이 복숭아라는 이야기는 위진魏晉시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신화가 전설로, 문학 작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