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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북부.향교.성산일출봉.제주4.3평화공원
일시:2026년 5월 11일 월요일~15일 금요일 4박5일
장소:제주향교.관덕정.향사당.광해군유배지.이세직유배지.오현단.장수당.귤림서원.제주성지.제이각.제주을미왜변대첩전적지.이생진시비거리.오정개해안.동암사.수마포해안.광치기해변.해녀박물관.조군현가옥.신촌향사.제주4.3평화공원.애향탑.남생이못.닭머르.신촌4.3성터.신촌환해장성
2026년 5월 11일 화요일
* 제주시 조천읍 신촌포구 풍경.숙소 하니하우스 앞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신촌포구는 올레길 18코스가 지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포구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한적한 산책 명소다. 큰 방파제와 작은 방파제가 감싸고 있는 형태이며, 바닷물이 매우 맑아 바닥이 투명하게 보인다. 평온한 바다여서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 신촌포구의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 하니하우스 펜션을 숙소로 정했다.
* 제주향교 대성문
제주시 용담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1392년 태조 1년에 창건된 후 수차례 이전을 반복하다가, 1827년 순조 27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도로변에 위치한 향교의 대성문이 단아한 정경이다.
* 제주향교 명륜당
대성전 문으로 들어가니 길게 아름다운 건축구조의 명륜당이 먼저 외객을 반긴다.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도 곁에 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의 그날의 정경이 서려 있다.
* 제주향교 행단정
공자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가르치던 정자다. 곁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 제주향교 계성사
유교의 오성 즉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부친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조선 시대 전국의 주요 향교에 설치되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재는 전국에서 제주향교와 전주향교 두 곳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매우 희귀하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 제주향교 공자 동상
대한민국 최초로 세워진 공자의 동상이다. 동상 자체의 높이는 2.25m, 하단 기단을 포함한 전체 높이는 5.1m로 웅장하다. 대성전과 계성사 중간 지점에 세워져 있다. 주변에는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을 상징하는 행단정(정자)과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다. 동상 앞에는 참배할 수 있는 배례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경건한 분위기다. 마침 제주 중학교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여서 제주중학교 학생들은 공자님을 바라보며 훌륭하게 성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주향교 비석군
대성전 후면의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역사적인 비석 모음이다. 제주향교의 6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함께, 이곳을 거쳐 간 목민관들과 유생들을 기념하는 다양한 비석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조선시대 제주에 부임했던 안무사, 절제사, 목사, 판관 등의 공덕과 향교 이건, 중건 등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향교가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기다 1827년 순조 27년에 현재의 용담동으로 이전하게 된 내력 등을 담은 비석들이 포함되어 있다. 맨 위에서부터 아래로 직급과 연대에 맞게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선정비, 이건비, 개축비 등 다양한 성격의 비석 11기 등이 모여 있다. 제주향교 개교 600주년 기적비가 있는데 제주향교의 600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현대에 대성전 북쪽 뜰에 추가로 세워진 기념비다.
* 제주향교 대성전
대성전은 제주도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과거에는 지역 인재 양성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매년 봄·가을에 공자를 기리는 제사인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제주향교 주변에는 용두암, 관덕정 등이 있다.
* 제주향교 옆 제주중학교
사립 남자중학교로 1945년에 개교한 역사가 깊은 학교다. 축구부가 유명하다. 제주향교 바로 옆에 있어서 아주 인상적이다. 공자님이 내려다 보시고 대성전과 명륜당이 곁에 있으니 교육은 저절로 훌륭하게 이루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참 좋은 위치에 앉은 학교다.
* 서문공설시장 외경
제주시 서문로에 위치한 전통 재래시장이다. 제주향교 바로 건너편에 있다. 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육류 특화시장으로, 신선한 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제주도에서 가장 활발한 육류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흑돼지와 한우고기를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고기를 구입한 후 시장 내 지정된 식당에서 즉시 구워 먹거나 육회 등으로 조리해 주는 서비스가 특징이다. 동문시장과 달리 관광객보다는 현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로, 1층에는 농수산축산물, 식당 등이 있고, 2층에는 의류 등이 있다. 시장 통닭과 막창 순대, 순대국밥 등이 유명하다. 일정상 시간 관계로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관덕정 가는 길에 외경만 조망했다.
* 관덕정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제주시 삼도동에 있다. 1448년 세종 30년 목사 신숙청이 군사들의 훈련과 삼무정신 함양을 위해 건립했다. 제주 삼무정신은 제주도에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특징으로,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제주인의 자립심, 강인함, 정직함, 그리고 이웃 간의 신뢰와 개방성을 상징한다. 이는 정낭(대문 대신 두는 세 개의 막대) 문화로도 이어졌다. 단순히 '없다'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를 나타내는 정신이다. 조선 시대에는 연무장 및 과거 시험장으로 쓰였으며, 제주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팔작지붕 건물로, 처마가 길고 건물이 낮은 제주 특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내부 대들보에는 적벽대첩도, 십장생도 등 귀중한 조선 시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또한 제주 4·3 사건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일어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정자가 매우 깨끗하여 올라앉아 잠시 휴식하며 옛 선현들의 숨결에 흐뭇했다.
* 향사당
조선시대 지방의 자치 기관 역할을 수행하며, 나이 많은 어른들이 모여 향촌의 여러 일들을 논의하고 활쏘기를 하던 곳이다. 제주시 삼도동에 있고, 제주도 유형문화유산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 풍속교화와 향사음례로 활쏘기 및 주연을 행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고을의 과제나 민심을 논의하기도 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가락천변에서 조선 숙종 17년 1691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정조 21년 1797년에 향사당으로 이름이 고쳐졌다. 고종 16년 1879년에는 신성여학교 자리로 이용되기도 했다.
* 광해군 유배지.광해군 적소터
광해군 유배지는 강화도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제주도로 옮겨졌다. 제주시 중앙로 인근에서 4년간 지내다 생을 마감했다. 강화도 교동도도 유배지였으나, 1637년 병자호란 직후 제주도 행원포구(어등포)로 들어와 떠나지 못하고 유배 생활을 마친 유일한 왕이다.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제민신용협동조합 본점 자리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이 제주도 유배생활 중 마지막을 보냈던 광해군 적소터(유배지)로 전해진다. 18년의 유배 생활 중, 마지막 1637년 제주로 유배되어 1641년 이곳에서 승하하기까지 약 4년 4개월을 제주에서 보냈다. 제주에 유배 온 유일한 왕이었다. 철저한 감시 속에서 왕족 신분으로 위리안치되었다. 군사들의 감시 속에서 나인 한 명과 함께 고독하게 지냈다. 제주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외로운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당시 제주 목사 이시방은 국왕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러주었다. 개혁 군주이자 폭군이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서 비운의 삶을 마쳤으며, 제주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역사로 남아있다. 제주 제민신협본점(064-751-0601) 앞에 그 표석이 있다. 조촐하게 허름한 곳에 웅크리고 앉은 표석이 그날의 광해군처럼 애처롭다.
* 이세직 유배지.사마재터
이세직의 주요 유배지는 제주도였으며, 동문시장 인근의 사마재다. 현재 농협중앙회 제주시지부 앞 터에 거주하며 유배 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김옥균 암살 사건 이후 비리 혐의로 유배되었고, 제주에서 일본어 교육을 하기도 했다. 유배 기간 동안 세를 내어 살며 학생들을 모아 일본어를 가르쳤다. 1894년에는 추자도로 유배지가 옮겨지기도 했다. 이세직은 대한제국기 정치인으로, 김옥균 암살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의신학교 터
제주향교 주변에는 역사적인 유적이 많다. 지금 오현단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의신하교 터라는 표석을 발견했다. 옛 사림학교다.
* 오현단
조선 시대 제주도에 유배되었거나 목사 등 지방관으로 부임하여 지역 교육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다섯 명의 선현(오현)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제단이다. 1971년 제주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동문시장 인근에 있다. 배향 인물 오현으로 충암 김정은 기묘사화로 유배되었다. 규암 송인수는 제주목사로 부임했다. 청음 김상헌은 국왕특사인 안무사로 파견되었다. 동계 정온은 광해군 때 유배되었다. 우암 송시열은 숙종 때 유배되었다. 본래 오현의 위패를 모셨던 귤림서원이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자, 1892년 제주 유림들이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비석(조두석)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현재 단 내에는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5개의 조두석과 함께 김정의 행적을 기리는 충암김선생적려유허비,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마애명 등이 보존되어 있다. 제주성지의 성벽 유적과 인접해 있으며, 산책로가 있다. 오현길(이도일동)에 기묘사화로 1519년 귀양와서 많은 시문을 남기고 이듬해 사사된 형조판서 김정을 추모하는 귤림서원과 오현단이 있고, 동문시장 입구 남수교 근처에 김정의 유배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 장수당
제주목사 이괴가 1660년 현종 1년에 건립한 건물로, 1520년 기묘사화로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김정의 넋을 위로하고 향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 제주 향교 근처에 위치한 역사적 유적지이자 제주도의 국가유산 관련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1578년 선조 11년 제주판관 조인후가 김정의 적거지에 사묘를 세운 것이 시초이며, 1660년 제주목사 이괴가 이를 확장하여 장수당을 건립했다. 향교와 가까운 곳에 있어 향현사와 함께 제주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현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정 외 여러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이자, 탐라의 선비문화와 유교 전통을 계승하는 교육, 문화의 행사 장소이기도 하다. 비가 많이 온다. 장수당 추녀 끝 댓돌에 앉아 잠시 비를 피했다.
* 귤림서원
제주시 이도일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교육 및 제사 기능을 갖춘 서원이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된 김정 선생을 비롯하여, 제주 지역의 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다섯 분의 현인, 즉 '제주 오현'을 배향한 곳이다. 1578년 선조 11년에 제주판관 조인후가 김정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충암묘를 건립한 것이 시초다. 이후 1658년 효종 6년에 제주목사 이회가 교육 기능을 위한 장수당을 세워 서원의 면모를 갖추었고, 1682년 숙종 8년에는 귤림서원이라는 액호를 하사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다. 제주 오현은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이다. 1871년 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2년 제주 유림들이 서원 자리에 조두석을 세워 오현단을 마련하여 제사를 이어갔다. 현재의 건물은 2004년에 복원된 것이다. 제주성지 바로 곁에 있다.
* 제주성지
제주성터는 제주성지라고도 불리며, 제주목의 중심부를 둘러쌌던 역사적인 성곽의 잔존 터다. 최초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탐라국 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왜구 방어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보수되고 활용되었다. 제주시 이도동 일대, 오현단 부근에 일부 복원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 1411년 태종실록에 보수 기록이 있으며, 1780년 정조 4년에는 산지천 범람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간성을 쌓기도 했다. 1920년대 제주항 개발 당시 성벽이 많이 훼손되어 일부 구간만 남아 있다. 제주의 화산암인 현무암으로 축조되었으며, 성곽 주변으로 귤나무와 유자나무가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제주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현단과 함께 역사 교육 및 산책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 향현사
조선 시대 제주 지역의 발전과 학문 진흥에 크게 기여한 지방의 명신과 학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43년 헌종 9년 제주목사 이원조가 처음 건립했다. 조선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명신 영곡 고득종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으며, 1849년 헌종 15ㄴ년에는 제주의 이름난 유학자이자 참봉이었던 우암 김진용을 함께 옮겨와 병향했다. 1871년 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주변의 귤림서원, 삼성사 등과 함께 헐렸다. 이후 오랜 기간 유허비만 남아있다가, 2007년 제주시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매년 양력 10월 15일에 선현들의 뜻을 기리는 향현사 제례 봉행 행사가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 역사의 둘레길(오현단) 옛모습 안내판
오현단 앞 도로변에 오현단의 역사를 사진자료와 함께 설명하는 전시물이 부착된 둘레길이다.
* 제주성지와 제이각
제주성지 즉 제주성터와 제이각은 함께 붙어 있다. 지금 이곳 아래에서는 성터 위에 앉은 제이각이 지붕만 보인다. 이제 저 높은 곳의 제이각으로 가 볼 것이다.
* 제이각
제주 제이각(制夷閣)은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고 감시하기 위해 제주성 남측 성벽 위에 세워졌던 망루다. 1599년 선조 32년 성윤문 목사가 창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 이후 2013년 발굴 조사를 거쳐 2015년, 약 416년 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제이(制夷)'는 '오랑캐(왜구)를 제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방을 감시하기 위해 벽 없이 높게 지어진 T자형 누각 형태가 특징이다. 제주성지와 오현단과 인접해 있다. 성벽 위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제주시내와 해안까지 조망할 수 있다. 제주성지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제주도 지정 기념물 제3호다.
* 을묘왜변제주대첩 전적지
1555년 을묘년 명종 10년에 발생한 을묘왜변 제주대첩은 제주 민·관·군이 힘을 합쳐 왜구를 물리친 역사적인 승전이다. 왜선 40여 척에 탄 1천여 명의 왜구가 화북포구에 상륙하여 사라봉 일대를 거쳐 제주읍성을 공격했다. 왜구가 성 높은 곳에 진을 치고 3일간 격전을 벌인 초기 침입의 격전지다. 왜구들이 제주읍성으로 향하며 지나간 경로다. 제주시 동문시장 앞 오현교 입구에 을묘왜변 전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승전 이듬해인 1556년에 전공을 기리기 위해 망경루가 창건되었다. 을묘왜변 제주대첩 당시 왜구를 감시하던 곳이다. 현재 제주목 관아 내에 복원되어 있다. 제주성 안을 내려다보며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제주목사였던 김수문은 그 당시 남성이 적은 관계로 여성들이 치마에 돌을 담아 성 위로 나르며 무기 보충을 돕는 70명의 정예 기병 치마돌격대를 이끌고 왜구를 물리쳐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임진왜란 40여 년 전 제주에서 대규모 왜구 침입을 막아낸 최초의 승리이자, 제주 민관의 단합된 힘을 보여준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 제주 동문시장 외경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상설시장으로,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 신선한 농수산물을 판매한다. 제주 공항과 가까이 있다. 사람들이 발디딜 틈이 없이 많아서 내경은 사진쵤영을 할 수 가 없았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연다.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는 야시장을 운영한다. 제주 특산물을 포함한 다양한 상품이 있다. 신선한 해산물도 있다. 제주 특색이 담긴 기념품도 있다. 채소, 생선, 건어물 등 제주산 농수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중식으로 바지락칼국수를 먹고 먹거리로 돼지고기, 순대, 치킨, 문어오징어버터구이, 보리떡, 쌀떡, 한라봉 등 많이 사 와서 여행 내내 조식과 석식으로 풍요롭게 먹었다.
* 신촌초등학교에서 숙소 하니하우스 가는 길
신촌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500여m 거리의 숙소 하니하우스로 가는 길이다. 도로 끝에 하니하우스가 있고 앞에는 신촌포구가 시원하게 전개된다.
2026년 5월 13일 수요일
* 제주시 조천읍 신촌포구 앞 숙소 하니하우스 펜션
복층구조로 된 2층 집이다. 한 가족이 1층과 2층을 모두 사용한다. 1층에 거실겸, 주방겸, 방 침대가 있고, 2층에도 방 2개와 각각 참대가 있다. 신촌포구 바로 앞에 있어서 주변 풍경이 참 좋다. 그래서 정한 숙소다. 신촌포구의 아치형 다리가 1층과 2층 방에서 보이며 비경을 선사한다. 아주 좋은 숙소다. 우리 가족의 숙소는 우측 맨 끝 루니의 집이다. 그외 하나하우스, 하니하우스가 있다.
* 신촌포구 아치형 다리
두 개의 방파제를 하나로 연결하여 육지 포구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하고 이색적인 정취를 선사하는 명소다. 바다 위에 아담하게 솟은 아치형 구조로, 다리 밑으로 작은 고무보트나 어선들이 오가는 정겨운 어촌 풍경을 볼 수 있다. 4박 5일 여행 기간 동안 숙소 1층과 2층 방에서도 조망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큰물 남탕
제주시 조천읍 신촌포구 인근의 용천수탕으로 남탕과 여탕이 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 솟아나는 용천수는 노천탕으로 과거에는 주민들의 목욕탕이었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물놀이 장소였다. 오늘날에는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장소다. 이곳은 남탕인데 크고 웅장하다.
* 큰물 여탕
용천수 여탕은 남탕보다는 아담하고 아늑하다. 쉼터와 나무 지붕도 있어 정겹다.
* 신촌 큰물 어업인 쉼터
신촌리에 용천수가 얼마나 많으면 바다사랑 어부회 신촌 큰물 어업인 쉼터까지 있을까. 놀라운 정경이다.
* 남당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신촌포구 남당물은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 솟아나는 제주의 독특한 용천수다. 과거 어선과 해녀의 안전 및 일을 관장하던 풍어신인 '남당하르방'을 모셨던 당(堂)이 이 물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남당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신촌리 유적 안내
신촌포구 앞에 신촌리 유적을 안내하는 전시물이 있다. 우리가 탐방할 애향탑, 신촌향사, 남생이못, 닭머르 등 유익한 정보다.
* 신촌포구 공사 전 등대(하루 전날)
방파제 끝자락에 바다를 밝히는 아름다운 빨간 등대, 무인등대가 있다. 잔잔한 어촌 마을의 감성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방파제 안쪽 주차장 바로 앞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등대가 있는 서방파제 구간은 가볍게 걸어서 산책하기 좋다. 오늘은 저런 모습의 빨간 등대를 보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가 보니 등대를 철거해서 한적한 곳에 두고 밑자락판만 남아 있었다.
* 신촌포구 공사중인 등대
등대 본체는 떼어서 포구 한적한곳에 두고 밑바닥만 남은 상태다. 다시 보수하여 설치한다고 한다. 등대자리 곁에서 낚시를 하는 남자가 있다. 이곳 신촌포구는 바다가 잔잔하여서 낚시를 많이 하는 장소다.
* 이생진 시비 거리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해안에 가파른 절벽과 낭떠러지가 한눈에 펼쳐지는 우뭇개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성산포의 시인으로 불리는 이생진 시인의 대표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비롯하여, 성산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비 20기가 해안 절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성산포 일대를 여행하면서 만든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8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명예도민이 된 그를 기리기 위하여 시비공원을 만든 곳이 바로 우뭇개 동산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명소로 유명하다. 제주올레 1코스 구간에 포함되어 있다. 성산일출봉 근처 오정개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성산마을 제단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원래는 마을의 전통 제례 공간이자 공동체 신앙의 중심지였으나, 현재는 탁 트인 바다와 일출봉의 웅장한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명소로 여행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성산항과 성산일출봉 사이 오정개 인근 해안길에 있다.
* 성산포 주변 풍경
성산마을제단 뒤편으로 가서 바다를 보니 좌측으로 성산항이 보이고, 우측으로 우도가 보인다. 저기서 배를 승선하여 우도에 갔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성산일출봉과 함께 비경이다.
* 대한민국과 스페인 우정 협약비
이생진 시비 거리 곁 해안에 제주올레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동완주 인증을 기념하는 산티아고 표지석이 조가비 문양으로 설치되어 있다.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우정 협약비다.
* 성산일출봉 비경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수성 화산 폭발로 형성된 대한민국 대표 응회구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거대한 왕관을 닮은 해발 182m의 화산체 정상에서는 웅장한 분화구와 푸른 제주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출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우리는 전에 그 분화구에 올라가서 성산일출을 감상했다. 오늘은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성산일출봉의 비경을 눈앞에서 본다.
* 오정개 해안
성산일출봉 아래의 아름다운 천연 포구이자 해안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숨은 명소로, 뛰어난 지질학적 가치와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한다. 성산리를 이루는 5개의 자연마을 터진목, 수메밋, 우묵개, 오정개, 통밧알 중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 성산일출봉 근경
이생진 시비 거리에서부터 이곳까지 걸어서 왔다.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가장 가까이 와 있다. 거룩한 산이 평화롭게 누워 있다.
* 세계자연유산 인증비 성산일출봉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기념 인증서 조형물은 성산일출봉 앞에 있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으로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동시에 획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제주인의 정직한 심성을 드러내는 정주석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2011년 11월 11일, 한국 시각 12일 새벽 선정되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민간 재단인 뉴세븐원더스(The New7Wonders) 재단에서 주관한 캠페인이었다. 제주도 외에 브라질 아마존, 베트남 하롱베이,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인도네시아 코모도 국립공원, 필리핀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강,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 마운틴이 함께 선정되었다.
* 성산일출봉 홍보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의 역사와 지질학적 가치를 소개하는 무료 실내 전시 공간이다. 성산일출봉 주차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명소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얻기 좋다. 성산일출봉과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5개의 주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출봉의 탄생과 역사에서 약 5천 년 전 바닷속 수성 화산 분출로 형성된 지질학적 변천사가 신비롭다.
* 동암사
동암사는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 기슭에 있다. 성산일출봉 입구 주차장 계단 바로 위에 있다. 성산일출봉을 방문할 때 잠시 들러 마음의 평안을 찾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곳이다. 절 앞 계단 위에서 성산일출봉을 볼 수 있다. 수국 명소로도 알려져 있어 6~7월경 아름다운 수국을 볼 수 있다. 1934년에 처음 창건되었으며, 당시 사찰명은 일광사였다. 이후 동화사, 일출사, 경봉사 등을 거쳐 현재의 동암사로 개명되었다.
* 수마포 해안 가는 길 풍경
성산일출봉에서 동암사를 거쳐 수마포 해안으로 가는 길이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비경이다. 잠시 후 갈 광치기 해변도 보이고, 곁에는 성산일출봉도 우람하게 서 있다.
* 수마포 해안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수마포해안은 성산일출봉 남서쪽 기슭에 있다. 조선 시대에 제주에서 기른 말을 육지로 보내기 위해 배에 싣던 포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성산일출봉의 웅장한 지질 단면과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숨은 명소다. 지질 트레일로 수성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화산재 퇴적층과 응회암 지형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물이 깨끗하여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때 확인은 필수다. 해안이 좁고 돌이 많아,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간조) 시간에 맞춰 가야 일출봉 기슭까지 깊숙이 들어가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다. 바로 옆 광치기해변이나 우뭇개해안에 비해 인파가 적어 한적한 분위기다.
* 성산일출봉 일제동굴진지
성산일출봉 아래 수마포 해안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파놓은 18개의 일제 진지동굴이 해안 절벽을 따라 남아 있다.
* 오조포구 조망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포구는 성산일출봉을 마주 보고 있는 한적한 포구다. "해가 뜨면 나를 제일 먼저 비춘다"라는 뜻의 오조(吾照)라는 이름처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보는 숨은 명소다. 성산일출봉의 전경이 일품이며, 잔잔한 바다가 호수 같은 분위기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촬영지인 럭키편의점 돌담집이 있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도 촬영했다. 제주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갯벌이 있으며, 겨울철에는 철새들이 날아온다. 제주 올레 2코스로 마을과 연결된 나무다리와 돌담길을 걷기 좋다. 작은 오름 식산봉 정상에 오르면 오조포구와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담는다. 일출뿐만 아니라 성산일출봉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일몰도 비경이다. 오조포구 산책로가 길어 시간이 없을 때는 광치기해변에서 조망해도 좋다. 오늘 우리도 시간 관계로 가지는 못하고 광치기해변 앞에서 조망만 했다.
* 광치기 해변 입구 공원
광치기 해변 앞 성산포 JC 공원은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용암 지질 구조와 녹색 이끼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제주 동부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다.
* 광치기 해변에서 본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의 가장 큰 비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푸른 바다 위에 고즈넉히 앉은 자태가 광치기 해변 위로 다가온다. 선정은 평평하여 아주 독특한 형상이다.
* 광치기 해변
성산일출봉의 전경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해변 중 하나다. 독특한 지질 구조로 용암이 바다와 만나 굳어진 현무암 지질층 위에 녹색 이끼가 덮여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일출 명소로 성산일출봉 옆으로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현무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검은색 모래 사장이 특징이다. 제주올길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으로 많은 도보 여행객들이 지나는 곳이다. 물때 확인은 필수다. 바닷물에 잠겨 있던 이끼 낀 비경은 간조(썰물) 시간에만 드러난다. 방문 전 반드시 바다타임 등에서 성산포 물때표의 간조 시간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 해변 입구 벤치나 바위 위에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다. 해수욕이 금지된 구역이므로 감상과 산책 위주로 즐겨야 한다. 광치기해변은 반드시 간조때 갈 것. 그래야 독특한 해변 본다. 바다타임 성산포 물때 시간:2026.5.13.수-13:11분이 간조로 바다 수위 최저다.그래서 우리도 다른 여행지 본 후에 이 시각 맞춰서 온 것이다. 만조는 19:21분으로 바다 수위 최고다. 평평한 용암 바위 위를 걸으며 바다를 체험했다.
*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제주시 구좌읍에 있으며, 제주해녀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이 기념탑은 일제강점기였던 1931~1932년에 걸쳐 일어난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주도 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1998년 8월 15일에 건립되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한 생존권 투쟁이자 여성들이 주도한 유일한 항일운동이다. 높이 12m의 탑신은 전통 배인 덕판배 좌대 위에 세워졌으며, 제주의 삼무정신을 상징하는 3개의 돛을 형상화했다. 기념탑은 해녀박물관, 해녀광장 등과 함께 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내에 조성되어 있다.
* 해녀박물관 공원 해녀상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은 제주해녀박물관과 함께 있으며, 구좌읍 해녀박물관길에 있다. 1932년 제주 동부지역 해녀들이 생존권 투쟁과 일제의 민족적 차별에 항거하여 일으킨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항일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는 해녀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부춘화 등 세 명의 해녀 조각상과 빗창과 태극기를 든 해녀들의 조각상을 배치한 기념탑이 있다.
* 해녀박물관 정원
해녀박물관 공원에서 내려오며 정원을 둘러보았다. 매우 넓고 해녀에 관한 배와 키와 닻, 블턱 등이 전시 되어 있다.
* 해녀박물관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은 제주 해녀들의 문화와 삶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 문화를 다양한 자료로 전시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이며 관람료가 성인 1,100원, 경로는 무료다. 1960~70년대 해녀들이 살았던 초가와 살림살이, 노동복, 해산물로 만든 음식 등을 통해 과거 해녀들의 삶을 보여준다. 모든 전시물은 실제 해녀들이 기부한 자료들이다. 박물관 앞 정원은 해녀 항일 운동의 집결지였으며, 이를 기리는 해녀항일운동비가 세워져 있다. 어린이들이 해녀 관련 놀이기구를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 해녀박물관 전망대
해녀박물관 옥상에는 바다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다. 바로 앞에는 세화해수욕장이 있다. 세화해수욕장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 검은 현무암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정식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수심이 얕고 파도가 비교적 잔잔해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산책하기도 좋다. 간조 시에는 넓은 백사장이 드러나며, 만조 시에는 해안 도로까지 물이 차오른다. 근처에 매월 5일과 10일에 열리는 세화민속오일장이 있다. 해녀박물관도 근처에 있다.
* 조군현 가옥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제주의 전통 가옥이다. 제주도에서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유일한 사례다. 1978년 제주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초가는 민속문화유산 제3-20호다. 기와집 와가는 민속문화유산 제4-6호다. 기와로 지은 안거리 안채와 초가로 지은 밖거리 바깥채가 마주 보고 있다. 밖거리는 대문간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과거 지방 향리직인 주사를 지낸 인물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조주사댁으로도 불린다. 1800년대 근대 및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축물이다. 바람에 대비해 기와를 크게 만들고 회땜질을 한 기와집과, 현무암 벽에 띠를 덮고 동아줄로 얽어맨 초가를 동시에 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 신촌 향사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신촌향사는 탑이 아니라 조선시대 지방의 공무를 처리하던 관청 건물로, 현재 제주도 유형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1977년까지 이(里) 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 중동 길가에 있던 것을 1805년 순조 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으며, 마을의 공무를 논의하고 풍류를 즐기며 활쏘기를 하던 곳이다.
2026년 5월 14일 목요일
* 신촌포구의 아침 풍경
신촌포구는 숙소 바로 앞에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아침마다 그날의 탐방 목저지로 이동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나와서 산책하며 거쳐서 간다. 오늘은 해뜨는 신촌포구가 더욱 비경이다.
* 제주4.3평화공원 입구
제주 4·3 평화공원은 4·3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배우는 공간이다. 공원 내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 위령탑, 봉안관 등이 있다.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평화기념관은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에 휴관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4·3평화기념관은 4·3사건의 발발부터 진상규명 운동까지 전 과정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이 있다. 위제단 및 위령탑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참배하는 공간이다. 어린이들이 4·3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장소다. 온통 푸름 청청한 5월의 정경이 제주4.3평화공원 입구에서부터 드리워져 있다. 부디 이토록 아름다운 평화가 영원하기를 빈다.
* 제주4.3평화공원 평화의 숲
제주4·3 희생자를 기리고 자연 속에서 역사적 아픔을 돌아볼 수 있도록 공원 내 1만 4,300㎡ 부지에 조성된 사색과 인권 교육의 공간이다. 4·3 유적지 곳곳의 상징적인 수종들을 식재하고, 비극으로 사라진 마을을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하여 방문객들에게 자연 생태와 역사를 함께 전하고 있다.
* 제주4.3평화공원 각명비
공원의 핵심공간인 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의 환상통로를 끼고 각명비가 들어서 있다. 각명비는 4·3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성명·성별·당시 연령·사망 일시와 장소 등을 간결하게 기록한 것이며, 당시의 마을별 단위로 각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추모를 위한 비석이 아니라, 4·3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죽음의 사실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기념물이다.
* 제주4.3평화공원 귀천
4·3 당시 민간인들의 죽음의 이미지와 전래의 수의를 모티브로한 조형물이다. 공원의 주 축선의 중앙에 설치된 상징조형물로서 다섯개의 열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어른 남녀, 청소년 남녀, 어린 아기 등 총 5개의 수의를 단순화·도상화하였다. 이는 4·3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한다. 실제 어른·아이 구분 없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사실적이고 설명적인 표현을 벗어나 상징적으로 도식화된 조형미와 죽음의 이미지를 전통수의의 상징성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표현의 간결미와 지역성의 문화특질이 잘 스며든 작품이다.
* 제주4.3평화공원 위령탑
제주 특유의 역동성과 경건함을 가진 제주도의 분화구 형태로 설정되었으며, 그 주변에 네 방위 수호기둥인 현대화된 방사탑을 설치했다. 중앙 연못의 물은 살육의 역사를 정화하는 정화수다. 그 중심부에 있는 2인상은 가해자·피해자의 이분화된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어울림을 표현하고 있다. 2인상을 둘러싸는 금속원형의 고리는 인간과 평화의지의 영원함과 완전함을 기원하고 있다.
* 제주4.3평화공원 정원
위령탑에서 각명비 담을 지나 정원으로 나오니 드넓은 뜨락에 여러가지 조형 설치물이 보인다. 그곳으로 가서 자세히 볼 것이다.
* 제주4.3평화공원 비설상
1949년 1월 봉개동 지역에 2연대의 토벌작전이 펼쳐지면서 군인들에게 쫓겨 두 살 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를 재현하여 만든 기념조각상이다. 등신대의 청동조각상인 이 작품은 4·3 당시 하얀 눈밭을 표현한 백대리석의 원형판 위에서 아이를 끌어 안고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공원의 지면보다 낮게 조성된 조각상까지 달팽이형의 제주석으로 조성된 진입로 벽에는 제주 전래의 자장가인 웡이자랑이 오석 위에 음각되어 있다.
* 제주4.3평화공원 이젠
제주를 상징함과 동시에 4·3을 품은 한라산에서 대지(미래)로 향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젠(시간적)’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 (인권, 평화, 통일)로 나아감을 표현하고 있다.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전시에 출품되었고 이후 제주4·3평화공원에 이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외경
앞에는 눈물이 고여 이룬 듯 큰 연못이 있고, 기념관으로 오르는 입구 양편에는 그날의 아픔들을 시로 새긴 시화가 설치되어 있다.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처러 곱게 펼쳐오르는 지붕이 애련하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엽서 쓰기
전시관에 들어서니 먼저 엽서를 쓰는 공간이 있다. 나는 비설상 모녀의 어머니에게 용기내시라고, 저 세상에서는 아기랑 행복하게 살라고 엽서를 써서 매달았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1관 역사의 동굴
제주4·3평화기념관의 제1전시실 '역사의 동굴'은 오랫동안 지하에 묻혀 있던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상징적인 첫 관문이다. 화산섬 제주의 중산간 지대에 산재한 천연동굴들이 당시 토벌대의 무차별 진압을 피해 숨어들었던 주민들의 천혜의 피신처이자 비극의 현장이었음을 모티브로 삼아 거칠고 어두운 동굴 터널 형태로 조성되었다. 기념관 지하 1층 상설전시실의 입구로, 관람객이 어둡고 긴 동굴 형태의 통로를 걸어가며 당시 피신했던 도민들이 느꼈을 고립감과 공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2관 흔들리는 섬
제2관 '흔들리는 섬'은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부터 1948년 4·3 무장봉기 직전까지 제주의 해방과 좌절의 역사적 상황과 갈등의 서막을 다루는 공간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가 왜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흐름, 즉 전쟁 - 해방 - 자치 - 미군정 - 3·1 발포 사건 - 탄압'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준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3관 바람타는 섬
1948년 4월 3일 새벽에 발생한 무장봉기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남북 분단이 굳어지는 역사적 과정을 다루는 공간이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 이후 이어진 미군정과 경찰,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 UN 소총회에서 결정된 '남한 단독선거(5·10 선거)'에 반대하며 일어난 제주 도민들의 움직임을 다룬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4관 불타는 섬
제4전시실인 '불타는 섬'은 4·3사건 당시 가장 참혹했던 초토화 작전과 민간인 대량학살의 역사를 다루는 공간이다. 전체 4·3 희생자의 80% 이상이 바로 이 시기에 목숨을 잃었다. 이 전시실은 당시의 참상을 시각적·공간적으로 극대화하여 관람객에게 깊은 묵직함과 슬픔을 전달한다. 중산간 마을의 소개 및 방화, 민간인 대량학살,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국 형무소 재소자 학살 및 예비검속 학살까지의 비극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원통형의 하얀 방 벽면에는 총살, 수장, 질식사 등 죽음의 다양한 형상들이 하얀 붕대로 둘러싸인 부조물로 표현되어 있어 압도적인 슬픔을 자아낸다.
*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5관 평화의 섬
제5관 '평화의 섬'은 4·3 사건 이후의 후유증과 진상규명 운동을 다루는 공간입니다. 4·3의 참혹한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해 온 회복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복구와 정착 그리고 후유증으로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도 제주 도민들이 겪어야 했던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기 위한 눈물겨운 정착 과정을 보여준다. 진상규명 운동으로는 오랜 기간 국가 권력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하면서도, 연대와 투쟁을 통해 4·3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유족과 도민들의 노력을 기록하고 있다. 4·3 특별법 제정은 수십 년에 걸친 진상규명 운동의 결과로 2000년 1월 결실을 맺은 「4·3특별법」 관련 역사적 자료와 법적 평가를 집중 조명한다. 평화의 섬에 인권의 나무를 심다는 4·3 사건의 명예회복과 해결을 위해 공식 사과 및 조치를 취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과 해결 과정의 이정표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제주4.3평화공원 문주
제주4.3평화공원의 문주는 공원의 공식 정문에 세워진 대문 상징 조형물로, 철망 구조물 속에 약 30,000개의 제주석을 채워 넣어 4·3 사건 당시의 희생자 수를 형상화한 추모 시설이다. 개방형 구조로 닫힌 대문이 아닌 열린 형태의 개방형 문주로 제작되었다. 이는 이념과 사상을 넘어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하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역사적 교훈을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하는 복합적 공원의 역할을 의미한다. 3만 개의 제주석은 양쪽 기둥을 이루는 철망 구조물 속에는 제주석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이 돌멩이들은 4·3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3만 명의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지역성 반영하여 제주의 자연을 대표하는 거친 현무암 제주석을 그대로 활용한 제주 고유의 향토적 특색과 문화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 신촌초등학교 앞 거리
신촌리 국지라는 여인의 열녀비가 원래는 신촌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학교 서쪽 100여m 지점 애향탑 바깥 울타리 서쪽으로 옮겼다. 조선 시대 1634년에 세운 비석을로 열녀비다. 현 비석건립년대는 1928년이다. 1978년 5월 신촌리민들이 애향탑을 세우면서 이 경내에 옮겨 세웠다. 하지만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학교 앞을 '열녀문' 또는 '열녀문거리'라고 부른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81cm, 너비 위 36cm, 아래 33cm, 두께 위 22cm, 아래 20cm이다. 인조 12년 1634년의 비는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1928년에 신촌리민들이 새로 만들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문의 내용은〈사비인 국지는 신촌리 사람으로 품관 홍질의 첩이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게 되자 그녀의 재색을 탐내어 호세로 겁탈하려는 자가 많았다. 이에 국지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하던 일을 모두 버린 채 시가로 옮겨 평생을 수절하였다. 숭정7년에 정려되었으며 탐라지에 그 내용이 실렸다〉는 것이다. 국지에 대하여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일설에는 국지에게 애정을 품은 한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결혼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는데 끝끝내 그를 뿌리치고 나서 그에게 잡혔던 손목을 작두로 잘라 버리고 일생을 수절하였다고 한다. 국지의 무덤은 신촌리 3842번지 속칭 원남 지경에 있다. 2015년경 신촌리사무소 앞으로 옮겨 세웠다. 나는 애련한 국지를 떠올리며 신촌초등학교와 학교 앞 거리를 사진에 담아왔다.
* 애향탑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의 애향탑은 신촌초등학교 서쪽 100여m 지점, 신촌사무소 근처에 있다. 1976년 신촌리 출신 재일동포들이 마을 안길 아스팔트 포장 공사비 3,200만원을 지원하고, 주민들이 노동력 연인원 3,000명을 제공하여 마을 발전에 기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신촌리를 정절의 고장으로 유명하게 한 열녀 국지(國只)의 비를 비롯해 총 19개의 마을 비석이 함께 안치되어 있다. 이 비석들은 원래 신촌초등학교 앞에 있었으나 1979년 애향탑을 세우면서 옮겨졌다. 이 마을은 공동체 정신으로 재일동포들의 고향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신촌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등 보은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 남생이못
남생이못은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인공 습지 생태 연못이다. 1933년 신촌리 청년들이 말과 소에게 물을 먹이고 주민들의 생활 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직접 땅을 파서 만든 인공 연못이다. 90년이 넘었는데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남생이 못 이름의 유래는 민물 거북인 남생이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옛날 원나라 황제가 이곳에서 제를 지내자 아들 즉 남자 아이가 생겨서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다. 습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나무 데크 산책로, 정자, 주민들이 과거에 사용하던 남탕과 여탕 흔적 등이 있다. 생태 환경동식물은 수련, 어리연꽃, 부들 등의 수생식물과 맹꽁이, 참개구리, 물자라, 소금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닭머르 해안길 및 올레길 18코스와 연결되어 있다.
* 닭머르 해안
신촌포구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억새와 낙조로 유명한 닭머르 해안이 있다. 닭머르(닭머르 해안길)는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해안 명소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앉아 있는 듯한 독특한 바위 형상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몰 명소로 수평선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낙조가 아름답다. 억새 산책로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은빛 억새가 가득 피어나며, 나무 데크로 조성된 산책로가 있다.
* 닭머르
닭머르 해안에는 정자가 산책로 끝자락 바위 위에 세워져 있어 푸른 바다와 억새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이다. 제주 올레길 18코스와 연결되어 있다. 정자에 올라가 쉬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했다.
* 신촌 4.3성터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해안가 언덕 닭머르 해안 인근에 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주민들을 감시하고 무장대의 공격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된 성터다. 무장대로부터 강제 동원되어 당시 살아남은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날라 성을 쌓아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략촌 형성을 위해 1948년 말 중산간 마을들이 초토화된 후, 해안 마을로 내려온 주민들을 집단 수용하기 위한 전략촌의 흔적이다. 현재 모습은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뚜렷하지 않아 찾기 어려울 수 있으나, 해안가 동산 위에 검은 돌들이 쌓인 형태로 남아 있다. 역사 탐방과 자연 경관 관람을 겸하는 명소다.
* 신촌환해장성
신촌환해장성은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해안에 남아 있는 고려~조선 시대의 방어 유적이다. 배를 타고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제주 해안선을 따라 쌓은 돌담성인 환해장성의 일부다. 약 90m가량의 성벽 흔적이 남아 있다. 폭은 약 240~250cm로 다른 지역의 환해장성에 비해 조금 넓은 편이다. 1270년 고려 원종 11년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조정이 처음 쌓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 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수 및 축조되었다. 인근에 철새 도래지인 대섬, 일몰 명소인 닭머르, 용천수장 등이 있다. 오랜 세월과 해안 개발 등으로 일부가 훼손되었으며, 신촌리 환해장성은 현재 비지정 문화재로 분류되어 관리가 필요한 상태다.
* 신촌마을 안갯물
이곳 용천수는 닭머르에서 숙소로 가던 중 마을 안에서 만났다. 보통는 해변에 있는데 독특하게도 마을 안에 있어서 안의 갯물이라는 뜻으로 안갯물이다.
2026년 5월 15일 금요일
* 숙소 하니하우스 외경
신촌포구에서 잘 보이는 펜션이다. 2층 복층 구조의 갈색지붕과 아얀 외벽의 건물이 아름다운 정경이다.
* 하니하우스 루니의 집 1층 내경
가정집처럼 잘 꾸며진 1층 객실이다. 세탁기까지 완벽한 시설이다. 4박5일간 참 행복한 여정을 보낸 애정어린 공간이다.
* 하니하우스 루니의 집 1층에서 본 신촌포구 풍경
1층 객실 침대에서 본 풍경이다. 이담힌 정원에 핀 장미와 신촌포구의 아치형 다리가 정겹다.
* 하니하우스 루니의 집 2층
2층에는 방이 2개 있다. 각각 침대도 있다. 화장실과 세면장도 있다. 아주 편리하게 가꾼 좋은 숙소다.
* 하니하우스 루니의 집 2층에서 본 신촌포구 풍경
2층에서는 신촌포구의 풍경이 더 잘 보인다. 다리와 바다, 포구가 모두 비경을 선사한다.
* 하니하우스 마지막 날 아침
4박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오늘 10시 20분 김포행 대한항공으로 귀가한다. 아쉬움으로 새벽 일찍 눈이 떠져서 객실 곳곳의 정든 공간을 사진에 담았다. 먼 후일 오늘이 그리울 때 훈훈하게 회억하며 볼 것이다.
* 숙소 하니하우스 떠나던 날
그 동안 제주여행 중 유숙했던 숙소들 중에서 가장 에정이 가는 숙소다. 디서 또 오고 싶은 숙소다. 그래서 자꾸 돌아보며 사진으로 이 순간을 저장해간다. 이제 집으로 간다. 이번은 제주의 역사탐방 여정이었다. 하니하우스 루니의 집에서 편안한 휴식으로 제주여정을 잘 마치고 가게되어 참 보람되고 흐뭇하다.
